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타이거즈, 야구를 너무 잘하고 우승도 많이 해서 그 팀에 대한 향수가 깊은가? 물론 그럴 수 있겠다. 그 이유가 가장 타당하다. 그 팀의 주전급에도 못 끼는 선수라도 다른 팀에 가면 주전 중에서도 상 주전이 될 수 었을 정도이니 그 팀의 진가는 더 말해 뭐하랴. 그러나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해태 타이거즈가 주는 또 다름 이름은 '헝그리 타이거즈'라는데 있다. 초창기 프로야구 6개 팀은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MBC 드레곤즈, 삼미 슈퍼스타즈, 요렇게 6개였다. 어찌 이렇게 팀이 구성되었을까? 그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대구, 그때나 지금이나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제1의 재벌 삼성, 서슬 퍼렇던 전두환이 야구단을 하라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삼성은 대구를 연고지로 달라고 했다. 창업주의 출신지가 경남 의령이므로 부산·경남을 내심 연고지로 하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삼성은 대구를 원했다. 이는 삼성제일주의가 프로야구에서도 먹혀야 하므로 경북고, 대구상고로 통칭되는 대구의 야구 자산이어야만 삼성제일주의가 야구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삼성 내부의 판단이었다. 군부는 당연히 OK, 그래서 대구=삼성으로 낙찰되었다. 부산, 제일교포 기업인이 키운 롯데는 제과, 음료, 빙과, 유업으로 재벌의 발판을 닦은 뒤 서울 소공동 한복판에 롯데쇼핑(당시 신세계와 미도파의 저항 때문에 '백화점'이란 말도 못 씀)이란 이름으로 건물을 짓고 유통에 진출한데다, 그 곁에 호텔까지를 더해 관광업으로 한국에서 확실한 재벌 반열에 들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창업주가 재일교포란 것은 늘 핸디켑, 이때 군부정권의 프로야구단 창단은 롯데로선 반기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일본에서 이미 '롯데 오리온즈'라는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마다할 리 없었다. 그래서 삼성이 대구를 찍자 바로 부산을 찍었다. 사주 신격호는 울산출신, 울산이 광역시가 되기 전이었으므로 부산-경남이면 부산고 부산상고 마산고 마산상고 등 야구 자원도 차고 넘쳤다. 서울, 당시 MBC는 '문화방송 경향신문'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어용언론사, 더구나 5.16장학회가 대주주였으므로 권력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전두환 권력은 MBC를 앞세워 프로야구 출범을 시도했으며 MBC는 직접 팀도 창단하고 야구붐 조성에도 앞장설 수 밖에 없었다. 야구자원은 뭐 셀 수도 없을 정도, 선린상고, 동대문상고, 덕수상고 등 실업게 고교만이 아니라 신일고 휘문고 서울고 경기고 할 것 없이 웬만한 고등학교는 다 야구팀이 있었으니 더 말해 뭐하랴. 대전, 지금에야 두산그룹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나 당시는 두산보단 OB라는 이름이 더 유명했다. 하이트에게 시장점유율 1위를 내주기 전에 OB맥주는 한국맥주의 대명사, 거기다 청량음료 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는 코카콜라 한국 제조판매를 독점했던 시기다. 야구시장에서 맥주와 콜라는 뺄 수 없는 품목, 창업주 박두병이 서울출신이어서 서울을 고집했으나 3년 후 서울로 이전해 주기로 약속 받은 뒤 울며 겨자 먹기로 대전으로 밀렸다. 하지만 야구자원은 대전고 세광고 청주고 청주상고 등 타 시도에 별로 뒤지 않았다. 인천, 인천고, 동산고 등 오래된 야구자원을 갖고 있는 지역임에도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전두환 권력은 당시 특수강 시장 거의 전부를 장악하고 있던 삼미특수강 사주를 구워삶았다. 당시 특수강은 방산업체가 주요 고객이었으므로 삼미는 군부정권의 강요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천을 연고지로 하되, 경기도와 강원도까지 연고지로 하겠다고 하여 그대로 인정을 받았다. 이렇게 전국적 프렌차이즈는 거의 정해 졌는데 호남만 없었다. 야구 자원이야 광주일고 광주상고 군산상고 전주고 등 차고 넘쳤으나 팀을 운영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기업은 없었다. 박정희 18년을 지나면서 호남기업은 거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재벌이라고 부를 수 있던 기업은 광주고속이란 이름으로 전국을 운행하는 고속버스 업체인 금호가 있었으나 고속버스 회사가 프로야구를 할 필요성도 없었는데다 MBC만 빼면 다른 기업과 사세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군부도 광주고속에게 야구단을 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다. 