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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9월 9일, 로마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조선교구의 제정을 허락하였다. 수차의 대탄압에도 불구하고 교세가 융성하여 1911년에는
조선교구를 경성과 대구의 2교구로 분할하고
더욱이 1920년에는 경성교구에서 함경남북도와 간도지구를 분리, 원산교구를 설립하였다.
이 지도는 바티칸 정청이 한국에 있어서의
교구의 관할 영역을 표시한 지도이다.
이 지도는 프랑스 파리의 소시에떼 데미시용
에트랑제트가 발행한 까똘리시즘 앙꼬레에 게재하였던 축소 복사도인 것이다.(1924)
한국의 이조 숙종시대로부터 붙어 있던 간도지방의 옛강토 회복의 운동과 한국민과 한국정부의 의지를 억제·배제하고 한국의 외교권을 탈취한 일본 정부는 만주침략의 계략으로
철도건설권을 얻기위해, 소위 간도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의 우리 정부는 길림지역을 청나라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티칸 정청은 이 지역이 역사적으로
장구한 기간 한국민족이 거주해 왔으며 대한제국의 영토임이 명백하므로 이와 같이 표시한 것이다. |
1965년 일본은 한국을 대신하여 행사한 그 강압시대의 모든 외교조약의 무효를 선언하였다.그러므로 간도협약의 무효임은 말할것도
없고, 간도·길림등의 지역은 당연히 한국 영토임이 명백하다. |
(도쿄 한국연구원 국경 자료지도 K 1호, 명지대학교 출판부 복사해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