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 하이디
진연숙
한 3년 전쯤 그 무렵 우리는 코로나19로 공포스러운 세상을 맞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거오 알려진 무서운 호흡기 감염 질병이었다. 고열, 호흡 곤란 증상으로 우리나라와 전 세계 병원 입원실은 만원사례였었다. 세계 보건 기구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신종 질병의 발 빠른 대처로 마스크를 쓰고 대면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드라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족이 둘러앉아 대화하는 장면이 낯설고 새삼스러웠다. 저런 날이 또 올 수가 있을까에 대해 의문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도 두려움과 함께 혼란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즈음에 우리 가족은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큰아들이 한 해전에 함께 한 파리 여행이 만족스러웠나 보다. ‘이번에는 남동생과 두 번째 모자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스위스를 여행하고 싶어서 노래를 부르듯이 했더니 마음에 담아 두었나 보다. 기대와 흥분으로 작은아들과 여행 일정을 짜 보았다. 어린 시절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만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푸른 언덕을 두 팔 벌리고 빨간 치마를 펄럭이며 뛰어 내려오는 하이디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름다운 나무 이층집과 돌담과 염소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내 가슴속에 늘 남아있다. 일주일 예정으로 스위스 알프스의 산과 마이엔펠트 하이디 마을을 여행하기로 했다.
예약하려는 날 코로나가 더 확산했으니 외국 여행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발표에 주춤하였다. 자국으로 급히 이송되는 교민들의 얼굴은 피곤과 두려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계속 몰려들어 오는 사람들과 유럽에 퍼져 사망자들이 늘고 식료품들도 부족하다는 뉴스이다. 하늘 비행기 길이 막혔다. 더 이상 두렵고 희망을 품기 어려웠다. 결국 어릴 적 동무 하이디 만나기를 포기했다.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전 국민이 백신을 네 차례나 맞았다. 회복되는 며칠 동안 통증과 후유증을 걱정하며 밤을 새웠다. 사회적으로는 문밖은 위험하다고 외출을 자제하게 되었다. 환자가 발생하면 집안에서도 이산가족이 됐다. 밥을 따로 먹고 소독해야 하니 공상과학 영화 같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조심하고 이겨내느라 힘들었다. 가족들이 일산, 홍성, 부산에서 각기 살고 있어서 늘 염려스럽고 조심하기를 일렀다. 전업주부로 혼자 지내며 텔레비전으로 상황을 보고 있자니 두렵고 우울했다.
낯선 세상이 왔다. 초등학생들조차도 등교를 못 하고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니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변화이다. 바깥 외출을 하지 않는 나는 보이지 않는 동아줄로 발이 묶인듯했다. 그냥 이대로 숨만 쉬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연히 글쓰기 강좌 안내를 보았다. 사회적 문화가 새롭게 생겨 비대면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용기를 내어 등록했다.
평소에 끄적거리길 좋아하고 멋진 글에 감동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밴 탓에 비대면 글쓰기 수업을 신청할 수 있었다. 나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창고에 쌓아 놓듯이 모아 놓은 글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누렇게 색 바랜 스프링 노트 한 귀퉁이의 구절이 눈에 띄었다.
열 살에 알프스 소녀 하이디 만화를 텔레비전으로 본 적이 있다. 고아이지만 밝고 명랑한 소녀가 할아버지에게 맡겨져 낯선 곳이지만 그곳에서도 사랑을 나눈다. 친구인 페터와 초록 언덕을 즐겁게 뛰노는 하이디는 가난하지만, 행복이 가득하다. 나의 마음도 함께 뛰고 있다. 언덕 위의 그림 같은 통나무 이층집들, 베란다에 알록달록한 꽃 화분들과 만년설의 웅장한 자태가 어느 곳에서든 보이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곳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었다. 하이디를 만나고 사랑과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다. 몇 년 후가 될까? 언제일지 모르나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오래된 노트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았다.
코로나도 이 또한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며 그동안 나는 참고 이겨냈다. 드디어 지난해인 2023년 5월 국가에서 비상사태 해제를 선언했다. 하늘 여행길이 열렸다. 그동안 공포와 싸우던 사람들이 해방을 맞이한 듯 먼지 앉은 캐리어를 꺼내 닦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싸고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꿋꿋하게 이겨낸 자신들에게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유럽으로, 동남아로 집을 떠나 넓은 세상 구경에 숨통을 틔고 싶어 나섰다.
나도 지금 가슴속에 살아있는 어릴 적 동무 하이디가 그립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스위스 여행 계획을 세워야겠다. 작은아들과 내 어린 시절 동무를 만나 함께 그 길을 걸어야겠다. 기다려, 하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