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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풍속과 사회
은진씨(김은진)
4. 부르주아의 시대 - 역사와 본질
부르주아 시대는 새로운 생산양식, 즉 사회 내에 낡은 정치조직에 대해서 승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유럽 사회를 위한 정치조직의 탄생을 선언한 것이다.
절대주의 시대(궁중귀족, 금융귀족)를 대체하는(반작용) 부르주아 시대, 이러한 이유유로 ‘공공도덕의 법칙’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공식화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중세 이후에나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즉 인격체가 되었다.
혁명은 정신은 모든 면에서 영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부르주아 국가는 ”진실로 도덕적인 세계질서“의 구현은 외관에 지나지 않았다. 부르주아 시대의 근본적인 목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필연적인 법칙으로서의 이윤율 증대에 있다. 즉 인류의 해방은 결코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새 경제법칙에 세계제패를 위해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과 지배를 목적으로 수행.
-> 사회란 것은 그 발전의 모든 한계조건이 이미 성숙되어 사회의 파산이 임박할 때 비로소 관념적이 될 수 있다. 실제와 외관 사이의 모순은 사회발전의 최후의 결과였으며, 따라서 그것은 바로 근대적 부르주아 시대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 처하더라도 겉으로는 ‘도덕군자연’해야 한다는 절대 법칙이 생겼다.
(* Prigism: 도덕군자연- 관례에 대한 헌신, 도덕군자연 하는 사람)
특히 성도덕 분야에서는 위선이 하나의 성사상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발전의 상승기에도 하강기에도 나타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신문은 지금까지의 선정지의 대체물이 되었다. 각 계급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실천하고 또 선전하고 있는 성도덕에 대한 요구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의 출현으로 사물에 대한 상상은 교정되었고 시야가 더 넓어졌다. 그림엽서가 발명되고부터는 그림도 커다란 힘을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적 도덕을 강요하기 위해서 광고가 우리를 지배한다. 신문, 그림, 입간판, 그림엽서, 사진,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은 이정한 성도덕의 계몽을 담당하고 있으며 거간꾼이면서 때론 직접적인 선전꾼이기도 했다. 자료에 대해서 올바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부르주아 시대]의 삽화의 주요 목적이다.
1) 부르주아 지배 사회의 초기
18세기 들어서면서 매뉴팩처가 기계제 공업으로 발전하면서 절대주의가 붕괴되고 근대적 부르주아 제도가 터를 잡기 시작한다. (* 매뉴팩처: 자본주의적 생산 발전과정 가운데 수공업에서 기계 공업으로 이행되던 과도적 현태의 공장제 수공업, 생산수단은 모두 산업 자본가가 소유하고, 노동자는 노동력ㅇ르 판매하여 받은 임금으로 생활한다. 16세기 중엽부터 산업 혁명 때까지 서구 자본주의에서 지배적이다.)
15, 16세기 대륙 발전, 통상로의 개척은 항해국민의 공업,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의 공업에만 시장을 넓혀주었다. 대량 판매는 대량 생산을 요구했다.
- 직공들을 휴업시키지 않을 수 있는 방안 강구 ->기술 문제 -> 제니 방적기 발명(물레->직물생산기계 도입, 가발 직공 아크라이트 방직기계를 최초로 교활하게 사용한 착취자에 불과한데 역사의 실수로 방직기계 발명가로 추앙 되었다) 기계제 생산방법의 탄생은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왔던 문화적 유산(이집트 피라미드, 로마의 수로, 고딕 건물)과는 전혀 다른 기적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세계에 나타난 것 중 가장 혁명적인 ‘화폐’(교역의 영구 순환 법칙)의 가장 눈부신 전개였다.
프랑스 1789년 혁명은 실제로 50년부터 시작되어온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산파에 불과하다. 따라서 유럽 최초의 부르주아 국가는 분명히 1789년에 탄생했지만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만 시작되어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힐 수밖에 없다.
