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의 신비, 짐승의 신비(37)
말씀: 계 17:6-13 2025년 2월 16일 오전 11시
오늘 말씀은 “여자의 신비, 짐승의 신비”입니다.
17장에서 핵심 인물은 “여자와 짐승”입니다. 여자는 짐승을 타고 있는데 여자는 누구이며 짐승은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에는 유난히 짐승들이 많이 나옵니다. 하늘의 왕좌 주변에는 네 짐승이 나옵니다. 사도 요한이 그들의 모습을 보았는데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짐승은 사람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짐승은 날아다니는 독수리 같더라.](계4:7)고 했습니다. 이들 짐승은 이미 구약성경 에스겔서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다 이들의 정체는 그룹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게 하실 때부터 그룹들에 대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언약궤 위에는 긍휼의 자리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었고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에는 그룹들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그룹들은 날개가 있고 주님의 왕좌 주변에 있으며 천사들이 아닙니다. 그룹들은 아담이 에덴의 낙원에서 쫓겨날 때 동산 동쪽에 사방으로 도는 불타는 칼과 함께 생명나무의 길을 지켰습니다.(창3:24) 그러므로 아담과 그 후세대들이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민족들에 존재하는 에덴의 낙원에 대한 전설, 신화는 여기서 유래합니다. 특징은 생명나무에서 나는 것과, 그것을 지키는 어떤 괴물, 그리고 그 땅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서쪽 끝에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 있다고 나오는데 거기는 황금 사과가 있고 그것을 지키는 100개의 머리 달린 요정들이 나옵니다.
중국의 산해경에는 서쪽 끝으로 가면 옥산이라는 곳에 서왕모가 불사약을 가지고 있고, 복숭아밭을 가꾸는데 그 밭을 도원이라 하고 무릉도원, 천도 (복숭아), 도원경과 같은 말이 여기서 유래합니다. 불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방 정토란 말이 그것입니다. 서방의 끝에 극락이라고 불리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극락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 어딘가에 있는 곳입니다.
창세기의 기록들이 약간씩 변질되긴 했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은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하늘에 있는 왕좌 둘레의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짐승들은 (계4:6) 천사들이 아니라 그룹들입니다. 이들과 짝을 이루는 짐승들이 있다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들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붉은 용이 있습니다(계12:3). 이는 사탄입니다.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있고(계11:7).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있습니다(계13:1). 이는 동일 인물로 적그리스도입니다. 땅에서 올라오는 어린양같이 두 뿔이 있는 짐승이 있습니다(계13:11). 그가 거짓대언자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사탄이요, 적그리스도요, 거짓 대언자들로 마귀의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여자와 짐승은 어떤 관계인지 그들은 누구인지 성경을 통해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해 봅시다. 오늘 본문은 요한이 본 것들에 대해 천사가 직접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6절입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놀라며 이상히 여기니](계17:6).
일곱째 천사가 요한을 불러 광야로 데려가 많은 물들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 주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자기 금병을 하늘에 쏟아 부었을 때 큰 바빌론은 무너지고 심판을 받았습니다(계16:19).
하나님께서 큰 바빌론을 기억하시고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잔을 주셨습니다. 그 장면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17장과 18장의 내용입니다. 큰 바빌론은 어떻게 멸망했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바빌론을 심판하셨는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본 여자의 모습은 “......신성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주홍색 짐승 위에 앉아”있었습니다(17:3). 그 여자는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입었고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몄으며 가증한 것들과 자기의 음행으로 인한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금잔을 손에 가졌습니다(계17:4). 그 여자는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여자요, 엄청난 부자입니다. 자주색 옷과 주홍색 옷을 차려 입은 것뿐만 아니라 금과 보석들과 진주들로 꾸몄는데 이는 가난한 여자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치장입니다.
행실은 음행이 그 특징입니다. 손에 든 금잔에는 자기의 음행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의 종교의 특징은 “신성모독”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신을 섬기고 경배합니다. 이 여자의 종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로 가득합니다.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신비, 큰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계17:5).
이 여자는 누구입니까? 한 인물이 아닙니다. 한 단체가 아닙니다. 한 민족이나 국가가 아닙니다. 이 여자는 의인화된 한 도시입니다.
18절에 이 여자의 정체가 나옵니다.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저 큰 도시니라, 하더라.](계17:18).
성경에는 ‘어미’라고 말하는 두 도시가 있습니다. 땅에 있는 큰 바빌론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땅에 있는 큰 바빌론은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우며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갈4:26).
