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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여러분!
초절정 더위에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8월 24일 충남 금산답사를 공지드립니다.
금산에서 가장 유서있는 절이라 할 수 있는 보석사를 찾아갑니다.
금산에서 전북 진안을 가는 국도를 가다가 진악산 방향으로 방향을 꺾으면 나타납니다.
한 때는 31본산의 하나로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했는데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입니다.
금산은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되었습니다.
이 절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임란초기 금산전투에서 조헌과 함께 참가하여 목숨을 버린
의승병장 영규대사의 유적이 있어서입니다.
일주문과 함께 그윽한 숲길이 나타납니다.
현판에 진악(락/요)산 보석사로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일주문 앞에서 회원님들께 설명드리겠습니다.
이 비각은 1840년에 우의정 조인영이 비문을 지은 기허당 영규대사 순절사적비를 세워 둔 건물입니다.
본래 이름은 옆의 빗돌에 의하면 의선각毅禪閣이었다고 합니다.
이 비의 글자가 훼손되어 있는 것은 누구의 짓인지 우리 모두 알고 있지요!
뒷면의 비문 내용은 자료집에 실을 것입니다.
보석사의 진정한 보석은 이 천년 넘는 세월을 지켜 온 은행나무입니다.
그 크기가 매우 압도적이어서 우리 같은 소인들은 그저 숙연해 할 뿐입니다.
가을에 노란 단풍이 들 무렵 다시 찾아 만나 볼 생각입니다.
보석사의 창건조사가 육바라밀을 상징할려고 여섯그루를 심은 것이
나중에 한 그루로 합쳐졌다는 설화가 있는데 현장에서 살펴보시겠습니다.
내를 건너 봉황문으로 진입하는 구역입니다.
대웅전에는 삼존을 모셨는데,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섬세하며,
상호가 원만하고 자비로워 조선후기 불상 중에서는 극치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11년 이 대웅전의 보수공사 중에 상량문 3장이 발견되었는데 1627년과 1766년에 중수한 상량문 두 장과
1882년(광서8년/고종19년)의 상량문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상량문의 내용이 아래의 현판에 원문으로 해석도 없이 실려 있는데
이번에 번역을 해서 답사자료집에 실을 계획입니다.
언뜻 보니 고종과 명성황후와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려고 민태호를 보내 중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조선말기에 보석사는 명성왕후의 원찰이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자세한 얘기는 답사때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경내에 있는 의선각입니다.
공주 계룡면 출신인 의승병장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올 때마다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보석사의 정문격인 종루입니다.
원래는 작고 예쁘고 아담한 출입문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이렇게 우람한 종루로 변해버려
주지스님의 엄청난 법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 문에 붙어있는 이 멋진 현판은 근대의 문인인 해강 김규진과 죽농 안순환이 합작한 현판입니다.
지금은 높고 멀리 매달려 있어 카메라의 줌렌즈가 아니면 살펴보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해강이 현판을 쓰고 죽농이 좌우에 난죽을 친 현판은 이외에도 대흥사大興寺 백양사白羊寺 송광사松廣寺 마곡사麻谷寺
해인사海印寺 은해사銀海寺 전등사傳燈寺 등 많은 예가 있어서 두 분이 참 잘 어울리는 묵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악산이 절 뒤에 높이 솟아 있습니다.
보석같은 절을 뒤로 하고 발길을 칠백의총으로 옮깁니다.
아까의 의병승장비가 파손되었듯이 이곳의 순의비도 역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불타는 열등감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쿠데타체로 쓴 종용사라는 한글 현판이 보입니다.
한자로는 從容祠라고 씁니다.
종용이라는 말은 현대말로는 조용하다거나 침착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뜻의 말이 이 사당에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사에서 모든 얘기가 이어질 것입니다만 종용취의從容就義라는 말을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근사록》에 나오는 정이천(程伊川)의 말에 그 단서가 보입니다.
“일시적으로 감격하고 분개해서 자기 몸을 죽이기는 쉬워도,
의연히 의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는 어렵다. [感慨殺身者易 從容就義者難]”
여기서 말하는 종용의 의미는 '침착하게 마음을 진정시켜서
털끝 만큼의 두려움도 없이 정의를 위하다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나라를 위하다 죽은 사람들을 제향하는 사당'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의총 앞에 복원된 순의비가 서 있고
그 비옆에 영문을 모르겠지만 중국산 백송이 심어져 있는데
수피의 문양이 마치 군복을 입은 듯 합니다.^^
의총을 나와서 전혀 뜻밖의 문화재를 만나러 갑니다.
제원면 천내리의 금강변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수石獸인 용석龍石과 호석虎石이 그것입니다.
두 석수가 약 100미터의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일설에는 홍건적의 난으로 피신한 공민왕이 자신의 무덤에 쓸 석물로 준비한 것인데
환도한 뒤에도 그대로 방치해두는 바람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랑이나 용의 조각수법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진 않았지만
고려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례가 드문 우수작입니다.
예전에는 보호각이 없이 노출되어 있어서 보기 좋았지만
지금은 좁은 보호각에 둘러쌓여 전혀 용호스럽지 않아서 관람에 불편하기만 합니다.
속히 인간들의 관리 한계물인 보호각을 치우고 자연의 관리력에 맡겨두길 바랍니다.
능묘 앞의 석물들은 언제 보호각으로 보존해서 아직도 잘 남아 있던가요?
용석 비각 좌측 멀리 호석의 비각이 보입니다.
