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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이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이야기하는데
或以難思布施門하며
혹(或)은 불가사의한 보시(布施)로써 하며 그랬습니다. 보시문(布施門)으로써 하며. 난사보시문(難思布施門) 생각하기 어려운 보시.
보시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일 큰 보시, 가장 기본이 되는 보시 뭡니까? 남을 배려하는 거, 남을 배려하는 거예요. 이거 참 안돼. 돈 안 드는 건데도 그게 안돼. 돈 드는 것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더 어렵죠.
내가 늘 이야기하죠.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갔을 때, 그 앞질러 가는 사람이 있으면은 그것 좀 서서 앞질러 가기 좋도록 배려해주는 것. 잠깐 그 뭐 한 1초, 1초? 채 그것도 안 걸리는 그 시간을 우리가 못 참고 막 거기다 이제 뭐라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복운전까지 한다. 따라가서 왜 앞질러 갔냐고 이렇게 하면서 보복운전하고
그렇습니다. 그것만 하나 해도요 큰 보시입니다. 참 불가사의한 보시죠. 그게.
或以頭陀持戒門하고
또 두타(頭陀)라고 하는 것은 두수(抖擻) 다 떨어버린다 그 뜻입니다. 두타는 범어인데, 다 떨어 버리는 그 계(戒)를 제대로 가지려면은 모든 걸 다 떨어 버려야죠. 내려놓아야 됩니다. 방하착(放下着) 내려놓아야 돼요. 그게 이제 움켜잡고 있으니까 그게 이제 계행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되죠.
或以不動堪忍門하며
나는 병원에서 이제 퇴원해가지고 오자마자 처음에 이제 써서 붙여 놓은 게 감인대(堪忍待) 여깄 네요. 견딜 감(堪), 참을 인(忍), 기다릴 대(待) 그래 감인대까지 된 게 있어요. 감인대. 여긴 이제 두 자인데, 부동감인대(不動堪忍待)입니다. 감인문(堪忍門) 아주 견고한 움직이지 않는 견디고 견딜 감, 참고 그리고 기다리는 문으로써 하고, 그게 이제 인욕(忍辱)이죠. 인욕. 인욕 참 중요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거기다가 기다릴 대(待)자 하나 더 붙여서 감인대 꼭 써붙여 놓으세요. 견디고 참고 기다려보세요. 그러면 자식도 이번엔 떨어졌어도 다음엔 잘 될 수가 있습니다.
或以苦行精進門하고
그다음에 정진(精進)한다는 거 이거 정말 고행이에요. 어떤 사람은 열심히 운동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너무 잘하거든, 열심히. 아 그렇게 재밌냐고? 누가 재밌어서 하나 마지못해서 하는 거지. 재밌어서 하나 마지못해서 살라고 마지못해서 하는 거지. 그게 고행이요. 그게. 그렇습니다. 그 재밌어서 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고행정진문(苦行精進門)
『화엄경』에 빠져가지고 『화엄경』공부 열심히, 물론 재밌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마는 하다보면은 업이 돼서 하기도 하고 또 해야 된다 하는 의무감 때문에 하~ 이것이 나를 붙들어 준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나의 어떤 구심점이 된다. 그런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것도 이제 고행정진문이라.
或以寂靜禪定門하며
혹(或)은 적정선정문(寂靜禪定門)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서 하는 문으로써도 한다.
그건 뭔 말이요? 우리가 어떤 할 때 항상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하고 그러면 뭐가 보여요? 들떠있으면 안보입니다. 누구하고 시시비비를 할 때도 흥분해버리면 이치가 옳고 그른 거 절대 생각이 안 나요. 생각이 안 나. 그냥 막 흥분한 상태, 감정대로 쫓아가지 절대 그게 안돼요. 자제하고 싶어도 안돼. 그러면서 지는 곧 옳다고 하는 거야.
선정 적정선정문(寂靜禪定門) 고요한 마음상태를 갖는다고 하는게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불교에는 그 선정이라고 하는 것을 육바라밀 가운데 꼭 그 넣어놓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또 선정만 계속하는 것도 그것도 또 안맞죠. 여기 육바라밀 다 나오잖아요.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或以決了智慧門하고
그 다음에 지혜문(智慧門) 분명한 지혜의 문으로써 한다 그랬어요. 결요(決了)라고 하는 말은 확실하고 아주 분명한 그런 뜻입니다. 분명한 지혜의 문으로써 하고
或以所行方便門하며
또 소행(所行) 행하는 바 방편문(方便門) 그렇죠. 선교방편(善巧方便)이라고 해서 우리는 일상생활에 알게 모르게 얼마나 방편을 잘 씁니까? 방편을
或以梵住神通門하고
또 청정하게 머무는 신통문(神通門)으로써 하고, 그렇습니다. 이건 이제 보살들이 그 교화를 펼치는데 이십종문 가운데 이제 범주(梵住)라고 하는 청정하게 머문다 그런 뜻입니다.
