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인이 되었어요"
다음은 6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컴퓨터 컨설턴트로 일하는 인도인 청년 아카시를 만나 국제결혼을 한 후 3남매를 낳은 한국인 간호사 최숙영 씨의 인터뷰 내용이다. 최 씨를 통해 토요일마다 5식구가 호주한국학교에 총출동하여 두 자녀와 함께 한국어를 배우는 아카시 씨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내 사랑, 자녀 사랑, 장인장모 사랑, 김치사랑, 소주사랑 그리고 한글사랑 등등. (편집자주)
- 두 분은 언제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날인 9월 15일 달링하버에서 대형스크린으로 중계되는 개막식을 보러 갔다가 친구 소개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카시는 저와 같이 공부하던 언니와 같은 집 쉐어메이트였지요."
- 결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처음 만난 날부터 결혼까지 매일 빠짐없이 얼굴 도장 찍다가 만난 지 1주년 되는 날 양가 부모님 허락 하에 호주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그 후 양가 부모님께서 호주에 오셔서 처음 만나셨고 다음해 봄 한국에서 다시 정식으로 식을 올렸지요.
아쉽게도 아직 인도에선 식을 못 올렸어요. 신기하게 신랑이 가마가 세 개 있어요. 옛말대로라면 결혼을 세 번 하는 팔자라 하니 농담 삼아 말하길 자기는 한 여자랑 세 번 결혼한다고 하네요. 그러자면 인도에서 결혼식을 또 해야겠네요.”
- 한국에서 올린 결혼식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례께서 신랑이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주례하시는 중간중간 신랑에게 통역해 주라며 말을 끊고 기다리시는 거예요. 그 당시 갑작스런 통역에 한국말 표현이 참으로 다양하고 어렵구나 느끼겠더라고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 아끼고...' 직역을 하다 보니 그 말에 담긴 뜻을 전달하기도 어렵고 해서 장황하게 긴 주례사가 단순하니 짧아지더라구요. 당황스런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한국 방문 때 아카시는 말도 통하지 않는 친지 어른들에게 인기 만점이었어요. 씩씩한 웨딩마치와 중간중간 못 알아듣는 한국말로 인해 실수하는 모습, 어정쩡한 포즈로 인사하는 모습 등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지요. 피로연장에서는 어른들이 주시는 술잔에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뒤로 하고 마실 줄도 알고 집어주시는 안주는 사양 않고 덥석 잘도 받아 먹으니 어른들께서 예뻐하시더라구요."
- 서로의 가정 환경과 나라, 문화의 차이 때문에 겪는 에피소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과연 무슨 음식을 먹는지 궁금하시죠? 저 역시 뭘 해먹고 사나 걱정을 많이 했어요. 처음엔 힌두교도라 소고기는 전혀 안 먹었고 해산물이나 생선류도 안 먹더라고요. 인도 요리는 전혀 모르는데 어쩝니까? 모르겠다 하고 한국음식을 만들었죠. 그렇게 6년을 한국인 부인과 살다 보니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고기 없인 못 살아요. 삼겹살, 숯불 양념갈비, 생선회, 초고추장, 된장찌개, 자장면, 월남쌈이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지요. 술도 그 비싼 소주, 김치도 숙성되어 익은 김치를 더 좋아하고 김치전에 김치찌개, 무엇보다 장모님이 사위 입맛에 맞게 담궈주시는 김치를 제일로 좋아합니다. 이제는 한국사람보다 더 한국사람처럼 되어 버렸으니 지금은 전혀 불편함 없이 살고 있지요.
그리고 처음 한국을 방문해서 남대문 먹자골목에 간 적이 있습니다. 어느 식당 앞에 진열된 고사 때 쓰는 돼지머리를 보고 기겁을 한 후 그 좋아하던 삼겹살을 며칠이나 먹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국제결혼이라서 많은 분들이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해 하시지만 같은 한국사람이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언어가 다를 뿐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산다는 거,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며 양보하다 보니 이젠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반자가 되었답니다."
- 아무래도 친정 부모님과 말이 잘 통하지 않을 텐데…
“우리 신랑은 언제나 제 입장을 먼저 배려해 주고 아이들도 잘 돌봐주며 자상하니 친정부모님께도 잘해요. 그래서 이 남자 꽤 괜찮다 싶고 고마워요.
말도 잘 안 통하는 장인 장모님 오실 때면 무료하실까 고스톱까지 배워 놀아 드리는 것은 기본이고, 좋은 구경 맛나는 거 있으면 꼭 모시고 가 드린답니다. 친정어머니께서도 처음에는 말이 잘 안 통해 하고 싶으신 말씀을 다 못 나누시는 게 답답하고 아쉽다 하시더니 이제는 저보고 결혼 잘했다 하십니다. “
-아빠하고 아이들이 언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지금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요?
