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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돌아가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혼 작전
한 남자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결혼해 달라고 청혼했습니다.
그러자 청혼을 받은 여자가 “저는 용기 있고 머리도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남자는 “지난번 보트가 뒤집혔을 때, 제가 당신을 구해주지 않았습니까? 그걸로 제 용기가 증명되지 않았나요?”라고 응수했습니다.
여자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요. 머리도 좋아야 해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남자가 너무 기뻐하면서,
“그거라면 염려 탁 놓으십시오. 그 보트를 뒤집은 게 바로 접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결국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자가 타고 있는 보트를 뒤집어엎고 그 뒤에 여자를 구해주면서 자신은 용기 있는 남자라고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용기 있는 사람이고, 머리가 좋은 사람일까요?
야비한 사람입니다.
진심이 없는 사람은 야비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진심이 담겨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진심이 담겨서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사랑을 얻을 수 있고, 차지할 수 있습니다.
P4.
야곱은 20년 동안 처가살이하며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기 짝이 없다.
20년 동안 14년은 두 여인을 위하여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일만 하고, 6년 동안은 장인어른의 양 떼들을 치면서 죽으라고 일만 한다.
장인어른이란 사람은 사위를 종처럼 부려먹기 일쑤다.
장인어른이란 사람은 사위를 위한다고 하면서 열 번이나 넘게 품삯을 이리저리 바꿔버린다.
38-42에서 야곱은 외삼촌에게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야곱이 20년 동안 처가살이하면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야곱은 처가살이하면서 너무나 힘들게 살아야만 되었다.
밧단 아람에서 너무나 힘들게 살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가족들은 내 말을 따라주기나 할까?
장인어른이 알면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순수하게 허락해 주기나 할까?
어떻게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D4.
①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
어느 때부터인가 장인어른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 예전 같지가 않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야곱은 눈칫밥을 20년 동안 먹고 살면서 장인어른이 자신에게 대하던 모습이 분명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는다.
설상가상으로 처남들은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하면서 다닌다.
장인어른은 처남들이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야곱을 경계하는 눈초리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인어른과 처남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야곱은 ‘더 이상 처가댁에 머무를 수 없겠네.’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면서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역사해 가시는 것이다.
이런 야곱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단한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좋지 않은 시선들이 모아지는 것 같으면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라고 인식하고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변 상황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주시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어떤 한 방법만을 고집스럽게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과 의지를 표현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와 뜻과 계획을 보여주고 계실까?
신앙인들은 모든 분야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신앙인들은 하나밖에 모르는 외골수,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구원의 문제와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표준 됨을 믿는 성경의 진리의 문제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진리요 생명이다.
그러나 이런 것 외에는 모든 부분에 다 열려 있어야 한다.
② 모든 상황들을 이미 보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양치는 들녘으로 부른다.
레아와 라헬은 남편의 부름을 받고 양치는 들녘으로 나간다.
야곱은 아내들에게 그 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한다.
12-13절에서 보면 야곱의 꿈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하나님은 장인어른 라반이 그동안 야곱에게 어떻게 했었는지를 정확하게 보았고, 알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자기 자신은 알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거야 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것처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시고,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죄악된 삶을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하는데,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늘 죄악된 삶만을 골라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야곱은 장인어른이 어떻게 했는지를 이미 다 보고 계셨고,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장인어른의 것들을 빼앗아서 자신에게 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아몬드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껍질을 벗겨서 흰 무늬를 내면서 건장한 양이나 염소가 임신할 때 사용하던 방법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기업을 일으켜 세워주시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일 뿐이다.
야곱이 아니라 다른 일반사람들이 그런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 근처에도 못 간다.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세워주기 위하여 허락해 주신 방법일 뿐이지, 다른 일반인들에게도 똑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방법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은 하나님께서 장인어른의 것들을 빼앗아서 자신의 기업으로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인어른을 비롯한 처남들의 행위를 정확하게 보았고,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들이 처한 처지와 환경이 어떤지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
우리 교회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우리 가정의 사정과 처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
우리의 생업터전의 상황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우리 한국교회와 자유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야곱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듯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은 어떤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가정과 교회와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신다.
③ 가족들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묶어주시는 하나님.
야곱이 레아와 라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하자 두 여인은 14-16에서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라고 하면서 야곱의 뜻에 따르겠다고 한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두 여인이 반대한다면, 두 여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게 된다.
빌하와 실바는 종의 신분이기 때문에 두 여주인이 결정하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
그러니 레아와 라헬 두 여인의 결정이 모든 것들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두 여인에게 남편을 따라서 시댁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도록 두 여인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다.
레아와 라헬은 서로 이기기 위해서 늘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번에는 한 마음과 뜻을 가질 수 있도록 두 여인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시면서 온 가족들이 함께 떠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두 여인의 결심에 따라서 야곱은 구체적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친 야곱의 가족들, 일행들은 비로소 밧단 아람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
17-20절에서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 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해야 할 처지가 되었을 때, 서로서로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뜻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 두 여인의 마음과 뜻을 하나도 묶어주시니까 다른 가족들은 다 순종하여 함께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음의 식구들과 가족들의 마음을 하나도 묶어주시리라 믿는다.
교회의 사역도 온 가족들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로 묶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 모른다.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하나로 묶어주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기원한다.
좌우로 찢어지고 흩어진 우리 한민족의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어주시길 기도한다.
자유대한민국의 온 국민들과 한국교회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똘똘 뭉쳐져서 함께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가도 어려운 형극인데, 국내외적으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좌파, 우파로 갈라져서 서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으니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고 고통스러워하실까?
