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을 읽고-
헤세의 작품 중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책은 ‘지와 사랑’이다. 수도원의 절제된 생활, 예술을 추구하는 인간 내면의 오묘한 갈등, 이성과 감성,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도 수도원의 나르치스를 동경하며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골드문트, 수도원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배경을 상상하며 감상의 세계에 들어가 본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만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지만 절제하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골드문트는 수도원을 탈출하여 많은, 여자들을 만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마을 성당에서 본 마리아상에 이끌려 그 상을 만든 조각가 니클라우스를 찾아가 조각을 배우게 된다.
골드문트는 스승 니클나우스에게 조각을 배우면서 요한 상을 조각하게 되는데, 어느 날 그는 조각상을 보고 깜짝 놀란다. 요한 상의 모습이 다름 아닌 나르치스 였던 것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친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오랜 방황 속에서도 그는 친구 나르치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나 도중에 총독의 애첩인 아그네스를 만나게 되고, 그 후 니클라우스 스승에게 다시 돌아가 보지만 스승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는 또다시 아그네스를 찾아가지만 그만 총독에게 들키고 말아 감옥에 갇힌다. 감옥 속에서 심판관을 만나는데, 골드문트는 심판관을 보고 깜짝 놀란다. 심판관이 다름아닌 마리아브론 수도복을 입은 나르치스였던 것이다. 나르치스는 마리아브론 원장으로 죄의 심판을 맡게 된 것이다. 나르치스는 친구의 죄를 사하여 주고 수도원으로 데려온다. 수도원에서 골드문트는 두 시간 동안이나 그동안 살아온 긴 고해를 한다. 나르치스는 친구에게 수도원 옆에 조각상을 만들 일터를 마련해 주고, 골드문트는 그곳에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수도원에 놓일 조각작품을 만들어 낸다.
어느 날 니클라우스 스승을 만든 작품을 본 나르치스는 대 감탄을 한다. 그 후 그는 또다시 수도원을 떠나 많은 시련을 겪으며 방황하지만 결국, 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와 그의 마지막 작품인 마리아상을 완성 시킨다. 그는 마리아상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오랜 방랑 생활과 고생으로 병을 얻어 그만 병상에 눕는다. 병상에서 나르시스가 수도원에서 원장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과, 골드문트가 수도원을 떠나 온갖 고생과 많은 여인을 만나게 된 것, 그리고 조각을 하게 된 일 등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서로 길은 달랐지만 그들의 삶에 부여된 참뜻은 하느님을 통해 찾는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 두 사람의 일생은 극히 대조적이다. 냉철한 이성과 자제력으로 수도원 속에서, 금욕생활을 하며 신에 봉사하는 성직자 나르치스, 그야말로 자유로운 인간이기를, 갈망하고 사랑을 추구하는 예술가 골드문트, 나르치스는 ‘지’이고 골드문트는 ‘사랑’이다. 그것은 그들의 인생에서 추구한 것이다.
몇 번이고 수도원을 나가 방황하다 돌아오는 친구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내면 깊이 친구를 사랑할 줄 아는 것, 그것은 친구의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골드문트의 방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가 만든 최후의 조각작품 마리아상이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그가 병상에서 죽어가면서 나르치스에게 한 말이 있다.
“나르치스, 자네가 만약 어머니를 갖고 있지 않다면 한번은 죽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죽을 작정인가. 어머니가 없어서야 사랑을 할 수, 있느냐 말이야. 어머니가 없어서야 죽을 수가 있느냐 말이야.”
골드문트는 그 자신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사랑을 표현할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것을 자신의 재능인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승에게 조각을 배우고 기쁨을 찾으면서도 진정한 무엇인가를 늘 갈망한다. 방랑 생활은 그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최후의 작품인 마리아상은 그가 추구한 인간의 사랑(어머니)에 그가 찾던 신앙(성스러운 마음)의 융합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참다운 예술을 찾고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지’는 우리가 세상을 참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진리이고, ‘사랑’은 마리아상에 표현된 삶에서 추구하는 진정한 알맹이다. 즉 마리아상은 ‘지와 사랑’의 결합이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우정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래서 그 우정이 더 아름답고 숭고했을 것이다.
첫댓글 황 작가님 설날 아침입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