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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휴가(220715)
둘째 딸아이 한테서 “ 아빠! 저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데, 사만원 밖에 가진게 없어요, 신용카드를 현지에서 잃어버렸거든요.”라는 카독문자가 들어왔다, 중동지방 현지에서 여행 중 지갑을 잃어버리고 오가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사이트로 돌아온 옛 경험을 돌이켜보니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얼마나 당황해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불안하고 초초하다. 내일 아침 거래은행에 가서 현지에 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아보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대사관에 전화해 물어보니 웨스트유니온 제휴은행(국민,농협,하나 은행 등)의 국내 거래처은행에 가면 현지로 송금할 수 있다네요. 송금번호와 인도네시아, 수취인명을 꼭 쓰셔야 해요”라는 카톡문자가 들어왔다.
그 이튿날 암사동 사거리 국민은행에 도착해보니 영업시간 30분전이다, 내가 제일 먼저와 문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삼삼오오로 들어오는 할머니부대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듯 문옆에 스스로 진을 치고 줄을 만든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나는 그들 뒤를 이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고 내 차례를 기다린다. 송금하고 은행에서 건네준 확인전표를 사진찍어 카톡으로 보냈더니 삼십분 정도 지나 묵는 호텔에서 오리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웨스트유니온 은행으로 택시 타고가 송금한 돈을 찾았다고 연락이 와 안심하고 은행을 나섰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귀국한 딸 아이가 강릉에 있는 세인트존스호텔에 2박3일 여름휴가를 다녀오라고 예약할 예정이라고 전화왔다고 아내한테 연락이 왔다, 요즘은 장마철이고 지역구분없이 국지성 폭우가 오다가 멈추는 등 계속 간헐적으로 반복되어 어디를 가도 편한 마음으로 여유있고 편하게 휴가를 즐기기 쉽지 않다, 이래저래 내심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는 남편을 잃고 혼자 생활하는 용인 수지에 사는 큰 자매와 함께 가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본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일전 어느 날인가 우리 자매끼리 한적한 곳으로 놀러가고 싶다고 언니가 제안했다고 하면서, 남편을 여의고 큰 집에서 혼자 살다보니 외롭고 슬픈 생각 속에서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우울중이 와서 요즘 병원에 드나들며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우울증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대화로 소통하고 풀어야 힐링의 길이 열린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 같아보였다. 일단 여행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대화하면서 소통하면 치료의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되어 일단 함께 가는 방향으로 예약을 확정하라고 딸에게 전화를 넣었다. 딸은 푸른 동해바다와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방을 배정하고 아침식사는 포함되었으며 중식과 석식은 호텔식당에서 또는 별도로 외부에서도 시켜서 먹을 수 있다고 전해왔다, 그리고 호텔 맞은 편에 있는 휴양시설 4층에는 사우나와 목욕탕, 6층에는 해변이 보이는 노천수영장이 있어서 해수옥장에 온 기분으로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으니 수영복과 모자를 준비해 갈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억수로 퍼붓는 장대비를 마주하고 차창 와이퍼에 의지해 차를 모는 나는 자못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오히려 폭염속에 에어컨을 켜고 과속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맑은 날 보다도, 세찬 장대비속 가시거리가 짧은 운전이긴 해도 대부분 운전자들이 규정속도로 달리는 경향이 많아 안전면에서 다른 차들과 호흡이 잘 맞아서인지 계속 안전한 일차선과 이차선을 오가며 정속운전을 즐겼다, 특히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자매의 도란도란 끊이지 않는 일상의 얘기에 운전 틈틈이 내 의견을 조화시켜 상호 소통하니 나 자신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 단단하게 엉키고 설킨 실타레 같은 갈등뭉치가 한가닥 한가닥 씩 풀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마비와 차창 와이퍼의 끊임없는 흔적지우기 시도속에서 냅은 우리일행을 강릉 세인트존스 호텔로 안내했는데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좀 넘은 뒤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프론트에 체크인(입실)하려고 하니 오후 4시부터 시작한다고 번호표를 뽑으라고 한다. 