프랑스 견직물 공업과 파리의 재봉사는 1세기에 걸쳐서 전유럽 궁정사회의 어용공업과 어용상인이었다. 러시아의 여제 엘리자베타가 사망했을 당시 1만 5천벌의 예복이 있었다.
프랑스 공업은 사치품 제조공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즉 앙시앙 레짐 시대의 지배계급은 초호화판 향락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사치품이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되어 공업발전 역시 단시간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 결과 자본은 자국 내에서 먼저 거대화, 국제적 측면에서 보호받음으로써 흥하고 망하는 데에 관계없이 모험을 할 수 있었다. 독일은 가장 늦게 근대 발전이 이루어졌다. 30년 전쟁(신교, 구교의 갈등) 이후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력도 결여(‘부르주아저 사상’이 프랑스에서 도입)되어 있었다. 18세기 말이 되어도 독일에서는 매뉴팩처 규모도 찾기 어려웠다.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전심전력 투쟁한 부르주아 계급은 없었다. 독일 사회의 후진성에뿌리를 두고 있다. 1840년대에 와서 절대주의가 타도 됨, 영국보다 200년 프랑스보다 50년이나 뒤진 것이었다.
2) 관념과 실천
절대주의를 완벽하게 제압함으로써 등장한 부르주아 사회제도의 ‘지배정신’은 인류발전에 중요한 진보를 의미한다.
->인민이 연대함으로써 절대주의 전유럽을 해방시키기 위한 프랑스 혁명군이 만들어졌다.
부르주아 사회제도가 출발하면서 연대라는 관념의 승리와 그 승리의 영속이 전제였다는 것은 시대가 흘러가면서 더욱더 중요하게 부각 되었다. 연대는 19세기 중반부터 인류가 현재보다 더 성장할 뿐만 아니라 이 성장은 앞으로 점점 더 고상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장으로까지 발전했다. 연대란공동의 물질적 이익의 평등이라는 인식에서만 나온다는 것을 덧붙일 때에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결코 그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인민의 연대는 진정으로 도덕적인 세계질서가 지배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고 공상했다. 신분차별이 인간을 갈라놓을지라도 이 세상에는 이미 주인이 없으며 노예도 없다. 이제 이 세상에는 압제 하는 이도, 압제 당하는 이도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인인 시민뿐이다.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인구에 회자되었으며 영원한 진리의 불을 밝히는 문자인 듯이 프랑스의 모든 관공서의 모든 문서에 어김없이 쓰이는 슬로건이 되었다. 바로 이것은 새로운 부르주아 사회제도가 자리 잡는 시대의 위대하고 진지한 신념이 되었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1776년 독립했다. -독립 선언문- 개정판 p236, -1793년 프랑스 헌법- 개정판 p237, 세계가 절대주의로부터 해방된 시대의 인간의 언어이다.
한편 부르주아 세계가 도출한 성사상과 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애사상은 숭고해질 필요가 있었다. -> 순수, 순결, 타인의 영혼을 사랑한다. 등 인간은 하찮은 정열의 포로가 될 수 없으며 연애는 이상화 되어갔다. 이전시대 앙시앙 레짐의 특징인 관능, 향략과 절연해야 했다. 순수한 연애는 플라토닉해서도 안 되었으며 단순한 정신적 열증에 그쳐서도 안 되었다. 순수한 연애는 정신과 영혼으로부터 용솟음쳐 나와서 그 샘에서 가장 고상하고 강한 충동을 퍼올려야 했지만 그것은 바로 자연적인 육욕을 맑게하고 그 육욕을 가장 숭고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부르주아 시대는 모든 인간에게 자율권을 부여했다. 자율권에는 책임을 요구했다. 참된 정열로서 때묻지 않은 개인적인 성애는 결혼에 의해서 최고 단계에 올라가야만 했다. 연애는 결혼의 이전 단계에 불과하고 성욕은 아이를 만든다는 염원에 의해서 목적의 사상으로까지 고양되어 순결하고 고결해야 했으며 자식은 결혼의 목적이 되었다. 자식은 재산과 가문의 상속자이면서 더불어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하는 인간성의 상속자였다. 결혼은 이와 같이 중요한 것이 된 결과 하나의 도덕제도로서 남녀관계를 법제화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그 결과 결혼 전의 순결과 부부 상호간의 정절의 요구였다. 합법적이 아닌 성관계는 모든 당사자에게 치욕과 불명예였다. 간통은 인간에 대한 범죄일 뿐만아니라 국가에 대한 범죄였다. 돈으로 사는 연애향락은 큰 치욕이다. 결혼은 곧 독신자보다 기혼자를 존경하게 하는 자격도 되었다. 