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엔트의 유혈여신 -
아나테 또는 아나트(Anat)는 고대 이집트인, 가나안인, 시리아인, 히브리인의 지모신적인 역할을 했으며, 탄생과 죽음을 주관한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천상계의 여왕’ ‘모든 신의 여신’ ‘팔레스타인의 오염되지 않은 처녀’ 등이 그녀에게 주어진 시호다. 예루살렘 신전에는 이 아나테 여신이 수백 년 동안 모셔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아테나(Athna)로 알려져 있다.
아나테 신앙은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시리아의 고대 가나안인의 유적에서 발견된 설형문자판에 의하면 아나테는 남자의 정액이 아닌 혈액으로 수태했다고 한다. 이는 생명을 전하는 것이 오직 피뿐이라고 여긴 고대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아나테 여신의 제사에는 유혈이 항상 따라 다녔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신전에서 산 제물이 되었다.
그녀는 전사들을 위해 좌석을 준비하고,
병사들을 위해 테이블을,
영웅들을 위해 다리 받침대를 준비한다.
그녀는 대 살육을 하고 만족스러운 듯 쳐다보고,
아나트는 자르고 찌르고 응시한다.
그녀의 간장은 크게 기뻐하고 부풀어오르고,
그녀의 마음은 환희로,
아나트의 간장은 승리로 가득 차고,
실제로 그녀는 그녀의 무릎을 병사들의 핏속에,
그녀의 매끄러운 허벅지를 병사들의 흐르는 핏속에 집어넣고,
마침내 그녀는 집 안에서의 살육에,
탁자와 탁자 사이의 참살에 만족했다. (오리엔트 신화, 존 그레이)
아나테는 매년 가나안인의 ‘불모(건기)’의 신인 모트에게 ‘죽음의 저주(anathema)'를 걸었다. 모트는 아나테의 아들이자 사위인 동시에 신에 대한 산제물이었다. 산 제물이 될 때 모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 산 제물 준비를 하라. 나는 어린양이다. 밀을 깨끗이 하고 성군으로서의 임기도 찼으니 산 제물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나테는 모트의 몸을 잘게 잘라 그 조각을 대지에 뿌리고 피를 쏟았다. 이것은 왕인 모트가 통치 기간 중에 책임을 맡은 수확을 마치고, 지모신인 아나테에게 ‘죽음->재생’, 즉, 다음해의 풍년을 약속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 아나테의 ‘죽음의 주문’-
신약성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마라나 타!(주여 어서 오소서!)”(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6:22)
이 구절은 ‘아나테마 마라나타(Anathema Maranata)’라는 말로, 예전에는 “신랑이여, 오십시오.”로 번역되었다. 하지만 본래의 뜻은 ‘신랑에게 죽음이 닥쳐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신랑이란 아나테 여신에게 바쳐지는 산 제물이니, 이 문구는 아나테의 ‘죽음의 주문’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나테는 주살의 능력이 있다고 여겨져 많은 신들이 그녀를 두려워했다. 그것은 천상계의 아버지인 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엘은 아나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탓에 그녀에게 공격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아나테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며 “그녀에게 맞서는 자는 모두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 정도로 무서운 여신이라는 점 때문에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신자들은 그녀를 ‘대지의 사안’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아나테는 늙은 마녀였는데, 예수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예수는 아나테의 시체를 태워 그 재를 바람에 날려버리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아나테에 대한 증오를 엿볼 수 있다.
- 그리스 여신으로서의 아나테 -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처녀신 아테나(Athna)로 파르테논 신전에 모셔진 신은, 사실은 아나테가 변신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제우스의 이마에서 완전 무장한 모습으로 튀어나왔다. 아테나의 용맹한 모습은 무장하고 태어난 모습에서도 상상할 수 있지만 거인족과 싸우고 영웅들을 도와준 이야기는 그리스신화 속에도 많이 남아 있다. 그녀는 페르세우스로부터 원조의 답례로 고르곤(메두사)의 머리를 증정받아 방패에 달고 다녔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아무래도 남자 못지않은 용맹한 이미지만 떠올리겠지만, 사실은 아버지인 제우스의 이마에서 튀어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성적이기는 했지만 지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다. 처녀신으로서 결혼에는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직물과 도예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혜, 학예, 공예 등을 관장하는 여신이기도 했다.
그녀가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여신이 된 것은 바다 신 포세이돈과 아테네를 둘러싸고 싸울 때, 포세이돈이 아크로폴리스 위에 말을 출현시킨 것에 맞서 그녀가 올리브나무를 돋아나게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신들은 이것을 보고 아테나야말로 주민들에게 유익한 선물을 했다고 인정하여 이 마을을 맡겼다. 물론 아테네의 이름은 그녀에게서 유래한다.
지적이고 학문과 공예를 좋아하는 아테나가 실은 아나테였다는 것이 선뜻 믿어지지 않지만, 이 또한 여자가 가진 의외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판타지 라이브러리 8권 타락천사 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