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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복입니다. 그만큼 복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 기독교는 복을 근원으로 하는 복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복은 죄로 인하여 잃게 되었고 우리 인간은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삶이 행복하십니까?” 하고 질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는 정말 행복하십니까? 아마 대부분 “아뇨” 혹은 “그냥 그런대로”라고 할 것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하고 명예가 있는 사람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일까요? 젊은이들은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함께 한평생 살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복의 기준이 잘못된 착각에서 찾아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누가 진정 복있는 자인가 말씀하시면서 왜 내가 복이 있는지 알고 복이 없다고 여기기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 통해 우리 모두 현재의 상황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으로 받아들여서 주님의 더 큰 은혜와 영적인 복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진정한 복은 인간적인 삶속에서 힘든 일들이 많을 때가 오히려 복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주리고 배고픈 것이 복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욕하고 우리가 거리감을 둘 때가 오히려 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가난한 게 뭐가 복입니까? 배고픈 것이 뭐가 복입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왕따시키고 욕하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왜 복입니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다보니 그것이 가난한 상태가 되었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다보니 그것이 배고픈 상황이 되었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다보니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똑바른 가치관, 똑부러진 정직성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요즘 한국교회가 가난할까요? 배고픔을 자랑하며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요? 한국교회가 정직과 성실, 참된 신앙생활, 거룩과 순결을 자랑하며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까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면 우리의 양떼들은 생명을 얻게 되고 부요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요하게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잃기보다는 우리가 일생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 더 복된 것임을 알고 가난함을 저주라고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가난함이 천국을 소유하고 그 가난함이 생명을 얻고 축복된 길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주린다’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먹지 못해 견딜 수 없을 만큼 절박한 상태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인가에 주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에 굶주려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굶주려 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돈에 굶주려 있기도 합니다.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원래 무명작가였습니다. 그의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고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이요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것에 주려 끊임없이 이것을 추구하였고 마침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3가지를 모두 거머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 3가지 모두를 얻었어도 그의 마음은 만족이 없고 여전히 주림이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허망함을 느끼고 어느 날 긴 장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적인 것에 굶주리면 그것이 조금 채워져도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아무리 채워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처럼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에 굶주린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의로우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고자 갈망을 뜻합니다. 세상적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고 진실되고 거룩하게 살고자 애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에 주린 자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애씁니다. 하나님앞에서 의롭게 살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자꾸 죄에 넘어져서 죄짓는 자신을 자책하며 의로우신 하나님께 괴로워하며 나아갑니다. 시편기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시편 42편 1,2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의로우신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지식과 정욕에 주린 자였습니다. 그는 16세에 사생아를 낳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께 돌아와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당신은 누구시며 나는 누구입니까” 하는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죄가운데 방황하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만족을 얻고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공간이 있다”오늘날 개신교가 있게 한 종교개혁가 마르틴루터도 과거 신부시절 끝없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왜 자꾸 죄에 져서 넘어져야 하는가 이 죄를 안짓고는 살수 없는가”너무 자주 죄짓는 자신에 대하여 아주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지순례중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돌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던 중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기억하며 의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 갈급함을 해결하고 주님을 만나 천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저와 여러분의 삶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주님을 갈망하며 천국을 갈망하고 영원한 복, 궁극적인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정한 복은 우리의 인생이 끝나고 천국에 갔을 때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3절입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진정한 복은 이 땅에서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늘에서 판가름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가난하고 이땅에서 배고프고, 이땅에서 슬퍼서 울어도 결국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을 허락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사람이 있고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영원한 지옥불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못하고 영원한 지옥형벌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네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현실주의적이고 영적인 세상을 부정하는 가치관속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죽으면 아무 소용없으니 이 땅에서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잘 지내자”라는 그것은 내세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가치관속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의 진짜 복은 천국을 우리가 소유했냐? 소유하지 않았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어 천국에서 눈을 뜬다면 그것이 진짜 복받은 인생이요, 우리가 죽어서 지옥에서 눈을 뜨는 인생은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면서 참 다양하고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살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질적으로 복받은 것은 이 땅에서의 다양한 생활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저 천국에 우리의 상급이 있고 저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한 생을 살아갈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존재입니까?
복받은 사람입니까? 저주받은 사람입니까?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복받은 사람으로 확신하며 환경이 어떻든 주님만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주받은 자의 진짜 재앙은 이미 이 땅에서 이뤄졌습니다.