그 넓은 홀을 삼삼오오로 줄을 서서 서성대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30대 남녀가 주종을 이루고 우리같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5명 이내로 눈에 띄였는데 대기하며 말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딸 사위와 장모처럼 보였다. 삽십여분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되어 1061호를 배정받았는데 입실한 순간 창밖을 보니 벽에 걸어놓은 한 폭의 총천연색 수체화가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백사장을 넘실댄다,
짐정리를 마치고 간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객실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베렌다에 나와 보니 장마비는 해풍과 더불어 여전히 세차게 동해바다에 높은 파고를 일으키고 밀려와 모래사장과 부딪히면서 힌 포말을 일으켰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호텔주변을 내려다보니, 해풍을 막기 위해 20여년 전 부터 해변주위에 조림한 소나무 푸른 숲이 모두 20여 메터 이상의 높이로 올곧게 자라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가만히 응시해 보니 뭔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세차게 쏟아지는 장대비속에서도 그 숲 사이로 우산을 쓰고 오솔길을 따리 걷고 있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집에서 준비해온 간편한 음식으로 때우는 것도 그렇기도 해서 외출복차림으로 차를 몰고 호텔을 나와 세찬 빗줄기를 와이퍼로 밀어내며 주위를 돌며 두리번 거려도 온통 횟집투성이고 최근 개발된 곳이라 그런지 반듯한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해안선을 따리 펼쳐진 모텔, 숙박시설, 그리고 어선 정박시설과 음식점을 여기저기 둘러보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음식점은 모두 순두부집으로 도배되었을 뿐, 우리가 찾고 있는 따뜻하고 쾌적하고 근사한 전통 설렁탕이나 갈비탕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길에 느슨해진 빗발사이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넓은 주차장과 세찬 비에 흔들리는 갈비탕 간판이 드디어 한눈에 들어왔다.
호텔에 들어와 창밖을 보니 어둠이 내린 동해바닷가는 철석철석하는 파도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가끔씩 들려오는 폭죽소리만이 폭우와 파도를 제치고 푹! 쓩! 을 반복하며 검은 하늘에 별천지 모양의 수를 놓는다. 자매를 방안에 남겨두고 주변을 익히려 방을 나섰다. 내일 들릴 부속 휴양시설(수영장, 사우나, 노래방, 펴의점 등)과 호텔과의 동선을 알아 놓아야 나이 든 우리일행이 움직이는데 효과적이고 내일 아침밥을 먹으면 바로 강릉일대를 여행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주차도 어느 층 어느 위치가 나가고 들어오기에 편리한가 알아보기 위함이다.
호텔방에서 휴양시설로 나갈 때는 동쪽승강기를 타고 1층현관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움직이고 들어 올 때는 역순으로 움직이면 최상의 가까운 거리가 되고 외출할 때는 동쪽승강기를 타고 3층에서 내리면 바로 탈 수 있는 주차장에 주차해 놓으면 편리하다는 걸 알고 돌아왔다.
때마침 비도 멈추고 사람들이 나와 놀기 시작해서인지 밖이 시글버글 시끄러운 소리와 타!타!타!타! 하는 폭죽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리는가 하면 어디선지 베토벤의 교향곡 19번 운명이 들려오기도 한다, 두 자매를 모시고 근근히 귀동냥해 클라식 음악원천지인 휴양시설 1층 생맥주집을 들어왔는데 갑자기 크라식 음악이 멈추고 락큰롤 비트음이 귀를 자극한다,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맥주 오백시시 3잔을 주문하고 종업원에게 좀 전까지도 들리던 음악이 이제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피식 웃으면서 저녁시간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야 젊은 손님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면서 나이 지긋한 우리일행이 호텔손님으로 그리 많지 않다는 제스춰를 써 보인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주문을 취소하고 맥주집에서 나와 휴양시설 부근 빽빽한 소나무숲 사이 오솔길로 들어와 산책하며 파도가 넘실대는 모래사장을 한참 거닐었다, 운동화가 걸을 때마다 해변모래를 밀어버려 보폭이 반으로 줄어, 운동량이 제법되는 까닭에 피로도가 다리를 통해 전해온다, 두 자매도 힘이 들었던지 호텔로 들어가자고 성화가 대단하다. 이쯤되면 충분한 예행연습이 된 셈이다. 큰 자매는 목말라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휴양시설 편의점에 들려 맥주 네 캔을 사갖고 돌아와 내게 내민다, 호텔방으로 들어와 몇 모금을 마시자 마자 오솔길 산책과 해변 도보 그리고 소나기 장대비속 운전이 힘들었던 탓인지 두 자매의 대화를 뒤로하고 잠에 떨어졌다.
