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속의 성차별
일상생활에서 거슬리지만 무심히 넘어가버리는 것이 있다.
언어 속에도 여성의 차별적인 호칭에 무심히 지나친다. 언어란 같은 사회집단에서 문화를 공유하며 생존하는 기초적 조건이다. 성차별은 아주 오래전부터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는 문제이다. 현대는 많이 개선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지만 구석구석 남아 있는 잔재이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보다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들은 관직에는 나갈 수 없었으나 재혼을 할 수 있었고, 재혼한 자손들에게 사회적 차별이 없었고, 유산상속도 아들 딸 차별 없이 받을 수 있었고 한다. 또한 부모 제사도 차례대로 돌아가며 지냈다고 한다. 지금과 비교를 해봐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는 매우 높았다.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시대에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관습으로 바뀌었고, 이는 세종 때부터 여성차별이 심해졌다.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제약이 많았던 이유로 고려시대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품행이 원인이라는 야담이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칠거지악이란 가장 악의적 신분차별이다. 아들을 못나면 내 쫒지만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못했다. 재혼도 허락하지 않고, 정실의 자식이 아니면 벼슬길에 나설 수도 없는 적서의 차별은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의 입장에서도 비극이고 손실이었지만 이익집단들에 의하여 갖은 방법으로 통제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더하여 일제 강점기에 통치수단으로 호주제가 만들어지며 남성우위의 성 차별이 고착되어 지금까지도 그 잔재가 여성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수세기 동안 여성의 차별은 가혹하게 이어져 왔다. 어쩌면 요즘 시어머니들의 며느리 모시기는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으로 며느리 앞에 겸손해질 수 있다.
아내와 남편의 호칭을 살펴본다면 많은 성차별이 나타나 있다.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가족 간의 호칭에서 시가(媤家) 호칭은 높임 표현 이고, 처가(妻家)호칭은 낮춤 표현이다.
예를 들어 아내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로 호칭하는데 비하여 남편은 장인(丈人), 장모(丈母)로 호칭하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만 남편은 처의 부모를 어른으로만 대접하는 남성 중심의 호칭이다.
다른 호칭도 시가와 친정의 호칭은 모두 남편 중심의 호칭이다. 아내는 남편의 형에게는 ‘아주버님’, 누나에게는 ‘형님’이라는 존칭어를 쓰고 있다.
남편의 손아래 남동생, 여동생에게 ‘도련님’ ‘아가씨’로 존대어를 쓰고 있다.
아내는 시가에서 본인의 나이가 아닌 남편의 서열 중심이이다. 남편 형의 아내 나이가 본인보다 적어도 ‘형님’으로 호칭하지만, 처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편은 아내의 손위 오빠를 부를 때도 본인의 나이가 더 많을 때는 ‘형님’으로 호칭하지 않고 처남이라고 호칭하며, 언니에게도 ‘처형’, 동생에게는 ‘처제’로 호칭하는 높임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또 다른 호칭을 보자. 대부분의 단어들은 아들딸, 소년소녀, 신랑신부, 장인장모 등 남자를 앞에 두는 어순이다. 비교되는 단어 중에 “년 놈” 같이 부정적이거나 비속어는 여자를 앞에 쓰고 있다.
담화적 특징도 여성과 남성이 각각 다르다. 남성은 여성의 말을 가로채거나 화제를 주도하거나 경쟁적 대화를 추구하고 대화를 지배하며 비표준어를 사용한다. 억양 면에서도 남성은 짧고 급한 하강 조로 끝나는 경향이 많다. 이에 비하여 여성은 다소 길고 완만하고 부드러운 억양 곡선과 이것 그것을 요것조것으로 여기, 거기, 저기를 요기, 고기, 조기 등으로 다소 귀여운 어휘를 선택한다. 감탄사 감탄문을 자주 사용하며 남성은 평서문 또는 명령문을 사용하며, 여성은 미완의 문장이나 청유문이나 의문으로 표현하여 간접적으로 명령을 표현하고 여성 특유의 공손법을 사용한다.
평등하고 정당한 사회로 인식돼 있는 노르웨이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가 기자회견 중에 남자들은 “지시하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남성들이 주도적으로 살아온 오랜 역사는 동서고금 마찬가지인가 보다.
모든 역사가 금방 바뀌는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 시행착오, 오류를 거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하여 바뀌고 있다. 언어도 역사의 한 흐름이다.
우리나라의 경어법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사회구조가 급속히 변하고 있어 호칭도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는 사회를 밝고 긍정적이며 배려하는 바람직한 사회로 가는 가장 첫째 조건으로 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