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무겁다.
밤새 비가 온 탓이다.
기력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습함 때문에 몸은 무겁다.
명상이 끝나고 나니 가벼움이 스며든다.
하루를 맞이하는,
삼라만상에 자비와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의 기도.
빗소리와 바람소리는 여전히 친근하다.
울진 5일장날(2, 7, 12, 17...일) 시장통.
계속 비가 쏟아진다.
이런 날씨에도 상관없이 순례단원들과 울진 평화모임 회원들이 시장통을 들어섰다.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전달하고, 엿장수와 흡사하게 엿판에 사탕을 담아 사람들을 찿아갔다.
사람들을 만났다.
이야기를 건넸다.
이야기를 나눴다.
고마움의 표시로 사탕을 건넸다.
멸공.
때 아닌 멸공구호가 울린다.
<새+일> 표시에 북진통일 이란 글씨를 새긴 차량이 우리의 뒤를 따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경이 거슬린다. 그들이 우리를 지나쳐 가는동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를 늦게서야 알아 본 그 아주머니는 오해를 했단다. 우리들이 그 사람들과 같은 팀인줄 알았단다.
우리는 말씀을 마친 아주머니를 뒤로하고 재래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자판에서 계신 어르신들.
표정과 손길에서 삶의 연륜을 배운다.
생존권.
아무 할 말이 없다. 아무 할 말이. 그냥 인사만을 드리고 지나가는 자신이 좀 그렇다.
한 할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고생이 많다고 문어포를 한 움큼 집어 주신다.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고 골목길을 걷는 나는 애잔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지친몸.
발길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시장통을 걸어가면서 내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늘 가슴에 서려있는 어머니.
오늘도 이곳에서 생존권을 위하여 자판에 계신 분들을 보며 어머니가 투사 되었다.
우체국.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찿을 수 있을까?'란 시가 생각났다.
납부 해야 할 것을 정리했다.
잃어버린 사랑, 사람, 생명, 평화를 찿지도 못한채. 아마 찿게 되겠지.
한터울 숙소.
목걸이용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틈틈히 만드는 이 목걸이용 나무는 모과나무로써 방문자들이 둥글게 나선형으로 얇게 자른것이다.
이 나무는 지난번 청와대 전시관 뒷편 전지작업을 할때 종로구청 직원에게 얻은것이다.
이후,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목걸이에 그림을 그리고 매듭을 지었다.
그리고는 단식기도 수행처를 방문한 아이들에게 고마움의 선물로 주었다. 또한 미처 목걸이를 만들지 못한경우에는
즉석에서 매듭을 지어 손팔찌와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하잖은것 이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도 순례단을 위하여, 지역에서의 평화활동을 위하여 고생하는 울진 평화모임회원들을 생각하며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친구들에게, 동지들에게, 도반들에게 내가 해 줄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기도요, 소소한 이런것 뿐이다.
해서,
솔직히
그림은 보잘것 없다.
글씨도 졸필이다.
뽀다귀 나는 내용도 없다.
그냥 느낌대로 그리고 쓴다.
이런 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있는 푸념과 반지가 고맙다.
난나(박 골롬바).
오늘도 옆에서 은근한 강요에 의해 포토샵 작업을 하고 있다.
핑계끔에 나는 음악을 들으며 목걸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전화가 자주 온다.
어떤때는 일부러 받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부러 받은 전화내용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이 생겼다.
내용인 즉,
'내가 며칠전에 죽었단다. 한참 울고 있는데 옆에서 어느 신부가 위로를 하더란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건 분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다. 그 부모와 아이들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서로의 건강과 안부를 챙겼다.
후포마을.
거리 캠페인.
태풍의 영향인가보다. 바람이 세게 분다. 비도 조금씩 날린다. 고철과 보리가 노래를 부른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부른다.
후포 홈마트앞에서 우리의 의지를 펼치고 있다. 간간히 지나가는 지나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평화의 사탕과 평화의 유인물은 전달되고 있다.
일곱색깔 무지개.
갑자기 하늘과 땅에 걸친 무지개.
성서에 이르기를 '무지개는 하느님과 백성들의 계약의 표지'로 표현되고 있다.
어찌되었건
무지개를 보는 우리들은 잠시동안 스스로의 침묵속으로 들어갔다. 스스로의 침묵속으로.
단식자를 위하여,
후포를 왕복하는 차량을 제공하고 유연한 운전으로 단잠을 자게 해준 도토리 선생님과 일다선생님.
한터울 숙소
'다가오지도 않는 것에 대한 나의 에고,
대상에 대한 내면의 경계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
낡은 사고와 습에 의한 불편심과 마음주인이 되지 못함이 나를 흔들고 있다.
관찰.
따라 하지않음.
지나감을 인내함.
생명평화의 만트라로 평정된 내면.
다시 본래 상태로 회향하고 넉살만이 대기하고 있다.'
나눔.
순례단원들과 울진 평화모임회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잠깐사이 서로가 다른곳에서 일정을 논의했다.
단식평화순례에 대하여 서로의 마음을 나누자고 했다.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 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은 마음이다.
서로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일.
한곳을 향하여 시선을 바로 맞출 수 있는건 한가지 밖에 없다.
그건 지극히 단순하다.
갈려면 가고 그렇지 않다면 안가면 되는것이다.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것이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거기엔 분명 자유가 있다. 방종인지 자유인지는 스스로 알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또 다른것이 한가지 있다.
좋아도 하지 못하고 싫어도 해야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수행에서 회자되고 있다.
누구나 경험이 있는것. 그것을 수행으로 삼는것이다.
사실,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즐긴다.
두 가지를 동시에 거부한다.
나는
두 가지를 버리기도 하고 두 가지를 거두어 들이기도 한다.
만트라를 외우며, 오늘 만났던 사람들과 무심히 스쳤던 사람들, 그냥 쳐다만 보았던 사람들과 자연들을 향하여 평화의 축복을 기도한다.
울진평화모임 회원들과 아니 도반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간의 노고와 수고는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목걸이를 선물했다. 졸작이지만 내가 고마움을 표시 할 수 있는것은 이것뿐.
그러나
그러나
솔직히
단식만 아니라면
시원한 막걸리와 파전을 놓고 한판 벌이고 싶다.
현실이다.
서로가 아껴가는 섬세한 배려속에서,
진정으로 울진 평화모임 회원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평화를 갈망하고 사랑하는 울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비를 기원한다.
http://chaminade.or.kr/plus/board.php3?table=자료실&query=view&l=264&p=1&g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