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둬간 母情
글 德田 이응철
길 옆 대추나무가 허리를 꼬고, 개울 물소리가 귓전에 맴돌던 곳이었다.
아침이면 영락없이 문창호지가 찢어져 펄럭이던 곳으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 옹크린 어린 것들은 새우등을 하며 콜록거린다. 문살도 없이 비스듬히 누운 오두막집에 어렵게 거적을 깔고 신문지를 발라 은신처를 마련했지만, 안도의 한숨은 잠시 뿐, 어머니 표정은 다음날 새벽이면 이내 구겨지고 만다.
땅 끝 마을 해남 길옆에 오막살이-신발 끄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새벽이면 지나가는 불량배들이 주먹으로 샌드백 치듯 창문을 내지르며 달아나기 때문이다.
-피난민 새끼들!!
아침 동냥을 해다 끼니를 때우던 한국전쟁의 아픔을 늘 어머님은 곱씹으셨다.
솨-솨 바람이 불면 방은 온통 한기로 채워져 입은 것 변변치 않은 식구들은 사시나무 떨듯 지새워야 했으니 오죽했을까?
자녀 다섯을 공깃돌 들어 옮기 듯, 기차에 싣고 남쪽 땅 끝 마을까지 피난을 온 어머니의 무소불위(無所不爲) 힘은 어디서 뿜어나온 것일까?
오늘은 무엇으로 창문을 바를까, 성황당이 이름표처럼 허리에 졸라맨 문창호지를 벗겨 와 창문을 바른다. 지나가는 불량배들 때문에 다음 날이면 또 찢어지고 결국은 가마니를 걸고 피난생활을 했다. 결국 어린 나는 불치의 홍역바람을 달고 귀향을 했다. 홍역으로 사경을 헤맬 때 샛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보고 다시 힘을 얻던 어머님의 무한한 피난 이야기를 어제도 누님한테 다시 전해 듣고 모정에 울어야 했다.
그렇게 홍역에 시달린 나는 평생 호흡기가 약해 활기찬 삶에 발목이 제어당해 절름거린다. 가시고기처럼 부성애는 애시당초 사라진 나의 운명, 홀어머니의 방패막 치맛자락 속에서 내 한 몸 이렇게 건재하게 커오지 않았던가!
가난했던 유년기 시절, 봄이면 떡장사로 긴 하루를 헤매셨다. 공일이면 늘 나에게 읍내 장구경을 채근하시던 어머니. 가가 호호 떡을 팔아 시장 구석을 찾아 몸보신 국밥을 사 먹이며 일구월심 건강을 기원하셨다.
많은 식구들이 깰까 이슥할 자시(子時) 쯤 홀연히 나만 깨우시던 어머님-. 가난 속에서도 수삼 두어 뿌리를 용케 구해, 긴 나뭇가지로 바닥에만 있던 꿀을 휘저어 쓴 인삼에 발라 오만상으로 등돌리던 내게 반 강제로 먹이던 어머니 사랑이 눈물겹다. 어렵게 떡을 팔아 시청 옆 골목 중국 한의원에 들려 천금 같이 모은 돈으로 첩약도 닁큼 지어오던 어머님-.
초등학교 시절 결석이 참 많았다.
학창시절 등잔불 아래 공부에 전념하다 새벽이면 책상에서 깜박 새우잠을 자고 시오리가 되는 새벽길을 걸으니 힘이 부쳐 가래에 티가 섞여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내가 죽으면 이놈의 병을 모두 거둬 가리라.
무슨 영문인지 모르게 어머님은 입버릇처럼 중얼거리셨다.
어머님하고 타향살이가 시작되던 동해안 최북단 대진에서 총각선생-. 60년대 후반 보건소에서 남몰래 치료를 받을 때도 누가 볼까 은밀하게 약을 사 오신다. 고치지 못한 홍역이 내내 걸림돌이었다.
-내가 죽으면 모두 거둬가야지 이놈의 병마!
검불처럼 약골인 어머님은 다행히 미수를 이태 남기고 예기치 않게 눈을 감으셨다. 눈을 감기 전 누님들 틈에 나를 돌아보며 눈물 한자락 흘리시고 끄덕이시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저승길을 가신 이야기-. 당신의 죽음조차 감내하지 못하시면서, 고황지질(膏肓之疾)인 막내 홍역바람을 거둬 가신 어머님 은혜가 하늘 같다.
대저 죽음이란 무엇인가?
영원히 닫힌 문이다. 희망도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온 가족의 슬픔 속에서 막내의 고통을 거둬가신 내 어머님-. 어렵게 사준 국밥과 수삼을 꿀에 발라 먹여주신 정성, 중국 한의원에서 조제한 첩약 들이 고희를 넘어 맹그로브처럼 여윈 손등에서 생명의 근원이 된다.
고약한 병마까지 몰고 떠나가신 모정-. 그 치맛자락이 얼마나 얼룩지셨을까? 기록(鬼錄)에 어떻게 정선 전(全)씨의 세상사가 기록되셨을까? 거두어 가신 사랑으로 제 2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는 막내를 천상에서 굽어보시리라.
-내가 죽거든 네 병을 모두 거둬 가리라!
늘 화수분이셨던 뜨거운 자식 사랑-. 우리네 설화나 민담을 몸소 실천하신 내 어머님-.피난민 새끼들이라고 새벽이면 문을 내지르던 피난민 생활, 그릇 들고 아침 동냥하던 땅끝 마을 해남에서 죽음이 세번이나 찾아왔던 덕전-, 가마니로 어두컴컴한 속에서도 밝게 키운 막내가 고희를 넘었다.
생기사귀(生寄死句). 세상에 잠깐 머무르다 본집에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 되찾은 건강과 예술로 풍성해진 영육을 어머니께 흠뻑 자랑하리라. 거둬간 모정에 이승에서 행복했노라고-. 태양보다 어머니 곁이 더 밝고 따뜻하다는 교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지난해 찾아갔던 땅 끝 마을에서 어머님 발자국을 듣고 난리통에 치마폭에 키운 모정을 빠짐없이 껴안고 돌아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