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시> 124호(2024.5)-먼 길 가까운 길은 "섬진강에 매화가 피면" 입니다.
섬진강에 매화가 피면
- 광양 섬진강, 매화마을
차용국
봄빛은 섬진강으로 들어와 꽃을 피우고, 꽃물 젖은 강물은 광양에 내려와 봄을 맞는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옥녀봉 기슭의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蟾津江은 전북과 전남의 산악지대 여러 곳에서 실핏줄 같이 흘러내리는 냇물을 모아가며 남원으로 내려와 요천을 만난다. 남원을 지나 제법 강다운 풍모를 갖춘 섬진강은 지리산 허리를 부둥켜안고 남쪽으로 흘러 흘러 광양만으로 빠져나간다.
섬진강이란 이름은 모래내라 불렀던 넓은 모래사장에서 유래한다고도 하고, 고려 우왕 때 침략한 왜구가 수만 마리의 두꺼비 울음에 놀라 물러났다는 섬진蟾津(두꺼비 나루) 전설에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후자를 뒷받침하듯이 지금의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강변에는 예전에 섬진이란 군진軍陣의 사적事跡이 있고, 두꺼비 동상과 섬진강 유래비를 세워놓고 있다.
어느 강이나 그러하듯이 강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다. 강이 거치는 고을마다 그 강을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이고, 그 개별성은 그 이름으로 부르는 그 마을 사람들의 고유한 정서를 내비친다. 섬진강도 강이 발원한 진안에서는 백운천, 임실에서는 운암강, 순창에 들어서면 적성강, 보성에 이르면 보성강 등등으로 불렀다.
그래서 섬진강 223킬로미터의 물길에는 유서 깊은 고을과 빼어난 풍경이 즐비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강물은 홀로 도도히 흐르는 것이 아니어서, 강변에 터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망과 염원과 웃음과 눈물을 고스란히 담아 드러낸다. 강길을 걸어가는 것은 그 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공유하는 여로다.
섬진강은 광양에 이르러 비로소 강폭을 벌리고 둔치에 모래사장을 펼친다.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마을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하동과 마주 보고 있다. 강으로 떨어지는 산비탈에 겨우 매달린 듯 위태로워 보이는 강변 마을. 이 외진 땅에 모처럼 사람이 붐빈다. 산비탈에 심은 매화나무는 꽃을 피우고, 사람은 만발한 매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쉼터에 앉아 풍경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 마을을 매화마을이라고 부른다.
장미과에 속하는 매화나무는 대략 4~5미터 정도 자라는데, 잎이 나오기 전에 먼저 꽃이 핀다.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1~3송이가 나오고, 꽃 빛깔은 하양·분홍·빨강 등인데, 홑겹의 하얀 매화는 고결한 미덕의 상징으로 ‘매화 중의 매화’라 해서 최고의 꽃으로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전해지는 매화의 전설은 지순하고 애달프다. 옛날 도공陶工 영길과 혼인을 약속한 정혼녀가 혼례를 앞두고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느 날 슬픔과 실의에 빠진 영길이 정혼녀의 무덤을 찾아갔더니, 한 그루 매화나무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영길은 매화나무를 집 뜰에 옮겨 심고 평생을 정혼녀 대하듯 정성으로 가꾸며 사랑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백발노인이 된 영길이 세상을 떠나고, 오랫동안 영길을 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영길의 집을 찾아갔더니, 방안에는 영길이 빚은 도자기 하나만 놓여있었다. 그 도자기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꾀꼬리 한 마리가 나와 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매화를 아끼는 영길의 넋이 꽤꼬리가 되었다고 전하였다.
매화는 이른 봄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 해서 설중매雪中梅라 불렀다. 옛 선비들은 추운 겨울철에도 세 벗(송죽매, 松竹梅)이 있으니, 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문인화의 주요 화제畫題로 화폭에 담아두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문인들은 시를 지어 남기기를 또한 머뭇거리지 않았다. 더하여 ‘미덕·고결·정절’을 상징하는 매화의 꽃말처럼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다.
