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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팬텀(Phantom) II
F-4C
[F-4C 는 미공군이 채용한 최초의 미해군 제트 전투기 이다 외형적으로는 미해군의 F-4B형과 거의 동일하다]
개관
F-4 시리즈가 미공군 주력기로 자리잡기 이전까지 미공군의 주력기는 F-105 썬더치프였다.
이후 미공군은 해군이 신형 함상전투기로 F-4B 팬텀기를 도입하여 운용중인 것과 같이, 강력한 성능을 가진 신형의 주력전투기를 개발하여 획득하기를 원했으나, 당시 미국방장관이었던 맥나라마는 미해군과 미공군이 각각의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은 예산상의 낭비를 초래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이에 제동을 걸었으며, 미공군은 이를 받아들여 독자 전투기를 개발하는 대신 강력한 성능을 가진 미해군의 F-4 팬텀에 주목하게 된다.
결국 미공군은 1961년 F4H-1 팬텀Ⅱ(※ 편집자 註 : 미해군이 양산 시제형으로 개발하여 생산한 1호기부터 47호기까지를 F4H-1F로 분류하였고, 이후 양산형인 48호기부터는 F4H-1으로 분류하였으나, 1962년 이후부터 F4H-1F는 F-4A로 F4H-1은 F-4B로 분류된다.)기에 대한 평가시험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
F4H-1과 F-106A와의 비교평가에서 F4H-1은 F-106A에 비해 더 높은 속력과 더 높은 비행고도와 더 긴 항속거리(25%)를 가지고 있슴을 입증했으며, 거기에 덧붙여 더 많은 무장을 장착할 수 있슴을 보여 주었다.
또한 F4H-1을 정찰용도로 사용할 경우 기존의 야간 촬영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RF-101A/C보다 훨씬 더 유용한 기체가 될것으로 판단했다.
분명한 것은 그때가지의 미공군 주력기인 F-105 썬더치프보다는 F4H-1이 훨씬 우수한 기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장점들이 드러나자 당시 미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미의회에 F4H-1의 미공군용 버젼인 F-110의 개발승인을 요청했으며, 이 안이 채택됨에 따라 미공군은 전투기용도의 F-110A와 정찰기 용도의 RF-110A기를 개발키로 하고 닉네임을 '스팩터(Spectre)'로 붙였다.
이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방부는 2대의 미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F4H-1을 미공군에 시험평가용으로 보내도록 명령하여 1962년 1월 24일 두대의 F4H-1기가 미공군의 버지니아주 소재 랭글리 공군기지로 공급되었다.
이들 기체에는 이미 분류번호인 F-110A라는 마킹이 기수부분에 'USAF'마킹과 함께 칠해져 있었다.
이 기체들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두대의 F4H-1기들은 미공군의 요구 사항을 훨씬 튀어넘는 성능을 과시했다.
1962년 3월 미 국방부는 팬텀Ⅱ의 육상용 버젼이 미공군의 주력전투기와 주력 전술정찰기로 선정되었다고 발표하였으며, 3월 30일 미국방부는 맥도넬더글라스社에 한대의 F-110A와 또 한대의 YRF-110A기에 대한 제작 요구서를 발송했다.
미공군은 당연히 F-110에 대해 공군요구사항에 적합하도록 변경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8월 29일 Specific Operational Requirement 200을 통해 F4H-1에 지상공격능력은 추가하고 함상용 전투기에 장착되는 어레스트 후크와 캐터펄트 부착 장비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며, 또한 뒷쪽 좌석에도 조종기능을 포함 시킬것을 요구했다.
이밖에 해군용의 F4H-1에 사용되던 고압의 대형 타이어는 공군 사용환경에 적합치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대신 저압의 광폭 타이어를 달도록 했으며, 또한 타이어 브레이크 장치에는 Anti-skid wheel brake를 채택하도록 요구했다.
1962년 9월 18일 맥나라마 국방장관의 주도하에 미 국방성은 미해군/미공군/미육군이 항공기의 분류명을 공통화 시킬 것을 지시하여, 미해군의 F4H 팬텀은 F-4로 개명되었으며, 양산형인 F4H는 F4B로 개명되었다.
