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푸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 용대리. 내설악이 만든 용대리 마을 풍경. 천변으로 덕장이 있고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설악산은, 금강산을 만들어낸 백두대간이 숨도 고르지 못하고 빚어낸 산이다.
제 아무리 빼어난 경치를 지닌 금강산도 홀로라면 외로운 법.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은
한반도 허리춤에 금강산과 어깨동무할 수 있는 설악산을 만들었다.
설악의 품에서는 명태의 화려한 변신도 무죄
진부령과 미시령을 넘기 전의 마을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 골짜기를 적신 계곡물이 작은 내를 이루는 마을 용대리는 쌍룡의 전설이 흐르고,
눈이 하얗게 깔린 겨울날엔 식탁 위의 진객인 황태가 만들어지고 있다.
- 황태를 만드는 것은 바람.
- 인제 용대리에 가면 황태가 익어가는 향을 맡을 수 있다.
여행객들의 시선이 무심하게 스치는 그 시간에도 황태 덕장엔 동태가 걸리고
햇살을 받은 동태가 황태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요즘 용대리 황태 덕장에 걸리는 동태들은 북태평양 먼 바다에서 '명태'라는 이름으로 잡힌 것들이다.
명태는 원양어선을 타고 속초항이나 거진항으로 들어와 할복장에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알과 내장을 다 내어준 후에야 '동태'라는 이름을 얻는다.
명태의 알과 내장이 입맛 까다로운 사람의 혀까지 녹여내는 명란과 창란으로 변신하는 사이,
명태는 동태가 되어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넘어와 용대리 덕대에 걸린다.
동태가 된 명태는 덕대에 걸려 겨울을 보낸 후 황태로 거듭난다.
- 덕대에 걸린 황태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생선도 있다니...
용대리는 명태가 황태로 변신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지녔다.
설악에서 불어주는 바람과 밤이면 곤두박질치는 영하의 날씨가 맛 좋은 황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노랑태'라고도 불리는 황태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물에 불린 듯 통통해진다.
속이 푸슬푸슬 부풀어 올라야 최상품으로 치는 황태 농사는 여느 농사와 같이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적당한 바람과 영하의 날씨가 없다면 황태는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대리 사람들은 황태를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한다.
조선조 함경도 명천군의 태씨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아온 생선이라 하여
'명태'가 된 명태는 잡히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이름으로 살아간다.
명태는 잡는 과정과 방법·시기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명태는 선태·왜태·생태·동태·북어·코다리·노가리·은어바지 등 다양하게 불리지만,
황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생기는 이름도 여럿이다.
황태로 건조시킬 때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색깔이 하얗게 된 것을 것은 '백태'이고,
백태와 반대로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색깔이 검게 된 것은 '먹태' 또는 '찐태'라고 한다.
작업을 할 때 머리나 몸통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잘려나간 것은 '파태'이고,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이 걸어 건조시킨 것은 '무두태'라 한다.
또 작업 중에 실수로 내장이 제거되지 않고 건조된 것은 '통태'라고 하고,
덕대에 걸어 건조하던 중 바람에 의해 땅바닥으로 떨어진 것은 '낙태'라고 한다.
수분이 다 빠져버려 딱딱하게 마른 것은 '깡태'라고 한다.
깡태는 방망이로 두들겨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주로 제수용으로 쓰인다.
잡히는 순간 다른 이름이 생기는 명태는 지칭되는 이름이 알려진 것만 해도 35가지에 이른다.
어느 생선이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버릴 것 하나 없다는 명태를 활용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눈물겹다.
이 겨울 내설악의 깊은 계곡물이 만들어낸 북천강은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다.
보름 전 내린 폭설이 그대로 남아있는 용대리는 지금도 눈천지다.
백담사 가는 길이 뚫리려면 3월은 되어야 가능할 터.
백담사에서 동안거 중인 스님들이 고립무원의 땅에서 긴 겨울을 보내는 동안
용대리에선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동태가 황태로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다.
- 누구시죠 ?
