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5일 연휴를 맞아 내몽고로 트레킹 여행을 다녀왔다. 몽골리안의 후예로서 뿌리를 찾아 아득한 조상의 묘를 찾아가는 기분이다. 비행기로
북경까지 두어 시간, 다시 버스로 9시간쯤 달려 자정을 훨씬
넘어 “오란부통”이란 내몽고의 마을에 도착했다. 칠흑 같은 밤 버스 문이 열리니 강한
바람에 눈발까지 휘날린다 지금이 5월인데, 내머리 높이보다 큰 배낭을 메고
“빠오”로 가는데 몸에 중심을 잡기 쉽지 않았다. 배정받은 5호실로 들어서니,, 여행사 박대표,
사진 작가인 잡지사 정부장, 우리직원인 오과장 과 3박4일간의 가족이고 집인 셈이다. 출장 다니다 보면 방문하는 도시마다
수시로 호텔 방 번호를 외우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아주 간단하게 5호실이라니 좋았다. 배낭을 내려놓고 빠오의 문을 닫으니 생각보다 포근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천막
하나로 드센 바람을 막아주는 빠오가 신기하기 까지 하다. 배낭을 푸는가 싶더니 민첩하게 침낭을 꺼내서
깔고 “내일은 10시에 집합입니다”. 하고는 돌아 눕는다 .잘 자란 인사인 격이다. 세면도구를 들고 있던 내가 멀쑥해졌다.
나도 한 켠에 자리잡고는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내피 달린 등산 잠바, 겨울용 바지, 양말 신은 대로 거기에 빵모자까지 쓰고.., 침낭 지퍼를 잠그고
누우니 손발이 차갑다. 지붕과
벽의 구분이 별로 없는 빠오가 바람을 맞으며 파닥거리는 소리에 한동안을 뒤척이다 보니 손발이 한기가 가시는 듯싶으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유리창이 있는 문을 통해 저 멀리 앞산의 새벽 기운이 들기 시작한다.
일어서려니 손발이 침낭 속에 묶여있었던걸 잊었나 보다 “찌익”하는 지퍼 여는 소리에
혹시 곤하게 자는 옆 사람을 깨울까 싶어 조심스럽다. 까치발로 빠오 문을 열고 나오니 어젯밤에 보이지
않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널따랗게 펼치진 구릉과 들판에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마치 드보르작 신세계교향곡
장중한 라르고의 잉글리쉬호른 소리 같다.
숙소앞쪽에 몽고 병사의 동상이 서있었다 말 탄 키 높이만한 창을 굳게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말발굽을 박차고
달려나갈 기세로 산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중부 유럽까지 동으로는 아시아 끝까지 정복을
했으니 그 기세의
출발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가까운 뒷산을 오르고 싶었다. 바람이 드세긴 했지만 높아 보이지 않는
언덕이라 용기를 내기로 했다..거의 다 올랐나 싶어 의자를 펼치려니 그 언덕 바로 너머에 숨겨진 더 높은
언덕이 있을 줄이야.. 산 너머 산, 인생의 고단함을 여기서
배웠나 보다. 발아래 펼쳐지는 십여 개의 빠오와 시설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쩜 이렇게 바람이 드셀까 다행인 것은 그리 차지는 않아 견딜만했다. 황사의
발원지라지만 모래나 흙이 불어오는 것 같지는 않아서 준비해간 황사마스크를 몇 번이나 꺼냈다가 그냥 자연친화적이기로 했다. 정상은 정상이니 인증사진을 찍으려는데 도무지 쉽지가 않다. 문득
징기시칸이 열 살도 채 안되어서 아버지를 잃은 후 마을에서 쫓겨나니 그림자만이 자신의 친구였다는 글이 생각나서 내 그림자를 찰칵 하고 찍어보았다. 근데 괴물 같다. 1,500고지를 넘는 곳이라 풀과 야생화가 간간히
피었을 뿐이다. 얼마 동안이나 앉아 있었을까?
여기선 시계를 본다는 것이 왠지 않어울려 보인다. 몸이 차지기 시작해서 빠오로 돌아왔다. 우리식구들이 아침 준비 중이었다. 모두들 능숙한 손놀림으로 준비한다. 투박한 중국식칼로 식자재를 써는데, 한석봉 모친 수준이다. 아침은 김치찌개에 달걀 부침, 김이 뽀얗게 나는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식사후 진한
향과 깊은 맛이 일품이라는 코스타리카산 또따리주 커피를 내려서 마셨다. 집합하여 사륜구동차량 대여섯 대에 분승 관광을 간단다. 호수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 하긴 여기가 초원의 황무지이며 사막이니
호수야 말로 오아시스겠다 싶고 물 좋은 강남 같은 곳 이겠구나 싶다. 호수 주위로 현지인들이 나무를 심고 물을 길러다 뿌려주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모래를 50센티정도를 파고 들어가서 다시 뿌리를 심기
위해 더 파고 묻어주고 있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닮은 몽고인들의 수고를 보노라니 왠지 코끝이 찡함을 느꼈다. 이
사람들도 우리 한국인같이 아기로 태어날 때 몽고리안 스폿이 있을 텐데.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몽고기병의
삼지창 같은 깃대에 깃발을 매달아 놓은 것이 마치 근위병처럼 서있었다. 크고 작은 호수 몇 개를 관광
했다 그 중 큰 호수는 바람결에 파도가 칠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또 어떤 호수에는 야생오리의 호수라는
“야압호”란 글씨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었다. 아마 오리만을 위한 오아시스인가 보다. .
