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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일학교 장년교과 보충교재(Ellen G. White Notes/예언의 신 인용구들)
(1) 이 보충교재(Supplemental EGW Notes)는 대총회가 매기 안교 장년교과와 함께 제공하는 자료이며, 매일의 교과 내용과 연결하여 살핌으로 새로운 통찰력과 관점을 얻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 관련 ‘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발췌한 것입니다.
* 교재명: Ellen G. White Notes for the Sabbath School Lessons
# 한글파일: 예언의 신 인용구들을 한글판으로 바꾼 것(한글 번역본이 없는 경우는 게시자가 번역).
(2) [활용방법] 매일 교과 내용을 공부한 후, 그날에 해당하는 부분을 연결하여 묵상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2024년 2기 – 대쟁투>
제2과 중심 주제: 사랑인가? 이기심인가?
('The Central Issue: Love or Selfishness?')
<4월 6일/안, 서론>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국가적 분쟁과 파멸 속에서, 제자들은 발걸음이 위험에 휩싸이면서 때때로 마음이 공포로 압도당할 것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황폐되고, 성전이 무너지고, 예배가 영원히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황량한 해안에서 파선된 것처럼 모든 나라로 흩어지는 것을 볼 것이었다. 예수님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고)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태복음 24장 6-8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소망이 사라졌다거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버리셨다는 생각으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었다. 권세와 영광은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의 완성을 위하여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꾸준히 움직이시는 분에게 속해 있다. 매일의 필요를 아뢰는 기도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모든 죄악의 권세와 지배를 초월하여 만유를 다스리는 나라를 소유하시며 그들의 아버지와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주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보훈, 120)
◎ 마태복음 24장은 세상에 일어날 일에 대한 개요를 제시한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위험 속에서 살고 있다. 죄로 멸망하는 사람들이 경고를 받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재물의 달란트를 맡기신 모든 사람에게 그분의 사업 발전을 위해 돈을 기부함으로 그분의 도움의 손이 되기를 요청하신다. 우리의 돈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빌려주신 재물이며, 세상에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투자되어야 한다.
세상의 것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사람, 세상의 재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소비하는 사람은 참으로 잘못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너무 늦게 그는 자신이 믿었던 것이 먼지가 되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영원한 부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자기 부정과 세상의 재물을 희생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많은 환난을 통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안식을 주실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끊임없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바쳐야만 그는 영원토록 지속될 유업을 확보할 수 있다. (This Day With God, 152).
◎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마치 순간의 일처럼 말씀하셨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며 한순간의 침묵과 어두움에 불과한 것이다.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요 8:51~52; 골 3:4)날 것이다. …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킨 그 동일한 능력이 그분의 교회를 일으키실 것이며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모든 주권과 모든 권세와 모든 이름 위에 그분과 함께 그 교회를 뛰어나게 하사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소망, 787)
<4월 7일/일, 상한 마음의 구세주> 예언의 신 보충자료
◎ 민족의 영광인 이 장엄한 성전이 곧 폐허의 무더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불길한 전조는 제자들도 함께 느끼게 되었으며 그들은 예수님의 더욱 분명한 말씀을 고대하였다. …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분의 재림의 큰 날을 따로 분리하여 제자들에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이 두 사건을 섞어서 말씀하셨다. 만일 예수께서 그분께서 보신 대로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셨다면 그들은 그 광경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분은 두 큰 위기를 섞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스스로 그 뜻을 연구하도록 하셨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셨을 때 그분의 예언 말씀은 그 사건을 넘어 주께서 일어나사 세상의 죄를 심판하실 … 그 최후의 날의 사건에까지 미쳤다. 이 모든 말씀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도 주어졌다. (소망, 627~628)
◎ 오늘날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멸망을 가져온 바로 그 죄이다. 즉 하나님께 감사치 아니하고, 기회와 축복을 등한히 여기고, 하나님의 선물을 이기적으로 사용하는 죄로서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게 한 죄이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죄들이 이 세상에 멸망을 가져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감람산 위에서 택하신 성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흘린 눈물은 예루살렘만을 위한 눈물이 아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통해서 이 세상의 멸망을 내다보셨다. …
