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게 살다가
綠雲 김정옥
올해는 참 비도 많이 내리는군. 여름에 엄청난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전국이 난리도 아니더니만. 농작물에 쓰잘머리 없는 가을장마까지 찾아왔어.
요새는 툭하면 소나기가 내려. 사회가 어수선하니 기류도 불안정한가 봐. 어! 늙수그레한 여자가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리고 후다닥 뛰어 가네. 부실한 다리로 뛰어봐야 얼마나 비를 덜 맞겠어. 늙바탕에 노배기하고 감기에 걸리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나는 비가 오거나 날이 맑거나 상관없어. 폭우가 쏟아지면 뿌리에 힘을 꽉 주고 있으면 돼.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에도 끄떡없이 쌩쌩하게 살아낸 나야. 작고 여린 몸으로 온갖 비바람을 견뎌낸 끈질긴 생명력 하나는 높이 사줘야 해.
그녀가 낮에 가끔 지나가더니 요즘은 어스름 땅거미가 질 무렵 보이네. 천천히 걸으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폼이 내게 관심이 있나. 암만 들여다봐야 고달픈 내 속내까지 어찌 짐작하겠어.
나는 웬만하면 이삭을 빳빳하게 곧추세우고 있어. 힘들어도 표 내지 말고 꼿꼿하게 살자는 게 생활신조야.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지만 보리는 익어도 빳빳하잖아. 목에 힘을 딱 주고 ‘나는 나답게 사는 거다.’ 하면서 살아. 후훗,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자만심이나 부리는 나의 삶에 도취하였는지도 몰라. 그런데, 가끔은 온몸에 힘을 툭 빼고 느즈러지게 살고 싶기도 해.
이래 봬도 나는 아이들 과학 교과서에서 식물 분류할 땐 어김없이 등장해. 외떡잎식물의 대표 주자야. 주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어서 그럴 거야. 흔해서 귀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허물없는 친구처럼 가깝다고 보면 돼. 그러니 풀이름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마 내 이름은 알 걸.
흠, 이쯤이면 내가 누구인지 알겠지. 북슬북슬한 이삭 부분이 마치 강아지 꼬리를 닮았다고 해서 나를 강아지풀이라고 부른다지. 개꼬리풀이라고도 하고. 몽실몽실한 털이 나름 꽃인데, 꽃이라고 생각을 못 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화려하지 않아도 씨앗을 만들어내는 암술과 수술을 가지고 있으니 확실히 꽃이야. 현란하거나 수수하거나 상관없이 꽃 하나를 피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잖아. 보잘것없는 개꼬리를 닮았더라도 꽃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낸 보람이야.
도롯가에 있다 보니 반려견이 킁킁거리며 코를 박아. 못하게 할 수도 없고. 나한테 실례를 하는 강아지도 있어. 사람에게도 대접을 못 받으니, 강아지까지 그러는 거 같아 기분이 나빠. 하지만 자기 꼬리하고 비슷해 동족인 줄 착각하나 싶으니 그냥 둘 수밖에.
예전에는 우리가 사람들의 끼니가 된 적도 있었대.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은 거겠지. 가을에 여문 이삭을 말렸다가 손바닥으로 비벼 떨어지는 작은 씨앗을 쌀이나 보리에 섞어 밥을 짓거나 죽을 쑤어 먹었대. 사람들 삶에 보탬이 되었다는데 은근히 자부심이 생기는군. 지금은 먹지 않아 잡초로 분류되지만, 지구상에서 좁쌀보다 오래 존재하고 더 넓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니 이 정도면 세상에 성공한 생명체가 아니겠어.
나를 잡초라고 말하는 데 그건 순전히 인간의 관점인 거야. 우리의 입장에선 잡초든 작물이든 그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같은 부류인 거지. 물론 사람의 관점에서 식용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겠지. 모든 것이 보는 사람 주관대로 세상은 돌아가는 거잖아.
아이들이 내 이삭을 뽑아서 장난감처럼 친구를 간지럽히곤 했었는데 벌써 옛날얘기지. 지금 아이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아. 예전엔, 책받침 위에 나를 올려놓고 탁탁 치기도 했었어. 또 내 이삭을 뽑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요요, 오요요’ 강아지 부르듯 하면서 좌우로 흔들면 보드라운 털을 세우고 꼽작거렸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놓는 방향에 따라 가기도 하고 오기도 했어. 그러던 시절이 언제였었는지 가물가물해. 예전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등장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월에 눈이 휙휙 돌아갈 지경이야.
아무리 꼿꼿하게 곧추세우려 해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기껏 살아봐야 고작 일 년인데 그마저 날씨가 서늘해지면 별수 없어. 누렇게 떡잎 진 몸이 시나브로 널브러질 수밖에. 근데 난 서글프지 않아. 이 땅에 태어나서 내 소임을 다 하고 떠나면 그만이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하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걸 보면 애석하기 짝이 없어. 어차피 떠날 때 되면 떠날 건데 조금 더 연장한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원.
오늘은 그녀가 안 지나가네. 무슨 일이 있나. 어디 아픈가. 안 보여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붙박이 생명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네.
첫댓글 책에 활자로 나온 글을 다시 보면 이런 글을 세상에 나놓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히 많이 부끄럽습니다.
길가에 강아지풀이 통통해지면서 가을이 함께 오더라구요.
바람에 살랑살랑거리면 자전거타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동화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강아지풀에게 말을 걸어 봤습니다. ㅎ 답글 감사해요.
고개 빳빳이 들고 나는 나답게 사는거야
그러다가도 힘 다빼고 느즈러지게 살고싶어
나도 그래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강아지풀꽃을 소재로 글을 쓴적이 있는데
선생님 작품이 강아지풀에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입니다.
선생님 책《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에 강아지풀꽃이 나왔어요.
선생님은 <강아지풀꽃>에서 농민의 현실을 보셨지요. 농투사니의 아픔이 결국 우리의 아픔이 될 것이라고. 더 큰 그림을 보셨는데 저는 좁게 저만 보았습니다.
답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어릴때든 사물에 대한
감수성이 몸에 배려면 무조건 도시를 떠나 살아 보아야 하느니 생각을 할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길가에 강아지 풀에서 이런 글을 쓰시는 선생님이 궁금해지네요. 참고로 저는 완전 서울 토박이로 이런 글을 숭내조차 못하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청주 토박이입니다. 완전 시골은 아니지요.
답글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좋은 글이라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첫 댓글도 솔직한 제 마음이예요.
답글 감사해요.
강아지풀이라고 읽기전까지 정체를 몰랐어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탓일까요? ㅠ 씨앗을 먹기도 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고 ... 많이 배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처음에 정체를 너무 숨겼나. ㅎ
읽어주고 답글 달아줘서 감사해요.
나도 강아지풀씨를 먹었다는 얘기는 여기서 처음 들었어요
저도 강아지풀에 대하여 자료 조사하다가 알게 됐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