땅의 창녀들과 모든 가증한 것들은 바빌론이 그 기원이요, 모태입니다. 모든 종교, 철학, 이교도들의 사상, 신성모독, 우상 숭배가 바빌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 종교나 민속 종교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큰 바빌론이 그 어미란 것을 알게 됩니다. 반면에 모든 자유, 하늘의 백성, 시민, 하나님의 자녀들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나왔습니다. 크리스천들의 고향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근원은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6절입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으므로 내가 그녀를 보고 크게 놀라며 이상히 여기니](계17:6).
요한이 본 그 여자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다”고 말합니다.
술에 취한 여자, 약물에 취한 여자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성도들의 피에 취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유대인들은 동족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그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예수님을 죽였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헤롯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였는데 유대인들이 매우 기뻐하자 베드로를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과 순교자들의 피에 취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 역시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했습니다. 10번의 대박해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칼에 죽고 불에 타 죽었습니다. 맹수의 먹이가 되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탄은 전술을 바꾸어 로마 제국이 아니라 로마 캐톨릭을 통해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중세 1,000년을 일컬어 세속사가들조차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그 시대는 완전한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종교 재판이 자행되었고 성경 신자들은 누구나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단으로 몰아 죽었고 성경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 로마 제국, 로마 캐톨릭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슬림들은 크리스천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다른 모든 종교들 역시 성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근대의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폐쇄했고 성도들을 죽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피에 취한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를 흘리는 일에서는 언제나 하나였습니다. 이들의 어미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짐승 위에 탄 여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녀를 보고 크게 놀라며 이상히 여겼습니다.
사도 요한이 크게 놀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주석할 때 여자가 로마 캐톨릭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랐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당시 요한은 로마 제국은 알지만 로마 캐톨릭은 뭔지도 모릅니다. 캐톨릭은 아직 태동하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왜 놀란 것입니까? 사람들의 해석과 추측은 사양하고 본문을 보십시오.
7절입니다. [그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놀라느냐? 내가 그 여자의 신비와 그녀를 나르는 짐승 곧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신비를 네게 말하여 주리라.](계17:7).
천사는 요한에게 “네가 어찌하여 놀라느냐?”고 묻습니다. 요한이 놀란 것은 그녀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했기 때문에 놀란 것입니다. 요한은 그 여자와 짐승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다면 천사의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사는 요한이 놀라는 것을 보고 그 여자의 신비와 짐승의 신비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듣고 알고 나면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알기 전에는 놀랍지만 알고 나면 다 이해가 됩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여자와 짐승 둘 다를 “신비”라고 말합니다. 여자의 신비, 그녀를 나르는 짐승의 신비입니다. 여자도 신비이고 짐승도 신비입니다. 여자는 성도들의 피에 취했고, 짐승은 그 여자를 태우고 나릅니다. 이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신비는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가진 짐승”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반복적으로 예언되고 있습니다. [이 일 뒤에 내가 밤의 환상들 속에서 보았는데, 보라, 넷째 짐승은 두렵고 무서우며 심히 강하고 또 큰 쇠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삼키고 부수어 산산조각 내며 그 나머지를 자기 발로 짓밟았더라. 그 짐승은 그것 전에 있던 모든 짐승들과 다르고 또 열 뿔을 가졌더라.](단7:7).
넷째 짐승이라고 하는 이 짐승이 바로 요한이 본 열 뿔을 가진 짐승입니다.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는데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이 있더라.](계13:1).
이 짐승이 바로 11:7절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와서 두 증인을 죽인 적그리스도입니다.
8절입니다.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계17:8).
천사는 먼저 짐승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요한이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들었습니까?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온다는 말이면 충분합니다. 이 짐승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미 앞에서 이 짐승의 이름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을 다스리는 왕이 그것들에게 있었는데 그는 바닥없는 구덩이의 천사니라. 그의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아바돈이지만 그리스말로는 그가 아폴리온이라는 이름을 가졌더라.](계9:11).
사도 요한은 멸망의 아들, 멸망으로 들어갈 자란 말을 통해 이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중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 기록이 성취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2).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 중 한 명을 멸망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가 누구인지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께서 “마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두 명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니라. 그분께서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 열두 명 중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자이기 때문이더라.] (요6:70~71)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기위해 죄를 짓고 스스로 죽었습니다.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범법함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행1:25) 유다의 처소는 바닥없는 구덩입니다.
이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오지 아니하리라.](살후2:3).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를 언급하면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주님도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마귀요, 멸망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가 언급한 짐승은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합니다.