누가복음 6장 24,25절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본문에서 부요한 자는 이미 위로를 받았고 배부른 자는 주리게 될 것이고 지금 웃고 있는 사람들은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부, 이 땅에서의 풍요, 이 땅에서의 즐거움이 결국은 천국에서의 저주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요한 자란 물질적으로 부요하지만 하나님앞에는 인색하며 결국 인간의 욕망으로 부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부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영적인 갈급함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이 땅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더 이 땅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온갖 좋은 것으로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누가복은 12장 16절에서 21절을 보시면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가 부요함으로 자랑하는 모습을 비유하시며 땅에서의 복만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0,21절입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마음이 부요하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별로 찾지 않고 영적 소원을 상실하고 결국 구원의 은혜마저 상실하게 됩니다. 배부른 자는 영적인 교만에 사로잡혀 부와 명예를 더욱 소망하지 하나님을 찾거나 영적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말씀대로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돈이 되는 일을 찾지 헌신과 나눔, 사랑등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배부른 돼지와 같이 영적인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에 별로 관심이 없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초대교회때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정말 부자인 도시에서 부요함을 누리고 생활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강남, 분당, 일산, 판교, 동탄같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기독교인들쯤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마음이 부요해져서 자기 죄를 애통하며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 애통하며 울게 됩니다. 그들은 죄를 사함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웃는 자는 상한 마음이 없고 세상을 즐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방황하는 영혼들을 보면서도 웃습니다. 죄가운데 죽어 지옥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사에 젖어 웃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미 화가 미쳤습니다. 이미 저주받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저주로 탈바꿈시키는 교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부를 누리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그 부를 저주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복을 복되게 사용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저주이며 재앙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6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그것은 저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데 그것이 어떻게 화일까요? 여기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를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인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것은 저주며 재앙이라는 사실을 에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받을 심판과 똑같은 위치에 놓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그 가치관은 세상의 가치관과 항상 충돌할 수밖에 없는 가치관입니다. 일단 세상의 사람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야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간다는 사실을 알려야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사람들이 과연 좋아할까요? 세상의 사람들은 회개하기 싫어서 주의 종들을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그래서 요즘 교회에서는 죄, 회개, 천국, 지옥, 구원, 영생같은 말씀을 전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방법,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이슈를 가지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지... 등 건전 문화 캠페인, 부부관계, 가정관계, 자녀교육에 대한 정보나눔강연회같은 예배시간과 설교가 진행되는 교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비위를 맞춰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책망받을 짓을 한 사람에게도 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이 참 설교 잘 한다라고 말을 할 때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 알고 그런 칭찬을 먹으며 듣기좋은 소리만 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러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붙들어놓으며 교회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커지니 성장하고 있다고 부흥하고 있다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은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는 것은 핍박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달게 받아야할 죄값입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직과 순결과 참된 헌신과 주님을 위한 순종으로 인해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받는 핍박입니다. 이런 핍박은 축복입니다.
축복과 저주를 우리는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칭찬받는다고 축복이 아닐 수 있고 손가락질 받는다고 저주가 아닐 수 있습니다. 세상과 벗하며 허랑방탕하고 음란하고 음주가무에 폭력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한다면 그것은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우리 주님을 벗하고 항상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전하고 참된 말과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세상살아가면서 너무 너 혼자 깨끗한 척 살아가냐며 우리를 왕따시키려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복인 줄 알고 거룩한 왕따가 될 수 있는 것이 복받은 인생입니다.
마음에 부유함이 있으면 복이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화이며 재앙입니다.
잠언 10장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어떤 근심도 가지지 않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잠언에서 말씀하시는 부함은 바로 “마음의 부함”입니다. 돈이 없어서 근심하든지 명예가 없어서 근심하든지 관계가 어려워 근심하든지 항상 마음에 불안이 있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함을 주십니다. 그 부함은 물질이 있고 없고가 아니고 명예가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건강이 있고 없고가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부함의 기준은 바로 내 마음에 평안이 있으면 영적인 부한 것이고 내 마음에 불안이 있으면 영적인 가난함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는 가난해도 영적으로는 부하고 우리가 세상에서는 핍박을 받아도 영적으로 천국을 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참으로 복된 사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복받은 사람입니까? 저주받은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살펴본대로 우리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물질, 명예, 권력, 세상적 즐거움으로 부자, 배부른 자, 인기있는 자를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저주받은 인생을 살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가치관을 따라 참된 부함을 누리고 우리 주님의 진리의 말씀속에서 참된 배부름을 얻고 우리 주님을 위해 살아가면서 세상사람들이 핍박해도 거룩한 왕따로서 인기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서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살아가고 죽어서도 저 천국에서 눈을 뜨고 영원한 천국생활하시면서 복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