或以四攝利益門하며
사섭법(四攝法) 보시, 애어, 이행, 동사 그게 이제 사섭법입니다. 보시, 육바라밀에도 보시가 저기 나왔잖아요. 처음에 보시 있죠. 사섭법에도 보시가 처음에 나와. 그 남을 배려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금강경』에서 온통 보시이야기 아닙니까? 『금강경』 배려하되 배려하는 마음 없이 하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하라. 그게 뭐여? 배려했다고 해서 그게 이제 자기 생색내면 그게 또 뭐가 때가 끼잖아요. 때가 끼지 않도록 생색내지 마라. 무주상보시. 상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
그 참 이행, 동사 요 뒤에 또 나오는데 아주 이롭게 하고, 사섭법 중에 보시, 애어(愛語) 사랑스러운 말
내가 그전에 일본가서 어디 조그만한 그 아주 뭐 그 삼백 엔짜리 식당인데, 거기도 들어가니까 화안애어(和顔愛語) 그렇게 써붙여 놨더라고, 화안애어. 아주 그 화평한 얼굴과 그러니까 웃는 얼굴이죠. 웃는 얼굴과 아주 그 사랑스러운 말, 아주 친절한 말 쓰자. 그 뜻에 화안애어라고 딱 써붙여놨는데 그 작은 아주 삼백 엔짜리 식사를 파는 작은 식당인데, 자리도 대여섯 개 밖에 안돼. 그런데도 그 식당의 격이 달라 보여. 하 훌륭한 사람이 운영하는구나. 영 달라 보여요. 그렇습니다.
이행, 동사 그 다음에 이행(利行) 남에게 이롭게 하는 거. 이로운 행동 그다음에 동사(同事) 방편으로 나쁜 일이라도 같이 해주는 거. 상대를 교화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같이 해주는 거. 나쁜 일이라도, 설사 좋은 일은 더 말할 나위 없죠. 그런 것으로써 이익(利益)하게 하는 문(門)으로써 삼고
或以福智莊嚴門하고
혹(或)은 복(福)과 지혜로써 장엄(莊嚴)한 문(門)으로써 하고
그렇죠. 본인이 뭐 복이 넉넉하고 지혜가 넉넉하면은 그 사람 제일 잘 장엄한 것입니다. 뭐 귀걸이, 코걸이 했다고 장엄한 것이 아니고 무슨 남의 눈에 띄는 패션이 입었다고 장엄된 것이 아니고 정말 복이 있고 지혜가 있어야 그 장엄은 정말 영원한 장엄이고 정말 보기 좋은 장엄입니다.
자기한테 어울리지도 않는거 입었다고 그게 꼭 장엄 아니에요. 그게 안목 없이 그 함부로 그 입고 더 이상하게 보이면은 그 우스운 거 아니에요? 그래 이제 우리 불자들은 복과 지혜로써 자신을 장엄할 때, 우리가 지금 『화엄경』공부하는 게 전부 자기 자신을 장엄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서, 성인을 공부해서 결국 우리 정신, 우리 영혼을 잘 장엄하자고 하는 거에요. 아 복 짓는 방법도 알고, 지혜를 닦는 방법도 알고, 남을 배려하는 방법도 알고 이게 얼마나 좋은 장엄입니까.
복지장엄문(福智莊嚴門)으로써 하고
或以因緣解脫門하며
여기 나왔네. 앞서 이야기 안할 걸 그래. 인연(因緣)을 제대로 알면은 벗어난다. 집착에서 벗어난다. 여기다가 써놨어. 인연을 알면 집착에서 벗어난다. 크~ 이 기가 막힌 말이요. 서울서 오신 보살님 잘 들으세요. 거기다 쓰세요. 인연을 알면 집착에서 벗어난다. 내가 강의 그 준비하는데 며칠 전에 봤는데 거기다 써놨네. 그렇게.
인연해탈문(因緣解脫門)이라. 인연 알면 해탈이에요. 그리고 모든 것은 인연으로 돌아가. 괜히 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구요. 왈가왈부할 거 없어. 그래봤자 내 저 알아서 자기가 다 하게 돼있고 돌아가게 돼있고 그래요. 인연해탈문 좋은 말 인연해탈(因緣解脫) 요 넉 자만 기억하고 딴 건 다 잊어버립시다.
