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쾰른의 선인이라 불리며 전후 독일 문단을 이끈 하인리히 뵐의 장편소설이다.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의 참상과 고통에 침묵해야만 했던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948년의 화폐 개혁 후에 서독의 대도시인 쾰른에서 벌어진 일을 부부 각자의 관점에서 그린 이 소설은 1953년 말까지 1만 7천 부 이상이 팔리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야기는 1952년 9월 30일 토요일 오전에 시작되어 10월 2일 정오경에 끝나는데, 작품의 제목은 예수의 수난을 다룬 흑인 영가「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따온 것이다.
가장인 프레드 보그너는 좁은 단칸방에서 아내 캐테, 세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다른 데서 산다. 그는 전쟁과 가난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포격으로 파괴된 도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그의 아내 캐테 보그너도 절망적인 일상생활과 위선적인 가톨릭 신자인 프랑케 부인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수모를 견디며 초라한 방에서 억지로 살아간다. 또 다시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싸구려 호텔에서 남편과 함께 밤을 보내며 자신이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는 것을 깨닫지만 그와 헤어지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데 부부가 단칸방에 사는 까닭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프랑케 부인이 응접실을 포함해 네 개의 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그너가 그 응접실을 쓸 수 있었더라면 그는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