이런 위기에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
인류는 위기에 처해 있다. 허다한 무리가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 몇이나 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애타는 심정을 가지고 있는가? 세계의 문명이 저울대에 걸려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일찍이 인류에게 주신 가장 원대하고 엄숙한 진리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의 마음까지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하늘 집을 떠나서 인성을 취하고 인간과 교제하심으로 인성을 신성에 이끌리도록 하신 그 크신 사랑이 그들에게는 부족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각이 둔하고 마비 상태에 있으므로 그것이 그들로 현시대의 의무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실물, 302~303)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에게서 우리의 비애에 대한 위안을 찾을 수 없음을 아시고, 너무나 궁핍하지만 그분을 우리의 동반자, 우리의 짐을 지는 자로 삼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분은 인간이 자신들에게 베푸신 사랑과 자비를 경시하는 것을 보시고 슬퍼하시며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말씀하신다. …
그분은 그분께 오는 사람들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배신당하고 잊혀지기를 바라기만 하다가 지친 가난하고 기진맥진한 영혼을 향해 그리스도께서는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라고 말씀하신다. (This Day With God, 23).
<4월 8일/월, 섭리로 보존된 그리스도인들>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 세상을 무너뜨릴 마지막 파멸의 상징이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부분적으로 성취된 예언들이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 직접적으로 적용된다. 우리는 지금 크고 엄숙한 사건 바로 앞에 서 있다. 세상이 한 번도 목격한 일이 없는 위기가 우리 앞에 와 있다. …
하늘의 주권자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대한 이해관계와 마찬가지로 나라들의 운명도 친히 주관하신다. 거룩한 교사께서는 그분의 계획을 성취함에 고레스에게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모든 대리자에게“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사 45:5)라고 말씀하신다. (보훈, 120~121)
◎ 선지자 에스겔이 이상을 보았을 때, 그룹 천사의 날개 아래 손이 나타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그분의 능력임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자로 사용하는 자들은 그분의 사업이 그들에게 달려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막중한 책임은 유한한 자들이 지게 되어 있지 않다. 졸지 아니하시는 분, 그분의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고 계시는 분께서 그분 자신의 사업을 추진시키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악한 자들의 목적을 좌절시키시며 그분의 백성들을 해치려고 모의하는 자들의 계획에 혼란을 일으키실 것이다. 왕이시며 만군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고 국가들의 투쟁과 소요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분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하늘에서 통치하시는 분이 우리의 구주이시다. 그분은 모든 시련을 헤아리시며, 모든 영혼이 반드시 들어가 시험받아야 할 풀무의 불을 주시하신다. 왕들의 요새가 무너지고 분노의 화살이 하나님 원수들의 가슴을 꿰뚫을 때도, 그분의 백성들은 그분의 손에서 안전할 것이다. (보훈, 121)
◎ 암흑과 미신의 장구한 세기를 내려다본 노령의 유배자는 진리에 대한 그들의 사랑 때문에 순교를 당하는 많은 무리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또한 그분의 초기의 증인들을 붙들어 주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이 이르기 전에 그들이 통과하여야 할 여러 세기의 박해 동안에 그분의 충실한 추종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보았다. 주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그리고 요한은 죄악과 투쟁하고 있는 충실한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이 주어지는 것을 들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2:7, 3:5, 21). (행적, 588-589)
<4월 9일/화, 박해 가운데 충성함>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밀어닥친 핍박은 복음 사업을 크게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곳에서 말씀 사역에는 성공이 따랐으므로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라는 구주의 사명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곳에 너무 오래 머무를 위험이 있었다. 그들은 악을 저항하는 능력을 얻는 최고의 비결은 적극적인 봉사 활동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지키는 일만큼 중요한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새로 개심한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대신, 이미 성취한 일에 만족하도록 모든 사람을 이끄는 위험에 빠져 있었다. 그분의 대표자들이 국외로 흩어져 거기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허락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신자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다.(행적, 105)
◎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그처럼 빛나고 충성스럽게 증언했다면 여러 세기 동안 누적된 빛의 비추임을 받은 자들은 진리의 능력에 대하여 더욱더 현저한 증거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영광스러운 예언의 빛이 우리의 길에 그 빛을 비추고 있다.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으로 예표는 원형과 만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빌려 쓰신 무덤을 향하여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로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셨다. 그분은 이적의 능력으로 각 시대를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보존하셨다.