****** 이 부분에 대한 인기 있는 해석은 가룟 유다가 전에 이 땅에 12사도의 한 명으로 있었지만 지금은(교회 시대) 죽어서 자기 처소로 갔기 때문에 없다가 앞으로(큰 환란 때) 이 땅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 지금 킹제임스 성경을 믿는 교회의 설교자들 대부분도 이렇게 해석하고 놀라운 해석인양 자랑합니다. ---- 그 의견이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에 있었다가”를 멀리보지 말고 계시록 안에서 보십시오.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오지 아니하리라.”(살후2:3) 멸망의 아들이 드러남으로 “그 날”(큰 환난)이 시작됩니다.
### 지금 사도 요한이 어디에 있습니까? 큰 환란 중에 있습니다. 그 짐승이 전에 있었다는 것은 큰 환란 초기부터 있었던 인물이란 말입니다(살후2:3). 그가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두 증인을 죽입니다(11:7). 그리고 짐승은 얼마 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 후 붉은 용이 나타납니다(12:3). 다시 요한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보았습니다(13:1). 후 삼년 반이 시작되면서 짐승은 자신의 모습과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러다가 치명적인 죽음의 부상을 당하고 한쪽 눈과 손이 말라서 완전히 죽은 자처럼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붉은 용으로부터 마흔두 달 동안 세상을 짓밟을 권능을 받고 그 짐승은 큰 환난 중에서 적그리스도로 활동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권능을 가지고 재림하시는데 그 전에 마귀는 바닥없는 깊은 구덩이에서 올라와 붉은 용으로부터 권능을 받고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이 후로 거짓 대언자가 땅으로부터 올라와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합니다(13:11). ####
짐승이라 불리지만 그는 한 사람입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것은 어떤 사람의 수요,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8). “그 짐승의 수 = 어떤 사람의 수 = 그의 수=666”입니다.
짐승 위에 있는 여자는 짐승을 타고 일하는 여자를 말하는데 짐승이 직접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 짐승의 위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일을 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는 다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멸망은 영원한 불 못(호수)를 말합니다. [짐승이 잡히고 또 그 앞에서 기적들을 행하던 거짓 대언자도 그와 함께 잡혔는데 그 거짓 대언자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그 기적들로 속이던 자더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으로 불타는 불 호수에 던져지고](계19:20).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8)는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다시 8절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17:8하).
크리스천들은 큰 환란 때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144,000은 큰 환란 중반에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계14:1). 두 증인 역시 죽임을 당하나 부활하여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계11:11). 환란 성도들 역시 큰 환란 후반에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 큰 환란 때 죽임을 당한 혼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들은 제단 아래에서 안식을 취하다 하늘로 들림 받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 중에 광야로 도망간 유대인들, 산으로 피한 사람들, 어디론가 숨어서 큰 환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끝까지 견딥니다. 본문은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요한이 본 그 짐승을 보고 놀랍니다.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주목하십시오. 성경에서 하나님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고 계속해서 짐승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짐승이라 불리는 사람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존재로서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경배의 대상이 됩니다. 이 땅에서 100세도 못사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은 불멸의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창건 이후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들입니다(계13:8).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려면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름은 이미 하늘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빌4:3).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합니다(계3:5). 성경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진다고 말합니다(계20:15).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계21:27).
9절입니다. [여기에 지혜 있는 생각이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이니라.](계17:9).
짐승의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이라고 말합니다. 이 도시는 일곱 산 위에 있습니다. 덕분에 이 도시는 로마를 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외경 중에 에스드라 2서, 바룩 2서와 위경에 속하는 시빌아의 신탁 등에서 바빌론은 로마를 뜻하는 암호명이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재위기간(서기 70년경)에 주조된 로마 주화에는 로마를 일곱 언덕 위에 앉아 있는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국제 표준 성서 백과사전에는 “땅의 왕들을 지니는 왕권을 가진 큰 도시요(17,18), 일곱 산 위에 올려져있다는 점, 부패와 타락, 성도들의 박해 등에 관한 말씀을 볼 때 로마는 어떤 도시보다 이 특성에 잘 맞는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교와 교회에서는 이 도시를 로마라고 확증합니다. 예루살렘 역시 일곱 개의 산 위에 있습니다. 반면 바빌론은 평지이지 산 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빌론은 로마에 대한 비유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빌론은 바빌론이고 로마는 로마라고 전혀 다른 도시임을 밝혔습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여자는 짐승 위에 앉아 있습니다(1). 짐승의 머리에 일곱 개의 머리가 있습니다. 여자가 앉은 일곱 머리는 짐승의 머리수입니다. 본문에서 일곱 산은 어떤 도시의 위치를 알려 주는 산이 아닙니다. 일곱 머리는 일곱 산인데 짐승의 머리수를 말합니다.