부르주아적인 성사상의 원칙은 결혼과 순결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 부르주아 사상은 절대주의에 대한 투쟁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지배 권력은 자신의 높은 도덕성을 과시함으로써 상대방의 부도덕에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투쟁은 새로운 이상만이 가질 수 있는 공식을 필요로 했다. 앙시앙 레짐의 유희와 달리 시민계급은 오직 한 상대를 향해서 깊은 불멸의 정열을 불태웠다. 무질서에 저항함으로써 결혼생활의 정결성을 주장했다. 자식은 귀찮은 존재로 취급되던 것이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이 가장 높은 도덕적 의무였다. 각양각색의 매춘은 세상에서 가장 열등한 표본으로 격하시켰다.
만인의 행복을 내세운 시대는 부르주아 계급의 승리와 더불어 시작될 수 없었다. 혁명이 이론적으로 실현됨에 따라서 계급대립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계급대립, 경제적인 생활조건의 차이와 전반적인 경제의 흐름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 충돌이었다. 정치권력을 쟁취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유용하게 쓰였다. 그 목적 역시 달성되었다. 자본주의의 이해관계가 각국 전체를 지도하는 유일한 이해관계가 되었다.
1793년(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1830년(프랑스의 7월혁명), 1848년(프랑스의 2월혁명) 실천에 옮겨졌던 여러 변혁이 설령 급진적 성향을 띠었다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내용을 다시 옛 자루에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대개의 경우 간판을 다르게 색칠한 왕권, 언제나 반봉건적인 대지주 계급과 타협했다. 헌법을 통해서 귀족계급도 자기 편으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과 군주에게 권력이 상징까지도 허용했다. 영국의 경우 왕권은 너무도 분명하고 빠르게 부르주아 계급의 평이 되었다. 프랑스의 군주제는 1870년에 안전히 폐지되었고 동시에 부르주아 계급이 권력의 공식적인 담당자가 되었다. 독일의 시민계급은 지주계급에게 권력의 상징뿐만 아니라 권력 그 자체를 실제로 허용해야만 했다. 시민의 뛰어난 재능에는 원수봉을 쥘 자격을 결코 주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제외한 모든 계급은 단결되었다. 그들의 요구로부터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도움으로 승리를 차지한 부르주아 계급은 타도 대상이었던 군주제와 타협하게 된다.(미국 제외) 군주와 귀족계급에게 정치권력을 나누어줌으로써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다.
-> 생산수단의 소유자로서, 부가 각 자본가로 하여금 무엇을 만들게 했는가?
- 감정 없는, 하찮은 , 감각적 흔적도 없는, 겨우 돈만을 버는 기계... 자본이 그 자신의 소유자 및 지배자에게 부여한 최초의 결과였다.
‘곡물법을 폐지’하려고 노력했던 부르주아 계급이다. 영국 부르주아 계급의 특징은 다른 국가에도 적용되는데 자본주의적 치부가 자본가에게 미치는 불가항력적인 여향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간의 품위까지도 교환가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자본축적의 기원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산업자본가가 했던 ‘노예무역’이다. 노예무역에서 창출된 엄청난 이윤은 인간사냥과 노예무역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논의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자본주의 이해관계에 장애물이며 노예로 적합하지 않은 경우 재빨리 계획적으로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대공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처음 10년 동안 유럽 임노동자의 운명도 허울을 쓴 노예제에 지나지 않았다. 공장주들은 브로커를 통해서 아이들을 빈민 수용소에서 넘겨받았다. 아동노동은 19세기 후반까지 매우 조직적인 아동살인이었다. 노동시간은 15시간... -착취 및 빈민 현황 기술- p266~p287 *영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자분주의 발달이 늦은 다른 나라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창출한 부에는 언제나 대중빈곤이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거대자본은 긴 세월에 걸쳐서 인류의 5분의 4의 뜨거운 피를 빨아먹으면서 이룩된 것이었다.