항의를 통하여 개신교란 이름을 낳게 했던 개혁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을 행하기 위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와 자유와 그리고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였다. 박해와 죽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원근에 선포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백성에게 전달되어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학식 있는 자나 무지한 자나 할 것 없이 모든 계급이 스스로 이것을 열심히 연구하였다. 이 대쟁투의 마지막 투쟁에 우리는 초기 개혁자들처럼 우리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지, 626~627)
◎ 악인의 손에 의인이 핍박받는 일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 많은 사람에게 당혹감을 가져다준 문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에게 충분한 증거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깨달을 수 없다고 하여 그분의 자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구주께서는 어두운 시련의 때 제자들의 마음에 의혹이 생길 것을 미리 아시고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요 15:20)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혹독한 형벌과 순교를 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쟁투, 47)
<4월 10일/수, 지역사회를 보살핌>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와 더불어 관계를 맺은 영혼은 누구를 불문하고 옹색한 삶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며 제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의 재능과 감화력을 사용할 수 있는 넓은 분야를 갖고 있다. 자아 만족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는 냥쭝이란 있을 수 없다. 자아는 죽어야만 한다.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 안에서 감추어져야만 한다. …
자신을 비게 하고 심사숙고하며 지각이 있는 자들은 두려움에 찬 마음과 가장 깊은 겸비함이 없이는 그들의 눈을 그리스도께 쳐들 수 없다. 예수님을 끊임없이 바라봄으로 영혼은 하나님께 대하여 생명을 갖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낸 아버지를 사랑하게 될 것인바 이는 우리가 기이한 빛과 충만한 은혜와 진리 가운데서 예수님을 보는 까닭이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 11:27),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선언하신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놀라운 사랑을 알리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도록 하시기 위해서다. (하늘에, 60)
◎ 사방에서 온갖 슬픔으로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궁핍하고 딱한 처지에 있는 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인생의 고난과 불행을 덜어 주고 구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실천은 설교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우리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며, 집 없는 자를 맞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영혼의 요구는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만족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거룩한 동정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막혔던, 그리스도의 것과 같은 진지한 사랑의 샘물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다.(실물, 417)
◎ 세상에는 절망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밝은 태양 빛을 비춰 주라. 용기를 잃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용기를 줄 만한 말을 해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생명의 떡이 요구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성경 말씀을 읽어 주라. 세상의 유향으로도 고칠 수 없고 의사도 고칠 수 없는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예수께로 데려오라. 그들에게 길르앗에 유향이 있고 크신 의원이 있다고 말해 주라. …
모든 사람은 저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귀한 은혜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이 세상에 나누어질 수 있는 산 통로가 될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그분의 영과 품성을 대표할 자들을 가장 크게 원하신다. 사람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는 없다. 온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축복이 될 거룩한 기름을 부어 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서 그분의 기쁨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실물, 418~419)
<4월 11일/목, 사랑의 유산> 예언의 신 보충자료
◎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머무르신 매시간 하나님의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물결처럼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분의 성령의 감화를 받는 자들은 모두 그분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움직이게 한 모든 원칙이 그들 상호 간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을 움직일 것이다.