- 명태가 아니라 황태라 불러 주세요...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 따르면
'명태는 몸 속에 찌든 독을 해독하고 과음으로 피곤해진 간을 보호해 주며,
피로회복과 혈압조절에 큰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알고 보면 황태가 해장국으로 유명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명태에는 아미노산인 리신과 뇌 영양소 트립토판이 들어 있어
아이들의 성장발육에도 큰 도움이 되는 식품이다.
연말과 연시를 보내며 술독에 빠진 이들의 간은 피곤하다.
하루라도 편히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 세상.
그들에게 설악의 바람이 만들어낸 황태를 강력 추천한다.
식성에 따라 드시라.
찜도 좋고 구이도 좋고 해장국도 좋다.
이미 400년 전 허준이 그걸 증명해 내지 않았던가.
- 황태 덕장 황태로의 화려한 변신을 꿈꾸는 명태.
- 이렇게 겨울을 보내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
명태의 여러가지 이름.....
1. 봄에 잡은 명태 -- 춘태
2. 가을에 잡은 명태 -- 추태
3. 겨울에 잡은 명태 -- 동태
(冬太, 凍太와 헷갈리지 말 것!)
4. 그물로 잡은 명태 -- 망태
5. 낚시로 잡은 명태 -- 조태
6. 원양어선에서 잡은 명태 -- 원양태
7. 근해에서 잡은 명태 -- 지방태
8. 강원도에서 나는 명태 -- 강태(江太)
9. 새끼명태 -- 노가리
10. 갓 잡은 명태 -- 생태
11. 얼린 명태 동태(凍太)
12. 그냥 건조 시킨 명태 -- 북어(또는 건태 乾太)
13. 반쯤 말린 명태 -- 코다리
14. 얼렸다 녹였다 반복해서 말린 명태 -- 황태
예로부터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는 말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 사람이 즐겨 먹는 생선이 바로 ‘명태’인데 ‘명태’는
서민의 시름 어린 밥상이나 소박한 술상에서 국이 되어 주고 찌개가 되어주고
혹은 구이가 되고 찜이 되어주곤 한 서민들의 생선이다.
우리 민족이 명태를 즐겨 먹어 온 이유는 많이 잡히기도 했거니와
기름기가 적으며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우리 민족의 식성에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명태(明太)란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해 오는 얘기가 있다.
조선 인조[仁祖, 1595~1649] 때에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한 민아무개가 명천군(明川郡)을 방문하던 중에
밥상에 올라온 명태국을 마침 시장하던 터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물고기 이름을 물었으나 그때까지 이름이 없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명천군(明川郡)의 명(明)자와 처음으로 잡아온
어부 태(太)씨의 성(姓)을 합쳐 명태(明太)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한편, 예전에 함경북도 삼수갑산(三水甲山) 같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풍토병이 많았다.
이 같은 풍토병에 걸린 사람들은 겨울 동안 가까운 해변, 어촌으로 내려가
한 달쯤 명태 간 속에 들어 있는 간유(肝油)를 빼어먹고 나면
거짓말같이 눈이 잘 보이게 되어 돌아가곤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먹고 있는 생선 중에 명태만큼 그 이름이 다양한 생선은 없다.
잡은 그대로는 ‘생태(生太)’, 말리면 ‘북어(北魚)’,
얼리면 ‘동태(凍太’), 갓 잡은 싱싱한 ‘선태(鮮太)’,
얼고 녹기를 반복해 노랗게 마른 ‘황태(黃太)’,
그리고 내장을 빼내고 4∼5마리를 한 코에 꿰어 꾸득꾸득 말린 ‘코다리’,
말린 것을 싸리로 한 쾌에 20마리씩 꿰면 ‘관태(貫太)’,
그물로 잡은 ‘망태(網太)’,
낚시로 잡은 ‘조태(釣太)’,
동해 연안서 잡은 ‘지방태’,
원양서 잡은 ‘원양태’,
최종 어기(漁期)에 잡은 ‘막물태’,
정월에 잡은 ‘일태(一太)’,
2월에 잡은 ‘이태(二太)’,
3∼4월 봄에 잡힌 ‘춘태(春太)’,
강원도 간성(杆城) 앞바다에서 잡힌 ‘간태(杆太)’,
강원도에서 잡힌 ‘강태(江太)’,
산란을 해 살이 별로 없어 뼈만 남다시피 한 꺾태,
아기태(어린 명태),
은어바지(초겨울에 도루묵 떼를 쫓는 명태),
섣달바지(함남),
더덕북어(서울) 등 우리에게 낯익은 만큼 불러지는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또한 명태의 새끼를 ‘노가리’라 하는데,
말이 많거나,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도 ‘노가리를 깐다.’,
혹은 ‘노가리를 푼다.’고 말한다.
