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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작 뉴턴(1642-1726)
'만유인력'을 발견한 수학자이지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1642년 영국에서 태어나 84세까지 살았지만, 후세에 남을 만한 업적을 쌓았던 시기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수로 재직했던 40대 까지였다.그 후 40년은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뉴턴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1689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런던생할을 시작한 후부터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는 거의 활약하지 못 했으며, 의원생활도 단 한 차례만으로 끝났다. 의원시절 국회 문을 지키는 수위 에게 "문을 쫌 닫아 달라'는 말 외는 말을 거론 한적도 없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후 대학이 있는 케임브리지로 돌아가지 않고 런던에서 직업을 찾으려 했지만, 좀처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젊은 나이에 재무장관에 취임한 제자 '몬태규'가 직 업을 찾고 있는 은사를 위해서 조폐국 감사 일을 구해주었다. '몬태규'는 그저 뉴턴의 수입원을 확보해주 고 싶은 마음에 일자리를 구해준 것인데, 뉴턴은 그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고 그 활동상을 인정받 아 3년 후에는 조폐국 장관직에 발탁되었다.
당시 뉴턴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은 위조지폐를 감별하는 것이었다. 용의자를 체포하면 몸소 심문하여 그 수법을 자세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또한 지페의 초상화도 손수 디자인하며 위조할 수 없도록 복잡하고 정교한 도안을 고안해냈다. 그 후에도 이 일에 몰두했는데, 정부는 연금도 주고 연구 시간도 보증해주곘다 면서 은퇴를 권유했지만 뉴턴은 이를 뿌리치고 죽을 때까지 이 일에만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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