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금북정맥(백화산구간)2011년 5월 19일, 1,299회 산행
구간:레미콘공장(32번국도)-퇴비산(159m)-모래기재-백화산(284m)-오석산(169m)-팔봉중학교(32번국도) 15,2km 5시간 30분
레미콘공장(서해산업)입구.
20여분 오르면 만나는 퇴비산.
검은 전선과 함께 올랐으나 정작 퇴비는 한줌도 없었다.
글쎄요.........?
이런 비석은 있어도 성의 흔적은 없었다.
부산의 산꾼 준희(최남준)씨가 또 다녀 가셨구나!
예비군 훈련장,
깨끗한 송림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예비군 교장 정문을 넘어 본 정맥길을 따라......
알타리무우를 수확 차에다 싣고있는중.
태안여고 뒤 야산에 있는 안내문,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산책로인 모양이다.
학교 뒤에서 내려와 정문으로 나오게 된다. 모래기재
백화산을 오르는길 우측에 있는 석조암
태을암 대웅전,
국보 307호 마애삼존불,
마모 되어 가는 모습이 볼수록 안타갑다.
감모대라,
뭘 하던곳인고? 선인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을까?
감모대에 앉아있는 두분 보기 좋습니다.
백화수,
고지대에 샘물이 있다는것만도 신기하지만 고여 있는물이라 물맛은 기분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쌍괴대는 또 뭣일까요?
바위로 되어 있는 봉우리에 있는 백화산 정상석.
비록 산은 낮아도 골짜기마다 문화재를 품은 넉넉하고 따뜻함이 풍기는 산으로
태안 8경중 제 1경으로 생각하는 태안의 진산이자 명산이다.
겨울에는 흰 눈이 덮여 白花이고 봄에는 속살을 드러낸 바위가 부용화 같다하여 백화요.
여름의 녹음이 우거진 숲사이 흰바위들이 흰꽃같다하여 백화산이라 한단다.
제1경- 부춘산 나무꾼의 피리소리
부춘산 아래 민가의 오연(午烟)이 걷히고 나무꾼의 피리소리는 이어져 늦가을을 보내는데
여운이 수목 사이에 흩어져가고 청풍과 명월은 함께 흥을 돋구는구나
제2경- 명림산 골짜기의 빨래소리
해가 기우는 명림 속에 비가 개였는데 아낙네의 빨래소리와 물소리가 맑구나
행여 음탕하고 사악함이 세상에 충만할까봐
천 가닥이나 되는 탁한 풍진을 맑은 세정으로 바꿔놓는구나
제3경- 도비산의 저녁노을
뾰족한 도비산이 저녁 노을과 어우러지니 누(樓)와도 같고 각(閣)과도 같으며
꽃봉오리와도 같은데 하늘이 우리들의 쓸쓸함을 불쌍히 여겨 신선도 한 폭을 남겨 자랑하는구나
제4경- 상왕산의 비 개인 달
장마비가 막 개고 달이 산등성이에 올라오니 물소리와 산색이 저절로 시원하구나
영롱한 서기가 세상의 더러움을 묻지 않아 백발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의미가 심장하도다
제5경- 삼선암의 저녁 종소리
삼선암에 해가 저물어 곧 범종을 울리니 소리가 길고 짧고 노래를 이루어 달과 함께 봄을 어울리는데
아무 의무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한가로운 근심이 다하는 곳은 저 이어진 봉우리뿐이로다
제6경- 연당(현재분수대)에 내리는 보슬비
조그마한 연못 물에 연꽃을 심어 떠있는 잎마다 참신하여 둥굴둥굴하구나
보슬비에 꽃을 보는 흥취에 흐뭇한데 울연하면서 속세에 때묻지 않음이 천금보다 낫구나
제7경- 덕지천 포구에 돌아오는 배
덕지 내의 개울이 쉬지 않고 흘러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어 하늘을 닿았다네
꼬불꼬불하면서도 여유가 있으며 돛에 청풍을 싣고 육지로 돌아오는구나
제8경- 양유정에 자욱한 연기
높고 높은 나무 끝이 하늘에 닿을 것 같고 백 년 넘은 풍상을 겪었는데
영고와 성쇠를 자연에 맡겼으니 새순에 푸르게 물 들이는 것도 부처님의 원황에 따르리라
<출처: 서산문화관광>
백화산에서의 여니씨와 민들레님.
