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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숙 교수의 최후진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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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제대로 된 토론절차나 합의 과정 없이 국사교과서를 국정화의 방향으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것을 보면서 1978년의 ‘우리의 교육지표’사건이 떠올랐다. 전남대 교수 11명의 이름으로 발표된 ‘우리의 교육지표’는 발표되자마자 11명의 교수가 당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고 뒤이어 해직되었으며, 이 사건을 주도한 협의로 송기숙 교수는 구속되었다.
이때는 유신정부의 비위에 안 맞는 교수들은 교수재임명제로 추방되고, 남아있는 교수들은 지도교수제라는 이름으로 누구는 도서관 앞에서 몇 시부터 몇 시, 누구는 사범대학 벤치 앞에서 몇 시부터 몇 시, 이런 식으로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보초를 서면서 학생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교수들이여! 당신들의 그 오랜 침묵의 시간을 우리는 처음엔 존경과 믿음으로, 나중엔 이해와 동정으로 기다려왔다. …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지키려 하는가 (1979.10.19.서울대 학원민주화 투쟁선언)”라고 했을까. 유신으로 돌아가는가
송기숙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전남대 교수들은 ‘우리의 교육지표’에서 “오늘날 교육의 실패는 교육계 안팎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 일치를 이룩할 수 있게 하는 민주주의에 우리 교육이 뿌리박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은 바로 그러한 실패를 집약한 본보기인 바, 행정부의 독단적 추진에 의한 그 제정경위 및 선포절차 자체가 민주교육의 근본정신에 어긋나며 일제 치하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한다”면서 “교육의 참 현장인 우리의 일상생활과 학원이 아울러 인간화되고 민주화되어야 한다.”는 것 등 4개 항의 교육지표를 제시하였다. 검찰은 송기숙 교수를 구속기소 하면서 “마치 국민교육헌장이 제정, 선포과정에서 행정부 독단으로 추진되고, 내용에 비민주적 요소가 있는 양,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 배포함으로써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위반했다”고 그 공소이유를 밝혔다. 송기숙 교수가 구속되자 전남대생들은 6월 29일 “일제히 일어나서 먹구름 뒤의 하늘을 보자”는 성명을 내고, “그동안 침묵만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우리의 스승들이 민주교육선언에 일어선 쾌거는 암흑을 깨치고자 일어선 자각이요 양심의 회복”이라고 스승들을 엄호하고 나섰다. 나는 홍성우 변호사의 이 사건 변론준비를 위하여 동대문 헌책방을 뒤져 민주교육헌장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변론자료로 쓰거나 증거로 제출하는데 일조를 했는데, 뭐니뭐니해도 이 재판에서의 압권은 송기숙 교수의 최후진술이었다. 나는 송기숙 교수의 최후진술에 감동, 이 최후진술을 정리, 복사해서 조심조심 널리 뿌렸다. “작년 가을 서울대 학생들의 데모가 있었을 때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돌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말할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다. … 일부러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았더니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 나는 바로 내 가슴팍을 돌로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 자신이나 나의 동료들이 학원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볼 때, 과연 학생들의 행동을 나무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오늘의 현실을 똑똑히 기억하자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최후진술은 국민교육헌장에 대한 비판을 검찰이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하여 이렇게 항변한다. “우선 교육헌장에 대한 어떤 비판적인 견해의 표시가 사실 왜곡이란 주장 자체가 말이 안된다. 나 자신이 저술한 작문 교과서가 금년부터 사용되는데 거기서도 무릇 진술이란 사실의 진술과 의견의 진술, 두 가지로 대별된다고 썼다. 국민교육헌장이 행정부의 독단적인 추진으로 제정, 공포되었다는 것은 나의 의견이다. 교육헌장제정이 행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교육헌장에 비민주적 요소가 있다는 것도 나의 의견이다. 나는 국가주의는 결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믿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본질에 있어서 민주주의는 국가보다도 개인의 중요성, 인간의 존엄성,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와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이고 국가주의가 아닌 것이다.” 송교수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재판부에 대해서도 나는 구태여 나를 풀어달라고 호소하지 않겠다. 나는 무죄라고 확신하지만, 나로 인해 많은 동료 교수들이 희생되고, 학생들이 데모를 해서 여러 명이 중형을 받는 마당에 나 혼자 나가게 해달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진실을 위해 판결해 줄 것만은 당부하겠다. 나 자신 소설가로서 이 시대의 진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 믿고 재판을 받고 들어갈 때마다 그날 있었던 일 하나, 표정 하나도 안 놓치려고 애쓰곤 한다. 재판부의 결정이 진실에 어긋난다고 생각될 때에는 뒷날 그렇게 증언할 것이다.” 국사교과서 문제가 나왔을 때, 내용을 시정하는 것은 몰라도 국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반대하던 몇몇 언론들이 어느덧 앞잡이로 돌아서고 있다. 유신 때 그것을 지지하는 어용의 무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듯이, 턱없이 국정교과서에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저자 미상의 국정교과서가 쓰여지고 있다. 송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오늘 나타나고 있는 현상 하나하나를 똑똑히 기억해두어야겠다. 언젠가는 이렇게 거꾸로 가는 역사를 증언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이 글을 쓰면서 더욱 송기숙 교수의 안부가 궁금하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