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이자 음력으로 9월 9일인 오늘은 실로아의 생일입니다.
이벤트에 약한 저로서는 결혼기념일과 함께 가장 긴장하는 날이기도 하죠 ㅎㅎㅎ
미리 아무리 긴장한들 매번 실로아의 입맛을 맞추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ㅠㅠ
저야 태생이 그런지라 생일 이벤트를 포기한 지가 이미 오래이건만
그렇더라도 마음까지 태평할리는 만무하고 내 인생이 그러려니 합니다.
이런 저와 살고있는 실로아가 가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남편 잘못 만나서 기념일을 만끽하지 못하는 아내가 측은하기도 합니다 ㅡ.ㅡ;;;
이번에도 실로아의 생일이 다가오면서 아예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그렇게 또 넘어가자니 그것도 못할 짓이고 제 마음가는대로 결행을 하였답니다.
상대인 실로아가 원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저의 방식에 훨씬 더 가까운 방식이죠.
지난 주말에 고향엘 내려갔다가
산야에 한껏 피어있는 가을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양동이를 들고서 이리 저리 다닌 끝에 제법 많은 야생화들을 모았답니다.
포도원 식구들도 모르고 계시겠지만 <실로아의 꽃>이 있답니다.
다름아닌 <구절초>입니다.
실로아의 생일이 음력 9월 9일인데 구절초에 얽힌 사연 역시
음력 9월 9일에 구절초를 채취해야 약효가 가장 좋다고 전해내려 온답니다.
구절초는 희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흔한 야생화는 절대 아니랍니다.
이 날 구절초를 찾아서 장소를 세 번이나 옮겨서 채취를 해야했는데
웬일인지 다른 야생화들에 비하여 이미 많이 피어 버렸거나
따 놓은 상태에서 금방 시들 시들해졌기 때문이죠.
어쨌든 구절초만큼은 절대 빼 놓을 수가 없어서 기어코 꺾어 왔답니다.
처음엔 양동이에 담긴 상태로 선물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폼이 안나서 여동생의 코치를 받아 꽃집에 가지고 갔답니다.
꽃집 여주인에게 내밀면서 꽃바구니에 장식을 부탁하였더니
여주인이 한동안 황당한 표정을 계속 지으면서
퇴근 시간이 임박했다는 이유로 거절을 해서 대략 난감했죠 ^^;;;
그때 문득 정초딩님 개업 선물이 생각나서 화분을 하나 구매하였더니
그제서야 밝은 표정으로 저렇게 작업을 해 주셨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소요하고 화원을 나오니 아뿔사!
자동차에 헤드라이트를 켜 놓은걸 깜박해서 그만 방전이 되고 말았더군요 ㅜㅜ
그렇게 저렇게 우여곡절 끝에 선물이랍시고 실로아에게 내미는데
아내의 반응에 무척 긴장했건만 다행히 오케이 하고 받아 주더군요 휴~~~
기념으로 인증샷 하나 찍었습니다 ^^
실로아가 일반 케잌을 싫어하는데
떡케잌을 미처 주문하지 못해서 패쓰하고
막내인 동희의 조언을 받아 인절미, 절편, 반달떡을 사서
이른 아침에 동희가 직접 꾸며 주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몰래 일어나 생일 미역국을 끓였답니다.
실로아가 잠에서 깨면 이벤트가 안되기에
5시에 알람을 해 놓은 실로아의 핸펀을 몰래 꺼 버렸더니
6시 30분이 되도록 실로아는 세상 모르고 쿨쿨 자더군요 ㅎㅎㅎ
어제 퇴근길에 떡가게에 들러 떡을 사고
마트에 가서 미역국과 바지락을 사서는 실로아 몰래 숨겨 놓았었죠.
미역은 전날 불려야 하기에 물에 담군 채 애들 피아노방에 두었답니다.
어제 인터넷도 뒤지고 직원들의 도움도 받아가면서
미역국 끓이는 법을 궁리한 끝에 마침내 미역국을 완성했습니다.
미역국과 함께 아침 식사 준비를 거의 끝낼 무렵에서야
실로아가 일어나서는 사태 파악을 하더군요 ^^
미역국의 맛이 궁금하신가요?
나중에 동희한테 물어 보시면 됩니다 ㅋㅋㅋ
아따, 생일 이벤트하기 참 어렵습네다.
그래도 하고보니 약간의 노동에 비하여 얻는 유익이 더 많군요.
마지막으로,
실로아의 생일을 맞이하여 간만에 시덥잖은 시 하나 바칩니다.
당신 나이, 마흔하고도 일곱
함께 이부자리한 햇수로는 열일곱해
그대의 생일날 이른 새벽
몰래 사다 둔 미역과 바지락을 꺼내들고
난생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 보았지.
쌩초보의 간이 맞을리 있을까마는
바지락 국물에 여태 쌓아둔 미안함을 보태고
미역 줄기를 자르고 또 저으면서는
모난 남정네의 품이 이제라도 따습게 여겨지길 바라며
참기름에,
국간장에,
소금에,
다진 마늘에 한껏
사랑의 묘약이랍시고 뿌려 보건만...
그저
이 한 그릇에 더 보태어 생색을 내기로는
철부지 인생,
함께 걸어갈 시간이라도 넉넉했으면 좋겠구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1.10.06 09:13
첫댓글 부럽네요. 진짜. 실로아님 만족하시죠 저도 실로아님의 을 진심으로 드려요.
에고~. 내년 음력 2월 8일. 대충 넘어가기 힘들게 생겼네. 애 많이 쓰셨어요!!!
하하!
잘 하셨습니다.
그리고 꽃이 진짜 예쁘네요. 시은맘의 생일이 17일인데 저는 꽃 뽑을 시간이 없어서 바로 꽃집에서 꽃을,,,,인증샷을 안했네,,,ㅜㅜ
하여튼 고생하셨고 뒤늦게라도 생신 축하드립니다.!
10월 생일이 많군요, 저는 18일이랍니다.(주민증은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