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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벨탑
- 노아 홍수 이후 시날 평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다시 하나님께 반역 도모.
창11:3-4
·벽돌과 역청
-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과 재능으로 만들었다.
-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에 사용한다.
- 거듭나지 않은 지, 정, 의는 언제나 하나님과 반대의 길을 걷는다.
-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자는 것은 하나님을 머리로 삼지 않고 자신들이 머리가 되려고 하는 것이다.
- ‘우리 이름을 내자’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창3:5)는 말과 동일한 의미다.
` 바벨탑은 하나님을 대항하며, 스스로를 높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시날지역은 평지로 돌아나 나무가 귀하다.
진흙을 구원 벽돌 =일명 세라믹(도자기)가 된 것이다.
높은 탑을 만들고 하늘과 당을 연결한 거룩한 곳의 기능
실제로는 통치자의 신적 권위와 통치를 위해 사용
- 바벨탑을 통해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는 것이다.
`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도 하나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 4절은 매우 난해한 구절이다.
- 4절을 히브리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여 이름을 냈다”.
- 이 문장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흩어짐을 면한다’이다.
- 인류에게 주신 최초의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
- 충만은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흩어지다’라는 의미가 있다.
-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흩어져라
- 온 땅에 주의 영광을 위해 흩어지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적 명령이다.
- 그런데 인간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
- 바벨탑을 쌓은 인간의 동기는 바로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 선교적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은 니므롯(창10:8)
- ‘니므롯’ = ‘우리가 반역하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유대인의 기록인 ‘하가다’는 니므롯을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에게 반역하도록 이끈 자로 기록하고 있다.
- 니므롯은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기록된 말씀 이후를 보면 그가 정복한 나라들이 나온다.
창10:10-12
사람을 죽이고, 대를 쌓아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다.
2. 징계
` 한 언어를 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 한 언어를 사용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 영광이 가득한 세상을 원하셨다.
그러나 니므롯을 비롯한 인간의 욕망은 그 언어를 사용하여자신을 신격화하고, 인간을 도구화하고, 하나님 영광을 가로채고, 신이 되려는 바벨탑을 만들었다.
-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려오신다(5절)
- 심판하시려고 내려오신다.
창11:5-9
하나님은 언어의 축복을 상실케 하셨다.
한 순간 수백가지의 언어로 나눠지게 되고, 엄청난 혼란이 찾아 왔다.
바벨 = 혼란시키다라는 바랄에서 나왔다는 주장과 바벨바벨하는 알아듣지 못하는 의성어라는 주장
일순간 말이 통하지 않는 공동체
공동체는 완전히 무너졌다.
3. 교회 안의 바벨
바벨은 하나님의 징계다.
말이 통하지 않게 하시는 징계다.
-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있다.
` 왜 말이 통하지 않을까?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떠나서 한번 생각해 보자.
모든 선입견과 성급한 결론을 다 버리고 잘 들어 보라.
` 이번 임직식을 준비하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임직식을 여러 번 했지만 당황스러운 적은 처음이다.
뭐든 말만 하면 다 되었다.
그런데 이번 임직자들은 조금 달랐다.
거듭 말하지만 잘했다, 못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판단을 미루고 끝까지 들어 보라.
한복을 입느냐 마느냐? 패를 하느냐 마느냐? 수건을 하느냐 마느냐?
한복을 빌리려면 돈이 듭니다. 패를 맞추려면 돈이 듭니다.
그 모든 것을 아껴서 교회 헌금을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나는 손님도 많이 오고, 단체로 하고, 패는 평생의 기념이 되고...,
나는 올드 세대이고, 그분들은 말로만 듣던 X 세대다.
` X세대를 찾아 보았다.
1968년 전후 출생한 새대
71년 생 103만명 = 58년 개띠보다 많다.
대학 30만명이 진학/ 지금은 70만명
엄청난 경쟁사회에 던져진 것이다.
대학을 졸업했더니 96년 IMF
1980년대 물아닥친 불경기가 그들의 미래를 박탈했고,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한 세대
호화로운 것을 거부하고, 최소한도의 것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자 하며, 사회와 기성세대에게 도덕성과 공정성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현실적이며, 모든 것을 편리하고 간편하게 해결하려 한다.
올드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것들이 소중하지만 그들 입장에서 보면 그 돈을 아껴서 교회 헌금을 하면 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만일 우리 교회에 젊은 분들이 없다면, 올드 세대만 있다면 이런 문제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 왜 직분을 안 받으려고 하는 겁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다.