이젠 제발 하나로 뭉쳐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④ 현몽하여 지켜주시는 하나님.
야곱이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떠났다는 소식은 3일 후에 라반에게 전해진다.
야곱이 모든 식구들을 데리고 야밤에 도주했다. 라는 소식을 들은 라반은 7일을 좇아가서 야곱의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곳까지 따라가게 된다.
라반이 밤에 잠을 자면서 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속으로 찾아오신다.
라반에게 꿈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야곱 일행을 해칠 수 없도록 막아주신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안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반은 막무가내로 야곱의 일행들을 다시 밧단 아람으로 끌고 가려고 했을 것이다.
야곱만 빈 몸으로 홀로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내고 두 딸과 여종과 손자들과 모든 종들과 가축들을 억지로 끌고 돌아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은 막무가내로 인정사정 보지 않고 자기들 생각대로 강탈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라반의 마음을 움직여서 더 이상 야곱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신다.
라반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인이 아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다뤄주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불량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 사역자들, 사명자들, 백성들을 이방인들로부터 지켜주시기 위하여 역사해 주신다.
아브라함을 지켜주시기 위하여 바로에게도, 아비멜렉 왕에게도 현몽하여 찾아오신다.
하나님은 이삭을 지켜주시기 위하여 블레셋 왕에게도 현몽하여 찾아오신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시는 수많은 사역자들을 어둠의 세력들, 마귀 사탄의 세력들 사이에서 건져주시고 지켜주시기 위하여 역사하신다.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을 막아주신다.
그들의 발과 손을 꽁꽁 묶어주신다.
그들의 뇌리를 어지럽게 만들어주신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어리석게 만들어주신다.
그러면서 주님의 위대한 복음의 사명, 십자가 구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신다.
⑤ 급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
야곱 일행을 뒤쫓아온 라반의 일행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리 선수 쳐 주신 덕에 본래 야곱을 뒤쫓아와서 하려던 계획을 취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헬이 라반의 집에서 가정의 신으로 섬기는 드라빔을 훔쳐 왔기 때문에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라고 책망한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 온 것은 오직 라헬만이 알 뿐,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야곱도 몰랐던 일이다.
야곱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당당하게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라고 하면서 한번 찾아보라고 한다.
라반은 모든 처소를 수색하면서 찾아도 찾을 길이 없다.
마지막으로 라헬의 처소에까지 수색하러 찾아왔는데,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 안장 밑에 숨기고는 그 위에 앉아서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라고 하면서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라헬이 훔쳐 온 드라빔을 라반이 찾을 수 없도록 숨겨주었기 때문에 라반이 찾지 못한 것이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서 가져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아무리 아버지 집이 내 집이라 해도, 드라빔을 훔쳐서 가져와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쩌면 라반의 집에서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라반이 드라빔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쳐서 가져온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만약에 라반이 드라빔을 찾아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헬은 아들 요셉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야만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라헬과 요셉뿐만 아니라 다른 식구들도 밧단 아람으로 되돌아가야 할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추진하는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 나라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시적이지만, 라헬에게 드라빔을 숨길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드라빔의 문제는 나중에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하나님은 지금 당장 벌어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라헬에게 지혜를 주셔서 드라빔을 숨기고 생리하는 것처럼 연기하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라반은 드라빔을 찾아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라반이 아무리 찾아도 드라빔을 찾아내지 못하자 그때서야 야곱은 외삼촌을 향하여 분노의 절규를 털어놓게 된다.
한참 동안 분노의 절규를 털어놓은 후에 그들은 한 무더기의 돌들을 쌓아서 언약을 맺게 된다.
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불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 무더기의 돌들을 쌓아서 변치 않는 언약을 맺으면서 야곱은 갈르엣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 갈르엣이 후에 미스바가 된다.
미스바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회개의 아이콘이 되는 장소가 된다.
위기에서 벗어나고 언약을 맺으면서 이제는 처가살이의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 홀가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위기를 벗어나지 않았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험난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은혜로 감동을 주셔서 잘 극복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
L4 & B4.
하나님은 야곱에게 20년 동안의 밧단 아람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따라서 야곱은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밧단 아람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삶을 청산하고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야곱에게 있어서 밧단 아람이라는 곳은 고난과 은혜가 함께 공존했던 곳이다.
야곱이 밧단 아람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자신의 가족들과 기업을 형성할 길이 없다.
야곱은 밧단 아람으로 건너가서 20년 동안 온갖 서러움 속에서 처가살이하며, 눈물의 눈칫밤을 먹으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밧단 아람이라는 곳이 있었기에 4여인과 13남매와 많은 종들과 양 떼와 낙타와 나귀라는 자신의 기업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야곱에게 있어서 밧단 아람이라는 곳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고난의 땅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가족들과 기업을 형성할 수 있는 축복과 새로운 기회의 땅이기도 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밧단 아람에 머물러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야곱이 여전히 밧단 아람에 머물러 산다면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세워질 수 없다.
4여인 뿐만 아니라 13남매들도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의 백성, 믿음의 족장의 반열에 세우기 위하여 이제는 밧단 아람의 삶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어떤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 새로운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세워야 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살았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의 땅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견고하고 확실하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던 신앙의 훈련지와 같은 곳이 밧단 아람이라는 곳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고난과 신앙의 훈련지로 살았던 삶을 더욱더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인 본향, 주님의 몸된 교회, 십자가 사역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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