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재작년 1월말이던가..개학을 며칠 앞두고
애들과 셋이서 동해안으로 3박 4일로 여행을 떠났었다.
코스는 동해추암바닷가 --> 환선굴 --> 태백산 --> 용연동굴 --> 돌아옴
기차를 타고 눈이 내린 창밖의 설경을 감상하면서
마주 앉은 우리 셋은 설레는 마음에 기분이 새콩거렸다.
그동안 서로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함께 있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저린 시간이었다.
선뜻선뜻 기분이 좋다가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또 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그래도 그나마 많이 남은 시간은 우리에게 꿈같은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외할머니가 잘해주신다 해도 초췌하게 촌티가 나는 애들이
문득 내 모습하고 대조적인 것에 약간 어색함이 돌기는 했지만(남들이 보기에)
그건 그저 가슴에나 묻어 두어야 할 내 아픔이었다.
드뎌 동해역에 도착..어둑어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도책만 보고 떠난 여행...
추암바닷가도 동해시에 속해 있기에 생각없이 택시를 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택시 운전수가 비잉 돌아서 들어갔고 택시요금은 8천 5백원이 나왔다.
그뒤론 잘 모르는 곳에서 택시란 금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다는 너무도 좋았다..철썩거리는 파도하며...촛대바위등등..경치도 쥐겼다.
때묻지 않은 바닷가..
사람들이 많지 않은 바닷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져다 준다.
구슬구슬 겨울비는 내렸지만 출렁이는 파도속에서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 주면서
연발 콩콩 뛰며 웃음을 내뿜었다.
서울에서부터 열차를 대여섯시간을 탔으니 바닷가가 더욱 시원스러워 보임은 당연지사일게다.
추암은 여관도 한개도 없다.
바닷가에 작은 몇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민박 마을이다.
음식점 몇개 모두가 자기 집으로 살면서 지어논 민박집 몇개 그게 전부다.
그곳은 마음이 찌들거나 힘들때...친구들과의 여행으론 제격인 곳이다.
그 담날 우린 환선굴로 향했고...
환선굴은 멀고도 길었지만 볼거리도 많아 우리 셋은 거기서
어느땐 소원을 빌라 하는곳에선 서로 기도도 하면서
다 구경하고 나왔을땐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추암에서 맛있게 회먹은 여운이 남아서 거기선 천연송어회를 먹고...
디스토마 어쩌고의 내 초치는 말에 애들 20분간 왝왝거리고..
다시 버스로 이동 그리고 또 중간에서 갈아타고 태백산에 도착...
깨끗해 보이는 여관장을 골라 들어가 거기서 잠을 자고..
그담날 아침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고 김밥과 과자를 잔뜩 사서 배낭에 가득 넣고는
아침 9시쯤에 태백산으로 향했다..
당골에서 부터 시작.....
눈꽃축제가 바로 그 전주에 끝난뒤라...만들어놓은 얼음 조각들이 햇살에 녹았는지 부서진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30분쯤 올라가자...
어두컴컴 날씨가 찌뿌하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애들을 둘둘 마라 추위에 떨지 않도록 옷으로 칭칭 감아매긴 했지만
조금은 걱정스러워졌다.
그렇지만 목적지가 태백산이었기에...
그동안 내가 느꼈던 산행의 묘미를 애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망경사인지 어딘지 암튼 절에 도착...
그땐 이미 눈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추위때문에 덜덜 떠는 사람들...
더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는 사람들...
그렇지만 우린 또 감행을 했다 정상을 향하여...
거기부터는 사람들이 별로 안보이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격려와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뒤로하고..
무슨 작은 사당같은 곳에서 떨면서도 배는 고팠기에 밥을 먹고..
장군봉인가에 도착했다.(명칭이 가물가물)
겨우 지나가는 사람한테 사진 한장 부탁해서 사진을 찍고..
천제단으로 향했다.
눈은 쉬지않고 계속 내렸고 이따금씩 불어치는 눈보라는 눈뜰수 없을정도로
차갑게 우리를 온통 휘감았다.
그 순간만큼은 두눈을 꼬옥 감고 조용히 숨죽인채 그 회오리 바람안에서
꿋꿋하게 나를 지켜내야만 한다.
저만치부터 달려오는 눈보라가 보이면 약속이라도 한듯이
애고..또온다 또와~ 속으로 외치고는 그냥 그자리 정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얼마만큼을 그렇게 고개숙이고 갔을까...
천제단이 나왔다.
그 안은 바람이 불지 않았지만 가뿐 숨을 겨우 풀으니 발이시렵고 추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욕심에 애들에게 주목을 보여 주려고 다시 유일사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올라온 반대쪽이다....
사람들은 기척도 없었으며 오로지 산위엔 우리 셋만 같았다.
얼마만큼을 내려 갔을까..주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내려서 사람의 발자국은 흔적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30분째 한명도 못본 터라...
아들이 겁이 났는지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 우리 길 잃어버린거 아니지?"
"길을 잃어버리긴 걱정하지마~ 엄마가 다 알아서 할거야."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남자라고 쬐그만게 무척 고민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여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후 두서너명이 지나갔고 그때부터 아들이 마음을 놓는듯 했다.
우와! 저 주목 끝내준다.
"야? 저쪽으로 가서 얼랑 서봐."
애들 꾸역꾸역 눈에 파묻히며 불쌍하게 가서 선다.
"찰칵! 찰칵!"
"저쪽으로 다시 서봐. 야 저나무가 더 멋있다..저쪽 저나무로 또가!"
