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2
책읽기, 박찬승 지음, “마을로 간 한국전쟁”, 돌베개, 2010.
한국 근현대사와 근현대 사학사를 연구하는 대가 박찬승 교수(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쓴 6·25전쟁에 대한 미시적 관찰의 저서이다.
책 머리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남측 군인 사망자 14만7천여 명, 부상 70만 9천여 명, 행방불명 13만 1천여 명이고 민간인은 사망 24만 5천여 명, 부상 22만 9천여 명이다. 북측은 군인 사망자 29만
4천여 명, 부상 22만 5천여 명, 행방불명 9만 1천여 명, 민간인 사망 40만6천 명, 부상 159만 4천명, 행방불명 68만 여명이라고 한다. 남북한의 희생자를 합치면 군인 사망자 44만 명, 민간인 사망자 65만 명이라는 사실을 주목했다. 전선의 군인보다 후방의 민간인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처음 있는 놀랠만한 민간인 대학살 극이 좁은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민족이란 보따리 속에서 이념, 사회적 부조리, 종교 간의 갈등 등은 가까운 이웃을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그에 대한 보복이 연이어 일어나게 하는 잠복하고 있던 병원균이었다.
그래서 이 그 사정을 탐문하기 위해 저자는 5개 마을을 집적 답사하고 진술을 듣고 민간인 학살의 원인이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가를 문헌적 조사를 통해 치밀하게 서술했다.
이 책에서 다룬 마을은 다음의 5개 마을이고 표제어를 달았다.
1. 전남 진도의 동족 마을 x리를 ‘친족 간 학살의 비극’이란 제목을 걸었다.
2. 영암 한 양반마을의 시련-‘ 영암의 모스크바’ 영암 영보리 마을이야기를 다루었다.
3. 부여군의 두 동족마을,‘-양반마을과 평민 마을의 충돌’라 했다.
4. 당진군 합덕면 사람들, -‘땅과 종교를 둘러싼 충돌-’
5. 금산군 부리면의 비극-‘ 두 명문 양반가의 충돌’이다.
서술 대상이 5개 마을인데 현재는 전남, 전북, 각 1개 마을, 충남이 3개 마을이지만 5항의 금산은 당시 전북이었다. 각 마을에서 민간인이 학살되게 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설명했다. 지주계층과 소작인 관계, 양반과 평민과의 대립, 종교 간의 대립, 친족집단간의 문제 등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 매장 맺음말에서 전체 상황의 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내가 이처럼 민간인 학살이 많이 자행된 근본 이유는 좌우익의 이념적 갈등과 이를 조장한 거대 국가 권력이 뒤에 있어 이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마을에서는 작동할 수 없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토지소유 문제나 신분적인 반상과 노비의 관계는 일제시기 까지 봉건제적 유제라고 선전되었고. 사회주의의 맑스 레닌 주의의 좌익사상이 농촌으로 침투하여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려는 것이 공산주의적, 또는 공산 국가의 방침이었다.
이에 농촌에 인민위원회, 모모 동맹이란 단체가 결성되고 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은 인민재판을 거쳐 한 마을에서 지주, 경찰가족, 면서기 등 수십 명을 모아 즉결 처분하는 만행이 저질러졌고, 북한 측이 밀려가자 경찰 측에서 당한 보복으로 북측에 부역된 사람들을 색출하여 또한 수십 명을 살해했다. 전세가 두 번이나 뒤바뀌는 상황에서 민간인의 학살은 도를 넘는 것이었다. 특히 빨치산은 산에서 내려오는 유격부대를 일컷는 용어인데 이를 적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염되었다. 지리산 일대의 빨치산의 만행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6·25 전쟁사의 구술 사료를 수집 정리하는 작업이 현재 절실한 학문적 사회적, 문화적 과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당한 사람들은 다시 기억에 올리기 어려운 정도의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슬픈 기억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화 문헌자료화는 다시는 이런 역사적 과오를 겪지 않겠다는 문화적 유산이 될 것이다. 피카소는 1951년 ‘한국인의 학살’이란 제목의 그림을 남겼고,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많은 소설이 있음도 사실이다.
조선조의 유교문화, 친족 문화. 마을 공동체 문화가 좌익의 공작 속에 힘없이 무너져 갔다. 특히 친족적 유대감이 약했던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이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맑시즘은 유물사관을 내걸어 자기 학문만이 과학이라고 할 정도로 사상적 획일적 횡포성을 날리고 있다.이런 유물사관이 레닌의 농민 속으로란 ‘인민’이란 명제로 조직화한 것이 바로 광복 직전의 남로당 조직이었다.
남북한이 국가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이념적으로 좌우익이 상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언제나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좌익의 조직적 음모, 우익의 무지막지한 가혹한 대응은 한국의 장래를 안심할 수 없게한다. 마치 발 아래 묻혀 있는 지뢰와 같다. 그리고 몸속에 돌고 있는 바이러스와 같은 암적 존재이다. 우리는 이들을 함께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 때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어떤 이념도 아직 갖추어져 있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인본주의 사상이 두 이념을 포괄하기에는 힘이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개인 개인이 모두 철저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가 톨스토이 때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 현재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은 언제나 숭고하고 널리 널리 실천해야할 고귀한 이념이라고 할 수 있고 좌우의 이념을 승화시켜 조화롭게 하려는 노력이 어느 시대보다 소중하고 급하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6.25 전쟁의 기억을하고 있는 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전쟁에서 남긴 통신문, 참전 일화, 외국인의 참전 내용 등을 수집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전쟁은 한국만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사적인 전쟁이었고, 좌우익의 이념과 공산주의 체제와 자유주의 체제의 대리전이었다. 그 상흔은 이제까지 남아 있다. 이는 한국인의 문화의식, 역사의식, 생활의식의 변화에 있어서 커다란 분수령이었다. 우리는 이 전쟁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이 잘못된 것을 이제 발견하고 수정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