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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5일(화) 15시, 중딩친구와 구리역(九里驛)에서 만나 '동구릉(東九陵)'을 다녀왔다. '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王陵群이다. '동구릉'(東九陵)이란 도성(都城)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왕릉(王陵)이란 뜻이다.
조선 초기 태조(太祖)의 '건원릉'(健元陵)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래,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총 아홉 개의 왕릉이 조성되었다. 왕릉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東五陵) 또는 동칠릉(東七陵) 등으로 명칭이 바뀌다가 1855년(철종 6)에 익종(翼宗)의 '수릉'(綏陵)이 조성된 것을 마지막으로 동구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 고양 서오릉(西五陵)이나 고양 서삼릉(西三陵)과 같이 조선의 왕릉이 모여 있는 왕릉군들이 있으나, 구리 동구릉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에 태조 건원릉이 조성된 이래 1904년 효정왕후(孝定王后)가 '경릉'(景陵)에 안장되기까지 약 500여 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총 9개의 왕릉에 17명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다.
태조 건원릉 다음으로는 1452년에 제5대 국왕 문종(文宗)의 '현릉'(顯陵)이 조성되었다. 1513년(중종 8)에 문종의 비(妃)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능이 옮겨와 현재 현릉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1600년(선조 33)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宣祖)의 비 의인왕후(懿仁王后)의 능이 이곳에 조성되었고, 당시 능의 명칭은 '유릉'(裕陵)이라 했다.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한 후 '목릉'(穆陵)이 '건원릉' 서편에 조성되었다가, 1630년(인조 8)에 의인 왕후의 '유릉' 옆으로 옮겨오면서 '유릉'이라는 이름은 버리고 함께 '목릉'이라 하였다.
1632년 선조의 계비(繼妃) 인목왕후(仁穆王后)의 능이 또한 이곳에 조성되면서 현재 '목릉'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1674년에 조선의 제18대 왕 현종(顯宗)이 사망하고 '숭릉'(崇陵)이 만들어졌다. 1684년(숙종 10)에는 1683년 세상을 떠난 현종의 비 명성왕후(明聖王后)의 능이 조성되어 쌍릉 형태의 '숭릉'을 이루었다. 제16대 왕 인조(仁祖)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가 1688년에 승하하여 '휘릉'(徽陵)이 만들어졌으며, 1718년(숙종 44)에는 당시 세자빈이던 경종(景宗)의 비 단의왕후(端懿王后)가 세상을 떠나 '혜릉'(惠陵)이 만들어졌다.
1776년에 제21대 왕 영조(英祖)의 '원릉'(元陵)이 '건원릉' 서쪽에 조성되었는데, 이곳은 효종(孝宗)의 '영릉'(寧陵)이 만들어졌던 곳이다.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1673년(현종 14) 효종의 '영릉'은 여주 세종(世宗)의 '영릉'(英陵) 옆으로 천릉하였으나, 천릉 작업을 위해 땅을 파니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아, 영조의 '원릉'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1805년(순조 5)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사망하여 이곳에 묻혀, 현재 '원릉'의 모습을 이루었다.
1855년(철종 6)에는 순조(純祖)의 아들 추존왕 익종(翼宗)의 '수릉'(綏陵)이 문종의 '현릉' 옆에 자리잡게 되었다. 본래 익종(효명세자)은 세자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 서울특별시 성북구 '의릉'(懿陵) 옆에 연경묘(延慶墓)가 조성되었다. 이후에 익종의 아들 헌종(憲宗)이 왕위에 오르면서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연경묘 또한 '수릉'으로 승격되었다. '수릉'은 1846년(헌종 13)에 풍수지리 문제가 제기되어 양주 용마산 아래로 옮겨졌다가, 1855년 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게 되었다. 1890년(고종 27)에 익종의 비 신정왕후(神貞王后)를 합장하였다. 익종은 이후 문조(文祖)로 다시 추존되었다.
구리 '동구릉' 중 가장 후대에 조성된 것이 1843년(헌종 9)에 만들어진 '경릉'이다. '경릉'은 본래 선조의 '목릉'이 있던 곳으로, 물기가 찬다고 하여 '목릉'을 현재 위치로 옮겼으나 천릉 작업 중 물기가 발견되지 않아 '경릉'이 조성될 수 있었다. 1843년 헌종의 비 효현왕후(孝顯王后)가 사망하자 '경릉'이 만들어졌으며, 1849년 헌종이 승하한 후 효현왕후의 옆에 능을 만들었다. 1904년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가 승하하여 또한 이곳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 '경릉'의 '삼연릉'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명종은 형 인종의 유언에 따라 12세의 나이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 하였으며(1545년), 그의 모후인 문정왕후는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최근 TV 드라마에서 유명해진 왕후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태릉' 푸른동산, 육군사관학교 등 둘러볼 만한 곳이 많이 있기도 하였다. 1910년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을 때 왕릉의 제례 역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여건에 처했다. 그러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어려운 소임을 맡아서 제례를 계속해 나갔으며 그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왕릉 제례 외에도 '종묘제례'도 주관하면서 조선왕조의 무형적인 문화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현황
구리 동구릉은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2009년 6월에는 조선왕릉 전체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구리 동구릉은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 형태
구리 동구릉은 전체적으로 북쪽의 '건원릉'을 기준으로 동쪽에 목릉·현릉·수릉이 있고, 서쪽에 휘릉·원릉·경릉·숭릉·혜릉이 배치되어 있다. 각 릉은 단릉·쌍릉·삼연릉·동원 이강릉·동원 삼강릉·합장릉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 의의와 평가
동구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으로서 조선의 왕릉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조선 왕실에 있어 신령스럽고, 중요한 곳 중 하나였으며, 현재에도 조선 역사 연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 탐방일시/집결 : 2024년 6월 25일(화) / 구리역 3번출구(15시) 및 2번 시내버스 <15시 10분>
◈ 참석자 : 2명
◈ 대중교통 : 구리역에서 1, 88번 마을버스 및 2번 일반버스 <약 10분 소요>
※ 강변역(4번출구) / 구리방향 1, 1-1 및 92번 버스, 중랑역, 상봉역 / 구리방향 88번, 202번 버스
◈ 탐방장소/주소 : 구리 동구릉 / 구리시 동구릉로 197 <전화: (031) 563-2909, (031) 569-3346>
◈ 뒤풀이 : 넙치, 연어초밥에 막걸리 / '삥구초밥&사시미' <구리시 인창동 289-4, 구리역 근처 (031) 594-7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