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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브리서 3장 12~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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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는 믿음을 무척이나 강조합니다. 특히 믿음을 버리고 변절하거나 변개된 거짓 믿음으로 큰 소리만 치다가 배교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고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거짓과 불의, 불순종이 낱낱이 드러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계속해서 선포 합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 중에 대표적인 두 구절을 보겠습니다. 먼저 히브리서 6장 3~6절입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아멘.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매일 같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사는 사람들이 심판 날에 무사할리가 없습니다. 성령 받았다, 말씀에 은혜 받았다, 기도가 응답 되었다, 이런 것들이 신앙 생활의 최종 결과가 아닙니다. 매일 같이 회개하고 거룩함으로 살아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 한 구절은 너무나 잘 아시는 히브리서 4장 12, 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아멘.
길어도 이 말씀은 다 외우시고 순간 순간 기억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숨기고 살아가려고 해도 감출 것이 없는 드러나는 날, 곧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에 대한 두려움, 심판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데 큰 유익이 됩니다.
히브리서를 자주 읽으시면 구원 받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 앞에 늘 겸손하시고, 내게 주신 구원의 기회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잘 이루어 가셔서, 회개하고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순종하고,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도 믿음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씀 하고 있습니다. 본문 12, 13절을 읽어 드립니다.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아멘.
히브리서 3장 1절 에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순절이든 혹은 대림절이든 절기를 앞에 두고 준비하는 기간에 이 말씀이 많이 인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야 하는 이유에는 좋은면과 나쁜면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면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함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나 죽으나 항상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예수님에 대한)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하나님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집 앞까지 직행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좋은 면들입니다.
하지만 나쁜면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오류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완고합니다. 그래서 자주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마치 40년 광야 생할 동안 하나님을 수시로 시험하려했던 자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아서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쉽게 미혹되어 생명의 길이 어느 방향인지 분간하지 못합니다. 천국길로 나아가기는 커녕 역주행을 일삼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11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노를 사게 되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12, 13절은 이렇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연장 선의 이야기이며 안식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나쁜 면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진단을 내리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합니다. 이 말씀에 내 신앙생활의 현재를 대입해 보면, 내가 현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12절에는,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진단 합니다. ‘악하다’라는 단어는 불신앙을 포함한 신앙의 결핍이 심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믿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과, 교회와, 목사와, 성도를 향해 적대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좀 더 현실적인 사례들로는 신실하신 하나님과 대비되는 불성실한(무 헌신, 무 봉사, 무 의무) 신앙, 위선적이고 가식으로 포장된 보여주기식 신앙, 가증스럽고 거짓으로 꾸며진 속이는 가짜 신앙을 말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믿지 아니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결말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나무에 붙은 가지들인데 떨어지면 말라서 버려지고 아궁이에 던져지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은 날카로운 면도칼로 자기 몸과 영혼을 자해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던 것이 무척이나 실감이 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 분리된다는 것은 그토록 많은 기회를 다 날려 버리고 회복이 불가능한 멸망의 길에 추락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긍휼과 자비가 없는 진노만 남은 상태입니다.
자, 이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은 불신자에게만 나타나는 특이 현상이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서 누룩이 들어간 밀가루가 부풀어 오르듯 언제든지 자라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 상태는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자기가 어느 정도의 마음 상태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한 번 진단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성실한 사람인가? 맡겨진 일에 묵묵하게 헌신과 봉사와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기분 좋으면 하는 척 하다가도 기분 나쁘면 무조건 안해 버리는 나쁜 습성은 없는가? 하나님 보다는 사람을 의식하여 외식하는(가식적인) 바리새인과 같지는 않은가?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 안에서는 점잖은 척 하면서 밖에 나가서는 음란하고, 허랑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이미 내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로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이 아니라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살아 있다면, 죄, 거짓, 불법, 불순종, 음란, 허랑방탕함을 모를리 없습니다.
아직은 그래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간당간당하게라도 붙어 있는 상태라면 하나님은 나의 그런 악한 마음에 경고를 보내시고 그것들에 엄청난 진노를 품어내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모를리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설교의 선포를 통해 그런 경고와 진노를 엄중하게 말씀 하여 주시기 때문에 “나는 못 들었다, 나는 몰랐다”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 나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이 악한 마음을 어떻게 돌이킬 수 있겠는가? 그에 대한 해답이 13절에 나옵니다. 읽어 드립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아멘.
악한 마음을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이키는 방법은 간단 합니다. 오늘 하루에 충실하면 됩니다. 오늘 하루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우리의 삶을 더럽히고 거룩과 경건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의 유혹입니다. 사탄, 마귀, 귀신은 수단과 방법을 총 동원해서 죄의 씨앗을 뿌리면서 우리가 유혹에 걸려 넘어지도록 작업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들을 걱정 하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절히 부탁하시며 중보 기도 하시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5)라고 하셨습니다. 얼마전에 설교 내용이라 기억 하실 겁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죄에서, 악에서, 거짓에, 불순종에, 불법에, 허랑 방탕에, 음란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시며 간절하게 중보 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내 스스로가 하루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이러한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 하루 제 연약한 몸과 마음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이 지켜 주시고 보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내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의 주인, 나의 왕,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매일 하루의 첫 시간에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이 기도문은 제가 책상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드리는 하루 일과의 시작 기도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기도하시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셔서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과 생각으로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내도록 지켜 주실 것입니다.
매일 같이 요청하지 않기 때문에 악에 빠지는 겁니다. 13절에서는 죄의 유혹으로 완고한 마음이 되지 않게 매일 매일의 삶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 이것은 제가 백 번 천 번이라도 강조하고 싶은 말이며, 우선 제 자신이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원칙으로 갖고 가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늘만 있습니다. 내일가서 100점 맞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여 1점을 얻으십시오. 그 1점 1점이 쌓여서 100점이 되고 1000점이 됩니다.