이튼 날이 밝아왔다. 창밖을 보니 비는 잠시 그친 모양이다, 동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 베란다에서 해변 소나무 숲을 내다보니, 하얀색갈의 소로가 어제저녁보다 뚜렷하게 보이는데 그 위를 한사람, 두사람 가족단위의 보행자도 눈에 띈다., 옆 침대를 보니 아침 5시인데 어제 늦게까지 애기한 탓인지 두 자매는 곤히 잠들어있다, 잠이 깨지 않도록 뒷금치를 들고 도어락을 소리나지 않도록 힘주어 살포시 열고 어제 예행연습한대로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휴양시설을 가로질러 소나무 숲 오솔길 인파에 합류했다, 소나무가 빽빽이 조림되고 호텔3층 정도로 성장한 나무 아래땅은 햇빛이 들어올 수 없어서 소나무 사이사이가 풀 한포기 없이 굳어진 모래사장 맨땅이다. 오솔길을 따라 오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보니 곳곳에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서있다. 산책하는 고객들을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호텔을 지을 때부터 고객의 휴식공간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두 자매를 이곳으로 안내하여 사진을 찍으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식은 아침 7시에 시작되고, 호텔 기본료에 호텔 아침밥이 들어있다는 둘째 딸아이 말이 생각나 나는 편안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두 자매는 밝은 원색 원피스 차림으로 2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함께 내려갔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는 아가씨가 호텔 방호수를 묻는다, 호텔 방호수를 대자 자리를 안내하며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뷔페음식은 서양식,동양식 마음껏 골라 먹을 수 있도록 또 육류,야채,빵,커피,우유,과일 등도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다, 별로 얼마 먹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배가 불러온다, 순간 생각해보니 허겁지겁 많이 이것 저것 두세번 날라다가 먹기도 했지만 맛 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이 보이면 내가 먹을 것에 둘을 더해 서로 배달해 주었기 때문이리라.
여행 둘째 날은 쾌청하지는 않았지만 시야는 뚜렷하다. 해풍이 불어오는 탓으로 무더운 날이지만 여행하기 좋은 날인 것은 틀림없다, 오늘은 강릉 동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통일의 동산까지 올라가 구경하고 역으로 내려오면서 모든 해수욕장의 풍물을 감상하고 음미하리라 다짐한다, 아침밥을 먹고 호텔방에 들어가 맛있게 커피를 끓여먹고 길을 나섰다. 운전대를 잡으니 계획대로 보다는 지나가는 풍광과 이정표에 홀릭하여 나도 모르게 핸들을 주문진어시장 방향으로 바꾸었다. 냅은 계속 앙탈을 부리니 위험하기도 해서 졸음구역에 차를 주차해 행선지를 주문진어시장으로 바꾸었다. 어시장은 잘 정돈되고 깔끔하고 정갈한 상태로 우리를 맞이했다, 호객행위를 하는 점포들이 많아 그 앞에 차세우기가 민망한 상태였는데 ‘경기이천광주여주어시장’이라 점포가 우리일행의 눈을 끌어당겼다. 타지라 우리고향의 이름만 봐도 기분이 좋고 팔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천여주 어쩌고 저쩌고 말하며 점포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은 자기도 이천사람이라고 하면서 들어오라고 하며 사지 않아도 좋으니까 고향사람들 이니 커피나 한잔씩 들고 가라고 권한다. 커피 한잔하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쓸만한 건어물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른 오징어와 서너가지 건어물을 사고 다음 여행지(?)로 출발했다,
여전히 내비는 통일전망대를 향해 안내한다, 주문진 아이시를 진입하기 전에 생각이 바뀌어 속초어시장을 다음여행지로 정했다, 속초는 생각보다 멀다, 거의 200키로 거리가 되는 걸 보면 서울서 천안 정도 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한참 달리다 보니 슬그머니 졸음신호가 느껴진다, 앞 서랍을 열고 향이 강해 눈물이 핑도는 졸음방지 사탕을 한 개 털어 넣는다. 백 미러를 보니 두 자매는 차안이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쾌적한 상태이고 창밖은 세찬 소나기가 들리지 않는 차속이어서 그런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평안하게 잠들어있다. 