“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정진석 추기경이 그렇게 말한 까닭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풍경1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아침형 인간’이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책을 썼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하루도 빠트리는 날이 없었습니다.
마치 독일 철학자 칸트의 일과처럼 정확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 추기경님과 인터뷰를 하면
어김없이 ‘번득이는 통찰’이 나왔습니다.
겉으로는 온유하고 점잖은 스타일이었지만,
인터뷰 질문에 답을 할 때는 달랐습니다.
오랜 세월, 자신의 내면을 향해
깊이 묻고,
깊이 답해 온 사람이 아니라면
내놓기 힘든 통찰이었습니다.
그래서 정 추기경님과 부활절 혹은 성탄절 인터뷰가 잡힐 때마다
명동성당으로 가면서 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풍경2
정진석 추기경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중앙고를 나왔습니다.
1944년에 입학해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41회로 졸업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이 모교인 중앙고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교 98주년(2006년)을 맞아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강연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고교생인 후배들은 “추기경 선배님, 추기경 선배님”하고
환호하며 반갑게 맞았습니다.
당시 정 추기경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를 했습니다.
“사람은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하루 중에도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추기경의 말씀처럼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 선택의 바탕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가 바로 내 삶의 방향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알려면
먼저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뿌리 있는 선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정 추기경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정진석 추기경이 생전에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있다.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거의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었다.”
놀랍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는
무려 12년입니다.
12년간 거의 매일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습니다.
“나라의 흥망성쇠가 담긴 역사책,
성공과 실패담이 담긴 위인전과 자서전,
그런 책들을 고루 읽고 난 다음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라.”
정 추기경은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역사와 인간을 먼저 이해하라”는
귀한 당부로 들렸습니다.
요즘도 “문ㆍ사ㆍ철”“문ㆍ사ㆍ철”하지 않나요.
추기경께서는 그걸 쉽게 풀어서 던진 셈이더군요.
#풍경3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습니다.
선불교에서 던지는 궁극적 화두도 “이뭣고”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입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은 “내가 사는가,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는가”라는
영성적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장례 미사가 집전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니 인간의 삶에는 ‘첫 단추’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나는 누구인가”에 답하는 일입니다.
정 추기경께서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꾹꾹 눌러서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나 자신을 알 때,
내 삶의 방향타도 잡을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삶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울 때,
우리는 삶의 마지막 단추도 제대로 끼울 테니까요.
[백성호의 한줄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