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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연휴 기간을 이용하여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들의 틈을 헤치고 아침 09시에 인천공항을 떠나 중국시간으로 11시20분경에 호남성 장사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입국장에는 지난해 태항산맥 트레킹에 함께했던 동포 가이드 오선생이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줍니다. 사전 준비된 중국버스에 탑승하고 이동하여 공항 근처 도로가의 휴게소 빈 공간에서 미리 준비된 한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주변 온도가 섭시 40도 정도는 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휴게소에는 가족단위로 추정되는 많은 중국인들이 컵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식사 후 강서성 평향시로 이동합니다. 숨이 턱 막히는 아열대의 더위속에 끓어 오르는 것 같아 보이던 도로 주변의 풍경은 어느새 주변은 바람에 사각거리는 대나무 숲 아래에 조그마한 산촌들이 정겹게 펼쳐집니다. 약 두시간을 달려 도착한 아점촌(?마오디안)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다시 버스는 무공산 들머리로 향합니다. <무공산 들머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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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산행시작 지점에서 만나는 잔도 | 02 | 정상(금정)을 향하여 | |
무공산 정상 들머리 지역은 최근 무공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하는지 인근에 주차장, 숙박시설 등을 확장하는 공사가 대폭 진행 중입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합니다. 길게 펼쳐져 있는 산능선과 마을들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이 되어 시야에 들어 오는 지역입니다. 무공산 도보 산행로를 보며, 설레임을 가슴에 가득 안고 케이블카에 탑승합니다. 굵은 철길에 매달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지로 향한지 10여분 후인 16시20분경 목표지점에 도착합니다. 이제 산행의 시작입니다. 해발 1300미터가 넘는 높이 영향인지 길에는 시원한 바람이 걷는 사람의 피부를 스칩니다. 숲은 한궈런에 열광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감탄과 환호가 교차하는 길이 이어집니다. | 잠시 수평의 잔도길을 걷습니다. 운해와 햇살이 만들어 내는 명암이 산능선과 계곡을 지나 마을까지 이어지며 장관을 이룹니다. 멋진 풍경의 연속입니다. 다시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수직의 계단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합니다. 경사도가 매우 높은 콘크리트 길이 하늘 방향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계속 이어지는 길은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은 더 낮아지고, 시야는 안개로 인해 좁혀집니다. 어느덧 주변에 날리는 안개도 어둠의 색으로 변하고, 시원했던 바람은 거센 바람으로 변화합니다. 2번삭도길 주변에서 다시 중국 피서객 무리들과 마주칩니다. 무리 중에는 겨울옷을 입은 이도 보입니다. 몇분을 더 길을 따라 오르니 도교 사원(관음사)이 있고, 건물 왼쪽 풀밭길을 따라 몇발자국을 옮기니 더 이상 오를곳이 없어집니다. 18시30분경 정상 인증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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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02 | 2016.08.13 |
조마장객잔에서 하룻밤 |
<1일차 숙소 조마좡 객잔 - 삼겹살과 파김치 그리고 중국 백주>
내리막 길을 걸은지 한시간쯤 지나 산은 완전한 어둠에 물들고, 길가의 밝은 빛은 다가와 숙소가 됩니다. 객잔 밖은 거센 바람에 불빛도 날리고, 안개비 속에 음식 향기와, 사람들의 소곤거림도 섞임니다. 조마장객잔은 최근 개축을 했는지 산위에서 봤던 객잔 중 가장 크고, 깨끗해 보입니다. 침대 2대에 4인 1실로 만들어진 숙소 내부나 침구도 비교적 깨끗합니다. 당연히 휴대폰 밧데리도 빵빵하게 충전 가능해서 좋습니다. 산행 후 21시쯤 맛보는 늦은 저녁 음식도 아주 맛있었고, 회장님이 준비해온 중국 술의 향은 해외 산행의 만족도를 최고로 높여 주는 유쾌한 자리가 됩니다. 다만 화장실은 기준 미달입니다. 따뜻한 물을 사용하려면 15위안을 지불하면 6분간 온수를 쓸 수 있다는데.....아무튼 내 몸안에 있는 음식 찌꺼기를 굳게해서 내일 숙소에서 내보내 산이 되도록 하자는 다짐도 하고, 내 오줌발 보다 못한 수도꼭지에 흐르는 물로 이와 발을 닦았지만 자꾸만 발 밑바닥에 신경이 쏠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인근에 분명이 흐르는 물줄기가 있을 법도 하건만. 그렇더라도 잠결에 어릴적 여름철 돌산앞 바다에 불던 태풍과 비슷한 소리를 들었음에도 푹 잘 수 있어서 좋습니다. 2일차 시작 | |
