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고급스럽고 멋진 초능력을 저렇게나 임팩트떨어지고 평이한 것들을 처리하는 별볼일없는 능력으로 만들어 버린 거지? 영화를 보는 내내 불명확하고 불편한, 묘한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렇다치자. 그렇지만 중반 어딘가에서 부터는 반전이 있어줘야 하는거 아닌가?
말하자면 그 능력을 인정받아 유리겔라정도의 명성과 부를 얻는 것은 물론, 우울하고 의미없는 인생에 아주 근사하고 멋지게 종지부를 콱! 박아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그런데 젠장할 이 영화는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주인공을 섭외하겠다고 난리법썩 떨어대는 제대로 된 후견인하나 안 내보낸다. 끽해봐야 별 능력없고 약자이기만 한 철거주민들의 호들갑이 다다. 도대체 저들이 뭘 해 줄수 있는데? 응? 그 윰과장 정도 되는 빽은 되야 뭘 좀 터트려 줄거 아니냐고?
정말 기가 막힌건 주인공이 염력으로 그녀의 차를 무지하게 찌그렸는데도 그녀가 보인 행동이라곤 "와우~"한마디 하고는 어깨를 으쓱 한번 올렸을 뿐이었다.(박수도 쳤던가?) 별난 것을 할줄 아시는군. 하는, 그렇지만 가치있어뵈진 않아. 라는 듯한.
그래도 나는 좀 지나서 그녀가 주인공의 능력을 사겠다고 바리바리 어마어마한 조건을 내걸고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러면 당신따위하곤 같이 할일 없어!라며..속시원하게 거절하고..그리고 뭐 성공하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진부한 시나리오를 기대했던 거지.
근데 왠걸! 그녀는 그 이후 아예 등장조차 안터라. "아..그거? 대단하더군 그래서 뭐. 어쩌라구!" 그냥 그 정도로 취급되고 만거다. 생각만으로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그 "초능력"이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허무하게 스크린에서 아주 사라지게 한 것이나, 그의 능력을 인정받고 보상해줄수 있게 도와 줄 인물하나 허용하지 않은 이 영화는, 마지막임이 분명한 부분에서 생맥주를 테이블로 배달하는 것으로 "염력"의 쓰임을 단호히 규정함으로써, 설마설마하며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쓰레기같은 내 반전욕망을 가차없이 한순간에 처단해 버렸다. 맥주가 허공을 떠 올라 손님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칠 때 나의 마지막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온 몸에 힘이 탁 풀려버렸다. 이게 다야? 정말 끝인거야? 그냥 저..저..저런 결말로?!
. . . . .
사람들이 일어나서 나가는 데도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니야..아직 끝난거 아니야..하다못해 에필로그라도 있지 않을까? 그 희망을 털어 버리는데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 영화는 여기가 끝이다..라고 어느 순간 느낌이 왔던 거다.
와..정말 뭐라고 그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도데체 감독이 누구야? 당최 궁금해서 포스터를 다시 보며 일부러 찾아봤다는..근데 기억안남.
이 영화는 제목은 염력인데 주인공은 염력이라는 능력이 아니다. 주인공은 그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능력 때문에 성공하거나 출세하지 않는다. 단, 그 능력으로 고난에 맞선 딸을 도우면서 오래 묶었던 딸과의 갈등을 녹여간다.
딸이 추락하는 순간 아슬하게 딸을 구해 두팔로 안은채 공중을 나는 부분이 있다. 구했다는 안도감과 기쁨으로 횔짝 웃던 주인공이 딸과 두 눈을 마주쳤을때, 웃던 표정이 순간적으로 표현하기 복잡한 미묘한 감정선을 그리며 무표정하게 돌아가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에 여운이 인다. 그장면을 느린화면으로 처리한 건 신의 한수였다. 부녀의 복잡미묘한 애증의 감정이 순간순간 변화하는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 낼 수 있었던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우리시대 모든 혈육관계들이 처해있는 미묘한 갈등현장을 이 짧은 표정연기에 모두 함축했다고 본다. 그러하기에 아마도 관객들은 여기에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나도 그 장면에서 아버지가 떠올라 소리없이 오열했다.
이 영화는 나의 성공에 대한 욕구와 강자의 도움을 바라는 거지같은 갈증, 그리고 같은 약자이면서도 힘없고 능력없는 것에 분개하고, 그러기에 무시하는 내 모습을 극명하게 조우하게 해 준다.
여전히 내게는 아깝기 그지없는 염력이라는 초능력을, 이렇게나 형편없이 그저 숫가락으로 밥 먹는 정도의 수준으로 하찮게 취급해 준것에 감사한다. 그로 인해 이 영화는 더욱 빛났다. 만약 내가 기대했던 대로 스토리가 전개되었다면, 내가 지금 느끼는 내 일면의 진실에 대한 조우나, 부녀간의 사랑에 대한 이 깊은 울림이 이토록 오랜 충격과 감동으로 남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랜동안 지금도 가끔 이 영화를 생각하며 고요한 숙고에 잠기곤 한다. 힐링무비이면서도 강한 현실자각력까지 깨워주는...그러고 보니 유승룡이란 배우는 참..이런 시나리오를 좋아하는것 같다.
아름다운 성과 사랑의 명상 - 샥띠의 러브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