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01일(일).
▣여행코스 : 대구 성서홈플러스-영월 청령포-장릉-정선 몰운대-소금강-정선 오일장-정선 아우라지 차박지.
07 : 47 성서홈플러스 출발.
10 : 40 청령포 주차장.
12 : 00 장릉.
13 : 57 몰운대.
14 : 30 소금강.
15 : 13 정선 오일장.
16 : 00 정선 아우라지 차박지.
▲ 10시 40분 : 청령포 주차장 도착.
20대 후반에 다녀 갔으니.. 족히 45년은 넘은것 같다..
기억속의 청령포는 주차시설이라고는 전무한 강변이었는데.. 환경이 많이도 바뀌어 격세지감이다.
▲ 전망대가 있는 매표소로 가는길.
▲ 입장시간 : 매일 09 : 00 ~ 17 : 00.
입장료 : 일반 성인 3000원.. 경로 1000원.
▲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는 배를타고 들어가야 하는 육지속의 섬으로 "국가지정 명승 50호"이다.
남쪽은 기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북..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한 지형이다.
또한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의 유배지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2개월간 머물던 곳이다.
▲ 길어진 연휴효과인가... 수많은 관람객들을 유람선이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다..
▲ 청령포라는 지명은 1763년(영조 39년)에 세워진 단종유지비에 영조가 직접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씨를 써서 내렸고, 이것을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진 비신에 새겼다.
비(碑)의 뒷면에는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비를 세우게 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지명을 청령포라고 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유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 단종(端宗) 어소(御所)에 많은 사람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지금의 어소는 소실되어 새로 지은 건물이다.
▲ 단묘재본부시유지 비각(端廟在本府時遺址 碑閣).
▲ 영조가 직접쓴 글씨로.. "청령포" 라는 지명이 있다.
▲ 단종이 매일 올라서 한양을 바라보며 쌓았다는 망향탑..
▲ 아래로는 서강이 굽이치고 험준한 직벽으로 왕실에서 곱게 자란 17세의 소년으로서는 탈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노산대 (魯山臺).
매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곳이다.
▲ 관음송에서...
▲ 여전히 단종 어소에 관람객들이 많이 보인다.
▲ 단종의 죽음에 악역을 맡았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비를 찾아 간다.
▲ 왕방연 시조비..
▲ 비극의 순간을 집행하고 돌아오던 왕방연은 자신의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밤에 유배지가 잘 건너다 보이는 언덕에
주저앉아 흐느껴 운다... 물소리도 그의 마음과 같다. 울며 흐른다.
▲ 왕방연 시조비는...
1617년 병조참의 용계 김지남(兵曹參議 龍溪 金止男) 이 영월 순시때 아이들이 이 시조를
노랫가락으로 부르는 것을 듣고 다음과 같이 한시를 지어 후세에 전하였다.
천리원원도(千里遠遠道) 미인별리추(美人別離秋)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차심미소착(此心未所着) 하마임천류(下馬臨川流)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천류역여아(川流亦如我) 명인거불휴(鳴咽去不休)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이렇게 단장을 끊는 애닯은 시가
세상에 또 있을까...
▲ 숙종실록 및 야사에서는..
유배지 영월에서 사약을 들고 온 금부도사 왕방연도 단종에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의 발앞에 꿇어 엎드려 울기만
하자, 옆에 있던 노비가 제 딴에는 공을 세워 보겠답시고 활줄을 풀어 들고 나와 단종을 직접 교살하였다고도 하고...
단종의 죽음에 여러가지 설이 난무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단종이 잠든 장릉으로 발길을 돌린다.
.
▲ 영월 관광센터.
▲ 돌아가는 길에 유배지를 보니.. 배 한척만 운행하더니.. 불어난 관람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두척이 움직인다.
▲ 단종 유배지길..
작년에 감삿갓길을 걸었었는데 너무 좋았다.. 이 길도 걸어 봄직 하겠다..
▲ 12시 00분 : 장릉 주차장.
▲ 장릉 운영시간 : 08 : 00 ~ 18 : 00.
장릉 입장료 : 성인 2000원... 경로 무료.
▲ 영월 관아의 호장.. 엄홍도가 버려진 단종의 시체를 업고 산으로 내달렸던 길이 바로 이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위 내용중에 세조실록에 노산군이(단종) 자결하였다는 내용은 믿을수가 없다.
능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엄흥도와 그의 아들이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할 곳을 찾아 헤맸으나
눈보라가 내리치는 엄중설한이라 땅이 모두 얼어 붙어 무덤을 파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 때 어디선가 노루 1마리가
홀연히 나타나 눈밭에 앉아 잠시 쉬고 가니.. 그 눈 녹은 자리를 파서 단종의 시신을 묻었다고 한다.
노루가 눈밭에서 쉬고 갔을 리 없겠으나 약관도 채 되지 않아 권력다툼에 의해 짧은 생을 마감한 소년 왕과 눈보라 치는
설원의 가냘픈 노루 1마리는 어째 서로가 닮은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훗날 복위된 단종의 왕릉을 이장하기 위해 조정에서
지관을 보내어 장릉의 지세를 살폈는데 실제로 가본 지관들은 엄흥도가 임시방편으로 모셨던 그 자리가 이미 천하길지
라는 것을 알고 이장하지 않고 묘제만 왕릉의 격식에 맞추어 고쳤다고 한다...<나무위키에서 발췌>
▲ 장판옥... 정조 15년에 세워짐.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86인.. 환관위(宦官位) 44인.. 여인위(女人位) 6명 등
모두 268인이 모셔져 있다.
