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재생관 인간’ 부류의 맥락상에서 보면, 편인이 비겁을 생해야 상생의 논리에 따라 편재로부터 편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편인은 겁재를 생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편인은 다른 육신과는 다르게 같은 편인이라 하더라도 생지/왕지/고지에 따라 생하는 것이 각각 다르다. 생지 편인은 짝퉁 편인으로 일간을 생하고, 왕지 편인은 겁재를 생하며, 고지 편인은 산중 절간의 스님처럼 일간이나 비겁을 모두 생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는 선운의 강의 내용도 있다.
그래서 선운의 의견을 구하기 위해 [선운의 명리터] 게시판 중 [질문하세요]에서 ‘인비의 상생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내용을 질문으로 올려 보았다.
이에 대한 선운의 답변은 “편인도 비견을 생할 수 있고 정인도 겁재를 생할 수 있다. 생하면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생상극의 논리이다. 편인이 겁재를 생하고 정인이 비견을 생하는 것은 육신 고유의 특징이다”였다. 인비의 상생과 육신 고유의 특징은 같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한 가지 연결 관계로 확정해서 묶어 둘 수는 없다는 의미로 받아 들였다. 원래가 애매한 관계인데 굳이 이것을 갈라 보려했던 내가 무리수를 보인 것이다.
그리고 인성의 입장에서 식상생재는 자식의 경제 활동력을 의미한다. 자식의 사회진출을 위한 교육이나 환경조건 조성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비겁(일간)이 식상을 생한다는 것은 자식의 타고난 자질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인성과 비식을 부모와 자식관계로 연결시켜보면 부모라는 인성과 자식이라는 비겁(일간)은 같은 개체의 육신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간주된다. 부모와 자식은 딴 몸이다.
결국 인성과 비겁의 연결 관계는 다른 육신과는 다르게, 하나로 확정지어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어진 듯 끊어져 있고, 끊어진 듯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다양한 접근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인성과 비겁의 육신관계는 게시글 후반부에서 한 번 더 언급하고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 (15)에서 계속됩니다. ---
첫댓글 음...알 수 없으나 알고자 한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고 했는데... 언어의 한계를 느낍니다. 선운 동영상 열공이 도움 되실걸로 위안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유아 웰컴!!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다보면 깨달을 날이 있겠죠
감사합니다 ~
유아 웰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