금산에서 만난 또 하나의 유적으로 부리면 불이리에 있는 청풍사淸風祠를 찾아 갑니다.
여말의 성리학자이자 불사이군의 충절로 이름높은 야은 길재선생을 모신 사우이자 서원입니다.
전국의 많은 서원에서 길재선생을 모셨지만 선산도 구미도 아닌 금산에서는 어떤 연유로 사우를 세웠을까요?
이 지주중류비는 구미에서 본 것과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사우祠宇이고
서원의 강당입니다.
그 안에 주자의 글씨를 모각한 현판도 있었습니다.
금산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는데 비교적 상류에 해당되어 수질이 좋다 하겠습니다.
전북 장수군·진안군·무주군 등에서 발원하는 금강의 본류가
충남 금산군의 부리면 방우리, 제원면 천내리·용화리를 지나 충북 영동군으로 빠져나가서
여러 지류를 합하고, 공주에서 백마강으로 흐르다가 전북 군산에서 채만식을 만나 탁류로 흐르며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 중 금산의 부리면 방우리,수통리를 흐르는 강을 적벽강이라고 부릅니다.
강이 그리 깊지 않아 가족단위 물놀이객들이 많이 찾는 강이기도 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벗어나 잠시나마 강변을 걸어보려 합니다.
적벽강을 나와 고경명선생비를 찾아 갑니다.
그가 순절한 곳이기도 하니,
그날 전투의 현장이었다는 생각이 미쳐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들 중 누군가도
"후세사람들이 과연 우리가 이렇게 싸웠다는 걸 알아줄까?"
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왼쪽에는 파비가 보존되어 있고 오른쪽엔 복원한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파괴되어 성한 비편만 몇개가 보입니다.
근래에 새로 복원한 비입니다.
비의 뒷면에는 임진(1712/숙종38)년에 금산군수로 부임한 여필관呂必寬이
'조헌과 고경명의 공이 나란한데도
이웃에 있는 칠백의총은 국가적으로 잘 알려진 반면
고경명선생의 의진義陣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그가 순절한 곳이
후세사람들에게 잊혀질까를 걱정하고 세운 비'라고 185자字의 짧은 글씨가 박혀 있습니다.
고경명선생의 순절지를 나와서 대전과의 경계지점인 추부에 있는 이성계의 태실로 갑니다.
이성계의 태는 원래 무학대사의 지시로 함경도 용연龍淵에 있었는데, 왕위에 오른 후인 1393년에
이 곳(당시 전라도 완산군完山郡 진동현珍同縣 만인산萬仞山)으로 옮겨서 안치하고 태실비胎室碑를 세웠습니다.
세 동강이 난 비신이 보이시죠!
일제의 지시로 전국에 있는 태항아리를 서울로 옮기면서 이 태실도 파괴되었고
그 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석물을 모아 현재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금산이라는 지역은 그간 우리 답사팀에게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8월 답사를 통해
그들이 목숨바쳐 지켜낸 그 땅에 서서
그들의 죽음의 무게와 가치를,
후세인들이 기어코 알아줄 것이라는 다짐을,
전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합니다.
회원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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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은경 2-3.남정숙외 1인 4.김용희 5.강대진 6.고윤숙 7. 김임숙 8. 배만곤 9. 이인석
10. 이봉숙 11. 박경하 12. 권지영 13. 최상식 14. 조유승 15. 박민식 16. 성현희 17. 전현정
18. 김광숙 19. 성숙 20. 민정숙 21. 김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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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임진왜란초기 의병전투유적을 찾아서
1. 일 시 :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오전 07시 00시 출발, 시간엄수
2. 가는곳 : 충남 금산 보석사 / 칠백의총 / 용호석 / 청풍서원
/ 적벽강 / 고경명선생비 / 조선태조대왕태실
3. 참가비: * 성인 : 60,000원 * 대학생 : 55,000원 * 초,중,고등학생 : 50,000원
* 미취학 아동의 경우는 교통비와 기타경비에 해당하는 소정의 금액을 참가비로 받습니다.
* 답사신청은 입금순서에 따라 선착순이며 금요일까지 답사비 입금을 해주셔야 출발인원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회원님들의 협조를 바랍니다.
* 출발전 화요일까지 취소하면 100% 환불. 출발전 목요일까지 취소하면 50%환불. 출발전 금요일부터 취소하면 환불없음. (소수인원 참가로 인한 조항이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예 금 주 : 차 민 (010-5354-9538 / arch-smile@hanmail.net)
계좌번호 : 국민은행 349401-04-180747
* 입금자명은 반드시 실명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4. 출발장소 : 사당역 14번 출구(버스-다모관광)
첫댓글 정은경 남정숙님 외 1인이 통영에서 현지로 합류하신다고 입금하셨습니다.
김용희님 입금하셨습니다.
강대진, 고윤숙님 신청하셨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
입금하였읍니다.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
배만곤님 입금확인 했습니다.
늦었습니다. 답사 신청합니다. 2명
어서오십시오~~ 반갑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
박경하님 입금확인 했습니다.
권지영님 입금확인했습니다.
답사 신청합니다.입금했어요~~^^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조유승님 입금확인 했습니다.
답사 신청합니다. 입금했습니다.
어서오십시오~~ 반갑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
성현희 님 입금하셨습니다.
전현정님 신청하셨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
김광숙, 성숙님 입금확인 했습니다.
민정숙님 입금확인 했습니다.
친구 한명 추가 신청합니다 입금했어요
수고많으셨습니다~~^^ / 입금확인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