미공군도 미국방성의 지시에 따라 F-110A는 F-4C로 RF-110A는 RF-4C로 개명하였다. 이와 함께 닉네임도 '스펙터'에서 해군과 같은 '팬텀'으로 변경하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된 F-4C는 1963년 5월 27일 최초로 비행하였다.
F-4C는 외관상 F-4B와 매우 흡사하나 상기에 밝힌 것과 같은 공군 요구사항이 반영되었고, 또한 공중급유기의 형식의 해군의 프로브 타입으로부터 칵핏 뒷쪽 동체에 수납되는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밖에 후방좌석의 계기판은 조종기능이 추가됨에 따라 변경되었으며, 더 높은 시계성의 확보와 조종의 용이성을 높이기 위해 계기판의 위치도 아랫쪽으로 이동되었다.
한편 미공군의 F-4C기는 지속적으로 전자장비들이 교체되었다. 그 내역은 아래와 같다.
[F-4C 는 외형적으로는 해군형의 B형과 비슷하나 내부적으로 꽤 다른 기체라고 할 수 있다]
▷지상 매핑능력 웨스팅하우스社(제너럴 일렉트릭社 계열이었으나 후에 노드롭社에 매각.
다시 노드롭은 그루만과 합병하여 노드롭-그루만으로 개명됨.)의 AN/APQ-100( F4H-1에는 AN/APQ-72레이더 장착)
▷AIM-7 스패로 미사일을 유도하기위하여 AN/APA-157 일루미네이터(AIM-7 스패로는 표적에 지속적으로 照射해주어야만 한다.)
▷저고도에서의 핵무기 투하 능력을 가진 AN/AJB-7 전고도 핵무기 투하 시스템
▷AN/ASN-48 (LN12A/B) 관성항법 시스템 장착
▷AN/ASN-46 항법 컴퓨터 장착
▷ASN-39 (ASN-46) dead-reckoning 항법컴퓨터
▷ALR-17 전자 대응수단 레이더 경보 시스템
▷APR-25 레이더 추적/경보 시스템
▷APR-26 SAM 발사 경보 시스템
▷APN-141 (APN-159) 레이더 고도계
▷A24G 중앙 공중 데이터 컴퓨터
▷ASA-32A 아날로그식 미사일 콘트롤 시스템
▷SST-181X Combat Skyspot radar bombing system(일부기종에만 장착)
F-4C에 장착된 엔진은 1기당 10,000파운드(애프터버너 사용시 17,000파운드)의 추력을 가진 제너럴일렉트릭社製 J79-GE-15엔진이었다.
이밖에 조종좌석은 마틴-베이커社製의 Mk H5 사출좌석을 사용했다.
무장
F-4C는 그 당시 '현대전'의 개념을 반영하여 기관포를 장착하지 않았다.
4발의 AIM-7D 혹은 AIM-7E 스패로 미사일을 동체하부에 장착할 수 있으며, 4발의 AIM-4D 팰콘이나 AIM-9B 혹은 AIM-9D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주날개 하부의 파일론에 장착할 수 있다.
이밖에 空對地 미사일로는 AGM-12 불팝(BULLPOP) 미사일과 AGM-45 슈라이크, AGM-65 마베릭 미사일을 장착했다.
이밖에 비유도식의 로켓발사용 포드와 일반폭탄, 집적탄등 최고 16,000파운드의 병장을 장착 할수 있다.
후에 기관포의 결여가 문제가 되어 동체 하부 중앙부에 별도의 SUU-16/A 포드(M61A1 20mm 개틀링건과 1200발의 탄환 적재)를 장착하도록 하였으며, F-4C의 경우 모두 세개의 SUU-16/A 포드(후에는 SUU-23/A)을 장착 할 수 있다.
내부 연료탱크 용적은 1979갤론으로 총 6개의 연료탱크가 동체내에 2개가 주익에 위치한다. 이밖에 F-4C는 외부에 600갤론 용량의 외부 연료탱크를 동체 하부 중심에 장치된 랙과 370갤론 용량의 외부 연료탱크를 각 1개씩 주익 하면에 장착 할 수 있다.
배치
미공군은 F-4C 팬텀을 신속하게 실전 배치하기 위하여 일단 27대 이상의 F-4B를 미해군으로부터 임대받아 배치하여 주로 공군 조종사들의 훈련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곧바로 미공군용의 F-4C가 양산에 돌입하여 배치되었다.