잠자는 모습을 보니 ‘이 보다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피곤도 했을 것이, 호텔해변 모래밭과 소나무숲 오솔길을 힘부치는 줄 모르고 오솔길에 설치된 요사스런(?) 조형물를 배경으로 온갖 포즈를 잡으며 사진찍으며 거닐었으니 말이다, 시간 반이 지나니 속초 아이시가 눈에 들어오고 그제서야 두 자매는 잠이 깨어 소나기 밖 풍경과 오밀조밀한 어시장 풍물에 어리둥절하며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온다, 내비는 이리 꼬불 저리 꼬불 골목길을 잘도지나 안내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어시장 공용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내비에 의지하여 생면부지의 장소를 찾아가는 문화의 혜택을 단단히 누리고 있는 중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공용주차장과 어시장은 제법 떨어져 있다, 야산 언덕빼기에서 조금 내려가다가 사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비로서 어시장이 얼굴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주문진어시장의 경험을 십분활용한다, 여기에 온 목적은 신선한 회를 푸짐하게 경제적으로 먹기 위해서다, 어시장 골목길을 접어드니 회집이 눈에 들어온다, 구경하면서 서너 군데를 지나다 보면 음식의 신선미와 가격 선이 정리되고 그 때 먹을 바다회, 대게 등 음식물이 조율되면 들어가면 되는 거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건너편에 있는 시장거리를 돌다보니 먹음직스런 복숭아 무더기가 프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보암직하니 갑자기 침이 고이고 저걸 사가지고 호텔에 가서 저녁식사 후 간식으로 먹으면 좋을 것 같아 우리일행의 발길은 그리로 움직인다, 파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여보세요! 라며 주위를 둘러보니 미장원에서 미용사복을 걸친 채 가위를 들고 튀어나와 흥정하는 여성이 바로 미용사로 투잡을 하는 모양이다, 하나 더 달라고 주문하니 웃으며 한 개 더 얹어준다,
시장 코너를 돌아가니, 드디어 대게어시장 골목에 접어들었다, 대게를 보니 창원에 사는 친구가 영덕대게 먹으러 가자고 졸라대는 아내 말 듣지 않았다가 두고두고 지금까지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가 생각나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되었나 라는 생각에 미치니 픽식 웃음이 난다, 이왕 왔으니 비싼 대게 푸짐하게 먹고 가자고 큰 자매가 제안한다, 몇 군데 들러보다가 식당이 넓고 깔끔하고 현대식 음악이 은은하게 들려오는 음식점을 지나는데 젊은 아가씨가 들어오라고 한다,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이집 저집 다녀보았으나 그만한 집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다시 그 집으로 들어와 대게 두 마리를 요리해 달라고 했다, 수조에서 움직이는 대게를 꺼내어 어망에 넣어 게를 삶아 조리하는 조리기구로 옮긴다, 옛날 북인천항에 교회식구들과 외식하러 간적이 있었는데 어시장에서 살 때 붙어있는 다리가 한 두개 떨어진 채로 요리되어 나온 음식을 본적이 있어 의심기(?)가 발동된 나는 확인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뿔사 한발 늦었다, 눈치가 빠른 큰 자매가 이미 확인하고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큰 자매는 조리기기에 넣는 것까지 보고 왔으니 안심하라고 고개를 끄떡이는 제스처를 해보이며 자기자리에 앉았다. 대게를 서너 번 먹어보았지만 이렇게 완벽히 준비된 대게 살 파먹는 기구를 본적이 없다, 대게의 몸통,다리크기에 따라 사용하는 기구가 별도로 준비되어 있어서 쉽게 게살을 파 먹을 수 있었다. 게가 얼마나 큰지 세 명이 열심히(?)먹어 보았지만 배가 불러 삼분의 일 정도가 남았다, 주인에게 부탁해 비닐봉지에 담아 저녁식사 후 와인 마실 때에 먹기로 했다,
속초를 출발해 통일의 동산으로 행했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4시다, 호텔예약 시 사우나와 수영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호텔로 가지 않으면 이용할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과거에 통일의 동산은 가족단위로 여행한 적이 있어서 잠깐동안의 협의를 거쳐 통일의 동산 여행은 포기하고 다시 강릉으로 기수를 바꾸었다, 강릉으로 오면서 보니 망상, 낙산,등 해수욕장이 눈에 띄고,그때 그때마다 어촌마을에 들렸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망상해수욕장 진입도로 옆 밭에서 천막을 쳐놓고 옥수수를 팔고 있는 어촌부부가 보인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 여행이 순조롭다,