로마는 일곱 산 위에 있는 도시가 아니라 열 개의 언덕(hills) 위에 있는 도시입니다. 로마의 열 개의 언덕 중에 가장 높은 언덕이 275 피트 높이의 야티쿨룸(Janiculum)인데 산이 아니라 조그만 언덕입니다. 나머지 언덕들은 150-250피트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여자는 이 산들 위에 앉아 있다고 했는데 이 산들은 짐승의 머리들이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3). 짐승의 정체를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짐승의 일곱 머리 중의 하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는데(13:3) 그는 살아난 후 자신이 아닌 거짓 대언자를 통해 형상이 만들어지고 경배를 받습니다. 그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계시록 17장의 여자는 큰 도시이고 짐승은 적그리스도이고 머리는 “산들”인데 여기서 산들은 지리적인 어떤 위치의 산들이 아니라 왕국들, 왕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산이 왕국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성경에서 쉽게 확인됩니다.
[{주}여, 주께서 주의 호의로 내 산을 강하게 세우셨으나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니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30:7). 다윗이 말한 내 산은 “내 왕국”입니다. [{주}가 말하노라. 오 온 땅을 멸하는 멸망의 산아, 보라,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내가 내 손을 네 위로 내밀어 너를 바위들로부터 굴러 떨어지게 하고 너를 불탄 산이 되게 하리니](렘51:25).
멸망의 산, 불탄 산이란 표현은 멸망하는 왕국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불로 심판하실 왕국으로서 큰 환란 때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산”이라고 말합니다. [그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함께 부서져 산산조각 나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쓸려갔으므로 그것들을 둘 자리도 발견되지 아니하였고 그 형상을 친 돌은 큰 산이 되어 온 땅을 채웠나이다.](단2:35). “큰 산”은 이 땅에 세워질 그리스도의 왕국, 하늘의 왕국입니다. 일곱 산은 일곱 왕들 또는 일곱 왕국을 말합니다. 왕과 왕국은 동일합니다. 무엇보다 본문에서 10절을 보면 일곱 산이 일곱 왕이란 말을 볼 수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또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오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물리라.](계17:10). 9절의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을 10절에서 일곱 왕이라고 말합니다. 산은 왕국을 나타내는 왕이고 왕국을 대표합니다.
일곱 왕이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왕국들의 흥망성쇠의 기록을 보는데 망한 왕국들은 이집트, 바빌론, 앗시리아, 페르시아, 그리스입니다. “하나는 있으며”란 말씀은 로마 제국을 말하는데 요한이 이 글을 쓸 당시 로마 제국은 지속되고 있었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오직 아니하였으되”란 말씀은 적그리스도의 왕국을 말합니다. 일곱 머리는 일곱 왕인데 이들 왕들은 동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역사에 제시되는 왕국입니다.
그래서 “일곱째, 여덟째”와 같은 말이 성립됩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첫 번째 왕국은 이집트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히브리인 민족을 멸절시키려 했고 씨를 없애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언자 모세를 통해 도리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왕국은 앗시리아입니다. 산헤립 왕은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찾아온 주의 천사를 통해 모두 밤사이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왕하19:35~). 큰 환란 때에도 이와 같이 천사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이 땅의 전쟁에 개입해서 원수들을 멸해 버리십니다.
셋째 왕국은 바빌론입니다.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을 모두 포로로 사로잡아갔고 특별히 왕족, 귀족들의 씨를 멸하고자 그들을 내시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나라를 멸할 수 있는 쉽고도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히브리 청년들은 왕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증언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큰 환란 때 144,000명의 모형입니다. 큰 환란 때 하나님의 인을 받은 동정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뽑힌 남자들로서 짐승 앞에 설 것이며 고난을 받으나 구출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바빌론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끝까지 견디고 이겼듯이 큰 환란 때에 남은 자, 이긴 자들이 됩니다.
넷째 왕국은 메데 페르시아 왕국입니다. 아하수에르 왕은 하만의 간계로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에스더기에는 놀랍게도 하나님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성경입니다. 이들은 포로기에 하나님과 교제권 밖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했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원수들의 손에서 구출해 주셨을 뿐 아니라 보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큰 환란 때에도 온 이스라엘을 멸하려는 마귀의 계획이 온 세상에 집행되고 명령이 하달되지만 결코 그 일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계획을 엎어버리시고 도리어 그런 계획을 세웠던 이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다섯째 왕국은 그리스입니다. 그리스에서 이스라엘 멸망 계획을 세운 이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입니다.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대표하는 왕이지만 이스라엘과 관련해서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대표적인 왕입니다. 그는 성전을 더럽히고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대신 이교도의 신들을 섬기도록 명령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그리스 신들의 형상이 세워졌습니다. 마카비 시대 때에는 그리스의 신들을 섬기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히브리인들을 규합해서 대적하는 무장 군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마카비의 혁명, 반란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마카비는 대제사장 가문인데 군대를 조직해서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조직적으로 저항했습니다.