저는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목사님께 건의하고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목사님처럼 착한 분은 마음이 아플 것이고, 나는 목사님을 좋아하니 그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도 어쩜 그렇게 맛깔나게 하는지 모른다.
` 나는 요즘 X세대를 연구하고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구나. 그래서 제안한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은 나보다 젊은 분들을 이해하고 배우라.
나보다 젊은 분들은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존중하고 배우라.
서로 배워야 한다.
젊은것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 꼰대야...,
그 순간 우리는 영원히 이별하게 된다.
그래서 그랬구나..., 이해하니까 쉽다.
나는 X세대에 걸쳐 있는 사람이다.
이 말 들으면 그 말이 옳고, 저 말 들으면 그 말도 옳다.
중심에 서서 그 간극을 이어보려고 한다.
서로 배우는 시간을 갖으라.
그러면 바벨은 사라진다.
` 우리는 어른이 있으면 조용히 하는 것으로 배웠다.
그들은 우리 입으로 우리가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우리는 선물을 줄 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주었다.
목사에게 선물 줬는데 누가 줬는지 아직도 모르고 받은 것도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네거야..., 당당하게 준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차이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우리 교회는 세대가 함께 있는 건강한 교회다.
그러니 서로 배워가고, 이해해 가라.
` 바벨은 세대차이 말고도 있다.
오해하고 사는 것 = 바벨 문화다.
식당을 해 보니까 깨닫는 것이 있다.
교회와 손님을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를 해야 한다.
돈을 생각하면 저렴이와 MSG를 써야 한다.
다행히 아직 나는 손님과 교회를 생각한다.
` 주일에 식사 준비하는 분들을 생각해 보았다.
성도를 더 잘 먹이려고 온갖 지혜를 다 짠다.
집에서 좋은 것은 다 가져다 먹인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실력이 다 다르다.
언젠가 김진아 권사가 부목사와 나를 먹이겠다고 소고기 가장 좋은 것을 사왔다. 그 요리를 내가 하겠다고 나섰다. 아뿔사!
그날 장진영 목사와 김진아 권사 얼굴을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가족인 아내만 한 마디 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못 먹어.
그런데 나는 정말로 맛있게 먹이고 싶었다.
그 마음을 기억하면 된다.
이것을 거꾸로 가져가면 바벨이 된다.
` 서로 오해하지 말라.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교우들 마음을 들여다 보면 하나같이 천사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마음이 오해를 사거나, 고단해서 아플 때가 있다. 이프면 소리를 지른다.
그걸 외면하면 벽을 쌓고 대를 쌓는다.
거대한 바벨탑을 쌓는다.
` 히브리어로 벽돌은 ‘다베라’인데 이를 뒤집으면 ‘라베다’가 된다. - ‘라베다’는 혼잡이라는 뜻이다.
좋은 의도로 해석하면 벽돌처럼 쌓아 올릴 수 있는데 뒤집어 해석하면 혼잡이 된다.
` 교회 안에서 목사와 당회가 하려는 가장 시급한 일은 바벨을 없애는 일이다.
혼잡한 언어로 인해 지구촌은 사분오열 되었다.
우리 교회 안에 혼잡한 언어가 있다면 교회는 사분오열되고, 끼리끼리 문화가 된다.
교회는 금세 무너진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교회 되라.
` 나의 목회를 물어보기에 엄마 목회라고 했다.
다른 말로 서번트 목회 = 종의 목회다.
노심초사 목회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우는 목회다.
속이 상해도 품는 목회가 엄마 목회다.
엄마는 다 준다. 다 일하고 와서도 엄마는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한다.
고장났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 부를까 하다가도 돈 생각나서 내가 한다.
성도 부를까 하다가도 직장에서 일하고 피곤할텐데..., 혼자 한다.
이런 목회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우리 목사님은 너무 연약해, 우우부단해, 강단이 없어..., 강력해야 하는데 두루뭉술해..,
그런데 나는 이것이 좋다.
그런 엄마같은 심정으로 오늘 당부한다.
` 나는 바벨이 싫다.
- 나는 편 가르기 하는 것이 싫다.
교회에서 소리치는 것 싫다.
교회에 마음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 싫다.
말이 안 통하는 바벨이 있는 것 싫다.
오늘 바벨 탑을 무너뜨리자.
진리에 관한 부분이 아니면 관용하고 품고 이해하자.
` 교회 일을 하다보면 논쟁이 생긴다.
논쟁이 생길 때 마다 생각하라.
이것이 복음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것이 영혼구원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논쟁으로 인해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하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논쟁을 멈추고 기도하자.
` 우리는 내 목소리 내려고 교회 오는 것 아니다.
직분자 되려고 오는 것도 아니다.