가자! 운중초원으로 |
01 | 아침 풍경 | 02 | 어둠 같은 하얀 길을 가다 | |
분명 날은 밝았건만 주변은 어둠입니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곳은 수풀과 많은 텐트들이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숙소밖 기온이 낮아서 우의를 걸치고 식당으로 갔으나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야겠기에 식당에서 주는 식사를 포기하고 생라면과 대선배님 배낭에서 나온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합니다. 숙소앞 화장실 앞은 중국 꾸냥인지 소저들인지.....안타깝게 발구르며 오가는 모습이 자주 보입니다. 이쁜 아가씨들이 더위 피해 산에 올라 생리현상으로 남감해 하는 모습이 객잔의 안쓰러운 아침 풍경으로 남습니다. | 스트레칭 후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중국 아가씨들 박수를 치며 한국오빠를 외칩니다. 아마도 볼 일도 다 해결한 모양입니다. 07시 50분쯤 아가씨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추정되는 방향의 길을 걷습니다. 길은 몹시 가파르고 보이는 것이란 정면은 앞사람 등, 옆은 세차게 흔들리는 수풀, 그리고 간간히 소나무로 추정되는 나무들이 한그루씩 희멀겄게 보이기도 합니다. 평균 해발 1600미터 정도로 추정되는 길의 한 면의 아래 쪽은 때때로 직벽 비슷하여 아득함이 되기도 합니다. |
03 | 길은 반복된다. | 04 언덕이 시작되는 곳에서 희망을 보다 | |
길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고, 걷기에 편안길과 불편한 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풀은 여전히 방향을 바꿔 가며 자주 땅을 향해 바짝 몸을 낮춤니다. 거센 안개비는 사람도 때때로 몸을 낮춰야 생존 할 수 있다는 것을 풀잎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는듯 합니다. 안개속에 간간히 나타나는 객잔 주변에서 휴식도 하고, 길을 교차하는 중국사람들로부터 한국 오빠 소리를 듣기도 하며, 오고가는 대화속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신축중인 객잔 안에서 맥주와 행동식으로 에너지도 보충하며 보이지는 않지만 눈앞 초원을 상상도 합니다. | 트레킹 일정표에 운중초원이라 하여 저 푸른 초원 위 그림같은 집이 있는 평탄한 길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길은 안개속에 때로 높낮이 차이도 크고, 자칫 넘어지기 쉬운 내리막 길도 있습니다. 그 길의 가장 낮은 곳에 절망파(1300미터급)로 불리는 곳에 도착합니다. "파"의 뜻은 언덕이랍니다. 봉오리와 봉오리 사이의 낮은 지점 그 아래에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햇살이 보입니다. 개천과 마을과 길 그리고 초록으로 넘실되는 숲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멈춰서서 이제 안개가 걷일 것이라는 희망을 봅니다. |
<초원에 빛> |
2일차 점심 절망파에서 10분여를 걸으니 바위를 지나 오전 11시 10분 무렵 백운객잔(?)이 나오고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식사도중 일행들이 모두 탄성을 지르며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바람에 날리는 운해, 펼쳐지는 초원과 능선 아래에 숲들은 밤에 내린 비로 인해 고도차에 따른 기온 차이로 인해 물안개가 되어 구름이 되고, 구름 위에 있는 한낮 뜨거운 태양열로 인해 소멸하면서 드디어 눈 앞에 세상이, 연록의 초원이 열리는 순간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12시 25경 오늘 목적지인 발운계로 향해 출발합니다. |
중국의 5A급 국가풍경구가 60여개라는데 그중 강서성에는 6개가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공산당이 최초로 결집하여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정강산으로부터 이곳 무공산 끄트머리 -> | 에 붙어 있는 의춘시 소재의 명월산,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삼청산 등이 있다고 합니다. 무공산은 한단계가 낮은 4A급이라는데 등산로는 뚜렸하고 훼손도 덜되어 있으나 이정표가 애매하고, | |
