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단어가 만들어진 과정을 모르고 make를 만났을 때 정말,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었다.
왜 make의 뜻을 “만들다.”로 정했을까?
괜히 시작했나 보다.
지금까지는 우연히 앞뒤가 맞아떨어진 단어들을 만나서 술술 풀리어 왔지만,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늦게나마 이 단어의 일부가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천우신조이었다.
‘make 만들다.’
make를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마께'이니까, 결국 ’마께 만들다.‘라는 말이 된다.
아! 역시 그랬구나!
그릇의 모양이나 책상의 크기 등을 정할 때에는 무엇이든지 생활에 '마께 즉 '맞게 (만든다)'
라는 말을 갈라서 make라는 단어를 만들고 '만들다'라는 뜻을 만들었다.
새 길이 열렸다.
당장 book을 끄집어 내어보았다.
‘책 book’
그렇구나! book은 우리말로 바꾸면 ‘보구’라는 뜻이니까, 결국은 ‘책 보구’라는 말을 갈라서
book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책’이라는 뜻을 만들었구나!
이번에는 take를 알아보았다.
'나무에 올라가서 저 감, 내가 딸 테니 너는 밑에서 받아라.'
이 말을 사투리로 (지금 우리는 사투리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들이 사용할 때는 상용 표준어
였을 것이다) '저 감, 내가 따께(take), 너는 받아라'라고 했다. 이 말에서 take라는 단어를 만
들고 '받다'라는 뜻을 만들었다.
mole의 어원은 ‘(두더쥐가) 몰래’ 땅 속으로 다닌다는 뜻이다. 그래서 mole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두더쥐’라는 뜻을 만들었다.
'듣다'라는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냥 '듣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영국인들은 그
렇게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들)리쓰때(listen)' 즉 '들렸었대'라는 말을 갈라
서 listen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듣다'라는 뜻을 만들었다. 이때 s를 종성으로 보아서 ‘들릿대’
라고 읽어도 좋겠다. 다만 이 때 주의할 것은 'n'은 발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옛날에 새 길을 만들면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놓았다.’라고 했다. 다시 사투리로 말하
면 ‘새 길, 노아떠( road)'라고 했는데 이 말을 갈라서 road라는 단어를 만들고 '길'이라는 뜻을
만들었다.
load의 경우는 [마차에 '(짐을 실어) 노아떠(load)'] 다시 말하면 '(짐을 실어) 놓았다'라는 말
을 갈라서 load라는 단어를 만들고 '짐'이라는 뜻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어원상으로는 road
나 load나 같은 '노아뜨'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영어 발음은 'r'과 'l'이
왜 그렇게 다르고 까다롭게 바뀌었을까? 아무래도 영국 사람들이 옛 한국말을 잘 못 발음한
결과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 참에 luggage의 어원도 함께 알아보면 ‘(짐을) 너 가지’ 다시 말하면 ‘(짐을) 넣어 가지’라
는 뜻이다. 이 말을 갈라서 luggage라는 단어를 만들고 ‘짐’이라는 뜻을 만들었다.
이런 단어들을 보면, 옛날에는 많은 단어들이 ‘ㄴ(n)' 대신에 ’ㄹ(l 또는 r)'이 사용되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put의 어원은 '(그 책을 가방 안에) 넣어 뿌뜨(put)'이다. 이 말을 현대말로 고치면, '(그 책을
가방 안에) 넣어버렸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갈라서 put라는 단어도 만들고 '넣다'라는 뜻을
만들었다.
그런데 가방에 뭐가 달려 있네! 그거 '(칼로) 끄니빼(knife)' 다시 말하면 '(칼로) 끊어버려'라
는 뜻이다. 이 말에서 knife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알고 보니 loan도 load와 비슷한 어원에서 만들어졌다.
‘(빚) 놓아’ 이 말을 갈라서 loan이라는 단어를 만들고 '빌려주다, 대부하다'라는 뜻을 만들었
다. 물론 ‘(빚) 놓아’ 대신에 ‘빚 놓은’이라고 읽어도 좋다.
menu란 무엇일까? 이 단어의 어원은 ‘(오늘 식사) 머누?’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을 갈라
서 menu라는 단어를 만들고 ‘식사, 요리.’라는 뜻을 만들었다. 후에 ‘차림표, 식단’이라는 뜻으
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때 e는 ‘어’로 읽어야 한다.
buy는 '(사)뷔' 즉 '사버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에서 buy라는 단어와 '사다'라는 뜻
을 만들었다.
testament(성서)의 경우에는 'ment'가 접미어이므로 잠시 접어두고 testa만 보면, '(여기
성서에 기록된 것은 하느님과 약속) 됐다'라는 뜻이다. 이 말을 갈라서 testament라는 단어
도 만들고 '(신과 사람과의) 聖約'이라는 뜻을 만들었다. 후에 '증언, 신앙고백, 유언' 등의 뜻이
추가되었다. 물론 s는 종성으로 쓰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사투리에 '생각 댔구'를 더 심하게 '생각 딨구'라고 했다. 영국 사람들이 이 '딨구'
를 think라고 표기하였다. 따라서 '생각 딨구(think)' 이 문장을 갈라서 think라는 단어를 만들
고 '생각하다'라는 뜻을 만들었다.
'딨구'와 비슷한 말로 '딨찌'가 있는데 '되었지'라는 뜻이다. 이 사투리가 사용된 예를 들면
'(현기증이 나게) 딨찌(dizzy)'가 맞는 말이다. 이 말을 갈라서 dizzy라는 단어를 만들고 '현기
증이 나는. 얼이 빠지는, 어리석은'과 같은 뜻을 만들었다.
현기증 이야기가 나오니까 말인데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죽음을 각오해야 되었던 모양이다.
여북하면 '갔서(cancer)'라는 말을 했을까?
이쯤에서 옛 한국인의 화법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diary의 어원은 ‘디어리’ 다시 말하면 ‘(앞으로 일이 이렇게, 이렇게) 되리.’라는 뜻이다. 그러
므로 원래의 일기의 뜻은 지난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의 계획을 기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rologue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 노쿠에’를 어원으로 한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
의 뜻이 ‘(연극의) 개막사, 서막’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동사로는 ‘개막사를 말하다,
~의 발단이 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epilogue는 ‘(이야기를 끝ㄴ)ㅐ삐 노쿠에.’ 다시 말하면 ‘(이야기를 끝)내버려 놓고요.’라는
뜻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그래서 ‘끝맺는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전에 동영상을 통하여 만난 강상원 박사는 우리말이 산스크리트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
하셨는데 산스크리트어도 이런 과정을 모르면 해독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말은 산스
크리트어 보다도 훨씬 이전, 그리스어에서도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 하셨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