땀 흘리며 옥수수 머리를 식칼로 대충 잘르는 것 같아도 숙년된 솜씨라 팔기좋고 삶기좋게 만들어 낸다, 주름진 아저씨의 땀 흘리는 모습과 한 모퉁이에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그 옥수수 덩어리들을 껍질을 벗겨 집어넣고 설탕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느라 이마와 볼에 땀이 송송 맺인 아줌마의 분주한 손놀림이 대조를 이룬다. 또 어촌을 들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노란색 모양의 달걀 만한 열매를 달고 있는 해당화의 활짝 핀 모습은 동시상영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 조화를 이룬다. 특히 열한개의 옥수수 자루를 망태기에 넣어 한 뭉치가 만원이라고 말하는 아줌마의 말과 표정이 장사솜씨와 어울려 자존감이 대단해 보인다,
저녁식사는 포만감이 들어 속초어시장에서 남겨온 대게 살과 어제 갈비탕집에서 가져온 고기덩어리를 냉장고에서 꺼내 종이접시에 올려놓고 시골집에서 상경할 때 이천휴게소에서 사온 맛있는 건포도 빵으로 해결했다, 두 자매는 와인도 술이라고 한 입도 대지 못한다, 나 혼자 준비해간 와인 한병을 마시며 인생이 어쩌니 저쩌니 수다를 떨었다, 두 자매도 마음이 풀렸는지 자신의 지나온 얘기며 앞으로 남은 많지 않은 세월을 잘 계획하고 살고 싶다며 자신들의 인생고백을 피력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처받은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면 가해자가 생존했을 때 서로 만나 해결해야만 깨끗하게 정리되는 것이지, 미해결상태로 가해자가 죽었다면 피해자는 그 순간만 트라우마를 잊을 뿐 죽을 때까지 고통받으며 트라우마에서 탈출치 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듣지 못하고 꿈나라로 가버렸다, 공통된 얘기는 ‘누구나 한가지나 둘쯤은 정신적스트레스를 주는 트라우마가 있기 마련이어서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있지만, 신앙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순응하면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오전 11시가 체크아웃(퇴실)시간이다, 하늘은 청명하다, 우리일행은 아침밥을 먹고 소나무 숲을 잠시 거닐다 객실로 올라와 커피 한잔 마시고 귀가 짐보따리를 꾸렸다, 오늘은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을 둘러보고 대관령코스 영동고속도로로 원주를 거쳐 시골집과 소고리처갓집을 다녀 상경할 예정이다, 열시가 되자 체크아옷을 하고 오대산을 행해 냅을 고정시켰다.
평창으로 향하는 길목에 우뚝서있는 오대산은 설악산에 버금가는 국립공원인데 오대산 입구 주차장 부근에는 절에서 운영하는 음식점과 상점처럼 보인다, 해안선을 드나들며 다녀온 어시장과는 달리 호객행위 없이 조용히 손님을 맞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다, 깊은 산속에서 채집한 곤드레,고사리,두릅 등 산나물을 사며 홍보요원에게 물어보니 차를 타고 들어가 월정사,상원사 등 절 내를 들러볼 수 있다고 한다. 우선 점심을 절 음식으로 먹었는데 두룹,야채와 산나물로 식단이 이루어져 정갈하고 담백하고 개운했는데 그중 백동치미 맛은 일품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오대산 입구매표소 안내원은 내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경로우대라 무료라며 그냥 통과시킨다, 시속 30키로로 달려 계곡을 따라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아스팔트 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니 대형관광버스 몇 대가 손님을 토해내고 산속에서 더위를 피해 큰 소나무아래 웅쿠리고 있다. 여기서부터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장마비가 계속 온탓으로 계곡물은 불어났지만 맑고 깨끗하다. 차에서 내려 손으로 떠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안내원은 차를 타고 둘러 볼 수 있다고 했지만, 유명한 절인데 계속 차를 타고 경내로 들어가도 괜찮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나마도 내앞에 스포츠카가 계속 올라가 비포장도로를 십오분 정도 계속 시속 20키로로 따라 올라가니 어렴풋히 큰 대웅전 지붕이 고목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코앞이 대웅전임에도 두 자매는 힘이 들어서 인지 차 밖에서 울창한 자연산림을 즐기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독려 아닌 독려를 한다,