“처음 만나던 날 자랑하듯이 한 한국말 한마디… 욕이었습니다. 장인어른과 하루 한 단어씩 배워 얘기하자던 약속을 하고 일찍이 독학으로 글자를 읽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공부는 작년 TAFE에서 한국어 코스를 하면서부터입니다.
한국어에 대한 이해와 문법을 배워 한글을 읽고 쓴다고는 하지만 어휘력은 집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정도라 한국말로 수업을 들으면 아직 못 알아 듣는 게 많습니다. 사실 실력보다 눈치로 수업을 받고 있는 정도랍니다.
저희 아이들은 3개국어를 듣고 자라 그런지 말이 굉장히 느린 편이었습니다. 물론 엄마 말이 먼저라고 한국어를 제일 먼저 말하기 시작했고, 아빠와 영어를 쓰지만 차일드케어 가서도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우스꽝스런 영어를 쓰기도 했어요.
그래도 꾸준히 집에서 한국말을 써주고 한국동요를 불러주어 외할아버지 할머니랑 막힘 없이 대화하고 이젠 아빠랑 외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서 도와주는 통역관이기도 합니다. 또한 친할아버지 할머니와는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나 인도말을 쓰셔도 알아듣는 것이 신기하네요. 물론 인사말이나 숫자 세기 몇 가지 단어는 말할 줄 알지요.”
- 자녀들 이름을 짓게 된 각각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첫째 아니시(anish)는 인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순수 인도 이름으로 sky란 뜻이고, 한국 이름은 하늘이라고 부르지요. 둘째는 사랑이에요. 첫째를 신랑 이니셜 A로, 둘째는 제 이니셜 S로 시작하는 이름을 짓기로 하고는 동시에 떠오른 이름이랍니다. 인도의 아름다운 악기 이름이라고 하네요. 막내 헤나(Henna)는 염료(dye)로 인도 결혼식에서 손장식 할 때 쓰이는 거예요."
-남편이 한국어 배우는 데 가장 어려워 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같은 발음이 나는 한 단어가 다른 뜻으로 쓰이는 동음이의어(가령, 배-pear, ship, tummy 등)와 발음 구별이 잘 안되는 경우(의/에)가 어렵답니다.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도 많지요. 친정어머니께서 운전하느라 수고한 사위에게 '혼났다' 하시니까 듣고 있던 아이들조차 놀라며 '아빠 안 혼났어요~ ' 하더라고요. "
- 한국학교에서 느낀 점은?
“단순히 한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호주에서 한국 문화와 전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며칠 전 ‘Excuse me’를 가르쳐 주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왜? 왜?’ 하고 엉뚱한 말만 하더니 한국학교를 다녀온 어느 날 두 아이가 “미안합니다. 부딪히면 하는거야~” 하며 둘이 부딪히고 인사하길 되풀이하며 놀더라구요. 식사 후엔 “잘 먹었습니다”라며 인사도 하고요. 아이들이 한국학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다며 짹짹입니다. 참새반에 다니는 4살, 5살 되는 두 녀석은 연필 잡는 기초부터 차근히 배우며 기역 니은, 하나 둘을 배우고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큰아이들이 쓴 글짓기 작품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만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과 욕심으로 시작한 한국학교, 이젠 매주 토요일 도장을 찍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훌륭하신 교장선생님의 체계적인 교육방침과 실력있는 선생님들의 보살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 학교에서 반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새 학기를 시작하는 수업시간에 방학 동안 무얼 했는지 발표한 적이 있답니다. ‘어제 파티를 해서 나는 맥주랑 소주를 마셨어’라고 말을 해서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생들에게 이건 듣지 마라 하시고는 모두가 웃었다네요.
아버지날 편지쓰기를 하고 아내인 저에게 편지를 써 왔지요. ‘사랑해요. 나는 한국 음식하고 소주 아주 좋아해요.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카시’라고요.”
-토요일 가족의 하루를 소개해 주십시오.
“토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어떤 학교 가요?’ 하며 묻는 사랑이는 ‘한국학교 좋은데~오~예~’ 신바람이 납니다. 독수리 오형제(5개월 된 막내까지) 출동을 위한 준비로 부산합니다.
온 가족이 오전을 한국학교에서 보낸 후 아이들 하고 싶은 것에 따라 극장이나 아이스링크, 공원 등에서 여유를 부려보기도 하고 주중에 못한 쇼핑을 하기도 합니다.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한국학교숙제부터 챙긴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인도와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기도 하고, 저희에게나 아이들에게 또 다른 경험과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언젠가 인도와 한국에 나가 살아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