백화산 앞에있는 봉화대지.
부대 동쪽 아래에 있는 바위봉.
유난히도 많은 병꽃이 백화산 주변에 많았다.
오늘따라 바람이 거세게 불어 모자를 쓸수 없는 지경이다.
2등삼각점이 있는 241.7봉
백화산과 우측 부대.
태안읍 전경.
넘어진 나무로 인해 장애물 경기장화 된 등산로,
오석산 정상 감시 초소앞에서의 종주대원들
부산 준희씨의 흔적.
ㅇㅇ는 들어도 아직까지는 여러모로 쓰이는 중이라오.
정글지역을 연상케하는 콤파스의 잔해.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는 보리밭.
승강장도 정맥길이다.
소나무 분재 정원수 묘목장.
정맥이 마을길로 변해버렸다.
서산 팔봉산의 모습
정맥에서 약 4km정도 떨어져있다.
정맥에 누워있는 젖소들.
牛舍앞에 꽃을 피우려는 작약.
마을회관.
경노당에 갔다 오신다는 82세된 할머니.
곱게 단장하신 할머니와 민들레님.(바람 때문에 모자를 쓰지못함)
마을 보호수 300여년이 넘었다는 팽나무.
지역 안내도
굴포 운하지 안내문
팔봉중학교 교훈,
自主人, 正義人, 實踐人,
팔봉중학교 본관건물과 운동장,
오늘 구간종주는 이곳 팔봉중학교앞에서 마쳤습니다.
(산행후기)
지난주에 산행을 마친 레미콘공장(서해산업, 32번국도)입구에 10시 10분 도착을 했다.
처음 우리 부부가 종주를 했을 때는 진입할 위치를 몰라 레미콘 공장으로 들어가 낮아 보이는 안부로 올라갔지만 오늘은 입구 왼쪽으로 길을 안내 해 주는 리번이 바람에 나부낀다.
역시나 작년 태풍 콤파스로 인해 산림은 물론 등산로 훼손이 아주 심각할 정도라 안타까운 마음이다.
넘어지거나 부러진 나무를 피해 이리저리 길이 나 있어 아주 성가시기도 하지만 피해 다니는데도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한다.
20여분 오르자 정맥에 살짝 벗어나있는 165봉에도 퇴비산 이란 정상 판을 걸어 놓았다.
아무것도 없는 봉우리에 이름을 찾아 걸어주는 것 정말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 그 고마움이란 말로 다 표현할수는 없지만 조금은 심사숙고하여 걸어주시길 기대하는 바이다.
쉽게 생각하며 아무런 고증도 위치도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무조건 걸어놓는다는 것은 지리인식 체계의 혼란만 가져오는 것이다.
159,7봉인 지도에 표기된 퇴비산에 도착했다.
출발한지 20여분 만에 도착 하였고 정상엔 401 건설부 삼각점이 있었다,
이곳은 정상 이라곤 하지만 오래 있을 필요도 바라볼 전망도 없다.
이름만 산이지 알고 보면 조금 높은 언덕에 불과한 야산에 지나지 않으니 바로 지나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낮게 깔려있는 철망을 지나니 바로 예비군 훈련장이다.
잡목 없이 깨끗한 길을 따라 내려오니 연병장으로 바로 들어오게 되어 있어 결국 모두 갇히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철조망으로 3면이 막혀있어 일부는 다시 빽 했고 우리는 정문격인 철조망을 넘어서 밖으로 나왔다.
