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로 읽는 東洋古典
君 子
安秉煜
論語의 처음은 君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은 君子로 끝난다.
君子는 論語의 알파(α)인 동시에 오메가(Ω)다. 君子란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君子가 될 수 있는가를 밝힌 것이 論語다.
君子는 論語의 中心槪念이다. 君子는 孔子가 創出한 理想的 人間像이다. 공자는 우리에게 君子라고 하는 새로운 人間型을 提示했다.
世界의 文明圈마다 이상적 인간상이 있다. 西洋文明圈의 이상적 인간상은 gentleman 紳士요, 印度文明圈의 이상적 인간상은 brahman 바라문이요, 中國文明圈의 이상적 인간상은 君子이다.
論語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은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學而篇)
이고, 論語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은
不知命 無以爲君子也(堯曰篇)
이다.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不平不滿하지 않고 泰然自若하게 살아가면 또한 君子가 아니겠느냐. 남이 나의 뛰어난 才能과 人格을 認定해주지 아니할 때 인간은 不快感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조금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悠悠自適하면서 堂堂하게 살아가는 것이 君子다.
論語의 마지막 문장. 命을 알지 못하면, 하늘이 나에게 맡긴 人生의 使命을 깨닫지 못하면 君子라고 할 수 없다. 자기에게 賦與된 사명을 자각하고 그 길을 始終一貫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君子다운 태도다.
論語에는 君子라는 말이 66回가 나온다. 글자의 頻度數가 높다는 것은 그 말의 重要度를 의미한다. 君子란 무엇이냐. 學識과 德行이 뛰어난 사람이다. 度量이 넓고 人品이 훌륭한 사람이다. 군자의 英語의 번역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a superior 또는 a moral man이라고 한다.
君子의 反對인 小人은 低俗한 사람, 度量이 좁고 간사한 사람이다. 영어 번역은 an inferior man 또는 a mean man이다.
君子는 人格이 탁월한 사람이요, 小人은 인격이 卑劣한 사람이다. 군자는 뛰어난 良質人이요, 小人은 비열한 低質人이다. 君子는 사람다운 사람이요, 小人은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다. 君子는 成熟人이요, 小人은 未熟人이다. 孔子는 論語의 여러篇에서 君子와 小人을 서로 對比하여 여러 가지로 說明했다. 그 중에서 중요한 것만 몇 句節 풀이하기로 한다.
子曰 君子 喩於義 小人 喩於利(里仁篇)
군자는 義에 밝고 小人은 利에 밝다. 喩는 깨우칠 유, 좋아할 유다. 義에 밝고 義를 좋아하는 것이 君子요, 利에 밝고 利를 좋아하는 것이 소인이다. 利냐, 義냐. 君子는 道義를 먼저 생각하고, 小人은 利得을 먼저 생각한다. 군자는 그 일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인생의 正道와 順理에 맞는가 안 맞는가를 중시하고 利보다 義를 취한다. 義가 利에 優先한다. 그러나 소인은 그 일이 내게 利益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義보다 利를 취한다.
利와 義, 돈과 正義, 경제적 利益과 道德的 信義 어느 것을 取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人格과 行動이 달라진다.
義는 인생의 기둥이요, 나라의 등뼈요, 사회의 正道다. 우리는 義라는 萬世盤石위에 인생의 집을 짓고, 사회의 집을 짓고, 나라의 집을 지어야 한다. 인간이 利의 노예가 되고 돈의 포로가 되고 황금의 종이 되어 物慾에 사로잡힐 때 인간은 파탄과 不幸의 나락으로 전락한다.