인연해탈 인연의 이치 알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 초겨울에 무시하고 함부로 옷 입고 나갔다가 감기 딱 걸려 들어왔다. 아 오늘 내가 깜박하고 뭐 가을옷을 그냥 입고 나갔다가 이렇게 추위에 떨어서 감기 걸렸다. 고 이치 딱 알잖아요. 감기 걸린 이치 딱 아는 거야. 그럼 누구도 원망 안 해. 아 내가 옷 잘잘못 입어서 이번에 감기가 걸렸다. 그 이치 알면 문제없어요. 아무 관계가 없어져버려. 걸릴만하게 돼서 걸렸다 이거여.
그 인연의 이치를 앎으로써 해탈하는 거요. 거기에 대해서. 문제가 없는 거지.
或以根力正道門하고
그다음에 오근(五根) 오력(五力) 팔정도(八正道) 이건 이제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중생을 교화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교화방편인데, 이게 이제 제가 나눠드린 14권 이게 이제 우리 공부하는 화엄경강설 이거 이 안에 보면은 자세한 그 주해(註解)가 다 있어요. 일일이 내가 재차 읽어드리진 않겠는데, 자세한 그런 법수(法數) 이걸 법수라 그래. 법수. 법수만 가지고 책이 큰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 내가 다 찾아가지고 설명 해놨습니다. 오근, 오력, 팔정도 그러한 것으로써 또 하고
或以聲聞解脫門하며
성문(聲聞)은 아주 소승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만 편안할려고 하는 거요. 그런대로 자기 문제는 해결했어. 그래서 성문해탈문(聲聞解脫門)하고 그랬어요.
或以獨覺淸淨門하고
또 독각(獨覺) 이거는 홀로 깨달았다. 무얼 깨달았다? 인연의 이치를 깨달았다. 인연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독각도, 그건 이제 누구에게 배워서 깨달은 것이 아니고 홀로 깨달은 거요. 자연의 이치 보고, 주로 자연의 변화를 보고서 인생사까지도 자연의 이치에 빗대어서 깨닫는 거여. 연관시켜서 깨달아.
사계절 일 년 사계절만 잘 관찰하면은 인생사 생노병사도 다 거기서 깨달아. 생노병사, 흥망성쇠도 거기서 다 깨달아. 자기 사업의 흥망성쇠 하는 것 까지도 다 거기서 깨달아. 춘하추동 이치 깨달으면은 자기 사업이 흥망성쇠 하는 것도 다 거기서 깨닫고, 생노병사도 거기서 깨닫게 돼있어요. 그게 이제 독각이야. 홀로 그런 이치 보고 깨달았다. 그거 전부가 인연의 이치, 연기의 이치인 거죠.
그 청정(淸淨)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텅 비었어. 깨끗해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독각청정문(獨覺淸淨門)으로써 하고
或以大乘自在門하며
앞에서는 소승(小乘)이라면은 여기 대승(大乘)은 이제 보살대승(菩薩大乘) 보살은 자유자재해. 보살은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있으되 생사를 우정 받아가면서, 윤회를 벗어날 그런 상황이 되었어도 윤회를 우정 받아가면서 중생을 자유자재하게 제도한다. 그래 대승자재(大乘自在)
여기 『화엄경』은 보살대승불교입니다.
或以無常衆苦門하고
혹(或)은 무상중고문(無常衆苦門) 무상하니까 모든게 다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변하잖아요. 상대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같이 변하니까 이거 얼마나 잘 변합니까.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하니까. 그거 참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변해있으면서도 상대가 변해있는 것을 “왜 변했냐?”하고, 그렇게 우리가 어리석다니까. 상대도 변하고 있고 나도 변하고 있는데, 자기는 안 변한 줄 알고, 상대가 변한 것만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왜 변했냐?”고 그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는 거죠. 아 참
그게 이제 무상중고문이다. 무상한 이치, 무상함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이 거기에서 따르게 된다. 무상중고문.
오늘 여 저 이십종문 안에 우리가 참 기억해야 할 게, 저 앞에 인연해탈문(因緣解脫門)도 좋긴 한데, 무상중고문(無常衆苦門)도 상당히 깊이 있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항상 한 거 없어요.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러잖아요. 제행무상.
여러분들 불교공부하면서 첫 마디 처음 들은 게 아마 제행무상일걸? 불교에 입문하기 전에 벌써 알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제행무상. 이거는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일반적인 말이 돼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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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대방광 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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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해탈문
무상중고문
생사를 우정 받아가며
*苦行精進門--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구심점이다.
*因緣解脫門--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난다.
*無常衆苦門--항상하지 않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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