정맥 길은 계속 도로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곳도 마늘을 많이 재배하는 곳이지만 일손이 적어 쫑을 뽑을 사람이 없으니 우리를 보고 좀 뽑아 가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서울 사람들 마늘밭으로 우우 몰려 들어가 너도 나도 뽑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이용 순식간에 한 주머니씩 뽑아 배낭에다 담아 나온다.
들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지만 사람들은 보이질 않는다.
옛날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모내기도 하고 품앗이 하는 농촌풍경은 이제 바라볼 수 없어진지 오래라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참을 도로주행으로 시골풍경에 푹 빠져 있다가 태안여고 뒷등으로 오른다.
뜻밖에 서산 26 1985 재설 삼각점이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산책로인지 현수막 같은 것이 많이 걸려있고 길도 깨끗해서 좋았다.
이곳도 길 따라 가다 보니 학교 운동장으로 연결되어 있어 정문으로 나오니 바로 모래기재이다.
차량통행이 제법 많은 도로를 건너 백화산(284m)을 바라보며 오른다.
왼쪽 멀리 바라보이는 가로림만과 서산 팔봉산을 기억하며 그때 즐거웠던 산행 순간을 그려 보기도 하며 잔솔이 이제는 제법 자란 산길을 더듬어 오른다.
아카시아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향기는 이래서 좋은 모양이고 여자는 화장을 하는 모양이다.
우측에 있는 석조암을 보러 갈까말까를 망설이다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너무도 많은 바위들을 보아왔기에 이 정도는 신기해 보이질 않아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먼저 태을암을 보고 전각 안에 모셔진 국보 307호인 마애삼존불에 참배를 하고 太乙洞天 一笑溪란 커다란 글씨에 잠깐 위압감도 느껴보게 된다.
국내 마애불의 원조 격이라 마모가 심해 백조의 미소를 느껴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 따라 우리는 또 올랐다.
백화수란 우물이 있어 한바가지 떠 둘이서 나눠 마셨으나 물맛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넓은 암반으로 되어있는 정상에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앞에 있는 烽燧臺址를 둘러보고는 군부대가 있는 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급경사 길로 내려가게 된다.
태풍피해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갈수록 그 피해현장도 더 커지고 당시의 상황을 느끼기에도 충분한 증거였다,
넘어진 나무들 때문에 정글을 헤매는 느낌이며 길을 찾아 진행 하는데도 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오석산(169m)에 올랐다.
납작 삼각점과 산불초소 옆으로 지나쳐 진행한다.
어렵게 진행하니 붉은재 아스콘 포장길이다.
커다란 젖소농장과 아주 넓고 큰 보리밭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울컥 고향생각이 나기도 해 카메라에 담았다.
정맥길은 10~20여m 왼쪽에 있지만 차마 들어갈 수 없는 목장지역이나 사유지 농장이라 고개만 왼쪽으로 돌려보며 지나쳐왔다.
계속 길로 된 정맥이다.
옛날 운하가 있었다는 堀浦를 지나 낮은 언덕과 야산 무덤지역을 통과하니 팔봉중학교 운동장으로 내려오게 된다.
3시 40분 오늘 구간종주는 이곳에서 마친다.
학교 정문 앞 가게 옆에 수도시설이 있어 모두들 이곳에서 손발을 닦자 주인이 나와서 물 값을 내 놓으라고 한다.
한 사람이 5.000원을 주자 적다고 안 받아 10,000원을 주며 달랬다.
이런저런 실랑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자 후미가 도착한다.
5시다.
그동안 논 밭 언덕을 다니며 미나리나 머위 등 나물채취에 한창이라 그 모습도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고 주민들한테 호감가는 짓이 아니라 좀 자제들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오후부터는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비올 확률은 없어 보이는 가운데 귀경을 마쳤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