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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병으로 무교절을 지킴
천 영 대
성경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6~8)」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너희에게 첫날에도 성회요 제 칠일에도 성회가 되리니 이 두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각인의 식물만 너희가 갖출 것이니라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출 12:15~18)」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짐
좋지 않은 소문이나, 가르침은 유행병처럼 쉽게 퍼져 나간다. 의사들이 병원에서 병자들을 수술할 때에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지만, 특히 세균 감염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왜냐하면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다 할지라도 세균 감염이 일어나면 그것 자체로도 생명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앙인들의 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범죄나, 잘못된 일이 생기면 그것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 주님의 몸된 교회 전체에 치명상을 입힌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기자는 누룩을 예로 들어서 말하고 있다. 많은 누룩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라도 온 덩어리에 퍼진다고 했다. 마태복음 13장 33절에서는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했다. 이 구절에 대해 어떤 번역에서는 “…… 마치 여자가 (몰래)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했다. 혹자는 이 내용을 천국과 결부시켜서 좋은 뜻으로 해석할는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좋은 뜻이 아니다. 이것은 좋지 않은 누룩을 몰래 가루 속에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하는, 좋지 않게 하는 것으로 말한다. 사람도 세균에 감염이 되면 몸이 붓는다. 외적으로 볼 때는 몸이 부어서 커진 것으로 생각하고(많은 사람들이 큰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할는지 모르지만, 세균에 감염되어 몸이 부어 커진 것은 몸에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고 종국에는 죽이는 것이다. 이러한 선상에서 가루 속에 누룩을 넣어 부풀게 하면 먹기에 부드럽고 양도 많아진 것으로 생각하고 좋아할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교절에는 일주일 내내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라고 했다. 출애굽기 12장 17∼19절에서는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무교절 칠일 내내 누룩을 집에 있게 하지 말라고 했고, 그 기간 동안에 누룩이 들어간 것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인이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했다. 누룩은 좋지 않은 것, 잘못된 가르침이나, 괴악하고 악독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16장 5∼12절에서는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누룩에 대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으로 말하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이나, 교훈도 빨리 퍼져 나가고, 또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미친다. 잘못된 소문도 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데로 이끌어가고, 또한 그들에게 많은 해를 끼친다.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 이론이나, 공산주의 이론도 그러하다. 민수기 11장 4∼6절에서는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노정에서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음으로 이스라엘 자손들도 이것에 전염이 되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잘못된 것, 비정상적인 것은 쉽게, 빨리 퍼져 나감으로 전체를 쉽게 훼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과는 빨리 격리가 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6장 17, 18절에서는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했다. 부정한 것, 더러운 것들 가운데서 나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것들 가운데 있게 되면 자연히 접촉이 되므로 부정하게 되고, 더럽게 되기 때문이다. 부정한 것, 더러운 것들은 오염시키는 특성이 있다. 베드로후서 2장 6∼8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 사람들과 접촉하여 날마다 저들의 음란한 행실과 저들의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롯을 시험에서 건지기 위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셨다(물론, 그들의 불법한 행실도 함깨했다). 고린도전서 5장 6절에서는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는데, 이것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짐으로 온 덩어리를 오염시키고 망친다는 것이다.
묵은 누룩을 내어버림
전기(前記)한 바와 같이 묵은 누룩은 덩어리 전체에 퍼져서 전(全) 덩어리를 망치기 때문에 그 덩어리를 보존하기 위해 그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했다. 내어 버림으로 함께 하지 말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15절에서는 “너희는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고 했다. 무교절 칠일 동안 무교병, 곧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빵을 먹는데 그 첫날에 누룩을 집에서 제하라고 했다. 이것은 무교절 칠 일동안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누룩을 그 집에서 제거하여 없이 하라는 것이다. 누룩이 없어야만 누룩이 없는 빵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룩이 없은 빵, 곧 무교병은 우리 주님 자신을 말한다. 주님은 온전하고도 완전한 진리이며, 그의 삶 또한 깨끗하고 정결하며, 거룩하고, 의롭기 때문에 잘못된 가르침이나. 교훈, 괴악하고 악독한 것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덩어리 전체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더럽히고, 파괴하고 잘못되게 하는 누룩을 내어 버려야 한다. 고린도전서 5장 6, 7절에서는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했는데 이 내용에서의 새 덩어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산출된 새로운 창조물(새 사람)이다. 또한, 이 교회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을 말한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서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그를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을 믿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어떤 불의함이나, 속된 것이나, 악독한 것들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주님과 하나된 것 밖에 없다. 상기한 것에서 ‘새 덩어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산출된 새로운 창조물(고후 5:17, 갈 6:15)을 말한다. 새로운 덩어리에는 묵은 것이 섞여 있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덩어리가 아니라, 곧 묵은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창조물인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될 수 없다.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로 새 덩어리가 되도록하기 위해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고 했다. 우리 주님께서 옛것들을 끝내고 새로운 창조물, 새 덩어리를 얻기 위해, 속된 것, 더러운 것, 악한 것, 불의한 것 등이 없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출 12:5, 요 1:29, 벧전 1:19). 새 덩어리에는 묵은 것, 옛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러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새 덩어리, 새로운 창조물인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될 수 없다. 새 덩어리에는 새로운 것, 곧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속한 것만 있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9장 17절에서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지,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새것에는 새것들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옛것을 끝내셨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새로운 것을 산출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유월절 양,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들을 구속하셨다. 