능선에 개인들이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어지럽게 설치되어 있는 것이 국가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입장료를 받았던 산아래 마을에 관리책임이 있는듯 합니다. | 이정표 개선 시급하고, 일부 등로 훼손 대책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튼 조마장객잔부터 연결되는 등산로는 부드러운 흙에, 연록의 풀들, 그리고 야생화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
능선의 거의 모든 구간은 연녹의 풀들로 시원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사진찍기 좋았던 천장암 구간과 00객잔에서 중국맥주 등으로 간식을 합니다. 토요일이라 발운계 방향에서 오는 중국인들의 복장들이 다채롭습니다. 치마, 청바지, 산장분(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하는 민요도 불러주고)은 잠옷. 그분들 대체로 산중에 만난 한국인들에게 관심도 표명하고, 질문도 하는 것이 최근 사드관련 외교분쟁은 역시 정치인들과만 관련이 되나봅니다. 오후는 날씨가 화창하여 무더위와 싸움을 예상했지만 고지이며, 습기가 증발하는 영향인지 시원한 길을 걷다보니 오후 세시무렵에 발운계 객잔에 도착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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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간식 장소에서 본(객잔) 풍경>
객잔에서 객잔으로 이어지는길을 따라 내려 가면 다시 하얀 건물의 객잔이 나오고 우리는 왼편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 갑니다. 오늘 목적지가 이제 지척입니다. 멀리서 구름이 피어 나는 광경이 보이고, 드디어 오늘 하룻밤을 묵을 발운계 객잔이 눈 앞에 나타납니다. 조금 더 걸으며 펼쳐지는 풍경과 함께하면 좋겠다지만 하루 산행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운해가 시작된다는 발운계는 비교적 넓고 평탄한 지역 요소 요소에 객잔들이 몇개 있습니다. 그리고 객잔 주변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이 있고, 사람들이 샤워를 많이 하는지 곳곳에 목욕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중국땅 시냇가에서 하는 알탕. 거추장 스런것은 다 벗어 버리고 순수한 자연과 합일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진정한 중국 산행의 묘미인것 같습니다. 물이 많이 차갑지 않기에 좋았고, 몸을 완전히 물에 담글 수 없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긴 합니다. 저녁식사 샤워 후 객잔 주변 능선을 느그적 거리며 거닐다 보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됩니다. 무공산 산행 중 능선상의 객잔들에는 검정 닭을 키우고 있는 광경이 자주 목격됩니다. 오골계 같아 보이는데 중국 토종이랍니다. 아마도 그 종류의 닭이겠지요. 삶은 껍질에 검정 빛이 많습니다. 저녁 식사는 그 닭과 닭죽으로 하고, 여행사 이사장님이 국내에서 준비 해 산행 내내 힘들게 배낭에 챙겨온 갓김치를 반찬으로 더하니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객잔 마당에는 중국 비박팀들이 쳐 놓은 소형 텐트도 더러 보입니다. 이제 해발 1600미터 급 산에 펼쳐져 있는 초원의 낙조가 시직 됩니다. 아득하게 또는 바로 앞 능선의 끝 지점 하늘과 맞닿는 선으로부터 노을로 주변 하늘이 분홍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지대가 높아서인지 서쪽으로 떨어지는 해의 속도도 무척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어둠도 빨리 다가 옵니다. 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카메라를 챙겨서 객잔 앞 능선으로 갑니다. 그곳은 능선이지만 아래를 보면 절벽이 되는 선의 연결점입니다. 노을이 사라지는 시간, 하늘에는 다시 검은 구름이 피어나 흩날리기 시작합니다. 시선을 남서 방향으로 옮겨 봅니다. 낮에 걸었던 길들이 어슴프레 해지고, 능선 주변의 풀밭과 그 아래 수목 구간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아마도 초원은 옛 화전??? 위도는 낮고 고도는 높아 강원도 고랭지 기온과 비스므리 한것이 무공의 초원은 불로 인해 형성된 초지로 추정됩니다. 