큰 환란 때에 유대 땅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도망하라, 피하라”고 하셨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포로로 끌고 가는 자는 포로로 잡혀갈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반드시 칼로 죽임을 당하리니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계13:10)고 하십니다.
여섯째는 로마입니다. 로마의 씨이저는 이스라엘을 속국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죽든지 마사다에서 죽든지 둘 중 하나뿐이었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믿는 유대인들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온 세상으로 피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행8:1). 주님은 유대에 있는 자들은 도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곱째는 적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짐승으로 대표되는 왕국입니다. 이상의 모든 왕국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스라엘을 없애기 위한 적대 정책을 쓰며 실제로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없애 버리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은 히틀러만이 아닙니다. 이미 이집트의 파라오 때부터 있었던 일인데 모든 제국이 다 공통적으로 그러했습니다. 큰 환란 때 짐승 역시 그러합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이 모든 왕국의 종교는 고대 바빌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 왕국의 종교는 거의 비슷합니다. 이는 그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는 신화나 전설이 거의 비슷하며 종교 체계가 동일합니다.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지 못하도록 여자의 씨를 제거하려는데 전력했던 것입니다.
여자와 그 씨를 없애는 일은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사탄의 제일 사역입니다. 간혹 왜 성경에는 중국이나 몽고의 징키스칸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나오지 않는가? 이스라엘을 멸하려 했던 다른 나라들은 왜 언급하지 않는가? 질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예루살렘의 교회를 모두 흩어 버렸습니다. 그 때부터 큰 환란 때까지 이스라엘은 성경 예언의 중심이 아닙니다. 또한 중세나 근대, 요즘 일어나는 어떤 반(反) 유대 정책 등은 성경의 예언의 대상이 아닙니다.
11절입니다.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곧 여덟째며 그 일곱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느니라.](계17:11).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은 곧 여덟째라고 합니다. 일곱째 왕국이었던 적그리스도의 왕국은 그의 죽음으로 잠시만 유지됩니다. 10절에서 “그가 오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물리라.”(10)란 말씀은 그가 큰 환란 중에 큰 부상을 당해 죽은 자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왕국은 일단 끝이 납니다. 그는 다시 살아나지만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다시 나타나는데 전에 있었던 그 왕으로 동일 인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는 그 짐승”(11)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여덟째이면서 그 일곱에 속한 자입니다. 일곱째와 여덟째는 동일 인물로서 일곱째 왕이 죽음을 통해 끝이 나고 다시 그가 나타남으로 여덟째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성경이 무슨 말장난 같이 여겨지고 무슨 뜻인지 난해하기만 합니다. 그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느니라.”(11). 이는 그가 처음부터 멸망의 아들이요, 주님께서 그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12절입니다. [네가 본 열 뿔은 열 왕인데 그들이 아직 아무 왕국도 받지 못하였으나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으로서 권능을 받으리라.](계17:12).
천사는 요한에게 여자가 탄 짐승의 신비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홍색 짐승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 개인데 열 뿔은 “열 왕”이라고 말합니다. 머리는 일곱인데 뿔은 열 개입니다. 뭔가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요한이 본 열 뿔 즉 열 왕은 아직 아무 왕국도 받지 못했습니다. 왕국이 없는 왕입니다. 왕으로 내정되어 있긴 한데 아직 다스릴 왕국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 왕국을 주는 이가 누구입니까?
“...... 그 짐승과 더불어 한 시간 동안 왕으로서 권능을 받으리라.”(12).
그 짐승에게 권능을 주는 용이 왕들에게 왕의 권능을 부여 합니다.
열 뿔에 대한 환상은 이미 다니엘이 받아서 충분히 기록해 두었습니다(단7:7,20,24). 열 뿔은 짐승의 머리에서 난 뿔이므로 이들은 짐승과 함께 권능을 받고 함께 통치합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권능을 짐승에게 넘겨주는 일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3절입니다. [이들이 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능과 힘을 그 짐승에게 주리라.](계17:13).
열 왕은 한 생각을 가지고 자신들의 권능과 힘을 그 짐승에게 줍니다. 열 왕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 군사력을 포함한 왕권을 짐승에게 줍니다. 이로써 지상의 주요 권력을 모두 소유한 짐승은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일대 전쟁을 치를 수 있게 됩니다. 빌립보서 2:1-4을 보십시오.
우리는 열 왕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