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종
김 아가다
지금 나는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DMZ 앞에 섰다. 최전방 칠성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산야는 철조망을 경계로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북녘땅이 내려다보인다. 먹먹한 가슴을 안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기만 하다. 입이 있어도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 무슨 주술에라도 걸린 것 같다.
높은 고지를 뒤로하고 한참을 내려오니 내륙의 바다가 보인다. 파로호에 물안개가 짙게 깔렸다. 물속에 잠든 영령들이 서러워 우우 소리 내며 진저리를 치는 듯하다. 가을빛 스산한 호수는 바람마저 조심스레 이운다. 안개 사이로 왜가리 두어 마리가 슬픈 춤사위로 날개를 흐느적거리고 있다.
파로호는 원래 화천호였다. 일제 강점기에 간동면과 화천읍을 막아 댐을 건설해서 생긴 호수이다. 화천은 6, 25전쟁 때 한국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중공군 3개 사단 2만 명의 죽음으로 화천은 피바다였다고 하나 가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시신을 감당하기 어려워 불도저로 밀어 화천호에 수장했다. 그 후 ‘적군을 물리치고 사로잡았다.’라고 하여 파로호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화천이 피바다가 된 것은 발전소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기는 힘의 원동력이었기에 빼앗고 뺏기지 않으려고 전투는 그토록 치열했었다. 그때의 상황을 발전소 탈환기념 전승비가 말해 주고 있다. 화천발전소는 38선 이북에 있었지만, 계급 없는 미 켈로 부대 첩보원들의 맹활약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파랗다 못해 잉크를 풀어놓은 쪽물 빛이 뚝뚝 서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속내를 알고 나니 파로호의 비경을 차마 아름답다고 하지 못하겠다. 누구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내놓았을까. 심연 깊은 곳에 넋을 풀어놓고 타국의 전선에 갇혀 있는 신세라니. 이념도 영웅심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국가의 부름에 떠밀려 왔을 터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뗏목다리를 거닐면서 자꾸만 몸이 흠칫거린다. 물 밑에 가라앉은 영혼들이 일어나 내 다리를 낚아챌 것 같아 주춤댄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것이니 보고 싶고 그리워, 애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파로호와 이웃한 간동면 오음리에 서 있는 월남 파병 용사 추모비가 낯설지 않다. 우리가 6, 25 때 도움을 받았듯이 유엔의 이름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수많은 장병의 목숨이 평화를 수호한다는 이름으로 떨어진 꽃이 되었다. 월남 참전용사들이 고향에 온 것 같다면서 이곳 파월장병 만남의 장소를 한 번씩 찾아온다고 한다.
저 멀리 평화의 댐이 보인다.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다. 댐을 터뜨리면 서울은 물바다가 된다고 했다. 금강산댐은 공포였고, 위협이었다. 전쟁을 겪어본 세대는 치를 떨었다. 노아의 홍수 때 하느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노라 약속을 했다. 하느님도 거부한 심판을 먼지만큼도 못한 인간이 전쟁의 도구로 물을 가두었다. 나라에서는 이를 막을 평화의 댐을 쌓기로 했다. 너도나도 모금에 동참했다. 어린아이들은 코 묻은 돼지저금통까지 내놓았다.
이제 무엇을 두려워하랴. 다시는 이 땅에 총성이 울리지 않기를 염원하여 사람들이 ‘평화의 종’을 만들었다. 평화의 종은 세계 각국의 분쟁지역에서 탄피들을 모아 만든 종이다. 종의 무게는 일만 관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의 무게는 1관이 모자라는 9,999관이다. 웅장하게 만들어진 종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한다. 1관의 미완성에는 비밀이 있다. 평화의 종 용두 옆에는 네 마리의 비둘기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그중에 북쪽을 향해 앉아있는 비둘기의 날개가 반쪽이 없다. 반 토막 난 날개는 보관함 속에서 새롭게 비상할 꿈을 세월의 무게에 맡기고 처연하다. 통일되는 그 날 반쪽의 날개를 붙이면 일만 관의 종이 완성된다고 한다.
종각 옆에는 인류를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려 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흉상이 있다. 그 밑에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기원하는 핸드프린팅이 설치되어 있다. 내민 손을 하나씩 잡으며 나 역시 평화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한다. 달라이 라마도 보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도 같이 있다. 평화의 종 저 옆에 서 계실 아버지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한 컷 그려 넣는다.
내 아버지도 화천 전투에서 한몫했다. 육군 위생상사였다. 의사면허도 없는 김 상사에게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며 살려달라고 했다. 그 당시 군용트럭을 운전했던 아버지는 응급처치를 받은 병사들을 후방으로 이송했다. 전쟁터에서 익힌 응급치료는 전역 후에 자식들 키우면서 유용하게 쓰였다. 우리 집에는 비상 약품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의사인 줄 알았다. 하물며 동네 아이들이 다쳐도 아버지가 치료해주셨다. “빨갱이들이 말이야......” 주먹을 불끈 쥔 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숨을 고르며 미완의 종을 타종해 본다. “펴~엉~화~” 깊은 울림이 메아리가 되어 퍼진다. 여운을 가슴으로 전해 들으려고 양팔 가득 안아본다. 오랜 울림이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온몸을 전율케 한다. 언제 일만 관의 완성된 소리를 듣게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세계만방에 통일을 알리는 우렁찬 포효가 산 넘어 바다 건너 하늘을 뚫고 울릴 날을 기다린다.
그 날, 철모를 쓰고 총대를 멘 비목이 하늘을 향해 웃지 않을까. 그들의 혼령이 비둘기의 날개를 붙이는 순간 드디어 승천하리라. 파로호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이국의 병사들이 꽹과리를 두드리며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첫댓글 6.25를 잊고 지내서 참 죄송한 마응입니다 미완의 종 그곳에 가봐야겠습니다
잠시 선생님의 묘사를 따라 그곳에 다녀온것 같습니다
그래요
평화의상징인 비둘기의 반쪽날개가
유리박스안에 기다리고 있었어요.
6.25가 얼마전 지났지요.
우리민족은 전쟁의 상흔을
잊지말아야겠지요.
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로호 화천전투 비목 평화의 종 김상사, 한국전쟁이 남긴 ㅡ
난 아가다 작품으로
손잡고 한 바퀴
스케치를 세세하게
하고 감상까지
듣고 6,25도 다시
가슴에 깊이 심고 일어나서
일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기분좋은
건강한 지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