발운계 식당 건물과 별도로 있는 객잔의 숙소는 대체로 1인실이며, 전기 시설은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기 때문에 불이 어둡고, 밤 늦으면 발전기가 꺼지기에 밤에 일행들과 노닥 거리며 놀기에는 한계가 있는듯 합니다만 산속에 이 정도 시설이면 지리산 대표소 보다 나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객잔에 어둠이 내리자 창문 밖에서 천둥소리 같은 비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숙소 건물쪽 문밖은 또다른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그 소리들의 틈바구니에서 내일 아침 날씨가 화창할 것을 염원하며 잠이듭니다. 곧 발전기 가동도 중단됩니다. 세쨋날(14일) 새벽 4시 오선생의 모닝콜 소리에 기상합니다. 안개비가 건물 밖에서 간당 거립니다. 서둘러 간단한 요기와 세면 후 랜턴과 우의를 확인 후 명월산 방향으로 새벽 길을 갑니다.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추위는 남아 있기에 우의를 걸치고서 해드렌턴 불빛을 주시하며 발걸음을 산 아랫 방향으로 옯겨 나갑니다. 어스름한 안개 속에서 옛 건물터도 보이는 것이 무공산이 화전민의 땅이 었음이 짐작이되고, 발걸음 수를 더할수록 주위는 밝아지기 시작하고, 멀리 구름속에 먼동이 터오는 시간이 됩니다. 바람에 날리는 안개따라 회원님들의 감탄사 숫자가 비례하던 중 급경사 초원길은 바람에 적응하여 강인한 생명의 숨을 내어 품는 억센 숲길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제 초원과 이별하는 시간의 길을 걷습니다. |
어느새 동쪽으로부터 운해속에 해는 떠올랐고, 안개는 여전히 바람에 밀려 능선을 따라 움직입니다. 끝없을 것 같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계속됩니다. 해발 평균 1500미터 지대를 수목을 장시간 헤치다 보니 일행들 중 간혹 힘들어 보이는 분도 계시지만 길 상태는 정상 능선의 오염없이 깨끗한 수목들 사이로 뚫려 있어서 아름답기도 합니다. 다만 간간히 중국 상표명 가득한 과자봉지, 물병들이 휴식장소로 추정되는 공간들에 산재되어 있어서 눈살이 구겨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양사막 잔도까지 이어지는 길은 말똥, 소똥, 염소똥 없고, 인적도 드물고, 바위 위에 수목이 자라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어 신비스러움도 되고, 공기가 깨끗하고 상쾌하여 몸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이어지는 길이 계속 됩니다. 발운계에서 양사막까지 GPS기준으로 7~8키로미터로 추정되는데 속도를 내기가 어려운 길입니다. 그래서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6섯시간 가까이 소요된듯 합니다. 여섯번 무공산을 찾았다는 오선생도 길 안내는 잘 하지만 봉오리 정보나 구간구간 거리, 소요시간 측정, 주변지역에 대한 정확한 인문, 지리 데이터가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시 경계점을 기준으로 정한것 같은 무공산 구간(평향시)이 끝나고 복산(길안시 안복현)으로 바뀌는 지점에 공사중인 푸른색 철골조 객잔을 지니자 이제 길도 넓어지고, 일반인들의 삶이 녹아 있을것 같은 평탄한 구간의 길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길가에 대나무와 전나무가 부쩍 많아집니다. 오늘 양사막을 가기 위해서는 목표지점 전방 1키로미터 지점에 있는 심가대원이란 간판의 작은 휴게소를 거쳐야 하는데, 예전에는 이 산중에 사람들이 더러 살았는지 주변에 작고 낡은 도교 사원도 보입니다. 아마도 산속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한족의 영향을 받아 복, 지위향상,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사원을 세운 모양입니다. 쇠락한 건물에서 산사람들의 애환이 전해지는듯 하여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중국 도교는 크게 두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평교-삼국지 시대의 오두미도- 정일교로 미어지는 장각, 장릉 등 장씨들이 만든 도교는 중국사를 관통하다가 국공내전 당시 주류층이 대만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아 최초 교주로부터 64대째 이어지고 있고, 중국 8선중 가장 유명하다는 당나라시대 실존 인물인 여동빈의 영향을 받았다는 왕중양(무협지 동사서독에 많이 언급됨)의해 만들어진 전진교가 있습니다. 현재 전진교는 김용의 영웅문에도 많이 언급되는 장춘진인 구처기( 징기스칸시대) 시대에 크게 교세가 확장되어 대륙의 대표 종교로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사에 공산딩이 정권을 장악하고, 문화혁명 등으로 인해 대륙에서 바짝 숨죽이고 있다가 최근 개혁개방으로 다시 살아나서 특히 산동성 일대에서 발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식을 먹는 도중 누군가로부터 이곳 심가대원에 있는 사람들은 만주족이라 하는것 같은 소리를 들은것 같습니다. 맞다면 청나라가 망한 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일족이 한족을 피해 이 산으로 들어왔겠지요. 