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호 Vincent van Gogh (1888 ~1890)】 "풍경 Landscape"
A Lane near Arles 1888
1888.2.20 아를에 도착
고흐, 고호 나에게 고호가 익숙하다. 성은 고씨요 이름은 호다. 고호의 그림 속에는 자연과 길, 밭과 농부가 이 있다. 그는 세상과 세상 속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길가는 사람, 씨뿌리는 사람,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속에 주인공이 나무가 되어가는 모습처럼, 고호 역시 나무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혜가 채식을 선언한 이유는 꿈에서 본 끔찍한 환상 때문이다. 꿈 속에서 그녀는 피와 고기로 가득한 장면을 목격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고기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영혜의 채식 선언은 단순히 식습관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혜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 규범에 대해 저항한다. 출근하는 남편의 옷을 준비해두지 않고, 남편에게 해주는 밥도 자신과 같은 채식식단이다. 결국 남편과의 성적 관계에도 흥미를 잃고, 오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영혜가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점점 일상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영혜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밖에 외출할 때도 브래지어 착용을 거부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산다. 심지어 남편 상사 부부와 동반 모임 자리에서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채로 가고, 그 자리에서 고기를 거부하며 남편을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려고 하기는 커녕, 영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영혜와 대화를 나눠보는 대신 영혜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영혜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토로할 뿐이다.
파국의 극단은 영혜의 가족모임에서 벌어진다. 영혜는 가족모임에서도 고기를 거부하는데, 가족들 모두 그녀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기를 먹어보라며 권하기만 한다. 그 중,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을 가진 영혜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심지어 딸의 뺨을 때리고, 강제로 입을 벌려 고기를 밀어넣기까지 한다.
이제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져간다. 인혜는 그녀를 돌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가 나무로 변하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며, 더 이상 인간적 욕망이나 관계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고, 의사소통을 최소화하며 점점 고립되어 간다.
인혜는 영혜를 돌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인혜는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점점 자신이 어떻게 억압받고 무감각해졌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동안 동생 영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영혜가 채식주의자가 되고 난 후 벌어진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인혜는 동생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음을 인지하게 된다.
이제 영혜는 인간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고, 더 이상 인간적 삶을 유지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인혜에게 큰 충격을 주며, 인혜는 자신이 영혜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노력도 성과를 얻지 못한다. 결국 인혜는 동생을 구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 영혜는 단순한 정신적 문제를 넘어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인혜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자신을 향한 동생의 저항을 이해하면서도,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절망에 빠진다.
인간은 환경의 변화를 매우 싫어한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올 때면, 그것을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한다. 왜 그럴까? 사실 환경의 변화가 두려운 것이다. 모든 동물은 두려움 앞에서 저항하게 된다. 주먹만한 강아지가 늠름한 대형견 앞에서 짖어대는 것도, 자기가 이길 것 같아서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공격당하면 질 것을 알기에,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마찬가지로, 변화 앞에서 저항하고 몸부림치는 인간도 두려움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 변화가 자신의 안정적인 현재 상황에 위협이 될까봐, 변화를 온몸으로 거부한다. 그렇게 오랜세월 변화에 저항하며 지켜온 몇 가지 것들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져오고 있다. 이러한 관습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관습은 사회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이자, 때로는 그 나무를 옥죄는 덩굴이 되기도 한다.」
그림 속의 농부는 누가 보든 말든 말 없이 꾸준하게 또 적막하게 씨 뿌히기에 열중한다.
마치 작품 하나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붓칠을 하는 고호 자신처럼 말이다.
누구나 당연한 것을 거부할 수도 있고, 또 누구나 자유를 향해 날갯짓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자유를 향한 욕망을 침해할 수 없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지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고호의 풍경은 그 내면이 닮아 있다. 자기자신의 운명을 지고가는 그양말로 운명애가 황금빛 격렬함 속에 서려 있다.
Selfportrait on the Road to Tarascon (The Painter on His Way to Work) 1888
타라스콘으로 가는 길의 자화상
View of Arles with Irises in the Foreground 1888
1888년 전경에서 아이리스와 함께한 아를의 모습
Path Through a Field with Willows 1888
버드나무가 있는 들판을 통과하는 길 1888
Snowy Landscape with Arles in the Background 1888
1888년 아를을 배경으로 한 눈 덮인 풍경
Sower 1888
Peach Tree in Bloom (in memory of Mauve) 1888
블룸의 복숭아 나무(모브를 기리기 위해) 1888년
Peach Trees in Blossom 1888
1888년 복숭아 나무꽃
Almond Tree in Blossom 1888
1888년 아몬드 나무꽃
Apricot Trees in Blossom 1888 살구나무 꽃
Orchard in Blossom 1888
1888년 과수원의 꽃
Orchard in Blossom, Bordered by Cypresses 1888
과수원꽃, 사이프러스와 경계를 이루는, 1888년
Orchard with Blossoming Apricot Trees 1888
꽃피는 살구나무가 있는 과수원 1888
Orchard with Peach Trees in Blossom 1888 / 1888년 꽃피운 복숭아 나무가 있는 과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