매화의 향기는 싱그러움과 향긋함을 적절히 배합한 감각으로 후각을 평화롭게 하고, 보는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뿐인가? 매화는 이념과 풍류의 저편에 은폐된 삶의 진실을 무던히 드러낸다. 매화가 지고 맺은 열매는 매실이라 하는데, 매실청을 만들기도 하고 매실주를 담아 마시고도 한다. 매화의 꽃잎에서 이념과 풍류를 걷어내면 현실의 치열한 삶의 실체를 보여준다. 매화는 사람의 기본적인 삶의 욕구에 더 가깝다.
매화마을의 매화는 관상용이 아니다. 산자락에 터 잡고 섬진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꽃이다. 척박한 산비탈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실을 생산하는 농업 경제의 현장이다. 섬진강 서쪽 강변의 백운산 자락은 햇볕을 길게 받아 겨울이 짧고, 매화가 개화하는 초봄 날씨가 온화하여 매실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섬진강 변 20여 리에 걸쳐 조성된 매화나무에서 생산하는 매실의 양은 국내 최대다. 매실은 매실장, 매실청, 매실주, 매실짱아찌 등의 재료가 된다.
매화마을 조성과 매실 가공품 농경제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홍쌍리 선생의 전시관 앞에는 청매실로 담근 수백 개의 옹기가 봄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먼저 핀 매화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내려앉는다. 나는 매화마을 자락길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며 매실장아찌, 매실막걸리, 매실과자 등을 샀다. 가방이 빵빵하다.
지금 매화마을은 제23회 매화축제(2024. 3.8~3.17, 1997년부터 시작했고 코로나 발병 시기에는 생략했다.) 끝 무렵인데, 오히려 매화는 강변과 산자락에서 한창 피어오를 태세다. 매화 만개 시기와 축제 기간 사이에 1주일 정도 엇박자가 날 듯싶다. 자연의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그 위에 사람이 억지로 그은 시간의 엇박자 리듬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자연은 때가 되면 저절로 꽃을 피우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 것이니 탓할 일도 아닐 듯싶다. 자연이 유예한 시간만큼 아름다운 엇박자 선물을 즐기면 그뿐!
섬진강에 매화가 피면 추위는 다 간 것이어서 언 땅은 부풀어 올라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봄볕을 끌어들인 풀꽃들이 꽃을 피운다. 산까치꽃·제비꽃 등이 매화나무 아래에서 저마다 독특한 생김새와 고유한 꽃 색깔을 드러내며 신춘을 맞이한다. 매화는 봄의 전령처럼 광양만으로 들어와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며 꽃을 피우고 꽃들을 깨운다.
섬진강 변으로 내려와 출출한 배를 재첩국으로 달랜다. 재첩은 가막조개라고도 부르는 작은 민물조개다. 다 자라도 25밀리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가장 작은 조개일 듯싶다.
섬진강 재첩잡이는 강바닥 모래밭을 뒤적거려 잡는다. 이때 틈을 성기게 만든 철제 삼태기를 사용한다. 삼태기에 대나무를 연결해서 모랫바닥을 훑으면 모래와 어린 재첩은 틈으로 빠져나가고 다 자란 재첩만 남는다. 물이 깊은 곳에서는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나가 강바닥을 훑어가며 작업한다.
섬진강 재첩은 단백질·탄수화물·칼슘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영양과 약효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재첩은 특히 황달과 간질환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이 장기간 복용을 통해 큰 효험을 본다고도 한다. 물론 이런 정보와 홍보는 과학에 근거한 것이겠지만, 허기진 입에 재첩국을 떠 넣으며 느끼는 위안만큼만은 못 하다. 손톱보다 작은 재첩 알갱이에서 우러나온 국물에 약산의 소금과 부추를 풀어 넣은 이 간단한 요리에서 나는 먹고사는 삶의 본능을 일으켜 세운다. 따사로운 봄볕 온기가 내 혈관의 구석구석을 회전하는 듯싶다. 재첩국은 시원의 맛으로 내 빈속을 다독여주고, 내 움츠린 삶의 어깨를 펴고 따사로운 봄날을 예비하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