성경에서는 이에 대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이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유월절 양은 아무 양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양만이 유월절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출애굽기 12장 5∼8절에서는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유월절에 희생으로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고 일 년 된 수양으로 하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18, 19절에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를 구속한 것, 곧 우리의 죄들을 사하신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했다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만이 흠도 없고 점도 없는 분으로서 유월절 양으로 드려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마가복음 14장 12∼16절에서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고 했다. 상기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월절에 어린양으로서 드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흠이 없고 점이 없는 분으로서 유월절 희생양으로 드려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유월절에 일 년된 흠 없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그 집의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 집에 왔을 때에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감으로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보호함을 받았다. 이렇게 주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 믿는 자들의 죄들이 사함을 받게 되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정결케 하셨다. 옛 창조물들을 끝내고 새 창조물을 산출하셨다. 주님께서 유월절의 희생양이 되심으로 죄인들의 죄들을 구속하셨고 정결케 하셨다. 이로 인해 우리는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으므로(롬 5:9, 히 10:10), 불의한 것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는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했다.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희생이 되셨기 때문에,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에 죄들로 말해지는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했다. 우리의 죄들을 구속하신 그리스도는 죄와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사 우리의 죄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정결케 하사 우리를 새로운 창조물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묵은 누룩과 함께 할 수 없다. 묵은 누룩에 속한 죄악된 것들, 속된 것들과 함께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유월절 희생양이 됨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유월절에 유월절 양으로 희생이 되심으로 우리는 새 덩어리, 곧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덩어리로서 새로운 창조물로서의 삶을 위해 묵은 누룩, 곧 괴악하고 악독한 것들을 내어 버려야 한다. 출애굽기 12장 19절에서는 “칠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라고 했다. 무교절 칠일 동안(이중 첫째 날은 유월절임)은 집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되고, 곧 누룩이 없는 빵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만약 누룩이 있는 것을 먹게 되면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진다고 했다. 이것은 새 덩어리에서 끊쳐진다는 것이며, 아주 심각한 것이다.
무교병으로 명절을 지킴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갈 6:15, 16) 누룩이 있는 빵을 먹음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는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고 새 덩어리인 주님의 몸으로서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이렇게 누룩이 없는 빵, 곧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은 칠 일 동안 계속된다(물론, 이중 첫째날은 유월절이다). 출애굽기 12장 17, 18절에서는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이 날에 내가 너희 군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원한 규례를 삼아 이 날을 대대로 지킬찌니라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라고 했다. 무교절, 곧 누룩이 없는 빵을 먹는 명절은 칠 일 동안 계속되는데 칠일은 완전한 수로서 칠 일 동안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곧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휴거 되는 날까지, 곧 일생 동안 누룩이 없는 빵,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없는 그리스도를 먹어면서 사는 것을 뜻한다. 고린도전서 5장 8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 했다. 이것은 우리가 무교절의 명절을 지키는데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먹음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을 먹음으로 그 명절을 즐기고 누리라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타락한 육신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니고 누룩이 없는 무교병이신 주 예수님을 먹고 즐기고 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얼마 동안만 무교병을 먹는 것이 아니고 칠 일 내내 곧 일평생 무교병을 먹고 누리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5∼11절에서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고 했다. 우리가 전에는 묵은 누룩,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먹고 누리는, 타락한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들,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의 삶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자로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좇아 온전한 지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워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이 새 사람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 할례당과 무할례당, 야인이나 스구디아인, 종이나 자유인의 분별이 없다고 했다.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에 희생이 되심으로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이 없는 떡(무교병)을 먹음으로 무교절의 명절을 즐기고 누려야 한다.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이 없는 떡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그 명절을 즐기고 누려야 한다. 이것은 일시 동안만 아니라 우리가 휴거되는 날까지, 우리 일생동안 무교병인 주님을 먹고 즐기고 누려 주님의 성분으로 조성되어 주님과 같이 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유월절, 곧 무교절 칠 일 중 하루만 무교병을 먹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얼마 동안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교절 칠 일 내내, 곧 일평생 누룩이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 기간 동안에 유교병, 곧 누룩이 있는 빵을 먹게 되면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진다고 했다(출 12:19).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요한복음 8장 1∼11절에서는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고 했다. 예수님은 간음 중에 붙들려 온 여인, 돌에 맞아 죽어야만 했던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 범죄한 것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용서함을 받았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 계속해서 죄를 범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죄들에 대한 사함을 받았다고 해서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죄를 범치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고전 15:45), 믿는 자들 안에서 그들의 생명으로 역사하시고 있다(골 3:4, 요 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