중국 대륙에서 만주족이 다시 중심이 될 날이 과연 있을까요? 동북 3성은 다시 우리민족의 땅이 될 날은 있겠지요? <심가대원> 어마어마한 크기의 곰취가 있는 심가대원 건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계단길을 오르자 20여분 후인 10시40분쯤 GPS 기준 해발 1580미터의 양사막 풍경구 입구에 도착합니다. 우리 일행은 허름한 건물에 매표원에게 입장료를 납부하고 다시 안개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중국인 3인은 매표소를 거치지 않고 왼쪽방향으로 가면 명월산으로 연결된다며 비박장비를 갖추고 그 방향으로 계속 진행합니다. 그들의 건강한 무릎이 부러움이 됩니다. 양사막 잔도 주변 길은 온통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지만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떠올리며 상상의 길을 걷습니다. 상상의 기준은 매표소 옆에 걸어져 있는 명월산 사진이 됩니다. 안개속에 수목은 푸르른 빛을 잃고 있지만 안개 걷힌 빛나는 날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도를 따라 앞으로, 또는 아래로 나아가니 잠시 후 다시 새로운 건축물이 나타납니다. 이번에 만나는 건물은 제법 규모가 크며, 건물 주변에 중국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그 건물은 중국 관광객들이 산 위로 올라와서 찾는 양사막 휴게소겸 매표소인것으로 보입니다. 일행 중 일부는 컵라면을 또 일부는 양사막 잔도길을 걷습니다. 길은 희미한 안개속에 절벽과 주변 식생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펼쳐집니다. 한자 표기 양사막의 한글 표기는 양사모, 양사무, 양사묘 등으로 안내되어 있는것 같습니다. 그곳 잔도는 규모는 작지만 장가계 원가계 느낌과 소나무와 절벽은은 황산 느낌이 나는듯합니다. 우리나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나무도 보이며, 식생은 제고향 돌산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길안시 안복현 복산에 해당하는 양사막은 명월산과 더불어 날씨 리스크는 크지만 향후 온천 휴양과 피서관광지로 각광 받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 잔도 바로 아래 공간은 집단시설이 들어서고 있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과 비례해서 건축물 뼈대는 올라가고, 망치소리는 요란할 것입니다. 조성중인 집단 시설지구에서 중국 산에 흔히 있는 빵차를 잠시 타고, 아랫 시설지구로 내려오니 넓은 주차공간과 함께 꼬마열차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차를 타고 10여분 가량 이동하니 산중 호수가 나오고 명월산 관광단지임을 안내하는 시설물들이 나타납니다. 명월산의 행정구역은 강서성 의춘시에 해당하니 3일간 3개 시를 거친셈이 되는군요. 다시 입장권을 구입 하고 빵차에 탑승하여 명월산으로 이동을 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잔도행은 포기합니다. 하산용 케이블카는 탑승 거리가 길어서인지 중간에 있는 건축물에서 멈춘 후 해발 500에서 600미터로 추정되는 명월산 입구 마을로 내려갑니다. 케이블카와 산중 폭포수는 절벽을 따라 산 아래로 힘차게 떨어지고, 중국인들은 피서를 위해 급경사인 산길을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 교차합니다. 힘찬 내리막과 힘겨운 오르막 사이에 펼쳐지는 풍경이 이곳이 국가급 풍경구인 아름다운 명월산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케이블카 하차 후 명월산 풍경구 입구 마을의 성발 식당에서 맥주와 중국 술, 그리고 음식으로 점심을 하니 오후 한시가 됩니다. 고속철도가 있는 의춘시까지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6인승 차량 5대를 대절하여 분승 후 의춘시 철도역사로 이동 합니다. 차로 주변은 농토가 많고 경치 좋은 곳에는 피서 산장들이 더러 신축되고 있으며, 산 아래 도시에도 온천들이 곳곳에 보이기도 합니다. 아래 사진은 평향시와 인접해 있는 의춘시 철도역 광장입니다. 이 도시도 인구가 500만이 넘는 큰 도시로써 강서성의 대표적인 문화 휴양 관광지로 거듭날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의춘시는 조선시대 중기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지인 남해군 노량에서 사전에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예감하고 조선 판옥선을 빌려서 장군을 호위하다가 전투 중 전사한 명나라 등자룡 장군의 고향이기도 하답니다. 하여 장군의 전사 지역(사실은 제고향 여수 앞 바다이기도 합니다만)인 우리 남해군과 자매결연 도시가 되어 있답니다. 