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신임 감독으로 김경문감독이 내정 되었다.
그는 무소의 뿔처럼 우직한 야구 인생을 살아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8형제의 막내로 대구로 이사간 뒤 11세에 야구의 명문인 대구 옥산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처음의 포지션은 내야수였는데, 당시 주전 포수의 부상으로 마스크를 쓰면서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구 경산중학교를 입학했지만, 부산 동성중으로 전학을 하게 되었고, 부산고 1학년때에는 다시 공주고로 스카웃이 되었고, 작은 체격이지만 정교한 타격을 자랑할만큼 타격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공주고 3학년때인 1977년 제 11회 대통령배에서 타격상(타율:0.467)과 최다 안타상을 거며쥐며 공주고 야구부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어 태극마크를 달로 한.일 고교 친선야구대회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훌륭한 야구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교시절 생사의 갈림길은 그해 5월 청룡기 충남예선에서 지역의 라이벌인 대전고와의 경기에서 한 선수가 고의로 배트를 크게 휘둘려 포수로 앉아있던 그의 뒤통수를 가격한일로 그자리에서 뇌진탕으로 쓸어져 5일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 사고 이후 포수는 반듯이 헬맷을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고려대 입학후 1980년에는 한.미 대학친선대회 한국 대표로 뽑히는 등 많은 활약을 했으나, 허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서 허리 수술을 해야해, 수비형 포수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영원한 김감독님의 야구 항해를 위하여 박수를 보냅니다. 다음달부터 두산에서 급여지급을 중단한다고 하네요.
오늘 김경문 감독 마산 사보이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다지요. 막내로서 형님들을 괴롭히면서 2013년에 5할의 승률을 약속했는데. 과연 5할의 승류이면 준 PO에 갈 실력인데요. 좀 심히게 사업계획을 수립하신것이 아닌지요.
특히 마산은 시범경기를 보았지만, 부산보다 더 심한 동넵니다. 경기에 지면 쓰레기 오물이 난무하는 곳으로 우리 아이들도 기억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