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는 몸의 구조상 하늘을 볼 수 없습니다.
굳이 볼 이유도 없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이 땅에 다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헬라어로 사람을 ‘안드로포스’라고 합니다.
‘위로’라는 뜻을 가진 ‘아나’와 ‘얼굴’이라는 뜻의 ‘프로소포스’의 합성어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위를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을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그런데 돼지도 아니면서 한사코 땅만 보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입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어떤 남자가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반지 선물과 함께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런 경우, 반지만 받고 프로포즈는 거절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선물과 선물한 사람을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선물을 받는다는 얘기는 선물한 사람 마음도 같이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탕자는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탕자는 아버지와 아버지 재산을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자기 몫의 분깃을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한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재산이지, 아버지가 아닙니다.
프로포즈 받은 여자로 얘기하면, 반지는 탐이 나는데 한 남자에게 속해서 살기는 싫다는 격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남자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에게 반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우기는 것이지요.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과 하나님을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한테 필요한 것은 땅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살았고, 결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 사사기의 줄거리입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아서 망했습니다.
대체 그들이 무엇을 원했다는 뜻일까요?
그들이 원한 실체가 무엇입니까?
사사기는 그 배경이 가나안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더 곤고하게 살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갔는데도 가나안에 들어간 유익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바꾸면 교회에 다니는데 교회 다니는 유익이 없습니다.
몸은 교회에 있는데 세상에 있을 때보다 더 곤고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들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사사실록>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