또한 국내의 많은 서적에 의하면 달마대사 후 6대조인 혜능이 강남 출신이며, 어린나이에 득도하자 5대 홍인 선사의 배려로 선배들을 피해 강서성과 인접한 광동성 북쪽에 있는 조계산에서 약 20년간 보림을 하게 되고 이후 양쯔강 남쪽 지역에서 선의 황금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 시대 즉 당나라 당시 남쪽 선종을 이끌었던 선사 중 한명인 마조도일 선사가 이 지역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었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현재에도 불교 유적지가 많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선종 계열의 불교는 당나라로부터 통일신라 시대에 전래되어 9산선문이란 이름으로 양양, 장흥, 남원, 성주 등지의 호족세력과 관계를 맺으며 발전합니다. 그리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가 누구나 "왕" 될 수 있다는 논리가 되어 고려 개국의 사상적 기반이 됩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불교의 주류 종파인 조계종 계열은 임제종(고려 공민왕 시절 들어 옴)의 영향을 크게 받기도 했다고 교과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옛날 이곳 의춘 지역에서 태동한 불교의 한 종파로써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가르치며, 수행 중 번뇌를 끊기 위한 방편으로 "할"을 외치기도 하는 임제종이 곧 현대 우리나라 주류 불교의 원형이라 여겨 집니다. 유교의 한 파인 주자학이 중국에서 발생했지만 조선에서 꽃을 피웠던 것처럼 선종 또한 현재 한반도에서 그 맥을 유지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당나라 말 회창법난 후 중국에 불교가 빛을 잃어벼린 후 선종 계열 또한 점차 지리멸렬 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에 다시 선의 황금시대가 도래 할 날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날이 있다면 아마도 이제는 역으로 우리나라를 통해 배워가서 종단의 발전을 도모해야 할것 같습니다. 이제 종교의 시대는 가고 현실 세상은 돈 중심으로 확대 재편 되는듯 합니다만 세계사에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역시 우리 전통문화의 강점을 살려 가며, 문화 강국의 길을 키워가는 방향에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절기 휴가철 비행기 표 문제로 광동성 광주로 이동하기 위해 의춘시에서 평향시를 찍고 기차는 다시 호남성 장사시로 이동합니다. 시속 300키로 미터로 40여분 달린 후 내린 장사역 공간의 규모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역시 중국은 대국입니다. 역사 밖에서 김선생과 이별을 하고 다시 철도역사 내 이선생이라는상호의 간판에서 중국식 패스트푸드로 저녁식사를 해결합니다. 중국어 소통 문제가 있기도 했지만 사진속에 파란 옷의 19기 선배님 덕분에 시원한 맥주와 음료수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 내기도 합니다. 베품에 감사드립니다. 식사 후 오선생과도 작별을 합니다. 아무튼 세상은 도처에 고마워할 일이 있는듯 합니다. 저녁 7시 50분쯤 고속 열차는 중국 근현대사 중국 혁명의 시작지였던 광동성 성도 광주시를 향해 다시 출발합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저녁 12시 무렵 시내를 관통하는 주강(초등시절에 중국 3대 길이의 강으로 배운 기억이 있어서 더욱 새로운) 가에 위치한 37층 건물 중 27층에서 산행내내 모범을 보이시던 대선배님과 함께 같은 방에서 마지막 1박을 합니다. 네쨋날 아침 호텔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회장님 이하 여러 선배님들, 후배님, 사장님, 가이드선생님들 덕분에 여름 휴가를 시원하고, 장쾌하게 보낸 고마움을 가슴에 가득 담고 귀국을 준비합니다. 중국 광주공항 입구에서 입장객을 통제하는 아가씨 공안을 보고 파란옷의 선배님이 이쁘다고 하시기에 제가 호응하며 눈 바라봤더니 막았던 줄을 열어주며 어서 입장하라고 하더군요. 역시 칭찬은 말은 안통해도 눈빛으로 마음으로 통하게 하는 연결고리인 모양입니다. 3중의 출국 심사 장을 거쳐 국적없는 공간에 서며 3박 4일의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오후 세시간 여의 비행 끝에 다섯시 삼십분경 인천공항 내부를 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열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삶의 길에 소중한 추억 한개 추가할 수 있어서 기쁨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첫댓글 멋있는 산행기 잘 보았으며,감사드립니다~~!!
역시 내공있는 멋진 산행기네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