군부정권도, 야구단 추진 실세도 애가 달았다. 5.18 후유증, 5월 광주라는 이름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호남인들을 위무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프로야구 출범마져 호남연고팀 없이 한다는 것은 결국 호남을 영원한 소외지역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세들은 호남 뿌리라고 우길 수만 있는 기업이라도 찾아야 했다. 그게 해태제과, 해태제과는 박병규, 민후식, 신덕발, 한달성 씨 등 민족자본으로 세운 국내 최초의 식품회사다. 이중 박병규씨 광주출신으로 광주서중을 다니다 선린상고를 졸업했다. 따라서 해태제과는 서울 동대문 보문동에서 해태제과를 시작하여 남영동 영등포 등지에 공장이 있었다. 거기다 박병규는 1977년 타계한다. 박건배는 1945년생, 아버지 박병규 씨가 해태제과를 창립하던해에 태어났다. 엄격히 광주와는 연관성을 찾기가 힘든 기업이다. 그리고 더구나 박건배는 1981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서른일곱살이었다. 3년 전인 1977년 창졸간에 부친을 잃은 아들 박건배는 이버지를 이어 해태의 경영을 맡았다.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제과는 롯데 오리온 크라운, 음료는 OB와 롯데칠성, 유업은 남양 등 다수의 거대 유업업체, 빙과는 빙그레와 롯데 등 다수 경쟁업체...이런 틈바구니에서 해태가 제과 관련 기업으로 크는데 많은 제약이 있었다. 더구나 이 젊은 사주 박건배는 경쟁사 롯데의 공격적 사세확장에 마땅히 대응할 카드가 없었다. 이때 권력이 야구단 운영을 권했다. 박건배는 야구단으로 돌파구를 찾을 결심으로 감독은 김동엽, 야구단 이름은 타이거즈(당시 타이거즈라는 이름은 창단희망 기업 모두가 1순위로 선호했다)를 달라고 했다. 권력은 그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했다. 그리하여 해태 타이거즈라는 '헝그리 야구단'은 출범한다. 이 헝그리 야구단이 프로야구에 뿌린 열정은 내가 기록하지 않아도 거의 모든 야구팬이 다 안다. 한국시리즈 4연속 우승과 프로야구 역사 20년간 9회 우승. 그 와중에 호남은 이 야구단의 열정으로 웃고 웃었다. 정치는 변방, 경제도 변방, TV는 깡패, 건달, 식모, 범죄자가 전라도 사투리만 쓰는 문화적 차별, 말만 고속도로이지 2차선 국도만도 못했던 길, 특급을 뺀 기차를 타면 평균 7~8시간은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던 땅, 어디 한군데고 위무받을 곳 없었던 그 시기에 해태 타이거즈는 재벌 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면서 잘도 우승했다. 그러나 스토브리그 시즌이면 그렇게 호남인들을 위무하던 그 타이거즈 선수들 코는 더 납작해졌다. 우승도 못하고 성적도 별볼일 없는 팀 소속 선수들은 연봉 인상소식이 들리고 해외 전지훈련도 거리낌 없이 가는데 해태 타이거즈의 쟁쟁했던 선수들은 연봉 1,000만 원 인상을 놓고도 구단과 지리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김봉연, 김일권, 김준환, 김종모, 김성한, 서정환, 장채근, 선동열, 이순철, 한대화, 누구하나 선수 자신만이 아니라 타 구단 선수, 심지어 팬들까지도 수긍할 수 있는 액수의 연봉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다음 시즌이면 또 펄펄 날며 그라운드를 포효했다. | 해태타이거즈의 마스코트 vs 기아타이거즈의 마스코트 |
지금 이 야구단은 없다. 단지 기아 타이거즈만 있을 뿐이다. 부자구단 기아 타이거즈, 헝그리 해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팀, 무려 50억을 주고 선수도 쑥쑥 사올 수 있는 야구계 자타가 공인하는 큰 손, 그런데 이 야구단은 이렇게 돈 쓰는 것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선수들 멘탈도 달라졌다. 지금도 광주는 슬퍼서 울고 있는데 이곳을 연고지로 하는 선수들과 프런트, 덕아웃은 돈으로도 선수단 구성 면면으로도 형편없는 팀에게 형편없이 깨지면서 부끄러운 줄 모른다. 타이거즈가 다시 타이거즈라는 이름으로 포효할 수 있으려면 이들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그 부끄러움이란 '헝그리 타이거즈' 선배들 정신 앞에와 그 정신을 사랑했던 팬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어야 함이다. 그래야 그들이 진정한 우승후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부자구단 기아 타이거즈 소속 선수단과 프런트, 과연 그런 자각을 하는 날이 올까? 팬들이 오늘 다시 이 팀의 경기를 보며 같은 생각을 되씹어야 한다면 기아 타이거즈는 해태 타이거즈의 후손이란 말 자체를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