미공군 부대중 가장 먼저 F-4C기를 운용하게 된 부대는 맥딜(MacDill)에 위치한 제12훈련비행단으로 1964년 1월 F-4C기를 인도 받아 기존의 F-84F 썬더스트릭기를 대체했다.
미공군에 F-4C기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해군으로부터 임대받았던 F-4B기들은 곧바로 해군으로 돌려보내졌다.
1964년 12월 2일에는 F-4C기에 의해 KC-135기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18시간동안 10,000마일을 무착륙 비행하여 전투기부문의 신기록을 세웠다.
1965년 7월 10일 두대의 F-4C가 베트남전에서 두대의 MiG-17기를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추시킴으로써 최초의 전과를 기록하였다.
1965년 7월 24일에는 제47전술전투비행전대소속의 F-4C기는 월맹군의 地對空 미사일에 의해 격추됨으로써 소련製 SAM에 의해 격추된 최초의 미공군기가 되었다.
이 당시 F-4C기들의 전형적인 무장은 4발의 사이드와인더미사일+4발의 스패로미사일+750파운드의 폭탄을 적재하는 것이었다.
미공군은 F-4C기중 몇기에 AN/APR-25 레이더 추적및 경보 시스템을 장착하여 적 레이더 싸이트 공격기로 사용하였다.
F-4C기는 총 583대가 생산되었으며, 1966년 5월 4일 생산을 종료되었고, 1972년부터는 제1선에서 퇴역하여 미주방위군 소속 기체로 운용되었으며, 1978년 6월부터 재고기종으로 보관되기 시작했다.
결함
베트남에서의 최초 2년동안 F-4C기는 그때까지 작전에 참가했던 총 54기중 약 40%가 격추되었으며, 대부분이 SAM이나 MiG와의 교전중 격추된 것이나, 이중에는 자체 비행중 비행불능으로 추락한 경우도 있다.
특히 이런 사고는 CAS를 위해 저공비행하는 도중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10,000피트 이하에서 기체가 스핀 될 경우 F-4C기의 비행자세를 회복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여 이때 조종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사출좌석을 이용해 탈출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F-4C기는 현대적 공중전에서는 기총이 필요 없을 것으로 판단한 미공군의 실수로 인해 미사일만을 장착하여 MiG기와의 근접 교전시 대단히 애를 먹었다.
이후 전술한 바와 같이 SUU-16A 건포드를 동체하부의 중앙부에 장착하였으나, 이것은 위치상의 문제로 조종사가 마음대로 조준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스핀시 F-4C의 자세를 회복시키는데 장애요소가 되었다.
또한 초기 F-4C기들은 날개내부의 연료탱크에 누유 현상이 발생하곤 하여 각기체의 연료탱크는 1회 비행후 조심스럽게 분리되어 점검을 받아야 되었으며, 이는 미공군의 유지관리비용에 악영향을 미쳤다.
F-4C기의 AN/APQ-100 레이더의 고장율은 대단히 높았으며, 초기의 F-4C기들은 주익의 골재들이 약한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F-4C의 주익부 골격은 후에 보강설계되어 기존의 F-4C전체에 개수가 가해졌다.
또한 초기에 생산된 F-4C기의 내부 전장 연결부에 결함이 발견되어 초기 생산된 385대가 전부 부품 교체조치된 적도 있다.
1969년 미공군은 마침내 전·후방좌석에서 모두 조종이 가능하도록 설계변경한 것을 실수로 인정하고 이후 뒷좌석에서 조종기능을 제거하였으며, 후방 탑승 요원은 무기관제임무만을 맡도록 조치하였다.
몇대의 F-4C기에서는 엔진 베이部에 화재도 발생하여 이의 해결을 위해 1970년 1월부터 10월까지 재설계 작업이 실시되었다.
F-4D
개관
[F-4D 는 F-4의 개량판으로 외형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F-4D는 F-4C의 개량형으로 외관상 F-4C와 큰 차이점은 없으나, 내부적으로는 대단히 다른 특성을 띄고 있다.
F-4D는 F-4C와 같은 엔진과 동체를 사용하며, 내부연료탱크는 RF-4C와 같게 설계되었다.