정치적, 경제적 축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적 측면에서도 관념이 그 대립물로 완전히 전화하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논리가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라는 계급은 온갖 사치스러운 향락에 빠질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절대주의 시절 200명 정도 누렸던 향락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즐기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가 금전수수 관계로 변질되어버렸다. 졸부의 애정행각 기술 p292~p 304
- 대부분의 남자는 기혼여성과 즐기는 것이 매춘부와 관계하는 것보다 더 즐겁기 때문에 향락을 위해서 큰돈을 낸다.
- “상거래”를 하는 기혼 여성이 많다.
-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 이른바 정숙한 분인을 상대한다는 묘미이 극치
- 영국에서는 처녀성 향락이 가장 인기 있는 미식(처녀능욕)
상대 처녀는 대부분 미성년자로서 성범죄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나이가 어리며 자기 의지가 없는 희생자이기 때문에 완전범죄자가 되어버린다. 결국 너는 모험을 한 여자라는 판결이 내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인민대중에게는 술과 타락한 성적 유희만을 너그러이 허락했다. 대부분 동물적인 생활로 망쳐버리는 길을 걸어갔다.(계급의식에 눈뜬 후기까지).
- 현황기술 p306~ p312, 대공업 발달의 초기에 어느 국가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3) 위선
부르주아 계급은 숭고한 이상보다도 부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분배되는 현실, 즉 이 유리한 분배 덕택에 자기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현실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입헌제도를 허용함으로써 현실과 이상을 만족시켰지만 성적인 면에서는 공공연한 위선으로써 두 가지를 만족시켰다. “죄악”은 대문 안에서는 마음대로 나폭하게 굴고 밖에서는 빈틈없이 도덕군자연했다.
시대마다 사람들은 언제나 발전과정에서 가능한 한 높은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존재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동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각 시대의 권력관계와 관련되어 있었다. 민중의 도덕적 분개는 지배체제를 현실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과 몰락한 봉건 대지주 계급 간의 계급투쟁에서 왕권이 두 계급의 역학관계에 중요했지만 대공업 시대로 접어들면서 최대 다수의 선거권을 지닌 대중이 중요해졌다. 한편 대중은 경제적으로 독립된 생활을 획득함에 정신적, 정치적 해방도 맞았다. 부르주아 계급은 그들의 간단없는 비판의 파괴작용에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고 참으로 도덕적인 세계질서라는 동화를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대중이 신뢰하도록 만들어냈으나 이와 같은 필연성에서 위선의 법칙이 탄생했다.
세계의 새로운 주인공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처음에는 졸부 취리를 가진 벼락부자들.
- 통찰력 부족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 철면피한 졸부의 취미는 철면피한 위선으로 변했다.
- 외형적인 예의범절을 지킨 것은 ‘훌륭한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 연애역시 표면적으로 제거해 버렸다.
- 신체 용어조차 비유적으로 품위 있게 말해야 했다.
- 미술, 연극, 문학도 규중처녀의 도덕규범에 끼워맞춰졌다.
- 혼약이 “두 가문의 재산의 결합이다.”라고 말한다면 중상모략이 되지만 예의범절이 필요
없을 시는 본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사실 부르주아 시대만큼 관념과 현실의 간격이 심하게 벌어진 시대도 없다.
역사발전은 어느 시대에서든 수직적으로가 아니라 수평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현대에 대해서도 이처럼 분명한 경계를 그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