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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山文集序
땅의 기운 돌아오는가. 사자산록 기슭에 오롯이횃불 치켜든사람 미럭딩이 넘어 오네.
조선 문물이 만개하던 15,6세기 호남정맥 줄기 기산언덕 오동나무에 봉황이 깃들어 우니 저 아침 해가 뜨는 동산에 팔문장이 탄생했습니다. 헌걸찬 팔준사의 덕은 장흥을 넘어 호남을 거쳐 조선 팔역에 백성의 교화가 뻗게 했습니다.
한 시대를 울렸던 기산촌의 기상을 이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이 창창하고 바다가 광활하듯이 기국이 상쾌하고 도량이 넓은 백광철 이장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궁벽한 시골에서 이장 일을 맡아 참신한 생각으로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에 나서 불도저 같은 우직한 뚝심으로 밀어 제칩니다. 그것도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기산마을에 태어나 기산에서 살다 가신 선현들의 정신 고갱이를 팔아서 승부하려 합니다.
기산은 산 좋고 물 좋아 아들딸 많이 낳아 자손도 번연했지만 탁절한 인물도 있습니다. 이런 재주와 행실이 올바른 선인들은 평생의 발자취를 남겼는데 세월이 흘러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여 풍요로운 인문 자원으로 부활합니다. 부활의 주인공은 밝은 눈을 가진 백 이장입니다. 가벼움이 흘러넘치는 황량한 세태에 조선 문명의 보고 우리 고적에 눈길을 돌려 문화 컨텐츠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산이 중심이던 시대는 가고 앞으로 우리 미래는 지식재산에 달려 있습니다. 생각하는 바나 취미가 서로 맞는 것을 氣味相合 이라 합니다. 기산 이장님과 저는 이 말이 적절합니다. 민주당이라는 정당에서 우연찮게 인연의 끈이 연결됐지만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일도 중요합니다.
이장님의 부탁으로 팔문장 가운데 글이 하나도 없이 사라진 광산 김씨 남계 김윤, 지천 김공희 두 부자 선생, 동계 백광성, 풍잠 백광안 두 수원 백씨 선생의 유문을 서울과 장흥을 다 뒤져 온전하게 아쉬움 없이 찾아 내 번역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산 마을에 터 잡고 살았던 여러 성바지 문집과 문헌을 전부 발굴했습니다.
일실됐던 수원 백씨 삼세 삼강록, 명강 백봉흠 선생의 문집도 완정한 형태의 서물로 자료를 보내드렸고 유집의 출처도 소개했습니다. 시대별로 켜켜이 온축된 기산문명 전체를 세상 밖으로 건져 올렸습니다.
여러 문적을 국역해 다음 인터넷 까페 기산마을에 올려 소통에 막힘이 없게 했습니다. 면면이 내려온 고가의 전통을 일별할 수 있습니다. 선인들의 삶의 궤적도 밤하늘의 별같이 맑은 영혼의 순수함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삶의 지향점이 우리시대와 다릅니다.
대부분 지금은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치지만 고인들은 자기 수양을 통한 내면의 완성입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과정은 아무런 물질적 대가 없는 순정한 마음의 발로였고 그간 지켜보면서 장흥이라는 고을을 이야기할 때 왜곡되고 표피적으로 흐르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마을 앞 팔문장 기념 표석을 세우면서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아우르는 모든 기산의 구적을 총괄해 수습하게 되었지만 감히 자부하건대 장흥이라는 지방을 이해하는 배경이 없이는 아무도 앞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꼭 책으로 발간할 것을 누차에 걸쳐 이장님께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후인들로 하여금 계속 이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기산문집이 발간됨으로써 올바른 장흥담론이 시작되는 단초가 되길 기원합니다. 유독 장흥은 예부터 사대부들이 모여 들어 살았던 사림의 부고요 바다였습니다. 충분하게 남아 있는 전적들을 열람하지 않고 장흥을 해석하는 일은 어불성설입니다. 장흥의 속살 읽기는 글의 말결을 느끼며 글자 냄새를 맡았을 때 가능합니다. 그것도 선조들이 남겨 놓은 풍성한 재적의 연원을 통해서입니다.
철학은 보편성이요, 문학은 구체성이고 향토학은 종합과학으로 학제간 연구가 필연적입니다. 아무쪼록 의미를 부여한다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한 없이 큰 실마리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진보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산마을 어른들을 한 분도 뵙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제게 보내주신 한없는 사랑과 관심에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원 백씨 외손이 할 노릇 했고 광산 노씨 증조할머니 친정 일문에도 조금 도움이 됐다고 자부하고 우리 영김 건산파 신헌 낙헌 선생에게도 면목이 있고 저의 작은 집 통덕랑공 종가 양대 효자 집안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산마을 영원하라.
감사합니다.
2009년 2월 19일
洗石軒 金圭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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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학코너에 오래전 출판기념회 때 올려진글을 복사해왔습니다.
기산문집을 당시 1,000권을 만들었지만 서울대와 전남대등 각 대학에
도서관등으로 보내고 행사 참여하신분들과 마을내 각 호당 1권씩을 배부해드리고
저에게도 현재 1권밖에 남아있지않습니다. 자꾸만 기산문집을 부탁하시는 분들이계셔서
여기에 개방해드리오니 복사하시거나 출력해가시면 바로 책이 될것입니다.백광철 올림
봉명제09.02.19 16:43
첫댓글 김선생님 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문집의 자료들이 거의 모아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마을이 이렇게나마 팔문장님들을 현창할수 있었던것은 우리 김규정선생님이 저를 도와 주셨기에 가능한 일 이었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렇게 서문까지 써 주시고 소인에게도 찬사를 겸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김선생님의 숭고한뜻 후세에까지 잊혀지지 않도록 반드시 문집에 서문으로 올려 드리도록하겠습니다, 거듭 말씀 드리지만 김선생님과 백수인 교수님이 도와주셨기에 이 모두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늘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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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와르작성자 09.02.19 16:52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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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키09.02.21 08:06
저도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덕분에 이런 좋은 결과를 가져 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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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ga09.03.15 18:35
그동안 지면을 통해 익히 뵙습니다만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김규정님. 멀리서나마 지면으로 인사드립니다(꾸~벅). 조상님의 얼을 찿아 한올 한올 찿아서 꿰매어 주셨으니, 출향인으로서, 그리운 고향을 그리며,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