F-4C와 F-4D는 내부적으로 에이비오닉스에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F-4C에 장착되던 AN/APG-100레이더가 더 작고 가벼우면서도 우수한 AN/APQ-109A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AAA-4 적외선 탐지 및 추적장비용의 노우즈하부의 포드(Chin 포드)는 삭제되었고, 콜린스社의 ASQ-10 소형 통신/항법/식별 자이가 기본 장착되었다.
[H채널에서 방영해준 '실전 최강 전투기 대전' 에서의 베트남전에서의 팬톰과 미그21과의 대결 동영상]
F-4C의 리튼社製 ASN-48 관성항법시스템은 성능이 향상되었으나, 중량은 가벼워진 ASN-63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AJB-7 전고도 폭탄 투하 시스템이 제공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레이져유도식의 스마트폭탄의 투하를 위한 ASQ-91 무장 투하 컴퓨터에 연동되는 시스템이다.
F-4D는 F-4C와 마찬가지로 스패로 미사일을 운용 할 수 있었으나,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의 사용기능은 제거되고 대신 휴즈社가 개발한 AIM-4D 팰콘 미사일을 장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애초 폭격기요격용으로 개발된 적외선 추적식 미사일로 베트남전에서의 성과는 대단히 미미했으며, 1967년 10월 26일부터 1968년 2월 5일까지 겨우 4대의 MiG-17기와 1대의 MiG-21기를 격추시켰을 뿐이다.
특히 팰콘 미사일은 운동성이 좋지않아 Dog-Fight 상황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이드와인더미사일이 다시 F-4D에 채택된다.
블록 27기종 이후부터는 제거되었던 노우즈하부의 포드(Chin 포드)가 다시 장착되기 시작했으나, 이것은 종전과 같이 AAA-4 적외선 탐지/추적용 장비를 수납한 것은 아니고 ALR-25/26 레이더 경보시스템의 안테나와 전방 증폭기가 수납된 것이었다.
후에 이 시스템은 다시 핀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 APS-107A와 Chin 포드에 안테나를 가진 ALR-69(V)2로 교체되게 된다.
이탈착이 가능한 외부장착식 재머는 ALQ-87 FM 재머, 웨스팅하우스社의 ALQ-101 소음/현란식 재머, 웨스팅하우스社의 ALQ-119 소음/현란식 재머등을 포함한다.
다중 이젝터 랙(multiple ejector rack)은 동체 하부 중앙선 파일론에 장착되고, 3중 이젝터는 주익 하면에 장착된다.
무장/에이비오닉스
F-4D 역시 F-4C와 마찬가지로 내부장착 기관포를 장비하고 있지않았다. 후에 기관포의 결여가 문제가 되어 동체 하부 중앙부에 별도의 SUU-16/A 포드(M61A1 20mm 개틀링건과 1200발의 탄환 적재)를 장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기체의 운동성저하와 무장적재의 감소등 성능에 않좋은 영향을 끼쳤다.
F-4D는 최초부터 뒷좌석은 무기관제요원 전용으로 설계되었고, 종종 뒷좌석쪽에는 유도폭탄 시스템 - 그당시 GBU-8, 이후에 GBU-15 - 의 씨커로부터 자료를 받는 TV 디스플레이가 장착되기도 했다.
F-4C는 무장 투하(발사) 조력 시스템으로 고정된 조준기와 간단한 투영차트에 의존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정밀공격이 불가능하다.
F-4D에는 기체의 속도, 고도, 상승속도와 투하된 유도병장의 타겟까지의 공격거리등에 대한 레이더로부터의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AN/ASQ-91 무장 투하(발사) 컴퓨터가 새로이 장착되는등의 에이비오닉스의 일신으로 본격적인 정밀 공격기능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空對空 능력을 향상 시켜주기위한 AN/ASG-22 조준기를 설치하였다. AN/ASG-22는 속도, 질량, 공격각도를 산출하여 레이더로부터 산출된 표적의 속도, 방향, 거리를 조합하여 공격에 필요한 선도각을 계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력
F-4D는 1964년 3월에 최초로 주문되었으며, 1965년 12월 7일 처녀비행을 실시하였고, 1966년 3월부터 공급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기체는 독일의 비트부르크에 위치한 제36전술전투비행단에 공급되었으며, 이어 1967년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세이모어 존슨 공군기지(Seymour Johnson AFB)에 위치한 제4전술전투비행단에 공급되었다.
F-4D는 총 793대가 미공군용으로 제작되었다.