싸우려고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교회 온다.
직분은 소중하다.
= 하나님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직분은 절대 명예가 아니다.
` 광주에 있는 강력한 교회, 어떻게 장로님을 세웁니까?
하고 싶다는 분은 다 드립니다. 단, 항존직분자가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아서 쉽게 하려고 하는 분이 없습니다.
전에 1월 첫 주에 하는 전국 목회자 세미나,
대형교회 목사님 와서 강의/ 교회 사업하는 분을 다 장로 주자고 요청, 모든 면에서 훌륭하기에 권유했는데 끝까지 거절/ 목사님을 조용히 찾아와서 진지하게 하는 말/ 저는 사업을 합니다. 어쩔수 없이 술을 한 잔씩 해야 하는 자리에 있게 됩니다. 교회 장로가 술 마신다고 하는 말이 퍼지면 저도 저 이지만 교회적으로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거절을 받아 주세요.
항존직분을 받는다는 것은 제대로 교회 일도 하고, 교회 얼굴 역할도 한다는 의미다.
대충, 쉽게, 편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
예배, 기도, 헌신..., 모든 면에서 본이 되는 직분자가 되라.
그러니 이러한 모든 사역을 감당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직분을 주는 것이다.
` 엄마는 나이가 들면 지친다.
그렇게 지치면 장성한 자녀들이 엄마 일을 돕는다.
아들 이사할 때 내가 짐 들고 오르락거리는 것을 보며 아들 녀석이 무거운 것을 들고 막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들 다칠까봐 “난 좀 쉴란다”하고 천천히 놀며 하였다.
그것이 철든 자녀다.
이제는 일을 나눠야 할 때가 되었다.
휴가 가서 어떻게 일을 나눌지 구상할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먹고, 쉬고, 놀고 올 것이다.
목사 휴가가 있는 동안 아프지도, 힘들지도 말라.
연세 많으셔서 하나님께서 데려가려고 하는 분이 계셔도 우리 목사 휴가 갔으니 며칠 뒤에 가세요, 하라.
교회서 휴가비 안 타가니까 휴가비도 많이 주라.
2킬로 쪄서 오지 않으면 도로 돌려 줄 생각도 한다. 생각만 한다.
` 오늘은 우리 교회를 생각하며 설교를 준비했다.
서로 존중하라. 이해하려고 애를 쓰라.
다른 세대가 있다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다.
다르면 다른 부분을 공부하고 이해하라.
*카메룬 자나가키 부족= 남의 집 앞에서 이름을 부른다.
= 문을 두드리는 사람= 도둑!! 주인이 나오면 도망
-> 계 3:16 문 밖에 서서 문들 두드리노니
= 그들에게 예수님은 도둑이 된다.
- 문화가 다르면 의미가 왜곡된다.
성경을 다르게 번역했다.
내가 문밖에 서서 부르니
남인도= 목자= 파렴치한=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
->예수님은 목자, 대장 목자, 신앙은 예수님 따라하는 것
다 도망간다.
*한국에선 무릎 꿇고 기도 => 한국에선 좋은 전통
필리핀 무릎 꿇고 기도 => 벌 받는 일,
=> 필리핀에선 나쁜 일.
-> 문화를 강요하면 고단하다.
-> 성경적이냐? 전통적이냐? 본질과 껍데기를 구별하여야 한다.
- 우리는 성경의 본질과 껍데기를 자꾸 놓친다.
- 모든 단어는 형식과 의미가 있다.
- 폼은 같은데 의미가 다른 경우가 너무나 많다.
- 이런 경우는 모든 것이 왜곡이 된다.
- 그렇다면 form을 버리고 meaning을 취하라.
ex) 파파뉴기니아 => 돼자는 깨끗한 동물, 양은 지저분한 동물 - 하나님의 어린 돼지^^
` 교회는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다.
본질을 놓치면 똑같이 사랑을 말하지만 고집을 부린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
결론: 어떻게 바벨을 극복할 것인가?
- 불통이 소통으로 바뀐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다.
행2:4-8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 자기 목소리를 높이면 타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 하나님을 높일 때 말씀도 들려오고, 타인의 말도 들려온다. - 교회 생활은 듣기 평가다.
-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면 자신을 높이고 있느라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고, 우리 마음에 크게 외치시는 하나님 음성을 들으라.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시작하라.
다시 본질로 돌아가서 복음의 중심에 서자.
그때 언어는 다시 하나가 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뤄진다.
찬양: 여기에 모인 우리
기도: 타인의 말이 들려오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성령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시작하라.
세대차이는 이해하고 공부함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관용하는 사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