▲ 왼쪽은 신의 길이고... 일반인은 오른쪽으로 다니라는 안내문이 따로 있다.
▲ 단종의 영정...
▲ 12시 48분 : 장릉앞 집단상가 식당에서...
곤드레밥(9000원)을 시켰는데... 나물 좀 보소.. 너무 적다 가물에 콩나듯 들었다..ㅎㅎ~ 우~~ㅆ..바가지~..
▲ 13시 57분 : 정선 몰운대 입구.
▲ 구름도 쉬어 가는곳몰운대(沒雲臺)..
화암팔경 중 제7 경인 몰운대는 수백 척의 암석을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위에 5백 년이 넘은 노송이 좌우건너편의 3형제
노송과 함께 천고흥망을 간직하고 있다. 옛 전설에 천상선인들이 선학을 타고 내려와 시흥에 도취되었다고 전하며 구름도
아름다운 경관에 반하여 쉬어 갔다고 하는 몰운대 절벽 아래에는 수백 명이 쉴 수 있는 광활한 반석이 펼쳐져 있다.
▲ <500년 된 소나무와 몰운대(沒雲臺)>..
몰운의 높은 대가 반천에 솟았는데~
지팡이 날려 올라가니 풍연을 벗어났네~
굽어보니 굽이진 비탈은 강물에 다 달아 다하였고..
돌아보니 우뚝한 바위 끝은 북두에 매달렸네..
이 땅에 사는 사람 세속을 떠났으니..
이번에 온 태수는 신선이 된 듯하네..
이름 남겨 유랑(劉郞)에게 부탁하는데..
그래도 비(碑)에 비하면 나은 것 같다..
1888년 5월 10일 / 지군 오 횡묵 지음.
지군 오횡묵은 1887년 3월 정선군수로 부임하여 1888년 8월 이임하기까지 1년 5개월간 정선군수를 지냈으며,
고종 24년인 1888년 5월 10일 집강 유 종택의 안내로 몰운대(沒雲臺)를 돌아본 후에 지은 한시다.
▲ 14시 30분 : 정선 소금강.
▲ 정선읍으로 가는길..
▲ 정선 오일장 무료주차장.
▲ 처음 와본 정선오일장이 엄청 크더래요~~..
▲ 15시 36분 : 정선 아우라지 무료 차박지에 파킹을 하고..
▲ 출렁다리 교각위에 아우라지 총각상 이미지가 돋보인다.
▲ 아우라지 차박지... 저 속에 우리의 <집시카>도 당당히 끼여 있다.
▲ 반대편 교각의 아우라지 처녀상은 더욱 예술이다.
▲ 아우라지 주막.
▲ 정선 구절리에서 내려오는 송천에 노을 윤슬이 반짝인다.
▲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는 곳.
▲ 정선의 민초들에 애환이 담긴 노래말이다.
▲ 아우라지란.. 강원도 정선군의 지명으로..
정선군 여량면 여량5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골지천과 송천이 합쳐져서 한강의 본류(조양강)를 이루는 곳이다.
'아우라지'는 어우러진다는 뜻으로서, 두 물줄기가 어우러져 한강을 이루는 데에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또한 이곳에 있는
나루터를 일컫기도 한다.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 유적지로도 유명하다.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사랑을 나누던 처녀 총각이
싸리골로 동백을 따러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간밤에 폭우로 인해 불어난 물줄기 때문에 서로 만나지 못하자
그립고 안타까운 심정을 노래하여
"아우라지 뱃사공아 날 좀 건네 주게 /
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사시장철 님 그리워서 난 못살겠네"라는 가사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리기 위한 '아우라지 처녀상'과 이 노래의 가사를 비로 새긴 '아우라지 노래 가사비'가 세워져 있다.
정선아우라지유적은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장문화재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청동기시대 유적은 조사지역 거의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주거유적과 분묘(고인돌)유적이 함께 확인되고 있어,
이 지역에 대규모 청동기시대 집단취락지가 형성된 곳으로 판단된다.
▲ 골지천...
▲ 아우라지 총각상.
▲ 아우라지 나룻배..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 합수지점을 내려다 보고 있는 처녀상.
이곳에서부터 물길을 따라 서울까지 목재를 운반하던 뗏목터로, 이곳에서부터 강이라고 부른다.
누추산..상원산..옥갑산..고양산.. 반론산..왕재산 등에 둘러싸여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맑으며, 강변에는 조약돌이
깔려 있고, 합수지점에는 아우라지 처녀상과 최근에 지어진 정자각이 있다. 여량 8경의 하나이다.
▲ 아우라지 처녀상.
▲ 아우라지 처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ㅎㅎ~
▲ 우리의 "집시카".. 정선 오일장에서 돼지고기좀 사서.. 소주 3병으로 주거니 받거니..
▲ 이렇게.. 아우라지에서의 1박이 깊어 간다.