미공군에서는 제3,4,8,12,18,33,35,36,48,49,50,52,56,57,81,354,366,401,405,432,474,475,479 전술전투비행전대에 배치되었다.
1977년부터는 미방위군에 공급되기 시작했고, 1980년부터 재고보관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전
1967년 봄부터 F-4D는 기존의 F-4C를 대체하여 배치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주둔군의 첫번째 F-4D 운용비행대는 제8전술전투비행전대이며, 1967년 6월 5일 최초로 Everett T. Raspberry 소령과 Francis Gullick대위가 탑승한 F-4D기가 하노이 부근 상공에서 MiG-17기를 격추함으로써 최초의 전과를 기록했다.
베트남에 배치된 F-4D기는 45기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개량기종
F-4D기종중에는 실험적으로 신형의 유도병기의 운용용 포드를 장착한 것들이 있다.
AN/ASQ-152(V)-2
몇대의 F-4D기에는 웨스팅하우스社製의 AN/ASQ-152(V)-2 페이브 스파이크 레이져 지시기(Pave Spike laser target designator)가 장착되었다.
실린더 형상의 AN/ASQ-152(V)-2 포드는 스패로 미사일의 장착위치중 한군데에 장착되는 것으로 TV 광학장치를 이용하여 주간 공격능력만을 제공했다.
이 시스템을 장착한 F-4D기들은 AGM-65 마베릭 미사일 운용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AN/AVQ-23 포드. 페이브 스파이크 시스템 중 항공기 외부에 장착되는 부분이다. 앞쪽에 투명한 유리창이 있는 머리부분 안쪽에는 카메라와 레이저 조준/거리측정기가 들어 있다.]
AN/AVQ-10
AN/AVQ-10 페이브 나이프 레이져 표적 지시기(Pave Knife laser target designator)는 AN/ASQ-152(V)-2에 비해 야간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특별히 개조된 F-4D기의 주익하면에 내장된다.
이것은 TV 카메라와 레이져 디지네이터를 수납하고 있는 헤드부를 가지고 있으며, 저광량 TV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야간 운용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조종사의 폭격 싸이트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되며, 이것을 이용하여 후좌석의 무장관제요원이 계기판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표적을 찾아 항공기를 그 표적을 향하게 하도록 되어 있다.
AN/AVQ-10를 장착한 최초의 전투임무는 1968년 5월 23일 시작되었으며, GBU-10/B 레이져 유도폭탄 운용에 사용되었다.
제8전술전투비행단의 제433전술전투비행대 소속의 F-4D기에 장착되어 1972년 5월 10일 하노이 부근의 Paul Doumer Bridge 폭격에 동원되었으나, 사실상 파괴에 실패하였다.
AVQ-11
두대의 F-4D에는 AVQ-11 페이브 스워드 정밀 공격 센서(Pave Sword precision attack sensor)가 장착되었다. 이것은 O-2A기에 탑재된 AVQ-12 페이브 스팟 레이저 지시기(Pave Spot laser designators)에 의해 지시된 표적에 대해 레이저 스팟 추적기를 위한 씨커 헤드를 가진 개량된 싸이드와인더와 함께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개조된 SSU-11 건포드내에 수납되어 오른쪽 전방의 스패로 장착위치에 달리거나 오른쪽의 내장형 파일론에 장착된다.
Pave Fire system
한대의 F-4D기에는 페이브 화이어 시스템(Pave Fire system)이 동체중앙부 포드에 장착되어졌다. 이 시스템은 야간에 급강하 폭격(Dive-toss)을 위해 장착한 것으로 저광량 TV와 레이져 거리측정기가 탑재되어 있다.
이 시스템을 장착한 F-4D는 중고도로부터 표적을 포착하고 지시하여, 급강하 한후 일반 폭탄을 투하하기 이전에 상승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표적에 대한 지시기능이 기대보다 못하였으며, 이후 이 시스템을 장착한 기체는 등장하지 않았다.
AVQ-9
11대의 F-4D에는 AVQ-9 페이브 라이트 레이져 지시기(Pave Light laser designator)가 장착되었다.
이것은 F-4D의 후방좌석 왼쪽 기체부에 장착되어져 다른 전투기가 표적을 공격하는 동안 AVQ-9를 장착한 기체의 파일롯이 표적부근에서 왼쪽으로 선회비행을 하면서 레이져를 이용하여 표적을 '조명'하도록 되어 있다.