이 사랑은 그들의 제자 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폭력이나 사리(私利)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 결합할 때 그들은 모든 인간의 세력 이상의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일치가 존재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서 회복되고 있으며 생애의 새로운 원칙이 심어졌다는 증거이다. 이것은 악의 초자연적인 작용을 물리치는 능력이 신성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타고난 마음에 자리 잡은 이기심을 정복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높임, 298)
◎ 교회에 나타난 이 사랑이야말로 사탄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쉬운 길을 설계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요 15:18~21). 복음은 반대와 위험과 손실과 고통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투쟁함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하는 자들은 다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데 불과하다.(소망, 678)
◎ 우리는 고통 하는 영혼에게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를 나누어 주려고 노력함 없이 결코 그대로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은 율법의 원칙 즉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가운데서 예증 되고 예수님의 생애에서 명백하게 나타난 원칙의 성취에 불과하다. 그분의 품성은 율법의 참 의미를 드러내며 우리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친절과 사랑을 나타낼 때 그들 역시 하늘 법도의 성격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 19:7) 한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신이 존중하노라고 공언하는 법을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형제들에게 나타내는 정신이 곧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정신이 어떠한지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의 유일한 샘이다. (소망, 505)
<4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언의 신 보충자료
◎ “예수님의 부활과 새 생명” (말씀과 능력, 51)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사람의 마지막 부활에 대한 예표였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요 10:17)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그분 안에 있던 생명을 찾으시기 위하여 무덤에서 나오셨다. 인성은 죽었으나 신성은 죽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성으로서 사망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분 안에 자기의 원하는 사람을 살리실 수 있는 생명을 갖고 계신다고 선언하셨다. …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샘이요 원천이시다. 오직 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빛과 생명 가운데 거하시는 분만이 “나는(나의 생명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요 10:18)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불멸의 생명을 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으셨다. 인성을 위해서 그분께서 친히 내놓으셨던 생명을 다시 취하셨으며 그 생명을 인간에게 주셨다. 주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 그 자체이시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권세 잡은 자를 멸하고자 죽음을 통과하신 그분은 모든 생명력의 원천이시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고 크신 의원이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서 고뇌의 죽음을 감내하셨다. 죽음을 패배시키고자 그분은 그 귀한 생명을 버리셨다. 그러나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예수께서 버리신 생명을 다시 취하는 것을 바라본 천만 천사들은 요셉의 갈라진 무덤 위에 서셔서 승리의 기쁨으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외치는 말씀을 들었다.
우리 주님의 부활과 승천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죽음과 무덤에 대해 승리할 것이라는 분명한 증거이고, 어린양의 피로 품성의 옷을 씻어서 희게 하는 자들에게 하늘이 열린다는 보증이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대표자로 아버지께로 승천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형상을 반영하는 자들이 그분과 함께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게 하실 것이다.
◎ “서로의 마음을 묶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 (하늘을 향하여, 104).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은 모든 신자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사랑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통로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성에 도달하는 매체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대리자들과 협력하여 일하는 인간 대리자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는 것처럼 참고 견디게 한다. 온전한 사랑은 진리를 믿고 성령을 받아들일 때만 누릴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위해 그분의 생명까지 주시면서 나타내신 사랑의 중요성을 제자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분의 무한하신 희생에 대해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더 충분히 이해했다면 서로 따돌리고 싸우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현대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진리의 실천을 촉구한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선을 위해 더 큰 감화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신자들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지배적이고 중심이 되는 원칙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묶는다. 진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 그것은 구주를 믿는 열렬하고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을 조화와 연합을 이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여 발전하고 강해지도록 계획하신다. 주님의 사업에 무아적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증거를 세상에 전해야 할 신임장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모두 일을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재능은 다르지만 각자가 할 일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연합한 모든 부류의 사람의 영광스러운 머리가 되신다. 거룩한 원칙에 대한 공통된 믿음으로 연합한 그들은 그들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분은 보편적인 하나 됨, 보편적인 사랑을 낳는 원리를 창조하셨다.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사랑을 묵상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앞에 놓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기독교 원칙을 실천한다면 보편적인 조화와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 차면 다툼도 없고, 패권을 구하는 일도 없고, 군림하는 주인이 되려고 애쓰는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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