이 말의 어원을 보면 두 가지 설(說)이 있는 데 첫째는,
명태는 한꺼번에 매우 많은 수의 알을 까지만 대부분은 다른 물고기들에게 먹히고
성어(成魚)가 되는 놈은 얼마 없기 때문에
실속이 없거나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말들을 할 때 ‘노가리 깐다.’,
‘노가리 푼다.’라고 한다고 하는 설과
또 다른 의견으로는 한자어의 농담(弄談)을 뜻하는 ‘농(弄)’,
즉 우스꽝스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뜻하는 ‘농(弄)’자와
순수한 우리말의 접미사 '가리’가 붙어서 ‘농가리>노가리’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에도 거짓말을 뜻하기 보다는 심심풀이로 재미있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 행위를 지칭하며 농담을 잘하는 사람을 말할 때에
‘노가리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편, ‘생선이나, 조개, 생선의 알이나 창자 따위를
소금에 짜게 절이어 삭힌 음식’을 ‘젓’혹은 ‘젓갈’이라 하는데
가장 대중적인 ‘젓갈’이 명태의 알로 담근 ‘명란젓’이다.
그런데 명태의 창자에 소금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담근 젓갈을 ‘창난젓’이라 하는데
‘명란젓’에 대비되어 ‘창란젓’이라고 잘못 알고들 있다.
그러나 명태의 창자를 ‘창난’이라고 하기 때문에
‘창란젓’이 아니라 ‘창난젓’이 맞는 말이다.
그 밖에 명태의 이리(물고기 수컷의 배 속에 있는 흰 정액 덩어리)로 담근 젓을
‘고지젓’이라 하고,
조금은 생소하지만 함경도와 강원도 사람들이 많이 해 먹는
명태음식 중에는
명태순대, 명태식혜(明太食醯), 명태두부장(明太豆腐醬), 명태만두(明太饅頭) 등도 있다.
러시아어로 ‘명태’를 ‘민따이(минтaй)’라고 하는데,
‘명태(明太)’의 일본이름이 ‘멘따이(めんたい[明太])’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명태’라는 말이 일본식 발음으로
러시아어의 ‘명태’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명예 퇴직자들 소위 ‘명퇴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일 순위가
가곡 '명태'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었지만 그저 웃어 버리기에는
너무 서글픈 현실이 담긴 고약한 유머였다.
명퇴자들이 '명태'라는 가곡을 정말로 좋아했는지는 사실 알 수 없지만,
밤늦도록 북적이는 어느 선술집에서
‘한 잔의 술과 명태로 만든 안주’를 앞에 둔
명퇴자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 초라해진
가장(家長)의 쓸쓸함과 인생살이의 허무함을 한없이 느끼게 한다. - 펌글
첫댓글 우와~!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명태가 씨가 말라 강원도산 황태들도 알고 보면 러시아산이고 그나마 재수좋으면 북한산이라 하던데요...ㅎㅎ. 여하튼 덕분에 명태공부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짜악~짝...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명태의 신앙도 상당히 수준급입니다ㅡ.ㅡ
양명문 시인은 예전 청년시절에 제가 사사한 분. 지난번 성탄예배에서 태 목사님 말씀 듣고 간략한 지식은 얻었지만 이번에는 본격적이군요. 앞으로 우리 홈페이지에 방문객이 몰려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