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지 꽃 / 채영우 (2024.07.)
달밤에 보면 더 아름다운 꽃이 있다. 벚꽃이 그렇고 박꽃이 그러하다. 달빛을 받은 벚꽃은 눈부셨고 아련한 그리움을 부르는 정취가 있다. 달밤에 핀 박꽃은 소박하면서도 고결하다. 나는 거기에 부추 꽃을 더하고 싶다
저녁 산책을 하고 오다가 길가 밭에 무리 지어 핀 하얀 꽃을 보았다. 밭 가득 핀 그것은 달빛을 받아 새하얬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부추 꽃이었다. 낮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부추를 우리 고향에선 정구지라 불렀다. 부부간의 정을 굳건하게 지켜 준다고 하여 정고지(情固芝), 정월에서 구월까지 먹을 수 있어서 정구지(正九芝)로 도 불렸다. 경상도 사투리이기도 하다.
나는 ‘긴 장화’ 부츠를 연상시키는 ‘부추’보다는 정구지가 더 정감이 간다.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고, 베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또 자라서 시골에서는 고마운 찬거리 중의 하나였다. 고향 집 밭에도 정구지 꽃이 피었다. 포도밭 일이 끝나 저녁밥 지을 때가 되면 언니와 함께 대바구니를 들고 반찬거리를 준비하러 갔다. 포도밭 탱자나무 울타리에 달린 호박도 따고, 파도 뽑고 부추를 베었다. 칼이나 낫으로 벤 다음 그 위를 흙으로 살살 덮어 둔다. 언니와 나는 흙을 털어내고 떡잎을 떼고 다듬었는데 더러는 꽃이 핀 것도 있었다. 손바닥에 놓고 자세히 보면 여섯 장의 흰 꽃잎이 손 안에 작은 별이 반짝이는 듯했다. 내 손 안의 별이라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엄마는 부추에 매운 고추를 넣어 전을 부치거나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여름에 국수 삶을 때 색깔과 맛을 내게 하는 재료로도 쓰였다. 때로는 씻어 물기가 있는 상태에서 밀가루를 묻혀 덩어리를 만들어 찐 후, 썰어서 간장에 찍어 먹기도 했는데, 이것을 장떡이라고 불렀다. 결혼하고 엄마가 만들어 주던 장떡 생각이 나서 만들어 보았지만 예전의 그 맛은 아니었다. 오래된 추억 속에서 캐낸 맛의 기억은 항상 현실에서 재생한 맛과는 괴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든 장떡엔 엄마의 손맛과 흔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부추를 제때 베지 않으면 꽃이 하늘을 향해 피는데 밤에 보면 마치 작은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며 까마득한 옛날이 생각나다니 기억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예전에는 꽃이라는 범주에 넣지도 않았다. 개나리나 살구꽃, 해당화 정도는 돼야 꽃이라 생각했다. 지금 마주하는 정구지 꽃은 옛 추억을 떠올려준다. 휘파람새 울던 고향 집과 부모님, 우리의 꿈이 영글어가던 포도밭과 언니 등 수십 년 전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정도로 눈앞에 펼쳐지는 고향 집에서 밭까지의 길, 고샅을 지나고 넓은 길이 끝나면 질경이가 돋아있고 콩이 심어진 좁은 논둑길이 있다. 논둑을 지나 도랑을 건너 우리 밭 탱자나무 울타리까지의 그 길을 어찌 잊을까.
일이 늦게 끝나 집으로 올 때면 풀벌레 소리가 가을이 온다고 노래하고 있었다. 들녘에 서리가 내리고 빈들에 스산한 바람이 불면 정구지를 베러 갈 일도 없어지고 들판은 겨울잠에 들었다.
지금 그 자리는 공장이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장 부지를 만들기 위해 육중한 근육질의 중장비가 밭을 밀어낼 때 아버지의 꿈도 불도저의 바퀴 아래 뭉개졌으리라. 공사를 할 때 나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 옆을 지날 때면 아릿한 슬픔이 내 의식의 밑바닥을 사정없이 훑고 지나간다. 돌을 골라내고 땅을 고르며 허리가 휘어져라 등짐으로 흙을 날랐을 아버지의 고단한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졌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어 자손 대대로 물려서 오래도록 농사를 지을 요량으로 산을 개간했을 것이다. 자식들이 먹을 간식거리를 위해 살구나무를 심었고, 여름에 낮잠도 자고 쉴 수 있는 원두막도 지었다. 마침내 그 밭에서 수확한 밀로 만든 국수에 정구지 고명을 얹어 가족들이 맛있게 먹던 모습을 당신은 흐뭇한 미소로 보셨으리라. 아버지는 거기에다 집도 지을 계획이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정구지 꽃은 아버지의 땀으로 일군 기억 속의 밭에 아직 피어있다. 가끔 무리지어 핀 정구지 꽃이 달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밭둑길을 걸으면 마치 지상에 별들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하얗게 빛나는 축제 속에서 나는, 젊었던 시절의 부모님과 풋풋했던 형제자매들의 추억을 건져 올린다. 함께 복숭아, 포도 농사일을 도우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힘들었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의 우리가 있다. 나는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것보다는 익숙하고 오래된 것에 정들이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 하여, 지금은 없어진 밭과 부모님, 형제자매들이 함께했던 오래전의 여름날 풍경을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정구지 꽃은 그래서 내게 정겹고 아름다운 꽃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첫댓글 채영우 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문운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카페에 소개되는 영광을 주심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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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축하의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텃밭 초록 정구지가 생각났습니다. 베란다 화분에 심어보기도 했답니다 마음이 가는글 잘 읽고 갑니다.~^^
우리 어린 시절 추억속의 꽃이지요.
저의 글을 읽어주시고 성의있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