인간의 마음은 利와 義, 慾心과 良心의 치열한 싸움터다. 욕심이 양심을 누를 때 惡이 생기고, 양심이 욕심을 이길 때 善이 실현된다. 우리는 利에 밝은 사람이 되지 말고 義에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子曰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子路篇)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남과 協同을 하지만 附和雷同하지는 않는다. 소인은 남과 附和雷同하지만 협동하지는 않는다. 同과 和는 서로 비슷하지만 다르다. 同은 한가지 동이요, 부화뇌동하는 것이요, 뚜렷한 主體性과 確固한 主張이 없이 남의 말에 맹목적으로 追從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同은 자기의 主見이 없이 劃一的 行動을 하는 것이다. 和는 남과 和睦하고, 親和하고, 協同하고, 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和而不同의 代表的인 實例는 交響樂이다. 교향악을 보라. 모든 樂士와 樂器가 저마다 다르고 제각기 소리를 내지만 내 소리가 남의 소리를 妨害하지 않고 여러 소리가 서로 아름다운 調和와 協同을 이루어 音樂이라는 위대한 美와 價値를 창조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우리는 심포니와 같은 사회, 교향악과 같은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사회의 모든 국민과 여러 階層이 저마다 제 소리를 내고 자기의 사상과 意見을 주장하지만 남을 妨害하거나 侵犯하지 않고 서로 협동과 調和를 이루어 共生共榮하는 사회,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다.
그것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가 다 잘사는 協同社會다. 이것이 우리가 건설해야할 理想社會의 모델이다.
君子는 和而不同하고 小人은 同而不和한다. 民主主義 사회는 어떤 사회냐, 和而不同의 사회다. 和而不同은 社會生活의 大原則이요, 共同社會의 金科玉條다.
子曰 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子路篇)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泰然自若하고 마음이 너그럽지만 결코 驕慢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교만하기만 하고 마음이 너그럽고 泰然自若하지 못하다. 泰는 클 태요, 편안할 태요, 너그러울 태다. 驕는 교만할 교요, 放恣할 교다. 泰는 태연하고 당당하고 여유가 있고 沈着한 것이다.
君子는 靑天白日처럼 光明正大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태연하고 여유가 있다. 小人은 항상 마음이 좁고 옹졸하기 때문에 태연하지 못하고 교만하다.
泰然과 驕慢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泰然은 당당하고 늠름하고 自信感이 있고 떳떳한 것이다. 교만은 공연히 잘난 체하고 뽐내고 放恣하고 건방진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對人關係에서 남에게 不快感을 주고 反感을 산다. 태연한 사람은 대인관계에서 자연스럽고 자신감을 준다.
子曰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衛靈公篇)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일이 잘 안될 때에 그것을 내 탓이요, 나 때문이요. 原因과 責任이 내게 있습니다 하고 자기를 반성한다. 그러나 소인은 그것을 나 때문이 아니고 남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책임과 원인을 남에게 돌리고 스스로 反省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남의 탓이요,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責任回避요 責任轉嫁다. 일의 잘못은 나의 탓이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責任堪當이요, 責任甘受다. 모든 일의 책임과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남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君子와 小人의 차이가 생긴다.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처럼 용감하고 堂堂하고 男子다운 것이 없다. 일찍이 독일의 위대한 哲學者 칸트는
人格이란 무엇이냐, 責任能力이다.
라고 갈파했다. 人格은 人間다운 資格이다. 사람의 사람다운 자격이 무엇이냐, 스스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이다. 스스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 無責任한 사람은 人格다운 자격이 없는 것이다. 人格의 核心은 責任 能力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淸末의 위대한 思想家 梁啓超 先生은
책임을 자각하는 것이 人間의 始作이요, 책임을 完遂하는 것이 인간의 끝이다.
라고 말했다. 세상에 책임의 自覺과 完遂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책임감의 有無가 곧 人格의 尺度다. 君子와 小人의 차이를 孔子는 1) 義에 밝은 가, 利에 밝은가. 2) 和而不同한가, 同而不和한가. 3) 泰然한가, 驕慢한가. 4) 責任感이 있는가, 없는가를 基準으로 나누었다.
우리는 小人의 자세를 버리고 君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人格에 도달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