불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천지개벽하는 일이 벌어져서 단 한 번에 엄청난 믿음의 성과를 이루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일 하지 뭐”라고 계속 미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믿음이 왕창 생겨서 모든 일을 순신간에 처리하는 경우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루를 충실하게 살면,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1년이 되고, 1년이 인생이 되는 겁니다.
하루가 불성실 하면 점점 마음이 완고하게 되어가고, 악한 마음이 쌓이게 되고 진노를 받아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는 겁니다. 매일의 삶에 집중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려면 모든 일에 앞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면 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악에서 보전하여 주옵소서”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남의 집을 방문하든지 어느 장소를 가든지 엉덩이 붙이고 앉자 마자 축복 기도부터 하시고, 물 한잔 이라도 내 입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감사 기도부터 하시고,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혹시 그 사람이 미운짓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뒤에가서 시원하게 욕이나 한 사발 하시지 마시고 불쌍한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하나님께 전달해 주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기도는 실패가 없으며, 기도하는 자는 완고해 질 리가 없으며, 기도로 살아가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매일 매일 기도하며 살아가는 순간이 쌓이고 쌓여 심판 날에 우리 주님은 그 모든 기도의 내용들을 기억하시고 칭찬해 주시며 천국으로 들어가라고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몰아서 하면 된다는 것은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매일 매일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내게 허락한 매일 매일의 삶에 충실 하시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2, 13절을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되는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 무엇인지 진단해 보았고, 죄의 유혹을 이기고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중요성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4절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결단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읽어 드립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아멘.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이며,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그 구원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에수님으로 인하여 시작되었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장해 가고 있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심으로 종료가 될 것입니다.
14절 말씀은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 되시고,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분이심을 새삼스럽게 강조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붙잡았던 예수님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참 믿음이라는 것도 새삼 강조합니다.
누구나 시작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모르게 악한 마음이 생기고, 완고해지고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불순종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처음 시작할 때 붙잡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지 못하고 놓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14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한 예수님을 끝까지 붙잡고 놓치지 않는 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천국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 합니다. 다 아는 것 같은 이 말씀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도 항상 예수님, 해답도 항상 예수님만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사랑 이야기의 정점은 예수그리스도 이시죠. 구원자가 이땅에 오실 것이다, 구원자가 이 땅에 오셨다, 구원자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 하셨다, 구원자가 이땅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이다, 구원자가 영원히 다스리는 나라가 있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 전부입니다.
그 구원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어도 살아나겠고, 살아서 믿게 되면 영원히 죽지 않는 다는 것을 믿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믿음’입니다.
오직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는 말씀이 있는한 구원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구원, 믿음이라는 이 영원하고 단순한 진리는 지켜가기가 매우 힙듭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믿음이 생성되는 과정에서는 폭발적인 부흥과 열기로 가득 찼으나 점점 믿음이 약화 되고 소멸 되어가고 급기야는 믿음을 저버리고 배신하고 타락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 번 누가복음 18장 과부와 재판장 비유의 설교에서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종말의 때가 가까울수록 믿음 있는 자보다 믿음 없는 자들이 득세 할 것이고, 믿음을 말하는 자보다 믿음 없는 말을 하는 자들의 세력이 훨씬 강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날 겁니다.
아니 이미 그런 세상이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 되고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세상이 온통 이렇다 보니 믿음 없는 말들, 가짜, 비진리, 인본주의적 가치관, 말 잘하는 사람의 자기 생각과 주장들이 마치 진짜 믿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어서 작은 일에 충성하고 묵묵하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점점 무시 당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심판자이신 예수님의 기억 속에는 순종과 진실과 사랑과 믿음의 행위들을 한 사람들의 결과 만을 기억 하신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 드린 매일 매일의 최선의 결과가 쌓이면 그것들을 예수님이 기억하시고 판단하실 것입니다. 심판자가 기억하시지 않는 것들은 전부 진노의 불에 타 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끝까지 예수 이름을 붙들며 살다가 천국에 참여 하는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 눈물과 수고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듣기만 하여도 감동이 오고 눈물나지 않습니까? 아멘, 또 아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이라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작도, 과정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직 예수님을 놓치지 말고 견고하게 붙잡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점점 소홀해지는 연약함 믿음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히브리서가 쓰여진 것이고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결단의 말씀으로 선포 되고 있는 겁니다.
완고하고 교만하고 불순종하고 게으르고 나태하여만 가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 처음 시작 출발점인 예수 그리스에게 집중하게 하고, 그 분만을 나의 주인으로 견고하게 붙잡고 따르게 하는 기회와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천국가기 싫거나 귀찮은 분은 없으시죠? 천국 가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소망이자 가장 큰 소망입니다. 그렇다면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실 뿐 만 아니라 동행하여 주시고, 중보 하여 주시고, 천국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너무 쉽게 놓치고 있지 않은지, 세상에 즐길거리, 만날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전부 놓치고 있지 않은지, 죄와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시고 악에서 보전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오늘도 놓치고 있지 않은지 오늘 말씀을 기점으로 여러분 자신의 믿음과 신앙생활을 잘 살펴 보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라”는 이 감격과 은혠의 말씀이 나에게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매일 매일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거룩함과 진실함을 지켜 나가는 예비된 천국 백성의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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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리에게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이 시작 되었으니, 그리스도에 참여한 자가 될 때까지 견고한 믿음으로 예수 이름을 굳게 붙들며, 인내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