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사람과 달리 하나님의 돌봄과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할 때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사람과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 '반려'라는 단어는 사람에게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아닌 '애완동물'이라고 불러야 한다. ... "신약에서 '반려'라는 단어는 평생 함께 가는 사람에게만 쓰인다. 동물에게 반려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은 성경의 용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첫댓글안타깝지만 반려동물, 반려견, 반려식물 등 '반려'라는 용어를 흔하게 갖다 붙여버렸네요. 기독교인들 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용어 사용을 해야지요.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하는 행위이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복종하지도 않는 인간과 동물이 다수이며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인간이 하는 행위를 이해하거나 따라하기도 어려운데 같이 예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 없는 일이죠.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로서 영적 존재라는 사실과 도덕적 진실성과 종교적 성결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 및 하나님게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을 당신과의 대화와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엡 4:23,24; 골3:10). 성경은 결코 인본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만큼 인간의 가치를 높이 주장하는 사상은 아무 데도 없다. 이것은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할 때에만 올바로 파악되어 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런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잃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 위에 오셨다(골 1:15).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이다(롬 8:29).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하등 피조물들, 곧 바다의 고기와 공주의 새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인간은 비록 준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도 양자를 다스릴 권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서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 를 받았다. 땅에 움직이는 생물은 보다 더 인간의 손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의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영광을 주시려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그의 의무를 강하게 깨닫게 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권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소멸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해서 인류의 후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시켜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에게 피로 인하여 그들이 상실하였던 것보다 더 좋고,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그들의 칭호를 주셨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3:22).
인생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을 알게도 되고 섬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만물을 탐하여 만물의 종이 되어 그것들을 섬길 때에는 어두워지고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
<박윤선 주석>, “창 1:27,28,29,3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명(使命)을 주셨다. 곧, 그들로 하여금 그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땅을 정복하며 자연계를 다스려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시켜려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1) 인간으로 말미암아 자연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임. 시 8:6-9을 보면 인간이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다. 곧,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9)라고 하였다. (2)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복속케 하려는 것임. 그는, 만물 지배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 바칠 제물도 소유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그는, 만물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을 알며 섬기는데 힘을 얻는다. (3) 또한 그것은 자연계에
매이지 않고, 또한 섬기지도 않고, 그것들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피조물을 섬기거나 또는 그것들에게 끌릴 때에 하나님과는 멀어진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피조물을 정복하며 초월할 때에 하나님과 가까와진다. 이렇게 인생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을 알게도 되고 섬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만물을 탐하여 만물의 종이 되어 그것들을 섬길 때에는 어두워지고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첫댓글 안타깝지만 반려동물, 반려견, 반려식물 등 '반려'라는 용어를 흔하게 갖다 붙여버렸네요.
기독교인들 만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된 용어 사용을 해야지요.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하는 행위이고,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복종하지도 않는 인간과 동물이 다수이며 거역을 하고 있습니다.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인간이 하는 행위를 이해하거나 따라하기도 어려운데 같이 예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어이 없는 일이죠.
네, 교인들 중에 뭘 모르고 하튼 생각하는 분들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감합니다.
<호크마 주석>, “창세기 1장”.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로서 영적 존재라는 사실과 도덕적 진실성과 종교적 성결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 및 하나님게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을 당신과의 대화와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엡 4:23,24; 골3:10). 성경은 결코 인본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만큼 인간의 가치를 높이 주장하는 사상은 아무 데도 없다. 이것은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할 때에만 올바로 파악되어 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런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잃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 위에 오셨다(골 1:15).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이다(롬 8:29).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 하여도 그것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전 13:12).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들어 주시는 날, 즉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날(고전 15:52)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참모습이 밝히 회복될 것이다<창 2:4-7, 인간의 기원>.
@장코뱅 네, 잘 읽었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 “창세기 1장”.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인간에게 하등 피조물들, 곧 바다의 고기와 공주의 새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인간은 비록 준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도 양자를 다스릴 권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서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 를 받았다. 땅에 움직이는 생물은 보다 더 인간의 손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의 보호를 받는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영광을 주시려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그의 의무를 강하게 깨닫게 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권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소멸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해서 인류의 후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존시켜 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에게 피로 인하여 그들이 상실하였던 것보다 더 좋고,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그들의 칭호를 주셨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3:22).
네. 동물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반려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을 알게도 되고 섬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만물을 탐하여 만물의 종이 되어 그것들을 섬길 때에는 어두워지고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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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주석>, “창 1:27,28,29,30”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사명(使命)을 주셨다. 곧, 그들로 하여금 그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땅을 정복하며 자연계를 다스려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독립시켜려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1) 인간으로 말미암아 자연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임. 시 8:6-9을 보면 인간이 만물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다워진다고 하였다. 곧,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 8:9)라고 하였다.
(2)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욱 복속케 하려는 것임. 그는, 만물 지배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 바칠 제물도 소유한 제사장이 되어진다. 그는, 만물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을 알며 섬기는데 힘을 얻는다.
(3) 또한 그것은 자연계에
매이지 않고, 또한 섬기지도 않고, 그것들을 지배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피조물을 섬기거나 또는 그것들에게 끌릴 때에 하나님과는 멀어진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으로 피조물을 정복하며 초월할 때에 하나님과 가까와진다. 이렇게 인생이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릴 때에 하나님을 알게도 되고 섬기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만물을 탐하여 만물의 종이 되어 그것들을 섬길 때에는 어두워지고 또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장코뱅 박목사님의 주석은 번역이 아니라서 그런지 읽기에 진짜 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