제8전술전투비행단 소속 기체에 장착되어 사용되었다.
AN/ARN-92 LORAN-D
AN/ARN-92 LORAN-D는 총 72대의 기체에 장착되었다. 이것은 후좌석 뒷쪽 위에 'Towel Rail'안테나를 장착하여 다른 기체와 미약하게나마 식별이 구분된다.
이것을 장착한 팬텀을 페이브 팬텀이라고 칭했으며, 이들 기체는 호지명線에 대한 공격시 야간 정밀 항법 기능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제8전술전투비행단의 제25, 제497전술전투비행전대와 제432전술전투비행단의 제555전술전투비행전대 소속 기체들에 장착되었다.
이기체들은 후에 제301전술전투비행단의 제457전술전투비행전대와 제52전술전투비행단의 제23전술전투비행전대, 제924전술전투비행대의 제704전술전투비행전대로 배속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글출처 (http://www.defence.co.kr/weaponbook/weapon/f4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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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F-4D 운영국가였던 한국공군
[한국공군은 1968년 동아시아 최초로 F-4D 형을 수령하는 첫 국가가 되었다. 이는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떼쓰기 결과 였지만 이때 도입된 기체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우리의 영공을 지키는 든든한 날개가 되어주고 있다 사진은 이후 2차 도입된 기체들로 국민성금으로 구입된 것을 나타내는 '방위성금헌납기' 라는 구호가 선명하다.]
F-4D 는 1965년 등장 당시에는 최신의 전투기로 구소련의 MIG-21 이나 미그 19 기를 능가하는
우수한 성능의 전투기 였습니다. 이런 최신의 전투기가 1968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배치되게
됩니다.
당시 갈수록 심화되는 베트남전의 여파로 전투기가 부족하게 되자 미국은 그전에 미군이 한국에 공여해주었던 F-5A 프리덤파이터를 한국정부가 남베트남에 지원해주기를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총 35대의 F-5A 를 공여해주면서 한국정부는 부족해진 전력을 채우기 위해 미국에 F-4D 의 지원을 요청하게 되고 이를 미국이 수락하면서 미공군의 지원으로 총 16대의 F-4D 가 한국에 공여되게 됩니다.
[도입된지 4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꿋꿋하게 사용중인 F-4D형 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운영중인 F-4D형으로 우리의 우수한정비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인 한편 이미 페기되어야 마땅한 기체를 운영하는 우리 공군의 열악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실이라 하겠다. 다행히 2011년까지 새롭게 도입되는 F-15K 로 전원 교체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비교적 신형인 F-4E형인 청주 17비행단에 낡은 F-4D형은 대구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는 2010년 F-4D형은 모두 퇴역했다 ]
이는 당시 이웃나라 일본이나 대만이 F-86F세이버 급을 주력전투기로 삼는 당시 시점에서 비록일시적이지만 최강의 전력을 가진 F-4D를 한국이 보유했다는 점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은 바로 F-4E 초기형을 도입하는 한편 1980년대 초반에는 미공군등 일부 우방에만 소유했던 최강의 제공전투기 F-15J형을 도입하게 된다)
성능이 낮은 F-5A급이나 1세대 제트전투기인 F-86세이버만을 운용했던 한국공군은 강력한 엔진을 2기나 가진 쌍발기인 F-4D팬톰을 운용해본 결과 그성능에 아주아주 만족하게 되며 이후 한국정부는 국민의 방위성금등을 모아 18대분을 더 도입하여 대구 비행기지에 배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40여년간 대구에서 F-4D 형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F-4D 형을 운영하는 나라가 됩니다. (현재는 2010년일자로 모두 퇴역하고 그 자리를 최신의 F-15K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 기체들은 노후화가 심해 곧 배치완료되는 F-15K 들과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PT7에 계속
첫댓글 항상 적는 이야기지만 이젠 대구하늘에 펜텀이 그립습니다....................k2기지내에 펜텀기념공원이 있습니다....^^ 퇴역하고 바로 꾸몄더군요....... 펜텀 1대에 그냥 설명판이 전부입니다만......^^ 그나마 일반인이 들어가기엔....좀 번거롭기도 하구요..
아 정말 매혹적인 곡선의 미학~! 디형은 안 나오겠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