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니우스와 이단 논박
최광희 목사
이레니우스(Irenaeus)는 2세기 말에 프랑스 남부 도시 리용(Lyon)에 살았던 주교이다. 당시는 전 유럽이 로마 제국에 속해 있었기에 프랑스는 ‘갈리아’로 불렸고 리용(Lyon)은 루브두눔(Lubdunum)이라고 불렸다. 이레니우스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εἰρήνη)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화평자’를 뜻한다. 그래서 최초의 기독교 역사가(歷史家) 유세비우스(Eusebius)는 이레니우스를 가리켜 ‘화평케 하는 자’라고 불렀다. 이레니우스는 서머나 감독 폴리캅(혹은 폴리카르포스 Πολύκαρπος)에게 배운 제자인데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이다. 그러니까 이레니우스는 사도 요한의 영적 손자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 살았던 인물로서 사도들과 직접 접촉했거나 영향을 받은 인물을 우리는 속사도(續使徒, Apostolic Fathers)라고 부르는데, 속사도란 '사도를 잇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런가 하면 2세기부터 8세기경의 인물로서 정통 교리를 수호하고 발전시킨 인물들은 흔히 교부(敎父, Church Fathers)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2세기 말에 살았고 요한의 영적 손자인 이레니우스는 어디에 해당하는가? 이레니우스는 속사도와 교부의 중간에 있는 인물로서 속사도 중 마지막 인물이며 초대 교부 중 첫 번째 인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레니우스는 교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며 그가 남긴 글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기준과 지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레니우스가 쓴 책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두 권밖에 없다. 그중에 하나는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이며 또 하나는 『사도적 설교에 관하여』(On the Apostolic Preaching)이다. 그 가운데 이레니우스의 신학 사상은 『이단 논박』에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책은 영지주의의 공격에 대항하여 교회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책이다. 이 책은 584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다 제31장(章)이나 되는 대작인데 그 책에서 이레니우스는 창조론과 인죄론, 성령론, 교회론, 성찬론 및 총괄갱신교리까지 그의 신학 사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이레니우스가 이단을 논박하고 교회를 보호하려고 힘쓴 결과 그는 교회의 최초의 조직신학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레니우스는 ‘화평케 하는 자’라는 그의 이름처럼 일평생 교회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화평을 위해 이단까지도 포용하고 관용을 베푼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레니우스는 영지주의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한 사도 요한(요일 4:3)의 영적 손자답게 교회가 이단을 대적하고 피흘리기까지 싸워(히 12:4) 이단을 반박하고 쫓아내야만 교회에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레니우스의 또 다른 책 『사도적 설교에 관하여』를 『이단 논박』을 비교해볼 때 그가 이단을 막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사도적 설교에 관하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그의 믿음,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 준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예언의 성취, 이방인의 구원과 교회, 올바른 믿음의 중요성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단 논박』에 비해 분량이 매우 적다. 『사도적 설교에 관하여』의 판형은 『이단 논박』의 절반 크기이며 두께도 120쪽밖에 되지 않는다. 이 두 책을 분량만으로 단순비교하면, 이레니우스는 사도적 설교에 관한 설명보다 이단을 논박하는데 10배가량 힘썼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속사도이면서 첫 번째 교부인 이레니우스가 사도적 설교보다 이단 논박에 열 배나 힘썼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바른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는 것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교인 하나를 얻어 천국 백성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탄에게 노략질당하지 않는 것이다.
어렵게 만든 교인을 이단에게 빼앗기게 될 때 그것은 설교자를 허탈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교인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어 온 교회가 무너질 수도 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이레니우스가 설교보다 이단을 막는 일에 힘쓴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21세기 교회의 상황은 어떠한가? 종교개혁 이후 서서히 교회 안으로 침투한 성경 비평학은 오늘날 전 세계 교회를 잠식했고 한국교회도 대부분의 신학대학원이 성경 비평학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성경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또한, 각종 신비주의 이단들은 그들의 개인적 체험을 성경적 권위에 끌어올리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한국교회는 초대 교부 이레니우스의 교훈을 따라 좋은 설교를 하는 것 못지않게 성경의 신적 권위를 수호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