다음날은 말을
타러 간단다 두어 시간 탄다니 꽤나 기대가 된다. 내 평생 제주도에서 마부가 끌어주는 말 두어번 타
봤지만 이번엔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 기대감이 생겼다. 내 말은 가다 말고 풀을 뜯느라 고개를
숙이고 게같이 옆으로 가니 중심을 못 잡겠다. 말 주인이 고삐를 위로 치켜들란다. 그러다 괜히 말이 성이 나서 영화에서 같이 말머리를 들어 나를 떨어트리던가 아니면 확 달릴까 겁이 좀 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안정감이 생겼다. 한 시간쯤 탄 후에 100원 내면 초원을 달리는 기분을 내게 해준다고 한다 일단 손들고 나갔다. 대신
다른 말로 바꿔달라고 하고.. 현지의 마부가 말머리 털이 멋지게 생긴 말을 타고 내 옆에 와서 고삐를
붙잡더니 신나게 달린다. 아까 길거리에 서있던 삼지창이라도 거머쥐었으면 좋았을 걸 싶다. 하여간 초원을 전속력으로 달러보고나니 온 세상을 다 얻은듯싶다. 승마가
끝나고 트레킹을 했다 준비해간 라면으로 점심을 하고는 두어 시간 정도 더 산행을 했다. 숲 없는 산행의 풍광은 또 다른 맛을 준다. 초원에 셀 수 없이 많은 양과 말과 소떼가 하늘에 떠있는 구름과 함께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것이 또 다른 천지창조의
걸작이구나 싶었다.
한
삼 일쯤 지나니 이젠 여기도 좀 익숙해 졌다. 생각해보니 나흘간 세수 딱 한번 했고 머리도 발도 씻어보지
못했지만 끈끈하고 불편하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마치 코발트빛 하늘에 푸욱
담갔다가 불어와주는 박카사탕같은 향이 느껴진다. 잠시 쉬며 양말을 벗으니 마치 물로 씻은듯이 개운해진다. 숲길을 지나는데 소뿔이 보였다. 삶과 죽음이 모두 이 바람 속에 어우러져 있나 싶다. 이 세상에 생명을 받아 살다 갔으니 뿔이라도 하늘을 향해 주어야겠다
싶어 자작나무에 꽂아 주었다. 마지막 날 저녁은 양을 통째로 잡아 바비큐를 구었다. 독한 바이주와 양젓으로 발효했다는 맑은 술에 흥건히 취했다. 밤 하늘엔 별들이 은빛 모래를 뿌려댄듯 반짝인다. 세상에 보석은 여기에 다 있는데 인간들은 어디로 찾아 다니는지,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북경으로 출발했다.
오란부통의 1,600고지에서 서서히 내려오더니 초원의 느낌이 조금씩 없어지면서 북경에 다가
오니 5월의 날씨를 되찾아 주었다. 북경에 가까워 오니 화투
장에서나 봄직한 가파르고 높은 웅장한 산들이 보였다. 그리고 산정상에는 만리장성의 일부 같은 성곽이
보였다. 고압적인 초소의 모습에서 우리조상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약소국가로 살아가던 비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지금도 진행형이려니 싶은 맘을 뒤로 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댓글 건강할때 좋은곳 많이 구경하시게나.
항상 건강하고 보람있기를 멀리서 기원하네.
나이가 더 먹기전에 좋은데 갔다 왔구나. 노상운군 화이팅! 그런데 사진이 안 나온다
세계 공해 나쁨 수준이 173등이라는 서울생활중 느껴본 몽고의 청정 모래 바람은 그야말로 regresh 였네 ㅎ
좋은 공기 좀 담아 오셨남요^^
요즘 유행한다는 "멍때리기"를 따로 할 필요 없는 일상입디다.. 짙푸른하늘과 초원... 마음에 그득담아 왔네..
청정지역을 다녀오셨구먼 칭구!!
나도 15년전에 그쪽 부근을 여행한적이 있는데인생의 멋진추억이 되길~~
건강할때 좋은곳 많이 돌아보시길~~^^**
건강할때 돌아 본다는 말이 참으로 가슴에 와닿네, 산으로 건강을 되찾고 인생 이모작에도 좋은 본이 되는 친구가 멋지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