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분위기는 옛것이 아니로다.'
부산의 승학산과 구덕산을 가기로 하였다. 이때쯤 승학산의 억세가 만발하였을 것이란 기대도 져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뭐든 처음부터 침착하면 헛수고를 안할텐데 설마하고 간과한 나의 성급함의 시행착오였다.
어젯밤에 본 그 버스 노선의 정류소인 시장근처로 갔으나 버스가 서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청앞으로 가서 그곳에서 갈아 탈거라고... 그런데 지도를 보니 지나쳤다. 이번엔 세무서 앞으로, 급히 다가가니 횡단보도옆 정류소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가 신호등에 걸려 출발선에 서 있었다. 살다 이런 횡재도 있어야지...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들판을 걸을때 간혹 다니던 코스에다 언젠가 하단에서 을숙도를 거쳐 김해공항 아래로 종일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코스까지 다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승학산 입구, 예전엔 우리 시에서 동아대를 거쳐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 노선조정을 하며 없애 버렸다. 나의 견해론 버스 노선조정이란 이용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버스 요금인상은 여의치 않으니 긴 노선을 잘라 자투리로 만들거나 새로 생긴 아파트를 돌게 하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진다는 나의 지론의 한가닥이다.
버스는 어느새 지금도 건설 중인 신도시 아파트 구역을 이리돌고 저리 돌았다. 나는 이런 도시형태를 싫어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넓은 들판에 신도시가 들어선 것이다. 우선은 농지를 훼손하여 집을 짖는다는게 장래의 식량자원 부족에 한몫할 것이란 생각이다. 기반시설 조성비가 싸게 먹힌다고 평지를 선호하는 업자와 그걸 지원하는 허가 당국의 편의주의화된 의사합치란 생각이다.
이름하여 '에코 델타시티', 1,2,3에 이은 4라는 숫자는 우리네 삶에서 조금 이질감이 든다. 그들만의 도시? 에코(Eco, 친환경)도 좋고, 델타(그리스 문자 4)도 좋은데, 알파(1)와 브라보(2), 찰리(3)는 이 도시 어디에 있는지 나는 소문 듣지 못했다.
결국엔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잃어버린...30년쯤 앞서가는 듯한 일본 상황을 읽으니 그들이 건설했던 신도시는 이제 인구 소멸로 쇄락하고, 다시 구도심으로 몰려 든다든가? 어쩌면 이 도시도 완전한 인프라가 형성이 되기전 인구 소멸로 어느 순간 성장이 멈춰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그렇다 치고, 그런 생각인들 어쩌랴? 들판을 걸으며 멀리 바라다 보이던 이곳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구경 한번 잘한다며 아까운 버스요금을 감성적으로 대체하기로 마음 돌렸다.
내가 내릴 정류소가 종점에 가기전에 있을줄 알았더니 예상치 못한 다른 방향에서 집입하기에 내려서 다시 두 정류장 버스를 타고 갔다.
날씨는 그런대로 땀이 날랄 말락, 가끔 눈에 띄는 사람들도 각자도생(?)이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별로였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숲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놀래라! 돌아보니 사슴이었다.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오래전 이 지점에서 녀석을 본적이 있었다. 그땐 꽃사슴 어린 녀석이 길을 막아서 멀뚱멀뚱 한참동안 나를 바라다 보았었다. 누군가가 키우던 녀석이 우리를 탈출 하였다고 이야기 들었다.
정상에 도착하니 또 다른 살아있는 생명체, 고양이였다. 아침을 굶었는지 다가서며 야옹거렸다. 여기까지 등산을 왔을리 없고, 니들 삶도 그토록 험난한 것인가? 돌아서 헤어져오며, 도시락 열어 밥덩이라도 던져줄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산행이 재미 없겠다는 선입감이 있었으나, 시작한 걸음이니 포기할 수도 없는법이다. 사진이나 찍자고 생각했으나 그럴듯한 피사체마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몇년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한 억세라도 기대를 했으나 지독한 여름 무더위 탓인지 꽃대가 거의 녹아내려 버렸다. 이런저런 경험으로 볼때 예전처럼 봄꽃놀이, 가을 단풍놀이도 이젠 그러한 자연을 제대로 눈요기 하기 어려워져 가는 느낌이다.
생물학자들은 지금 제6의 대절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확신하고 있단다. 앞의 다섯번은 운석이나 화산폭발 등 천재지변, 그러나 이번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현생 인류)'란 동물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의 멸망이 아닌 인간없는 지구, 인간이 뿌린 재앙의 씨앗에 동식물들도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인간의 속성은 악하다. 지금이라도 더 이상 환경을 훼손하지 말아야 할텐데, 누구든 자신이 멈추면 손해 본다는 심보를 버릴 수가 없기에 결국엔 너도 망하고, 나도 망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다.
어느 생물학자는 출퇴근 거리 왕복 7km를 7년동안 걸어 다녔다고 하였다. 나도 직장을 다니며 그만한 거리를 20년쯤을 걸어서 출퇴근을 했었다. 내게 지구사랑이 있었나?
하얀 억새꽃 가을 바람에 휘날림이 없다고 소문이 났는지 이때쯤이면 구경삼아 등산을 오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하다. 다른때 같으면 산을 내려와 시내에 진입해도 자갈치까지 한참을 걸었으나 오늘은 힘이 빠져 시내버스를 탔다. 그리고 전철로 이어 집으로의 귀가, 기후변화로 가을산의 기대가 무너졌지만, 자연속을 걸으며 생각하고, 감사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