월정사를 가려고 했는데 들어가 보니 막내 절(막사)인 상원사다, 경내를 관람하고 보니 회사를 갓 입사하고 산악 동호회에 들었을 때 다녀 온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이제 칠순을 넘은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 다시 찾은 오대산의 상원사는 그냥 조용하고 웅장한 절 일 뿐이지만 감회가 새롭다, 사진 몇 컷을 찍고 자동차로 내려오는 내 발길은 가벼운 편인데, 피곤한 표정으로 나무 고목그들 밑에서 자연을 음미하며 얘기하는 두 자매의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못해 미안하다, 이윽고 내 모습을 보았음인지 오히려 힘을 내어 즐거운 표정을 게면적게 지어보이는 두 자매의 모습은 일백여년년을 살아온 절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처럼 그냥 자연스럽고 아름답기만 하다,
횡성에서 새말, 원주로 향하는 그 높은 산 대관령은 여전히 예전과 다름없이 의구하지만 이제는 높은 고갯마루가 모두 터널로 동서남북으로 뚫여 그 터널숫자도 많고 또 터널길이도 상당히 길다, 팔십년도 초에 여름휴가를 맞아 아이들과 해수욕장 여름휴가 모집 관광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주문진이나 삼포 해수욕장 등에 도착할 때 까지의 험한 대관령 고갯길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위험한 왕복 이차선 산비탈 대관령마루를 관광버스로 넘어가며 차안에서 도로 아래 낭떨어진 계곡을 보며 느꼈던 위엄이 서린 그 웅장함과 수려함은 마음에만 남아있는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주 아이시에서 태평리를 거쳐 시골집에 도착하니 고양이 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갈증을 해소해주려고 왔는가 싶어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상추는 철이 지나 이미 속대공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상태이고 가지와 오이는 누가 따갔는지 열매는 간데온데 없고 잎만 무성한데, 토마도만이 붉은 색과 파란색의 열매를 간직하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 탱탱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힌색 비닐봉지를 신발장 서랍에서 꺼내 밭 들어가면서부터 하나씩 땄는데 보암직도 하거니와 싱싱해 보인다, 그 중 제일 크고 먹음직스런 것을 꼭지까지 따서 수도밸브를 세게 틀어 손으로 닦고 씻은 후 한입 깨물어 보았더니 당도도 좋고 싱싱해 상쾌한 마음이 용솟음친다, 토마도와 가지를 주섬주섬 비닐봉지에 넣어 차 트렁크에 싣고 자갈이 깔린 주차장에 주저앉아 장마비를 뚫고 고개를 내민 잡풀을 하나 둘 뽑으니 땀이 뒤범벅이다..
두 자매는 이미 집안데 들어가 텔레비전을 켜고 음악을 들으며 밭에서 수확한 깻잎과 고구마 줄거리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다,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아버지와 어머니 체취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건너방 유물실에 들어가 마음의 인사를 건넨다, 거실에 나와 커피물을 끓여 커피 한잔 드리키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 창밖을 보니 거꾸로 선 왯제 앞산이 마주보며 반갑게 손짓한다.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으랴. 두 자매가 이제 처갓집으로 가야 할 때라고 무언으로 거실을 왔다갔다하며 서성인다.
소고리처갓집에 도착하니 보형이 작은 처남이 언제부터 끓였는지 맛좋은 추어탕을 가지고 가란다, 아내를 하늘 나라로 보내고 이제 삼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 추어탕까지 섭렵한 느낌이고 농사일과 목축업은 물론 집안 살림살이도 그런대로 안정되어 가는 듯하다, 큰 처남 찬형이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제언하는 바람에 두 처남과 함께 우리일행은 원두리 짜장면집으로 이동해 담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해가 뉘였뉘였 서산으로 지고 있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용인 수지에 큰 자매를 바래다 주고 댁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는 속도감부터 부드럽고 포근하고 조용하다, 나도 모르게 서랍에서 향기 강한 졸음쫓는 사탕을 털어 넣는다, 몸은 솜처럼 피곤하지만 2022년 여름휴가를 두 자매와 함께 한 것은 획기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즐겁기만 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