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마음 읽기
새해에 새로 만나는 나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중앙일보 입력 2023.01.04 00:25
아직 캄캄한 새벽, 법당문을 열고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동지가 지났으나 여전히 길고 긴 밤, 그사이 만들어진 풍경인 게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 첫 문장이 떠올랐다. 문장을 읊조리니, 지난 세월 내가 본 설국 풍경이 꼬리를 물고 숨을 내쉴 때마다 허공 중에 하얗게 퍼져나갔다. 아-아. 그러나 1월 동장군엔 장사 없다. 빡빡 깎은 민머리가 시리어 망념도 운치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얼른 법당문을 닫고 돌아서야 했다.
눈이 침침해서 등을 더 환하게 밝혔다. 최근에 밤낮으로 문 닫고 용맹정진하듯 책을 읽었더니 시야가 흐려져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다. 안경을 바꿔 껴보아도 더 이상 글자가 선명하지 않게 되어서야 책을 덮었다. 아차 싶다가는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어려서부터 눈이 안 좋은지라 한쪽 눈이라도 죽는 날까지 멀지 않게 해달라고 관세음께 빌어보았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 눈먼 아이처럼.
‘무릎을 굽히고 두 손 모아 천수관음께 빌어 사뢰나이다. 천 손에 천 눈 하나를 덜기를. 두 눈이 먼 내라 하나쯤 은밀히 고치어 아아 나에게 끼쳐주신다면, 놓아주시고 베푼 자비 뿌리 되오리다.’ (‘분황사천수대비 맹아득안(芬皇寺千手大悲 盲兒得眼)’ 중) 긴 한숨에 어깨까지 내려갔다.
새해가 되고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 해를 가리키는 이름도 숫자도 바뀌었다. 초연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니 그러기엔 세월이 너무 빠르다. 이미 올린 기도 때문에 새해에 올릴 소원 찬스 하나까지 놓친 기분이다. 대체 왜 이렇게 시간은 잘 가는 것일까. 나이 먹는 게 아쉬운 것일까, 아니면 쳇바퀴 돌듯 살아서일까.
심원의마(心猿意馬)란 말이 어울리듯, 짧은 시간 안에 마음은 원숭이같이 산만하고, 생각은 말처럼 날뛰었다. 차가운 방석 위에 망연히 앉아 답도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생각하다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오래전 새해를 맞은 도연명은 ‘새해가 열리고 닷새가 지났으니, 내 생도 장차 쉴 곳으로 돌아가리라(開歲後五日, 吾生行歸休)’ 하였다지. 모르긴 해도 세상에는 그처럼 쉴 곳을 향해 떠나고픈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데미안』 첫 장에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려는 것. 난 그것을 살아보려 했을 뿐이다. 그게 왜 그리 힘들었을까?’라고 나온다. 지난해 힘들었다면 더 와 닿는 문장일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살려 해도 인생은 녹록지 않은 법이니.
설령 그렇다 해도 새해가 되었으니 ‘희망’을 이야기하자. 그럴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 지난 연말 ‘끝’이라는 이름으로 구분 지었으니, 이젠 ‘시작’을 강조할 때다. 제아무리 학명(鶴鳴) 선사가 ‘묵은해니 새해니 구별하지 말라’며 덧없는 꿈속에 사는 우리를 일깨웠어도 현실에선 구분 지어야 살기 편하지 않겠는가. 옛날 부처님이 본 해나 오늘 내가 본 해가 하나의 태양일지라도, 새해의 태양은 더 힘차게 솟아올랐으리라 믿으면서 말이다. 우리말에도 1월을 ‘해오름 달’이라 일컫는다. 그 또한 ‘새해 아침에 힘 있게 오르는 달’이라는 의미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날들이어도 새 마음 내어 새날을 만들어보자. 사람의 성향이 호랑이 같든, 토끼 같든, 거북이 같든,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한 해지만, 새로이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이와 흐지부지 대충 넘긴 이에게 결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어도 올해는 희망과 욕망을 버무려 알찬 한 해로 살아내시길 권한다.
기우고 기운 누더기 두 벌 세상에 남기고 가신 성철 스님이나 무소유를 강조하신 법정 스님을 생각한다면, 내가 말하는 희망은 한낱 욕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둘러보면 세상 모든 일에는 욕망이 섞여 있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은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고, 일도 잘하고 싶고, 욕망에도 초연하고 싶고…. 이렇게 멋진 ‘희망’에도 인간의 욕망이 듬뿍 담겨있다. 생각해보면 인간과 욕망은 천둥과 번개만큼이나 잘 어울린다.
기왕에 그렇다면 희망에 기대어 목표를 명확히 세우고 새해를 시작하면 어떨까. 토끼가 뒷발을 힘주어 차고 나가 껑충껑충 뛰어가듯, 1년을 잘 계획하고 준비하여 폴짝 뛰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끝으로 “그대가 나를 만나 날마다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묻는 석두 선사에게 방(龐)거사가 바친 게송 일부를 남긴다.
날마다 하는 일 새로울 것 없습니다(日用事無別)/ 오직 자신과 절로 만날 뿐입니다(唯吾自偶諧)/ 신통과 묘한 재주(神通幷妙用)/ 물 긷고 나무하는 일입니다(運水及般柴).’
* 밥은 따뜻한 '사랑'입니다 (따뜻한 편지 2278)
‘밥 먹어라. 씻어라. 일찍 자라.’ 보통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똑같이 하는 말이지만 저는 그런 간섭이 싫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성인이 된 후 무작정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고, 일 년에 명절 때나 겨우 어머니를 찾아뵙곤 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나요? 그렇게 저에게 어머님의 존재는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몰랐습니다.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는 사실까지도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미 증상이 많이 진행되어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 계셨습니다.
예전에 그만 자고 일어나서 밥 먹으라며 제 등짝을 후려치던 활기 넘치던 그때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요?
식사 시간이 되어 간호사들이 이끄는 대로 요양원 식당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저는 어머니에게 음식이 담긴 식판을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당신의 손에 쥐여 준 숟가락을 저에게 불쑥 내밀며 말했습니다. “밥 먹어야지.”
어머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때처럼 저에게 따끔하게 말씀해 주세요.
영원할 것 같은 시간도 돌이켜보면 찰나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효도해야지… 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길지 않은 인생,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마음껏 사랑하며 사십시오.
# 오늘의 명언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 플라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