경치가 너무 좋았기에 애들이 너무 이뻤기에 그동안의 그리움을
사진으로 한꺼번에 다 담기라도 하듯 나는 사진찍는것에 정신이 없었다.
주목 아래에 멍청히 카메라를 보고 서 있던 아들이 입마개를 떼고 소리쳤다.
몇번을 그렇게 옮기고 난 후...
날씨가 추워서 인지...
갑자기 카메라가 안찍히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현상에 아들은 얼싸 좋아라 펄펄뛰었다.
그리곤 올라오다 누가 버린 비닐포대를 주워서는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딸은 입을 칭칭 목도리로 감은 이유도 있었지만
평소 산을 타기엔 힘들어하는 체력이라 그때까지도 별 말이 없었다.
말하는 그 자체가 아마 힘에 부쳤으리라...
사진도 찍었고 다시 천제단으로 올라와서 우린 경건하게 기도를 했다. 똑같이 서서..
무슨 소원인지는 서로 말하지 않고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무엇인지는 서로가 훤히 알고 있었다.
애들은 "빨리 엄마랑 함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나는 "하는일 다 잘되어서 애들이랑 행복하게 살 수 있었으면..."
다시 장군봉으로 내려왔을때...
시간은 두시쯤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애들하고 무슨봉인지는 까먹었는데...종주할 계획이었었다.
그렇지만 눈보라도 심하고 시간상 다시 올라왔던 그길로 내려왔다.
그땐 타인이 두고간 비닐포대를 각자 하나씩 비치하고 있었고
장군봉을 지난 언덕 아래부터 비닐포대 썰매가 시작되었다.
첫시작부터 딸은 주루룩 타고 내려가다 나무에 부딪쳐 한바퀴 뱅그르르
재주를 넘어 곤두박질 쳤고...
그것을 본 아들은 운전을 잘해서 멋지게 성공을 하였다.
나도 얼른 따라 내려가서 딸을 보았는데 울고는 있었지만
별로 심하지 않은것 같아 괜찮다고 얼랑 내려가야 된다고만 다그쳤다.
딸이 적은 글을 나중에 보니 강력한 내가 그때 좀 서운했었던 모양이었다.
딸은 첫타임부터 곤두박질에 무서웠는지 비닐포대를 집어 던졌고
무거운 아이젠을 차고선 그냥 고개 숙인채 투덕투덕 걸어 내려가고
아들과 나는 비닐포대 한쌍이 되어서는 연신 킬킬거리며 둘이 신바람 났었다.
저만치 뒤에 오나 안오나 그것만 확인하면 우리 둘은 신바람부대...^^*
셋이 하나로 뭉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를 상기하며....
망경사를 지나면서부터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놈들 장하네 소리 엄청 들으며 기분이 좋아진 애들은 말을 하기 시작햇다.
잠시 2초만 서 있어도 시려워지는 발...손....
움직이지 않으면 우린 추워서 얼어 죽는다..
그느낌은 서로가 알기에...그저 발길을 재촉하며 내려갔다.
"엄마! 눈앞에 뭐가 허연게 널러 다녀." (충청도 사투리)
"허연게 어딨어..." 하고 무심히 아들을 쳐다보던 나는 웃음을 멈출수 없었다.
아들 속눈썹에 고드름이 맺힌 것이다.
순간 딸의 눈을 보니 딸은 괜찮았다. 그건 키가 조금 크기 때문이었다.
또 한순간 나를 쳐다보던 애들이 깔껄거리고 배꼽을 쥐었다.
무슨 영문인가 했더니 내 코끝에 그러니깐 콧수염에 하얗게 서리가 맺혔다는 것이다.
내얼굴이야 내가 안보이니 웃는게 이상했지만
아들의 대롱대롱 달린 속눈썹 고드름을 하나씩 훓어 떼어주며
나도 연신 웃을수밖에 없었다.
한참 딸을 뒤로하고 아들과 비닐 눈썰매를 실컷 타는데..
올라오던 아저씨가 걱정스레 말을 해주었다.
내려가던 아줌마가 비닐포대 타고 내려가다 나무에 부딪쳐서 갈비뼈가 부러져
방금 119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그소리 듣고 아들과 나는 안전한 곳이 아니면 썰매를 멈추었고
평평하고 넓은 길이 나오면서 거의 다 내려왔음을 확인하자...
애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둘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불러대는 합창...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면서 듣는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다 내려왔을 땐 저녁 5시 45분...
밥을 너무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방안에서 씻고 누워 티비를 뉴스를 보던 우리는 서로 놀랐다.
태백산에 폭설이 내렸고...
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우린 그 산을 산행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 온 후 눈보라는 더욱 심했고
밖은 눈보라 소리로 창문이 덜렁덜렁 거린다..
미안해진 나는 잠들기 전에 애들에게 물었다.
"야~ 바다가 좋았니? 산이 좋았니?"
그러자 둘이 똑같이 크게 말했다.
"산이 훨씬 좋았어."
그다음날 열차시간이 늦은 관계로
용연동굴을 구경하고 동해에서 서울로 상경...
그다음날 애들은 시골로 내려갔고..그후로 애들 감기로 보름을 앓았고...
(그건 마음의 병이었다. 너무도 즐거운 여행에서 엄마와의 또다른 이별의 아픔...)
나는 애들이 앓으리란걸 예상했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께 나는 아직도 야단을 맞는다.
애들 데리고 여행 다니지 말라고.....^^
태백산은 영산임엔 틀림없는지...
천제단에서 빌었던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우린 그해에 아담한 공간에서 6년간의 가슴 아픈 이별을 깨고
오손도손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